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격할 것이다(3)

겁을 집어먹고 머저의 등 뒤에 숨으려던 우덴 드록스는 정신을 차렸다.
'나, 나를······ 죽이러 왔나?'
우덴 드록스가 가장 먼저 걱정하고, 가장 먼저 떠올릴 생각은 그것이다.
'너, 너를?! 하하하하하! 아하······쿨럭.'
그는 복부의 깊은 상처를 붙들고도, 몸을 망가뜨리겠다는 것처럼 웃다 토혈했다.
'······날 웃겨 죽일 생각이군. 아니. 너는 내 걱정거리가 아니다.'
'그러면 왜 여기서 상처 입고 쓰러져 있는 건데?'
이건 옆에 있던 머저가 뭔가 건방진 듯한 태도로 한 말이었다. 위기에 꽤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아는 머저지만, 그에게 있어 그는 분명히 위협이 아닌 모양이었다.
'도망자이기 때문이지. 상처만 남은 건, 날 쫓아 온 놈을 내가 죽였기 때문이고.'
말을 마치는 동안, 그의 상처에서 배어 나온 피가 옷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안색이 창백한 가운데 웃는 것이 최후의 말이라도 남기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 당신 상처 너무 깊은데.'
'너는······ 그러고 보니······ 우덴 드록스. 재생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
'어? 내, 능력을 아, 알아?'
'그 정도 정보는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그래. 내가 불쌍해 보인다면······'
말을 마친 그는 떨리는 손으로 왼손으로 왼쪽 허리에 둔 가죽 주머니를 열었다.
'너, 뭘 꺼내려는 거냐!'
아무래도 괜찮다는 태도로 있던 머저가 우덴을 잡아끌며 외치자, 그는 피로 흥건한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흥······ 걱정하지 마라. 힘도 없군. 자세를 바꾸면 말도 못 하겠다. 잠깐만······'
그는 주머니에서 조그만 리모컨 같은 것을 꺼내고 부들거리는 손으로 뭔가를 입력했다.
'너는······ 날 살려 줄 생각이 있나?'
'죽을 상처구만, 도련님에게 뭘 시키려고?'
머저가 주의 깊게 그 리모컨 같은 것이 우덴을 가리키는 것을 천천히 막아 세웠다. 놈은 쓰게 웃어 보였다.
'내가······ 우덴에게 줄 게 있다. 그걸 받고, 날 살려 줄 건지 묻는 거야.'
'준다고?'
'······힘. 나를 회복시킬 힘을.'
'······그게 돼?'
당연히 그런 걸 들어 본 적은 없었다.
'너 이 새끼, 도련님에게 뭔가 수상한 일을 할 거라면······'
모두가 의구심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그는 다시 토혈하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나는 유물······ 사냥꾼 아팬트다. 이건 유물이고······. 선불로 줘야 하는 거라 꺼린 것뿐이야. 네 허락은······ 필요 없다. 하지만, 어차피 죽으면 소용없지.'
그는 떨리는 손으로 리모컨의 어떤 버튼을 꾹 눌렀다.
그리고 우덴은 깨달았다.
권한 할당을 위한 코드가, 능력을 가질 때 뇌에 생성되었던 칩의 메모리가 가진 원래 데이터 주소 위에 적층되었다.
기존 주소의 시작점부터 삭제하고 새롭게 쓰는 것이 아니다. 그냥 덧 씌우는 것. 그러나 기존에 씌워진 명령의 내용을 예측하고, 논리 가산을 통해 변조시켰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기존의 재생 능력이 미치는 영향 범위가 확대되었다.
이건, 인간이 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간 것이었다.
우덴에게 있어 그것은 여신에게 능력을 부여받았을 때의 느낌과 같았다.
'······느, 능력 벼, 변조?'
'강화다. 너는 이제 접해있는 지점까지, 다른 사람의 나노머신에게 재생에 대한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되겠지. 여기······ 마침 본보기가 있지?'
'뭐요 도련님? 저 새끼가 진짜 뭐 한 거요?'
'······나에게 정말로 능력을 가지게 한 거야?!'
우덴은 주변의 경호원들이 화내려는 것을 허겁지겁 막으면서 외치다시피 말했다.
'일단······. 살려주······ 으윽······ 그래. 정말 착한 놈이군.'
어머니는 죽었다. 그의 눈앞에서.
이제 눈앞에서 누군가가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를 속인 인간일지라도, 그에게 살릴 힘이 있다면 살려야 했다.
'이, 입 다물어! 널 살린 다음······ 패, 팰 거다!'
'흐흐흐······. 여기까지 기어온 보람이 있군. 덕분에 살겠구나.'
'너 이 새끼······ 도련님에게 대체 무슨 짓을?!'
옆에서 결국 붉으락푸르락 해지는 경호원들 앞에서, 그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네 도련님에게 세상에서도 보기 드문 능력을 줬지. 그게 어스름파수대 놈들을 모조리 죽이고 빼앗아 온 물건 중에 있던 굉장한 물건이다.'
***
"······그게 뭔지 예상은 가는군."
그 역시, 내 능력을 강화한 것과 같은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내건 강화가 아니라 추가 능력을 내가 직접 커스터마이즈할 기회가 있었던 것이고, 우덴 드록스에게 넣은 건 기본 형태인 권한 확장이다.
"예상이라니? 알고 있던 것 아니야? 어스름파수대에게서 빼앗았다고 했으니."
카니스가 조금 이상하다는 듯 물어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우리는 그게 뭐 하는 물건인지 정확히는 몰랐거든."
서둘러 퇴각하는 것만이 목표였다.
어스름의 행동반경이 바뀌면서, 그동안 들어가지 못하던 곳에 가 한 몫 크게 벌어온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게 뭔지는 모르고 있었다.
애초에 문명 지대까지 돌아가지 않는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게 뭔지 알 수도 없었으니.
그래도 팔릴 건 분명했기 때문에 일단 다 들고 돌아가는 중이었다.
찢어 죽일 유물 사냥꾼 새끼들.
"어스름파수대에게 각종 기술 지원을 해 주는 세력이 있다는 루머는 들었는데."
카니스의 질문에 나는 썩은 미소를 보였다.
"있었지. 복원연구기관. 우리 모체가 되는 기관이야. 하지만 그건 대충 10년 전쯤에 공중분해 되었어."
"······실존했던 거야?"
대외 활동을 그나마 하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아예 어디 말조차 안 하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우리의 '해동자'들이었다. 복원연구기관이 해산함으로써 우리는 더 이상의 인원 보충도, 장비 보충도 받지 못하고 4년간 바깥을 떠돌아다녀야 했다. 그 끝에 모두 죽고 나 혼자 남은 뒤에 또다시 1년을 더 돌아다녀야 했다.
망할 노인네들. 애를 살려놓고, 바깥에 던져놓고 끝이라는 것처럼 사라져버리다니.
"어쨌든 그 기관은 이제 없어. 하지만 우리도 모르는데 유물 사냥꾼 놈들이라고 알 리는 없을 텐데······"
문제는 그것이다.
유물에 대한 전문성은 우리보다 어쩌면 놈들이 더 높기는 해도, 그리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아니, 그때 운반하던 유물은 유물을 얻은 장소라도 알던 우리가 그나마 더 정보가 있었지, 놈들은 아예 힌트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 그렇지 않아도 이야기를 드, 들었어. 서, 서쪽 톱니 군벌령에서 배웠데."
"서쪽? 부러진 톱니?"
여기, 드록스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북쪽. 문명 지대 전체를 기준으로 하면 서쪽이 되는 곳에 자리 잡은 군벌령.
분명히 기술 숭배 성격이 강한 세력이긴 하지만······ 특별히 더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것도 아니었을 텐데. 5년 사이에 뭐 크게 바뀌었나?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저쪽에서 카니스와 오피아도 한쪽 눈썹을 올리고 고개를 꺾고 있을 뿐이다.
"······그런 물건이라면 우리도 알아낼 수 있다고 장담하기 힘들 건데."
"······지금 와서는 인덱스가 알 수 있을 것 같지만요."
교단도 알아먹기 힘든 것이면 문명 지대에서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여신님이 안 가르쳐 준다고 해도, 주어진 유물을 연구할 기회라도 받는 교단은 그나마 기술 수준에 대해서는 탑 급일 수 밖에 없다.
어쩌면 검은 용 쪽이 좀 더 앞서겠지만······ 그놈들은 예외고.
"케이운. 그럼 혹시 다음으로 부러진 톱니를 어떻게 해 볼 생각이야?"
그녀의 생각이 맞았다.
그런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군벌이 있다면, 놈들은 먼저 쫓아야 할 대상이다.
그곳에 그 빌어먹을 유물 사냥꾼 놈들의 정보가 있다는 것이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하지만, 이성과 본능 양쪽 모두 그곳으로 먼저 가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어? 선배님? 그냥 알루드 카렉 군벌령으로 부족해요? 우와 선배님. 그렇게 안 봤는데 남자에게 그런 거 시키고 그런 악녀······ 아, 알았어요! 안 까불게요. 하지만 우리는 전쟁에 끼어들면 안 될 텐데요?"
평소처럼 오피아가 카니스를 놀려 대려다 카니스가 아예 단검까지 뽑아 든 걸 보고 기겁해서 진지한 말로 바꿨다.
정작 진짜 단검으로 어쩌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지 우아한 손길로 날을 한번 확인한 것이었지만.
"······걱정 마. 이번에는 안 끼어들어. 우리 적은 어디까지나 검은 용이야."
그렇다. 그녀들은 검은 용을 견제한다는 표면의 목적과, 실리코 사피엔스를 오피아에게 목격시킨다는 속의 목적이 있다. 어느 쪽이든 이번 일에 끼어들 필요는 없다.
"그래. 이번에는 너희는 따라오지 않는 게 맞겠지. 하지만 별도로 조력은 좀 필요한데."
"부러진 톱니 쪽이라면, 내 부하 중 일부가 있었습니다."
라닐 레펜이 한 말에 나는 미소를 띠었다. 그건 도움이 되겠군.
"하지만, 당신도 눈에 띄게 행동하면 곤란하긴 한데······ 겉으로 하는 일에는 데인스에게 맡기고, 당신은 숨어서 접선해 주면 좋을 것 같군."
"그럼, 오피아와 나는 여기, 네 '본진'을 좀 보호해 줄까 하는데."
"······으음. 그건 나쁘지 않네요. 인질 감시도 우리가 맡죠?"
인질, 우덴 드록스가 옆에서 그 말을 듣다 자기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오피아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카니스는 그 꼴을 보고 얼굴을 쓸어내렸다.
뭐, 이 두 아가씨는 관심을 두고 있는 쥐 떼의 생명이라든가, 이왕 얼굴 튼 김에 꼬셔보고 싶은 순진한 총각이라든가를 지켜볼 여지가 있겠지.
그리고, 그녀들의 도움이 진짜로 필요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 주면 무척 고맙겠지. 검은 용이 쳐들어올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몰라. 그놈들 행동 패턴은 이해 못하니까. 하지만 너를 방해라고 여기지 않을까."
"그럼······ 카니스. 너에게만 할 이야기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자리를 좀 비켜줘."
***
메이브는 영상을 담은 데이터 큐브를 챙겨 손에 들었다. 이걸 수동으로 보내기 위한 발톱 하나를 불러 전달하고 어느새 '사람'을 집어삼킨 이와 대면했다.
"공물은 잘 챙겼나."
원래라면 그 끔찍한 광경을 직접 보고도 표정 변화 없이 놈을 바라볼 마음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박사가 보장했다. 그들에게 아무 인간이나 제공하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없을 것이라고.
그들은 약속을 지킬 것이며, 정보 전달이 가능한 한 비상시라 해서 누군가 무작위의 사람에게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 했다.
그건 반대로 비상시라면 무작위의 사람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그나마 길 가다 만난 모든 사람이 검은 용도 모르게 대사로 뒤바뀐 경우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 했다.
"맛있었다······고 말해야 하나? 이런 경우?"
메이브는 방금 경박하게 말한, 능글맞은 미소의 사내를 보고 표정을 구겼다.
"표정이 꽤 강하군. 대사(Ambassador)."
"읽어 들인 습관이 그랬겠지. 그런데 두 명 이상이라면 복수형으로 말해야 하는 것 아냐? 대사들이라고."
말에 대한 답변은 사람으로 그렇게 잘못된 것은 아니었지만, 올바른 답이라 부르기도 힘들었다.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을 이해하려 하는 괴물들.
"이름. 이름을 부르는 게 맞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개체 명이 있는데. 저쪽은 까를. 이쪽은 에일튼."
방금 딱딱한 방식으로 답한 것은 심각한 표정을 띠고 있는 젊은 여성이다.
"······그건 너희의 이름이 아니지 않은가."
그나마 인간에게서 멀어 뭔가 친근함을 가질 수 있었던 체칠리에 비해 이들의 사람다움은 위험하다고 느끼게 했다.
"하지만 습관 형성에 도움이 될 텐데."
그들이 인간을 완전히 이해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박사의 말을 의심할 수는 없지만······.
어스름 지대에서 문명 지대에 들어올 때 들리기 가장 가까운 위치. 드록스 지역에 있던 그들의 지부가 사실상 폐쇄되었으니 그가 숨은 여기, 서쪽 지부의 최남단을 지나갈 수 밖에 없다.
그런 그들과 접선하자 마자 검은 용의 두뇌에서 명령이 내려왔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박사를 포함해 검은 용의 심장은 메이브의 보고를 묵살하는 멍청한 짓을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너희도 이번에 도와 줄 인원으로 포함되었다. 불만은 있나?"
"없다. 우리는 계약에 따를 것이다."
"시키는 걸 하면 우리에게 또 다른 뭔가를 줄 수도 있겠지? 아, 농담이야 농담. 이렇게 하는 것 맞지?"
그 농담은 굉장하게 불안한 느낌을 주지만, 메이브는 애써 그 예감을 무시했다.
해야 할 일이 있다. 그의 동생의 복수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우리는 어스름파수대 케이운이라는 놈을 습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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