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격할 것이다(1)

쥐 떼들이 내 앞에 달리지 못하게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죽은 개체도 많았지만, 기본적인 덩어리는 보기만 해도 충격적인 규모다.
그 정도면 지나가다 보는 사람들을 졸도시키거나, 반대로 발작한 사람들이 뛰쳐 나와 쥐 떼를 밟아 전멸시키기 딱 좋은 형상이었다.
어려운 통솔 끝, 도착하자마자 데인스를 닦달해 가장 중요한 인물인 우덴 드록스를 찾았다.
"나, 나무를 사, 살려 붙일 수 있냐고? 아, 안 해 봤는데?"
목에 스파이크 달린 펑키한 복장의 소심한 치유 능력자 우덴 드록스는, 우리 뒤에 와장창 따라붙어 얌전히 기다리는 쥐 떼를 겁먹은 표정으로 바라보면서도 내 요구에 성실하게 답했다.
"해봐. 의외로 중요한 일이니까. 아, 버섯 뭉개지지 않게 해라. 핵심은 그 버섯이니까."
그는 좀 머뭇거리면서 내게 뿌리를 받아들였다.
"너는 나를 말 듣게 하는 이유로 내 아들을 인질로 잡겠다고 하지 않았나."
옆에서 그걸 언짢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하넬 드록스가 툭 하고 던졌다.
"그래."
"인질에게 노동, 그것도 전문 노동시키는 놈이 어디 있나."
"인질인 것과는 별도로 고용하지. 당신 아들도 이제 슬슬 일해야 하지 않겠어? 당신 말대로 전문 인력인데 안 써먹을 수도 없잖아."
하넬 드록스는 불편한 표정으로 그쪽을 바라보다 우덴 드록스에게 붙어 처량한 표정을 짓는 오피아의 모습을 보고 더 언짢아졌다.
"잘생긴 오빠. 그냥 불쌍한 친구들 돕는다고 생각하고 해 주면 안 돼요?"
순진한 남자는 겁먹은 표정으로도 얼굴이 빨개진 채 그 요청에 어떻게 응하려고 필사적으로 적합한 나무를 찾아 뛰기 시작했다.
구도적으로는 남자를 후려서 일 좀 시키려는 꽃뱀 같은 꼴이라 보기 좀 그렇긴 한데······
"나는 뭘 공짜로 일해 본 적 없단 말이다!"
그 광경을 보며 하넬 드록스는 더더욱 기분이 나쁘다는 듯 말을 내뱉었다.
"당신 아들까지 그렇게 해야 해?"
"그게 내가 아들에게 줄 유산이니까. 이딴 빌어먹을 군벌령보다는 그게 더 중요하다."
요즘 좀 느낀 건데, 하넬 드록스는 정말로 아들에게 군벌령을 넘겨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우덴 드록스도 그걸 눈치챈 것 같고.
아니, 그 이상으로 시한부로 내가 군벌령을 '빌리겠다'는 걸 곧이곧대로 믿지 않고 그냥 내 부하 관리로 만족하려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째 아예 짐을 털어버린 듯한 느낌인 게······
어쨌거나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대충 끝난 것 같았다.
저편으로 걱정하는 얼굴로 적합한 나무를 찾아 움직이는 카니스, 오피아, 우덴을 두고 나는 하넬 드록스와 어느새 나타난 라닐 레펜, 데인스와 마주했다.
"······편지는 보였지?"
"그랬겠지?"
데인스가 평소의 좀 건방져 보이는 태도로 받았다. 하넬 드록스와 라닐 레펜이 고개를 마주 끄덕였다.
내가 호릴드를 선행시키면서 보낸 편지다.
기본적으로는 데인스에게 보냈지만, 힘의 구도 때문에라도 데인스는 이 두 명에게도 편지를 공유하고 협력을 요청해야 했을 것이다.
"봤다. 정말로 혼자서 쓸어버렸나? 아니, 네가 싸우는 힘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쓸어버렸다는 말에는 어폐가 좀 있군. 알루드 카렉의 군대는 아마 아직도 너희와의 경계에 모두 몰려 있겠지. 한 줌이라 부르기는 힘들지만, 방위 병력은 최소한도로만 남아 있었어."
"만약 그 병력이 남아 있다고 해도 너 혼자서 섬멸할 수 있었을까?"
"가능했겠지. 조금 귀찮았겠지만."
수천 단위가 넘어가는 일반 병력이나 수십명 이상의 능력자들로 한꺼번에 덮친다면 혹시 모르겠지만, 현대 군벌들의 행정력으로는 그도 어렵다. 통치기구면 모를까.
그러니 나에게 중요한 문제는 이기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인류에게 피해를 덜 끼치느냐가 된다.
"······그래서 나에게 자문 위원의 파견을 요청한다고. 그쪽에 네가 세운 인원이 반항할 가능성은 없나?"
"일단 없다. 그래도 필요하면 알아서 제압하라고 하고 싶지만······ 아니, 명령 계층은 명확하게 해야겠지. 너는 이 지역의 관리자, 내가 그 위치에 세운 대관은 알루드 카렉 지역의 관리자다. 만에 하나 도저히 힘든 경우가 있다면 나에게 말하도록 해."
"네가 없다면? 너는 아무리 봐도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을 놈은 아니지. 그러니 지역의 대관만이 아니라, 네 부관도 필요하다. 만일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승계 구도라 봐도 좋다."
맞는 지적이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정말로 승계가 필요하다면 필요한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내가 죽은 상태고, 이미 상황은 틀린 상태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승계 구도는 필요하다. 불필요한 혼란을 막고, 안정적인 체계가 있다는 것으로 안심을 준다는 면에서도.
이왕 하는 김에······ 정말로 최악의 경우에 대처하기에 적합한 인원 순서는 어떻게 될까?
그나마 기적과도 같이 얻어낸 위기감을 공유할 수 있는 인원은 세 명, 넓게 봐서 네 명이 있다.
"카니스, 데인스, 라닐 레펜, 아녹 테라의 순서다."
가장 믿을 수 있는 판단력을 가진 건 아마 아녹 테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의혹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거기에 그녀가 나에게 위임받은 권력으로 무슨 위험한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그다음은 라닐 레펜. 전투력 면에서는 나만큼이나 강하고 유명세도 충분하다. 거기에 그녀도 용병단을 이끈 경험도 있고.
그녀도 실리코 사피엔스까지는 봤으니 위기감은 가지고 있을 것이지만, 그녀 역시 아녹 테라와 한 집안이라는 것이 걸린다.
"이유는······ 이해할 만하군요."
답변한 라닐 레펜.
그녀와 아녹 테라는 '힘'이 남는다고 착각하고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쏟아부을 가능성이 있다. 사실 그녀들이 아는 범위까지만 문제라면 그래도 되겠지만······
"허? 나보다 다른 조직 아가씨가 높을······ 수도 있지? 군단장도 남자구만?"
실실거리면서 웃는 데인스.
그 역시 개인적인 욕심을 가졌지만, 나머지 사람들의 등쌀에 못 이겨 나쁜 짓을 마음 놓고 저지르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승계 구도라도 높아야 공익에 고민할 수 있겠지.
결국은 지금 저쪽에서 쥐 떼를 살리려고 고군분투하는 카니스가 차순위가 된다.
······오피아가 놀려대던 이야기가 현실이 되어 가는 게 어딘가 근지럽고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아직 그들에게도 알릴 수는 없지만, 그녀가 교단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교단에 어느 정도의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녀만은 진짜로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내가 해야 했을 일을 마저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모두가 없다면······ 그다음 순위는 너다 하넬 드록스. 전략 목표는 전에 말한 것처럼 군대를 키워. 알루드 카렉 지역······ 이제 그냥 카렉 지역이라 하지. 둘을 비교하면 물론 네가 더 윗 라인이다. 이건 내가 개인적인 서명을 보내 인증시키지."
기실 권력 승계가 하넬 드록스 까지 닿게 된다면 이미 틀린 상태일 것이다.
그래도 혼란을 막기 위해 가장 굳건하게 자리를 지킬 대리인은 경험을 봐도 그가 맞다.
"찾아야 할게, 알루드 카렉에게 갑옷을 만들어 준 대장장이랑, 호릴드라는 친구의 가족들 전부라고 했지?"
"대장장이는 이쪽으로 보내서 일을 좀 시켜볼까 하고, 호릴드는 구하는 대로 내가 써먹을 거야."
알루드 카렉이 데리고 있던 대장장이는 바로 찾아봤지만 금방 찾을 수는 없었다. 호릴드는 아무리 생각해도 여러 가지 심부름에 너무 좋은 인재라 놓치기가 힘들고.
"그리고 네 요청에 따라 자문 위원을 파견하는 문제 말인데. 그 카렉 지역의 전략 목표도 우리······ 드록스 지역과 같나?"
"그래. 장기적으로는 아예 모두 능력자로 만들어진 군대가 필요해. 노예는 없애고."
"처음 세부 계획을 들었을 때도 느꼈지만······ 능력자로 군대를 꾸민다는 건 좋아 보이면서도 위험한 발상인 건 알고 있나?"
능력자는 흔치 않다. 개인 단위라면 신전 기사들에게 뺏기지 않으면서 유물을 지키고, 여신에게 곱게 바쳐야 하는 것부터 장벽이 된다.
단, 군벌쯤 되면 그 비용은 꽤 절감된다.
애초에 아무리 약소한 군벌이라 해도 아예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부가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군벌은 작정하고 100여명의 능력자를 한꺼번에 만들 수도 있다.
물론 그들을 '유지'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기존까지는 아예 없었나? 군대에 능력자가?"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충성도가 높은 녀석들에게만 줘야겠지만······ 그런 놈들은 우선 요원이나 관리로 만드는 게 더 중요했다. 다행히 알루드 카렉의 경우도 군대에는 능력자가 없었으니 지금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고."
이건 안전한 사고방식이다.
능력자를 써먹기에는 군대가 가장 유력하지만, 반란 가능성이 높은 군대에 능력자를 배치하는 건 분명히 위험한 것도 사실이다.
능력을 가지게 되면서 전능감에 취하기도 쉽다. 태도부터 거만해지기 쉽고, 명령 몇 번 들으면 당장 짜증부터 낼 수도 있다.
불만을 가지게 된 군대 소속 능력자가 자기 능력을 보이면서 개별의 '충성'을 사게 되면 그게 반란의 싹이 된다.
물론 지방 관리 책임자에 능력자가 배치되는 건 더 위험하다.
"비밀 정탐 요원으로 데인스 곤 같은 놈을 보냈길래 조금 있을 줄 알았는데."
충성도가 높다면 요원으로 능력자를 보내는 건 맞지만, 데인스 곤은 그렇게 딱딱한 충성도를 가지지는 않았다. 아예 막 돌아눕는 놈은 아니긴 했어도······
"외부로 보내는 인상착의가 쉽기도 했고, 나머지 놈들은 너무 중요한 곳에 있어서 뺄 수도 없었다."
아아, 이유 있는 대머리였나.
"뭐?! 그런 이유였어?!"
옆에서 들으면서 건방지게 고개를 까딱거리던 데인스가 화들짝 놀라면서 답했다. 하넬 드록스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의외로 대머리에 저런 덩치는 정작 강도들 사이에 들어가기에는 적합하지만, 다른 곳에서 수상하게 움직이면 보기만 해도 위험해 보이니까. 대머리나 머리를 가린 놈이 이상한 곳에서 발견되면 내 관리들에게 잡으라 명령해 둔 상태였다."
"젠장! 그러셨겠지? 어째 잠입 실패했다고 도망갈 생각은 하면 안 될 것 같더라?"
자기 머리를 위로 쓰다듬으면서 붉으락푸르락 해진 데인스가 투덜거렸다.
의외로······ 나쁘지 않은 발상이다. 모자가 유행하는 것도 아니고, 가발은 어마어마한 사치품인 세상이니.
"뭐······ 좋아. 임기응변에 좋은 것도 좋겠지. 하지만 당신이 지적한 문제들이 있는 건 알면서도 나는 그런 군대가 필요해."
"······세계 정복이라도 할 생각인가?"
세계라는 말의 무게는 요즘 세상에서 형편없이 가볍다. 한 줌도 안 되는 인류의 터전을 세계라 불러야 하는가.
"그렇다고 생각해도 좋아."
나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 정복에 나설 것이다. 최초로는 문명 지대를, 더 나아가서는 그 바깥의 세계까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믿을만한 놈들을 중심으로 헌병대부터 조직해. 일반 병사 중 필요한 녀석들은 승급시키고."
"······목표 수치는 총인구의 0.1%. 정확한가?"
하넬 드록스는 팔짱을 끼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
천명에 한 명 꼴이다. 이웃과 항상 으르렁거린다면 솔직히 적은 비율이다.
하지만 경제적인 뒷받침을 고려할 때, 무장을 유지한다 생각했을 때에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이보다 더 높이려면 노동 인구의 감소로 인한 경제적인 타격까지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일반 현역병이라면 우리 경제력으로는 어려워도 겨우 괜찮은 수준이다. 하지만 그 인원을 모두 능력자로 하는 건 헌병대가 있다고 해도 유지가 어려울 건데?"
"그래도 징병 없이 모병으로 가능하겠지."
요즘 시대에 징병은 오히려 더 어렵다. 무장 제공도 안되고 훈련도도 떨어져 반란의 위험만 높아질 수가 있다.
하지만 모병에는 언제나 미끼가 필요하다.
"유물을 제공한다면. 하지만 그 인원 모두를 능력자로 바꿀 정도의 유물이라면, 우리 군벌령의 수익으로는 어려운데."
"조금 천천히 늘려도 돼. 능력 제공을 미끼로 걸고 모병하고, 일반 훈련 매뉴얼을 두고, 시험에 통과하면 능력을 준다. 그리고, 여신에게 바치기 위한 유물은 내가 낸다."
"종전에 이야기 나왔던 파워팩인가? 꽤 큰 자금이 되겠지만, 여신은 파워팩을 그렇게 높게 치지는 않을 텐데?"
"주변에 알리지 않아야 하니까 페이스는 그쯤에 맞춰. 하지만 제공하는 건 파워팩이 아니야. 데이터 큐브다."
여신은 지식의 여신. 게걸스럽게 지식을 빨아들이는 존재. 그녀가 유물을 원하는 것은 그 유물의 힘 때문이 아니라 그 유물이 가진 데이터에 대한 평가를 한 결과다.
그래서 그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자원은 사실 실제로 '데이터'다. 그리고 3차원 정보 저장 매개체인 데이터 큐브는 그 작은 부피에 비해 월등히 거대한 가치를 가진 것이 된다.
여신은 그리하여 데이터 큐브를 받으면 반드시 능력을 제공한다.
"······데이터 큐브를 매주 줄 수 있다고?"
"대, 대장? 그건 대체 무슨 소리야?"
"당신······ 그런 게 있었나요?"
옆에서 잠자코 듣던 데인스와 라닐 레펜까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되묻는다. 나는 어깨를 한번 올려 보였다.
"······그래. 있었어."
그 출처의 일부는 지금 내 '요새'에서 가동 중인 로봇이다. 그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도 아직 말할 수 없다. 어쩌면 영원히 이야기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건, 겨우 '데이터 큐브' 따위를 만들기 위한 장치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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