사라지고 싶지 않다면(3)

나는 뒤로 뛰다 벽으로 달라붙어 능력으로 몸을 천장으로 날렸다.
콱!
그대로 천장에 못을 발사하고 그걸 붙잡는다. 물론 적당히 제법 오래 버틸 수도 있긴 하지만······
"미, 미안해! 급해서!"
카니스가 후다닥 뛰어와 내 아래에 바람을 휘몰아쳐 독가스를 주변으로 흩어 놓는다.
"우와, 선배님. 결혼도 하기 전에 미망인이 되는 취미라도 있어요? 재산 상속이라도 받으시려고요? ······생각해 보니 저 사람 군단장이잖아."
"너는 좀 닥치고! 여, 여하튼 당신 무사해서 다행이야?"
"덕분에 죽을 뻔했지만."
뭐, 정말 죽을 뻔 한 건 아니긴 했다. 나에게는 다른 수단도 있었으니.
기겁하긴 했지만.
"아니······ 어, 어쨌든······. 에잇, 미안해!"
카니스는 새파랗게 변해서 손을 허공에 줬다 폈다 하면서 창백한 얼굴, 안도한 얼굴, 무안한 얼굴로 정직하게 바뀌다 눈을 감고 사죄한다.
"그래 뭐······ 어쨌거나 제때 도착한 건 다행이네."
"이럴 때는 미안하면 귀여운 척이라도 해 보라고 하는 거예요. 섹시포즈라도 시키던가."
그 타이밍에도 나불거리는 오피아에게 눈을 흘기고 카니스는 다음 말을 이었다.
"너! ······어, 어쨌거나 버섯이랑 쥐 떼는 어때?"
[나는······ 아직 남았다!]
음성을 조합할 때 필요한 쥐들이 좀 죽어서인지 목소리가 좀 튀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어려워진 것과는 별도로 힘겹다는 감정도 느껴졌다.
놈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쥐, 아니, 거의 인간 같은 감정이다. 자아를 형성하고, 자아를 잃기 싫어하는 지성체의 그것.
그래서 살아남은 환희도 어딘지 모르게 느껴졌다. 나도 그 감정에 공감해 주고 싶다. 하지만······.
"······하지만 버섯은 그렇게 안전하지 못한 것 같군."
쥐 떼 모두가 휙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카니스가 아랫입술을 깨문다. 그 방향 내부로 랜턴을 돌린다.
문명 시대의 콘크리트 벽면이 무너져 있다. 아니, 녹아있다. 그 틈으로 거대한 동굴이 깊게 파여 들어가 있다.
아마 벽면은 다른 힘으로 인해 파괴되고, 그 사이로 다수의 생물, 주로 쥐들이 파고, 정리하고, 어떤 '농장'을 만들었다.
어떤 식물의 것인지는 모르지만 거대한 식물의 뿌리가 아래로 내려와 뚫려있었다.
거대하다는 건 식물치고 거대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냥 컸다. 뿌리 덩어리 덩어리마다의 사이즈가 거의 사람 몸통만 하다.
그런 뿌리들이 파헤쳐진 동굴 안쪽으로 몇 개인지 모르도록 주욱 나열되어 있다.
하지만 그 뿌리들은 썩어 바닥에 떨어졌다.
그 뿌리를 양분으로 삼고 살았던 듯한 버섯들의 자실체(子實體, Fruit body, 버섯의 포자를 만드는 영양체. 버섯의 균사체가 아니라 바깥으로 보이는 부분) 들은 같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뿌리도, 어떻게 붙어 있는 버섯들 일부도 남아는 있지만, 조만간 그마저도 눈 앞에서 실시간으로 썩어들어갈 것이다.
[······]
그것이 그들의 농장이었다. 100여마리가 넘는 쥐 떼가 목숨을 부지하며, 자기들의 자식을 낳고, 다시 버섯을 먹어가며 살아남을 수 있는 공간.
그들의 의식에 뿌리내린, 그들의 의사 교환 속에서 남아 있는 어떤 지성체의 생존 공간.
"이것 역시 너의 생존, 아니 존재를 위해 필요한 질문이다. 그러니 한동안 일방적으로 답해······줘."
[······무엇인가.]
"너는 이 버섯 때문에 여기에서 나가지 못했어. 그렇지?"
[그렇다.]
"다른 걸 못 먹나?"
[나의 떼는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쥐 떼는 먹을 수 있지만 그러면 '너'가 아니게 된다는 것이지?"
여긴 과거의 결과가 쌓여 만들어진 공간이다.
가정에 가정을 거듭하게 되겠지만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시나리오가 있었다.
300여년 전, 문명의 시대 때 이미 생화학 물질의 운반차 같은 것이 엎질러지고, 그로 인해 저 벽이 녹아서 뚫렸을 것이다.
벽을 녹인 건 그렇게 이상한 것이 없다. 생화학 물질 운반차라면 산 같은 것이 함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물질과 별도로 함께 엎어진 어떤 실험체가 있었다.
아마도 그중에서도······ 다른 생물들에 들어갈 수 있는 것. 박테리아.
어떤 이유로 만들어졌는지는 몰라도, 그건 저 내부로 들어가서, 흙을 파고 올라가며 위의 식물을 불렀다. 그리고 나무에 스며들어 갔다.
식물은 변화했다. 엄청나게 커다란 뿌리를 넓게 퍼뜨리도록. 그리고 그 식물에 자라기 시작한 버섯에도 들어갔다.
그 버섯을 먹는 쥐 떼에도.
다른 곳과는 달리, 동물에 들어간 '생화학 물질'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특히 '떼'를 이룰 수 있는 쥐라는 동물들에게 들어가면서 큰 변화를 가지게 되었다.
그 자신은 어디까지나 먹이사슬로 퍼져나갈 수밖에 없지만, 그 '생화학 물질'은 자신을 수용한 생물, 특히 동물의 신경계에 영향을 끼쳤다.
애초에 그것 자체가 목적이었던 생물 실험체가 아니었을까.
"너는, 어떤 방식으로 너의 '떼' 사이에서 의견을 교환하는 거지?"
[떼에게 의견을 교환한다니······ 떼는 떼다. 아무것도 교환하지 않는다.]
"그럼, 생각의 교환······ 어떤 때 너의 '떼'가 네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하는 경우는 없나?"
[······거리가 멀어지면 그리 된다.]
페로몬인가, 아니면 이녀석들도 혹시 나노머신을 활용한 통신을 할까.
그것이 네트워크를 만든다. 그것도 쥐 떼라는 거대한 인구밀집도를 가지는 생물들에게 각자에게 수용체와 분사체를 만들고, 그 네트워크가 지성체가 되었다.
그리고 그건, 보충 받아야 한다. 실험체가 독자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도록 만들어진 안전장치일 수도 있다.
결국 이 지성체는, 어떤 의미로 쥐 떼가 본체가 아니라 할 수 있다.
스스로는 쥐 떼에 완전히 동화되어 있지만, 실제로 본체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것은 쥐 떼 보다는 버섯이나 나무 쪽이다.
그러나 나무 자체는 죽었다.
노출된 뿌리로 파고들어 간 가스의 독성이 물관을 타고 올라가며 나무의 줄기가 썩고 있을 것이다. 겉으로도 부스러지며 증상이 나타나는 속도를 보면 문명시대의 기술자라 해도 살릴 수 없겠지.
하지만 뿌리 중 몇 개가 남아있다. 나는 더 깊은 곳에 있는 뿌리 중 아직 썩지 않은 뿌리 하나를 찾았다.
그나마도 다른 커다란 뿌리들과는 달리, 조그마한 뿌리다.
"오피아. 네 세이버는 좀 부서져도 되는 거냐?"
"쓰세요. 사람······은 아닌 것 같지만, 저 생명······의 목숨보다 중요한 건 아니니."
"고맙다."
나는 그녀의 세이버 날을 내 상완부 근처에 두고 뿌리의 기둥 부분을 겨냥했다.
투확!
알루드 카렉의 목을 칠 때와 같은 요령이다. 상완부부터 가속되며 내려가는 세이버.
최종적으로는 마치 단두대가 내리칠 때의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발사되며 두꺼운 뿌리 부위를 한 번에 잘랐다.
나는 그 뿌리를 소중한 아이처럼 껴안고 나와 발걸음을 옮긴다.
[그건······]
"너도 따라와라. 사라지고 싶지 않다면."
"지시처럼 들리겠지만······ 아니. 지시 맞아. 너는 지금 저 지시에 따라야 해. 안 그러면 진짜로 사라질 거야."
[······안 나가면 죽는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나가면 죽는다.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는가?]
내가 이 연약한 존재가 인류에게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죄악감이 느껴질 정도다.
이 존재는 어떤 의미에서는 필연적이다. 문제의 박테리아는 원래 이렇게 되도록 설계된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개체'의 탄생은 어떤 의미의 기적이었다.
쥐 떼 같이 군중으로 몰리는 생물이 없는 곳에서라면 인간과 의사를 교환할 수 있을 수준의 '지성'을 획득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정작 그런 걸 만들고 싶었던 문명 시대에 실험 도중 완성되었다면, 말 그대로 지성체가 나타난 시점에서 부작용을 걱정한 누군가가 전멸을 시켰을 수도 있다.
"너희를 내 '영토' 내에 보관할 거다."
개인적으로는 이 생물을 보관할 곳이 필요하다. 이 생물에게 은혜를 제공하면서, 앞으로 협력을 구할 수 있는 위치로 데려갈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남은 문제는 생각보다 많다.
이 나무뿌리에서 다른 나무로 접목이 가능할까. 접목하는 과정에서 나무에 정말로 옮길 수 있을까.
그리고 이렇게 달려가는 중간에도 배고파서 픽픽 쓰러질 것 같은 쥐 떼는 얼마나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까.
그 쥐 떼에게 다른 식량을 준다면, 그는 얼마나 오랫동안 '자기'를 유지할 수 있을까.
***
카니스에게서 도망친 바인 힐반은 부들부들 떨며 자기 목으로 손을 향했다.
여기에 위협되는 자는 없다.
거울은 없지만 시커먼 바닥에 물웅덩이가 있었다. 마실 마음이 드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깨끗한 물이다. 스스로 만든 불로 조명을 만들고 거울로 삼는다.
큰마음을 먹고 목을 잡았다.
치히히익!
"아아악!"
목에 잘린 상처를 소독하고 꿰매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지만, 그런 기술력을 가진 곳은 통치기구가 지배하는 중앙 지역이나 가야 있다.
교단에서 도망쳐 나온 배교자가 택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아니, 사실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교단과 마찬가지로 강력한 힘을 숨겼으며 그가 지금 이미 몸을 담고 있는 검은 용에도 그의 상처를 말끔하게 치료해 줄 힘은 있다.
하지만 그걸 사용해버리면, 그가 쌓아야 할 공적의 양이 늘어난다. 그럴 것이라면 차라리 검은 용의 심장이 되는 길을 택하는 게 더 나은 길이 될 것이다.
"그 상처."
바인 힐반은 고통 속에서도 깜짝 놀란 나머지 불을 지를 것 같던 자기 손을 막는 데 힘을 다해야 했다.
"······주, 중간에 신전 기사가 나타나 교전 끝에······ 제압했습니다!"
메이브는 그 말에 잠깐 바인을 노려보듯 바라보다 말을 툭 던졌다.
"제압했다는 것 치고 상처가 심하군?"
"다, 다급하게 그년을 물리치고 통로에 몰아넣으면서 정화 장치를 작동시키는 데 성공한 겁니다!"
"정화 장치가 작동하는 걸 눈으로 확인했나?"
"······위, 위험할까 봐 하, 하자마자 통로를 바로 폐쇄했습니다!"
다른 말과 달리, 이것만은 너무 큰 거짓말이라 말하면서도 바인은 목에 침이 넘어가는 것을 느꼈다.
급한 대로 지져 지혈시킨 상처가 뜨겁고 아팠다. 입 안으로 넘어가는 마른침마저 내부의 상처를 지져버리는 듯한 느낌이다.
"보, 보시다시피 상처가 심하니 자, 잠깐이라도 쉬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우리의 통로는 들키지 않아."
어떻게 해서든 빨리 도망가고 싶던 바인은 그 목소리의 냉랭함에 뭔가 가슴이 철렁했다.
"입구와 출구를 페어로 폐쇄하는 것으로 그사이에 통로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감추고, 최종적으로 위장 도료를 발라 알아볼 수 없도록 하는 거, 것이지요? 아, 알고 있습니다."
바인은 서둘러 답했다. 들으면 안될 것 같은 말이 나오기 전에 빨리 답해야 했다.
"중요한 것은, 그걸 한 사람이다."
하지만 메이브는 그냥 긍정하지 않고 다른 답을 말했다.
너무 심각한 함의가 담긴 말. 그 말뜻이 가진 끔찍한 결과에 새파랗게 질린 바인이 더듬거리며 항의했다.
"거, 검은 용은 발톱을 절대 죽이지 않는다고!"
"실제로 안 죽인다. 자결······로 입을 막는 건 어디까지나 우리 심장부터다."
"그 그러면?!"
"기억을 제거하는 것이지. 필요한 부분만."
"아······아. 그, 그렇다면······. 백치를 만든다든가 하는 건 아니죠?!"
"어딘가에 백치가 돌아다닌다면 검은 용의 악명은 그보다 훨씬 심했을 것이다. 기억이 지워졌다는 것 역시 무조건 기억할 수 있게 되어있다. 그리고, 기억 삭제 장면은 촬영되고, 공유되지. 네놈도 이미 한 번 은 본 적이 있었을텐데?"
기억 삭제 장치가 있다는 것만으로 그 집단의 진실성은 의심받는다. 소속원은 끊임없이 자신의 기억이 지워진 것이 아닌지를 걱정해야 하니까.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기억이 지워졌음을 언제나 기억하게 되어 있고, 영상 기록도 남고, 공유된다.
"아······ 알겠습니다! 지우시죠!"
그래서 검은 용의 발톱은 아무 생각 없이 요구에 응할 수 있다.
잠자코 머리를 내미는 바인을 차가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메이브는 입을 달싹이다 중단하고 손을 내밀어 일으킨 다음 이동한다.
"여기서는 못한다."
원래라면 메이브에게는 설명 책임이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죄'가 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메이브는 이 경박한 발톱이 필요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걸 감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이에게라면, 그도 아무 가책 없이 진실을 감출 수 있을 것이다.
원하는 정보를 지울 수 있다는 건,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는 뜻이다. 모든 정보의 검색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지우려는 곳과 이웃해 있는 시점의 기억이라면 얻어낼 수 있다.
이를테면, 최근의 임무에 실패했는가 같은.
그리고, 임무 실패는 괜찮더라도, 임무에 실패하고 감추려는 경우에는 다른 벌칙이 주어질 수 있다.
아주 심각한 종류의 벌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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