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해졌거든요(1)

"문명 지대 전체를 봐도 말야? 여기가 특별히 이상하지 않아?"
지나가면서 보이는 광경에 데인스가 말하는 감상에 반대할 말은 없다.
부러진 톱니 군벌령은 문명 지대에서도 꽤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300년간 인류는 어스름 지대에서 잃어버린 데이터를 놔두고 바퀴부터 재발명하며 다시 지식을 쌓아 올렸다.
"복원자들의 천국이지. 정작 필요한 재료를 되살릴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지만."
그렇게 쌓아올리는 지식에는 막히는 부분들이 있다. 특히 재료. 재료가 부족하다.
플라스틱 같은 편리한 것은 이제 만들기 힘들다. 통치기구가 꽉 잡고 있는 중심 지역을 제외한 곳에 유통되는 금속들은 중세 시대 마냥 대장간에서 만들어진다.
그나마 고무를 포함한 특별한 수지(樹脂, Resin)는 식물에서 얻을 수 있었으니 접착제나 고무 같은 건 생산이 된다. 물론 그것조차 대량으로 공장에서 생산하던 시절은 다 갔다.
"그래도 힘이 넘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없는 재료에 안주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쥐어짜 나름의 발전을 이끌고 있으니까요."
나와 데인스의 대화 도중 자연스럽게 끼어든 라닐 레펜의 말이었다.
털털한 작업복 형태의 복장에 상반신을 살짝 넘어 올라오는 커다란 가방.
머리의 두건은 없고, 그나마 구하기 쉬운 유리와 나무로 조립된 테를 가진 안경을 썼다.
분명히 이상할 것 없는 여행객의 외견이다. 나나 데인스도 비슷한 옷을 입었고.
하지만 우리는 평소와는 너무 다른 복장에 잠깐 어색함을 느꼈다.
그녀의 그것은 분명히 일종의 '변장'이었다.
'그······ 아가씨? 아니? 라닐 레펜 부인······씨?'
데인스는 생각 없이 부르다 정정 받은 이후로, 그녀를 부르기를 상당히 힘들어했다.
'······특별히 호칭에 집착이 있던 건 아니니 부인이든 아가씨든 편한 대로 부르시면 됩니다. 그때 말한 건 일부러 정정하려고 한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럼 라닐 아가씨? 왜 평소에 그런 옷을 입는 거요?'
'처음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만······ 몇 번 입고 설쳤더니 사람들이 알아보더군요. 그 뒤로는 경고라는 의미를 담아 일부러 입고 다니고 있지요.'
예상은 했던 것이었지만. 그녀의 복장이 경고라고 시원하게 인정했다.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녀를 보자마자 '켄세이!' 하고 외치는 사람들을 보면 그녀의 의도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 할 수 있겠다.
'그럼······ 혹시 한동안 옷을 바꿀 수도 있나? 잠입을 위해서.'
'이미, 아주 가끔가다 섞여들 일이 있으면 일부러 다르게 입기도 해왔습니다.'
그 결과가 이거란 말이지.
라닐 레펜이 '변장'한 복장은 분명히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면 특별히 이상한 복장은 아니었다.
정히 이상한 부분을 들자면 카타나를 넣어 두기 위해 등에 짊어진 커다란 배낭이 여행자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 정도.
하지만 아무리 특징적인 복장을 없애고 안경을 썼다고 해도 그녀 자체가 유명인이라는 건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사실이다.
"정말 얼굴 보이고 다녀도 되나? 아녹 테라에게 인피면구 같은 걸 빌리면 어때?"
"인피면구는 교단이나 가진, 상당히 귀중한 물건입니다."
하긴, 나도 카니스가 쓴 걸 본 게 처음이었다.
게다가 카니스가 처음 쓰고 나온 것처럼 일부러 망가진 얼굴로 위장해야 표정이 어색한 것을 감출 수 있다고 했다.
"여행객으로 꾸미는 건 보통은 잘 통했습니다. 여기에 얼굴을 감추면 오히려 이상해 보이지요. 그리고······"
"······"
나와 데인스는 그녀가 싱긋 웃는 표정을 유지하는 것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녀는, 아는 사람이 보면 너무 부자연스럽게 생각할 법한 그 미소를 잠깐 유지하다 우리 표정을 보고 싹 표정을 지웠다.
"······이러고 다니면 제가 보이고 다닌 이미지 특성상 저라고 눈치채지는 못합니다."
그 말에는 동감이었다. 나와 데인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즉시 다시 그 싱글거리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우리가 말없이 움직이는 동안, 그녀는 그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표정은 부드러웠지만······
"······진짜 아는 사람 아니면 모르겠네 저거."
그래도 섣부른 변장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건 나도 동감이었다.
"그나저나 이제 슬슬 헤어질 때가 되었어. 라닐 레펜의 위장이 괜찮은지 아닌지는 몰라도 여행객 3명이 뭉쳐 다니는 꼴은 이상하지."
"그러면? 나는 켄세이님 따라다니면 되나?"
"위장을 돕는 걸 우선시하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나는 저편에서 빙글거리며 웃는 라닐 레펜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사람 고용해서 드록스 지역까지의 통신망 구축하는 것부터 해라. 대머리 떡대가 더 눈에 띄겠다."
"······그래야겠지? 젠장."
데인스가 라닐 레펜을 겁 먹은 얼굴로 힐끗 바라보자, 라닐 레펜은 미소를 거두고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가 말했다.
"제 지인의 수소문 정도는 부탁드립니다. 제가 직접 찾으면 연관성을 눈치챌 수도 있으니. 저는 그 외의 다른 정보만 찾아다니죠."
"스카 라텔이라고 했지? 변경 칼날(Rim Blade) 용병단 시절의 부관 중 하나라고?"
"이름에 스카가 붙어 있지만 상처 하나 없습니다. 아니, 매끈하다는 말에는 조금 어폐가 있군요. 나이가 있으니 주름은 있고. 하지만 벌꿀오소리(Ratel)랑 닮은 점은 없으니, 이름으로 착각하지 않도록 하세요."
둘이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그 사이에서 멀어져 간다. 데인스가 잠깐 돌아봤지만, 특별히 불러 세우지는 않았다.
그렇게 그 두 명과 모르는 사이라도 되는 것처럼 떨어져 계속 이동했다.
오랜만의 여유 같은 게 생겼다. 사람에 따라서는 경관을 보며 즐길 수 있는 지역이기도 했다.
수자원이 풍부한 절벽을 타고, 입체감 있는 산악에 따라 집들이 들어서 있다.
산악 위주의 지형이다. 덕분에 드록스 지역과는 달리 인구 밀도는 꽤 낮다.
그 낮은 인구 밀도로 인한 넓은 작업장과 풍부한 수력자원은 요즘 세상에 그리 매력적인 기능을 하지는 못했다.
보통 사람 사는 데에는 나쁜 교통이 더 큰 문제니까.
그나마 이런 곳이라면 우거진 초록이 제공하는 아름다운 경관 정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여유 있는 전원생활을 찾아오는 사람은 없다.
초록 따위는 재료에 혈안이 된 사람들이 모조리 베어갔다. 사방에 보이는 건 민둥산과 바위, 파헤친 흙바닥들 뿐이다.
게다가 소음.
위이이잉!
철컥, 철컥.
슥삭, 슥삭!
사방을 가득 메우는 소음.
문명 지대 전반에 걸친 부족한 재료 공업력. 그걸 보조하기 위한 재료는 인류에게 하나로 집중되었다.
나무.
적당히 단단하고, 적당히 가공이 쉬우며, 적당히 풍부하다.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양이 부족해지는 경우도 그다지 없다.
그나마도 300년 동안 집중적으로 품종 개량을 하는 통에 더 빨리, 더 쉽게 자라는 나무들이 이곳저곳에 많아졌다.
여기 수도 없이 지어진 건물들은 집이라기보다는 각각의 작업장이다.
물이 흐르는 곳에 반드시 붙어있는 작은 물레방아. 그것들이 공급하는 동력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목제 선반과 밀링 머신들.
나는 자기도 모르게 한 집 앞에 멈춰서 작업하는 광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뭘 그리 열심히 보시오?"
공방의 주인인 듯한 중년인이 퉁명스럽게 말하는 통에 정신을 차린다.
"······여행자라 처음 보는 광경에 좀 빠졌습니다."
목제로 만들어진 기계들이 정밀한 기계로 만들어져 여러 가지 방식으로 움직이고, 동력을 공급하고, 톱니를 돌리는 광경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경이롭다.
우드펑크(Woodpunk)라는 말이 있다.
펑크(Punk)라는 말은 본래라면 압제적인 분위기에 저항하는 반항적인 태도를 지칭하는 단어였다.
그 뜻을 받아들여 만들어진 후기의 어원 사이버펑크(Cyberpunk)가 있었고, 그게 또 다시 장르의 변화와 함께 기술적으로 하나의 분야에 집착해 재료나 분위기 뒤에 붙여넣는 접미사로 변했다.
그리고 아예 접두어의 기술 기반에 미친 분위기라는 뜻이 되어 버렸다.
그 변질한 의미. 하나의 기술에 미쳐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된 형태. 그게 바로 여기에 딱 들어맞는 용어가 될 것이다.
"게다가 솜씨도 훌륭하시더군요."
이것도 그냥 아부가 아니다.
고정된 회전 중심부를 기반으로 돌돌 돌아가는 과정에서 원형으로 가공되는 선반.
여기 주인장은 그 선반의 회전 속도를 체험으로 알고 있는 듯, 고정된 목공 칼날을 축 방향으로 전진시키는 것으로 깔끔하게 나선 처리를 해 보였다.
어디 빅토리안 시대에나 사용했을 법한 목제 선반(Lathe)을 통해 가공하는 그 기술은 아마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라도 경이롭게 봤을 것이다.
"팔자 좋구만. 여행자라. 거기서 뻔히 쳐다보고 있으면 불편하니 가던 길 가쇼. 더 보면 관람료라도 걷겠소."
나도 안다. 여기는 여행자를 받을 곳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곳에 여행자가 다닌다고 의심을 사지는 않을 것이다.
"저기 세워져 있는 물건 중 뭐라도 사면 어떻습니까?"
"실패작이야. 저건 안 팔아."
내 말에 눈썹을 올린 중년인은 기분 나쁘다는 듯 말을 내 뱉었다.
그 말은 이해할 수 있었다.
목제 체인을 걸어 어떻게 해서든 움직이게 만들어 보려 노력한 자전거다.
수작업으로 부활시켰지만, 터무니없는 정교함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다. 작동할 것이라는 건 직접 만져보지 않은 나도 직관으로 알 수 있었다.
다만, 순수한 목재로 만들어진 자전거는 기능 면에서 결코 좋은 평가를 줄 수는 없다. 목재라는 재료로 도저히 재현 불가능한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스프링.
300년 동안 품종 개량된 나무가 생산하는 특별한 수지중에는 엄청난 것도 있었다.
흡수시킨 목재에 수분 대신 들어가 내부에서 굳어져 신뢰도 있는 경도를 만드는 물건이라든가.
외부에 유약처럼 발라 코팅하면 온도가 올라갈 때 주변 산소와 먼저 반응해 굳어지는 것으로 오히려 불을 꺼버리는 수지도 있다.
그런 식으로 발달해 여러모로 진짜 우드펑크에 가까운 기술 세계를 만들었지만, 아직도 나무로는 만족할 만한 탄성을 만들 수는 없었다.
"댐퍼에 고무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까?"
그나마 탄성이 필요한 곳에 자주 사용되는 건 고무다. 세상이 망한 뒤로 순도 높은 금속은 구하기 힘들어도 고무는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고무는 마모율이 높아. 사람 무게를 잠깐 견디게 하면 조만간 무너지지. 마찰도 심하고."
"마모는 어쩔 수 없겠지만······ 안전장치를 달아 무너진 다음 교체할 수 있도록 하죠. 댐퍼가 무너지면 스위치가 작동하면서 내부 디스크가 죄어지도록."
기다렸다는 듯 답하는 장인의 말에 나도 바로 답했다. 그의 눈에서 적개심이 옅어졌다.
"뭐야. 어디 장인인가?"
"아마추어지만요."
"······눈동냥으로 뭐라도 배울 거라면 조금은 봐도 되지만, 정말 돈이라도 내고 가게. 요즘 마누라가 바가지를 긁고 있······"
"어디 손님을 쫓아내려고 그래 이 양반아! 거기 손님? 돈 좀 있으면 저기 목재 증기 자동차라도 하나 사 가시요!"
집 문이 벌컥 열리면서 깡마른 성질 사나워 보이는 중년 부인이 튀어나왔다. 그녀는 중년인을 사납게 노려보더니 나를 보고는 한껏 웃으며 다가왔다.
"어휴······ 간만에 손님인데 관람료는 무슨 관람료? 그런 것보다는 저기 남아있는 흉물······ 아니, 물건 좀 사가쇼? 공간도 부족한데 아까워 죽겠으니 싸게 팔게요?"
중년인은 잠깐 당황했다가 시뻘게진 얼굴로 반론을 펼쳤다.
"야이 여편네야, 저건 그래도 개조해서 고쳐 볼 거라고 했잖아!"
"고치긴 뭘 고쳐. 그 소리 한 게 벌써 넉 달은 됐구만. 잘못하면 곰팡이 피겠네. 그나마 작동은 해요. 저거. 저 양반이 고친다는 건 왠 무식한 무한궤도인지 뭐시긴지를 달아 산악에서 이용하겠다는 미친 소리 때문이니까. 거 그만 기웃거리고 그냥 하나 사 가시죠? 진짜 싸게 드린다니까?"
"아니 뭘 팔아! 안 판다고!"
"당신 밥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아?! 내가 그나마 목공예품 만들어 입에 풀칠하는 거야 이 양반아? 어디 제대로 팔리지도 않는 고물······ 아니, 저건 고물 아니에요 손님? 그냥 가지 마시고?!"
쓴웃음 지으며 슬슬 빠져나가려던 나를 아줌마가 덥석 잡았다.
"아, 젊은이. 잘 봐봐? 저 정도면 괜찮지 않아? 저 정신 나간 양반이 말하는 것처럼 웬 무한궤도 같은 걸 안 달아도 제법 쌩쌩 움직여요! 의심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봐. 저 양반이 저거 만들어 움직이는 거 본 사람들 많아, 제법 유명하니까 진짜 물어봐요!"
나는 그녀의 말에 잠깐 멈췄다.
움직이는 걸 본 사람들이 많고 유명하다고 했다. 흠.
그녀가 말한 것에 따르면 나름의 쓸모가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었지, 젊은이라는 호칭에 혹한 건 아니었다. 정말로.
나름 돈은 좀 있던 나는, 그날 처음으로 좀 커다란 장난감을 플렉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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