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해졌거든요(2)

목재 증기 자동차는 문명 시대 기준으로 본다면 1인승 초소형 차량에 해당하는 사이즈다.
창도, 차체도 오픈식이니 카트 같은 느낌이지만, 일단 기관으로 움직이는 것만 해도 자동차라는 이름이 아깝지는 않겠지.
의외롭게도, 과거의 시대를 아는 내 기준으로도 사용 편의성 면에서는 나쁘지 않았다. 핸들은 의외로 반응성이 좋았고.
기본 토크가 좋아 기어가 아니라 압력 증감 밸브를 기본으로 사용한다. 기어는 전진과 후진 기어뿐.
휠 브레이크와 바닥을 긁어 정지시키는 종류의 두 브레이크가 있다는 것이 조금 생소했지만 익숙해지는 데 지장은 없었다.
무엇보다 가볍고, 증기 기관인데도 연비가 의외로 나쁘지 않다. 증기를 재활용하는 비율이 높다는 것도 좋다.
원래 증기기관은 열 처리와 팽창된 수증기를 보관하기 힘드니 결국 증기를 배출해야 하지만, 그걸 작은 금속 통에 넣고 냉각에 의존하면서도 부피가 너무 커지지 않은 것도 훌륭하다.
그래도 한계가 있다. 최대 속도는 평지 속도가 80km/h.
못해도 20분의 예열기간이 필요하며, 연료에 비하면야 토크가 높지만, 증기압이 떨어지면 위험하니 언덕을 올라가려면 조금만 가팔라도 힘들다는 문제도 있다.
그런데 여기 궤도를 달 생각을 했다고?
"······그거 론델네 거 아니오? 엄청 비싸게 판다고 했는데······"
"재미있어 보여서 샀는데······ 어렵군요 이거."
구매한 목재 증기 자동차를 탄 것에는 내 '위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다.
어차피 원래라면 관광객이 있을 만한 곳은 아니다.
그런 곳에서 기술에 미쳐 마구잡이로 물건을 사들이는 너드(Nerd) 같은 꼴은 제법 신빙성이 있는 신분이다.
문제가 있다면 돈이 너무 많아 보일 경우 오히려 호위가 있어야 위장에 편리하다는 것인데, 당장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것도 이 눈에 띄는 목재 증기 자동차 덕이었다.
"저 애물단지를 정말로 팔았네······"
"론델 부인이 잘한 거지. 크니찌 그 인간은 끝까지 안 팔겠다고 버텼을걸?"
"거 그럭저럭 움직이는 게 나름 뭔가 쓸모가 있어도 보이네. 거참."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며, 오히려 그것에 숨어 나는 마찬가지로 여행자가 들리기에 그렇게 이상하지 않은 곳에 도달했다.
"아······ 실례지만 여쭤보겠습니다. 여기가 교단의 단말 신전(Terminal Temple) 맞습니까?"
알면서도 어리버리한 척하기 위해서라도 물어본다.
물론 나도 안다. 교단의 건물은 다른 건물들과 비교하면 외관부터 다르다. 재생 시멘트의 매끈한 건물이 옛 시대의 영광을 재현하고 있다.
그곳에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은 대체 왜 질문하냐는 듯한 눈으로 바라봤다가······ 내 자동차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미친 관광객도 다 있구먼. 어쨌든 이렇게 으리으리한 건물이 교단 건물 말고 또 뭐가 있겠소?"
"으리으리하다고 하기에는······ 장식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해도 과거의 종교들과는 달리 인력을 중점으로 하지 않는 종교인지라 지향점과 디자인에는 차이가 있다.
특히 코덱스 교단의 가장 큰 특징은, 그들이 어떤 종류의 성호나 심볼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전 기사들의 제복은 그저 붉을 뿐이고, 교단의 건물에도 특징적인 표기는 없다.
"장식이 없어도 재료부터 다르구만······ 어쨌든 맞으니까 들어가 보쇼······ 아니, 돈 많은 것 같은데 우리 집도 좀 들려 보든가?"
"여유가 되면 들려보겠습니다."
남자는 나름 기분 좋게 돌아갔고, 나는 남아서 차량을 어떻게 할지 조금 고민했다.
군벌령이라 해도 인구 밀도가 비교적 높은 시내쯤 되면 치안이 그럭저럭 유지되는 편이다.
이 정도로 비싼 물건이라면 정말 간이 크지 않으면 못 가져갈 것 같긴 한데······
"어서 오십시오. 여신님의 구원은 여러분에게도 함께합니다."
내가 차량에서 내려서 이놈의 차를 어떻게 둘까 고민하는 틈에 정결한 회색 복장의 살찐 중년 사내가 마음 좋은 표정으로 맞이해 줬다.
그는 내 자동차를 보고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교단 단말 신전 건물로 다시 돌아가 어딘가의 벽을 덜컥 열어 보였다.
차고라도 되는 것 같이 열렸지만, 그냥 벽에 붙어 있던 비상용 문 같은 것이 열린 형상이었다.
"신앙의 안뜰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만,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믿음이 부족하지요. 여신님의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 가끔 부덕한 짓을 저지르곤 합니다. 여신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실 것임에도."
그가 말한 여신님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말은 동의한다.
그녀는 정말로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녀는 분노할 리는 없다.
하지만 나는 교단에 소속한 신관에게 냉소적인 말을 던지기 위해 이런 거창한 곳에 들어온 게 아니다.
시키는 대로 차량을 몰고 단말 신전 건물 내부에 넣었다. 일단 예를 표하고, 비상용 문이 닫히자마자 본론을 이야기한다.
"패킷 코인을 드리면, 본래라면 서버 체임버로 전송이 가능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런, 교단에 지인이 있으셨나 보군요. 물론 가능합니다. 이곳은 여신님에게 허락받은 단말 신전이니까요."
"그리고, 패킷 코인은 원래 정보 검색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 단위로 알고 있습니다만."
패킷(Packet)은 네트워크로 전달되는 데이터 블록의 단위를 말한다.
그리고 패킷 코인은 여신의 인증 하에 데이터 사용량을 정량식으로 거래할 수 있도록 한 물리적인 형태의 교환권이다.
"······어디서 듣고 오셨습니까?"
"어스름파수대는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의 표정에 미묘한 혐오감 같은 게 비쳤다.
"정말 어스름파수대입니까? 어스름파수대인 척하는 유물 사냥꾼은 좀 봤는데 말입니다······"
"그건······ 좋은 정보군요."
숨을 깊게 들이쉰다. 놈들과 오인되었다는 것에 튀어나오려던 폭력성을 잠재울 필요가 있었다.
"내가 어스름파수대인 걸 정말로 증명할 것은, 신성모독밖에 없습니다."
내 목에 분노가 끼어든 것을 나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진정하기 위해 떨리는 손으로 시계를 만졌다. 고장 난 시계는 움직이지 않는다.
"할 수 있다면 유전자 검식이라도 해 보겠습니까?"
다른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같은 어스름파수대들끼리나 가능한 것이다.
다른 집단에 우리 신분을 증명할 것을 알리고 다닌 바는 없다. 어차피 그런 게 있어 봤자 망할 유물 사냥꾼 새끼들에게 뺏기기밖에 더 했겠나.
"아뇨······ 믿겠습니다. 당신이 보이는······ 분노가 만들어진 게 아닌 것 같군요. 뭐, 확실히 유물 사냥꾼과 충돌했으면서 분노할 건 어스름파수대 정도뿐이겠죠."
뚱뚱한 신관은 나를 자세히 관찰하면서 조금 삼가는 표정으로 그리 말했다.
그의 표정에 존중의 빛이 보였고, 나는 분노를 완전히 거둘 수 있었다.
"그 새끼들 요 근방에 왔던 걸 당신도 아시나 보군요?"
"어떤 놈이······ 아예 어스름파수대인척 했습니다."
어스름파수대는 어떤 의미의 명예를 가지고 있지만 실질적인 특권 같은 건 없는 집단이다. 대체 누가 왜 우리를 사칭하지?
"접선해서 정보를 알려줄 사람을 찾던 모양이더군요. 소문으로 유물의 정보를 알려 줄 사람에 대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복원연구기관······"
저도 모르게 그립다면 그리울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는 희미한 미소를 띄었다.
"어스름파수대의 모체 기관······이라는 루머가 있던 곳이지요. 예. 부러진 톱니 군벌령에 그 소속이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10여년 전에 해산된 그 기관에 남아있던 사람이 있고, 그에 접근하려 했다면 나쁜 생각은 아니다.
그 유물 사냥꾼 새끼들이 유물상이 아니라 유물 감식자를 찾으러 왔다.
"······그놈들도 당신에게 물어봤습니까? 어스름파수대인 척하면서?"
"그랬지요. 물론 그놈들에게는 패킷 코인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당신 같은······ 어딘지 모를 교양 같은 것도 느껴지지 않았지요."
"놈들이 이 근처에서 결국 원하는 답을 찾아간 것 같았습니다만."
"그걸 알고 찾아오셨단 말이군요······ 흠. 미리 말씀드리겠지만, 저에게서 얻은 건 아닙니다."
"의심 가는 곳은 없습니까?"
"······있습니다."
신관은 이제 완전히 의심을 거두었는지, 나에게 매우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여기 부러진 톱니 군벌령에는 우리 터미널 건물 말고도, 옛 문명 시대의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모두에게 감춰진 곳이지요."
***
"스카 라텔? 그런 거 들어본 적 있소?"
"뭐야 그 괴상한 이름은. 어디 용병이나 깡패 이름인가?"
"아마? 퇴역 용병이었다는데?"
"퇴역 용병이 왜 우리 군벌령에 와. 여기 전쟁이 안 일어난 지 꽤 됐구만."
데인스는 전쟁이 없는 곳이니 '퇴역' 용병이 왔다는 말로 말씨름을 더 이어갈 마음은 없었다.
그리고 그 특징적인 닉네임으로 편하게 찾을 생각도 그만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럼 선명한 금발 벽안의 중년 사내는? 금발 머리를 길게 기르고 아마 뒤로 묶었을 건데? 옷도 말쑥하게 입고 다니고?"
노점상 주인은 데인스가 귀찮게 군다고 쫓아낼까 생각하는 듯했으나, 데인스가 할 수 없다는 듯 품에서 100벅스 짜리 커다란 동전을 꺼내 던져주자 조금 더 고민하는 척을 했다.
"금발 벽안은 흔치는 않아도 종종 보기는 하지. 하지만 머리를 뒤로 묶고 다닌다고? 여긴 그런 식으로 외관 꾸미는 사람은 잘 없는 곳이구만."
상처 입은 벌꿀오소리(Scar Ratel)라는 괴상한 닉네임이지만, 그의 외관은 굉장히 멀쩡한 코카시언 특징의 외모라 했다.
거기에 의복까지 깔끔하게 입고 다니니 전직 용병티가 날 것도 같지 않고.
"그런 사람이 말야? 대충 2년 전쯤? 그쯤에 왔을 텐데?"
"에잉······ 그런 단서로 어떻게 알······"
노점상 주인의 얼굴에 미묘한 의구심이 어렸다.
"······당신이 찾는 사람 말이야, 퇴역 용병이라고? 어라?"
"오? 뭐 아는 사람이 있나?"
"······으음. 그러고 보니 전에 루머로 돌았지. 새 방위부 장관이 퇴역 용병 출신이라고."
데인스는 덜컥 겁을 먹었다. 장관이라니, 그런 높은 사람은 아니라고 외치려고 했다.
하지만 자기가 아는 사람들 역시 어디 꿀리지 않는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방위부 장관이란 말이지? 외모는?"
"그게, 댁이 말한 거랑 같더란 말이지."
일단 자기 상관부터 군단장, 아니 군단장들의 대장 아닌가.
특히 라닐 레펜의 부하였던 사람이라 했다.
그녀의 용병단은 그녀의 유명세가 대부분이었다 해도 일단 변경에서 가장 유명한 용병단이었다. 퇴역 용병이라 해도 그쯤 되면 어디 장관 역할을 할 법도 하지 않은가.
"······그 사람 저택이 어딘지 아나?"
"그런 걸 내가 어찌 아나. 하지만 뭐······"
가게 주인은 은근슬쩍 자기가 받은 동전을 톡톡 두들겼다. 데인스는 품에서 100벅스 짜리 동전을 추가로 꺼냈다.
"각종 장관은 말이야, 당연히 행정부 건물이 있는 근처에 살지. 아, 그렇다고 산꼭대기로 올라가진 말아. 폭포 쪽도 피하고. 그쪽은 좀 더 오래된 부자들이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넘기고 꽁꽁 감추고 있는 부동산이거든. 그 아래쪽."
"······여기는 행정부? 그런 곳이 어디 산에 붙어 있나?"
"군벌령 중앙에 산맥이 이어지니, 산 말고 다른 곳이 어디 있겠어? 그나마 행정부 있는 데는 다른 산마루로 연결되기도 하고 해서 교통 요지라고. 수력으로 운용되는 케이블카도 있지."
케이블카라. 데인스는 조금 호기심이 생겼다. 그도 당연히 하넬 드록스 군벌령을 나와본 적이 없으니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타 본 적은 없었다.
"그 케이블카? 그거 나도 탈 수 있나?"
"외부 손님들에게는 비싸지만, 당연히 되지? 그나마 여기서 제일 쓸만한 관광 상품인데."
데인스는 이 갑작스러운 출장에 즐겨볼 거리가 하나 생겼다는 것이 좋았다.
그의 대장이 맡긴 통신망 구축만 끝내면, 의외로 나머지 기간은 그리 심심하게 보내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
하지만 대머리에 떡대는 아무래도 여러모로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저 떡대를 쫓아."
"그러죠."
어둠 속에서 그 대머리 떡대의 수상쩍은 움직임을 쫓아가는 두 명의 장년 남성들의 인기척이 있었다.
그리고 그 뒤, 다시 그 둘의 뒤에서 천천히 그 둘과의 거리를 떨어뜨린 상태로 데인스 곤의 이동 경로를 침착하게 관찰하는 그림자가 하나 더 있었다.
데인스는 물론 자기에게 두 집단이 따라붙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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