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들이 함정을 물었다(2)

사실, 작정하고 놈들이 병신이 되든 말든 다리를 쏘면 쉽다.
오늘은 달도 밝아 집광 고글만으로도 환히 보이니 그냥 뚜벅뚜벅 들어가 하나씩 쏴서 쓰러뜨리면 간단하다.
하지만 놈들이 와장창 몰려 있는 가운데 들어가 그런 짓을 하면 놈들이 반응할 것이고, 일곱 놈이나 되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
뛰어 도망가는 놈이 있을지도 모르고, 몸을 숙이고 있다 정보를 알아내기도 전에 눈먼 총알 맞고 죽을지도 모른다.
술까지 들어갔으면 더 엉망이겠지.
그러니 가능하다면 하나씩 해결하는 게 낫다.
뭐, 대부분은 쉬웠다.
능력자고 뭐고 술 취해서 비틀거리며 화장실 온 놈들은 근처에서 총질해 장벽을 소모하게 하고 조금 패 주면 된다.
그리고 사내새끼들은 화장실에 서로 손 잡고 함께 나타나지 않는 법이다.
아니, 왠지 두 놈이 그렇게 나타나 좀 식겁하긴 했지만. 다행히도 아무렴 화장실까지 함께 들어오는 짓은 안 했다.
한놈을 재빨리 입을 막고 굴려놓고 잽싸게 바깥에 나가 뒤통수를 때려 쓰러뜨렸다.
마지막으로 볼일 보러 온 놈 하나가 좀 말썽이었다. 이놈은 화장실 간다고 나와놓고 다른 방에 들어간 다음 시원하게 볼일 보고 돌아나가려 했다.
그것도 귀찮았지만 다급하게 쫓아가 명치를 가격할 때쯤, 놈이 고개를 숙이며 앞으로 뱉었다는 건 꽤 문제가 되었다.
조금······ 묻었다. 드러운 건 둘째치고 당장 냄새를 풍긴다는 게 생각 이상으로 방해가 되었다.
빨 수도 없는 입장이라 대뜸 불쾌함을 참고 네 놈이 남은 곳에 들어갔더니······
"뭐야 이 새끼, 화장실 갔다가 토하고 왔······"
어, 오. 이런 세상에. 이놈은 왜 냄새를 이리 잘 맡아.
"여, 여기 이상한 놈이 숨었다!"
어둠 속에 잘도 숨어 있었지만 엉뚱하게 빌어먹을 냄새 때문에 들켰다.
탕! 텅!
즉각 방 한 가운데 이놈들이 불을 때 두었던 드럼통의 상부에 고중량탄을 부딪혀 자빠뜨렸다.
쾅!
불이 바닥을 타고 확 터져나가지는 않았지만, 조명은 충분히 죽었다.
주변 놈들은 어떻게 해서든 정신 차리려고 머리를 흔들면서도 사나운 눈으로 나를 포착하려 했다.
쯧, 이렇게 되면 별수 없다. 다리를 박살 내는 방식으로 무력화하는 수밖에.
타타탕!
"뭐, 뭐야?!"
"이게 무슨 소리야?!"
"총소리? 엥?!"
두 놈은 괴력. 대시 속도로 이해되었다. 괴력은 본래라면 원거리에서 순식간에 속도를 줄일 수 있으니 위험하다.
밤중에 조명도 망가진 곳에서 술에 취한 놈들의 힘이 제대로 발휘될 틈을 줄 필요는 없었다.
타타탕!
"아아악?!"
"으악!"
하지만 작정하고 다리를 쏜다는 건 생각보다 성가시다. 일단 두 놈은 쓰러뜨릴 수 있었지만······
"불! 불을 비쳐!"
"이, 이거라도!"
파직! 아마도 전격 능력자인 놈이 고압 전류를 몸 근처에 일으키며 아크 방전을 발생시켰다.
근처의 전력에 반응하는 도체, 드럼통까지의 번개길이 이어지며 주변이 잠깐 환해졌다 사라진다.
조명으로는 좋지 않았다.
연속으로 이어진 스냅샷이나, 낮은 주파수로 재생되는 낡은 TV 같은 장면의 연속 속에서 내 움직임을 따라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일 것이다.
단, 놈들의 그 수법은 나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치기는 했다.
빌어먹을.
자꾸 번쩍거리면 나 역시 광증폭 고글 내부로 빛이 번쩍거리는 것이 괴롭다. 타이밍도 제멋대로라 맞춰서 눈을 감을 수도 없고.
연사 속도가 좋다 보니 내가 위험한 건 아닌데······.
타타타타탕!
"아아악!"
젠장. 좀 더 살려 잡고 싶었는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된다.
"으악!"
내 총알은 상완부에서 시작해서 팔뚝을 지나가고 검지 손가락 끝으로 발사된다. 결국 상체에서 발사된다는 것이다.
"컥!"
탄수는 문제가 없으니 방위는 전면으로 흩뿌리면 된다. 하지만 근접거리에서 하체를 맞추기 위한 각도를 잡기가 어려워진다.
결국 노려 쏘다 한 놈은 다리가 아니라 꽤 위에 맞았다.
퍼석!
아니. 한 놈이 아니었다. 다른 놈 하나가 다리에 맞고 바닥에 쓰러졌다가 머리에 맞고 절명해 버렸다. 이제 두 놈 죽었다.
어쩔 수 없지.
"으······ 으으······"
"아아아악!"
나는 놈들이 바닥에 쓰러져 다리를 움켜잡고 비명 지르는 꼴을 두고 일단 방을 나섰다. 나머지 놈들도 합쳐놔야 감시가 될 테니까.
"으으윽?!"
"읍읍!"
"아악!"
"······"
다리에 총을 맞은 놈들 중 한 놈은 기절했고, 한놈은 울면서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뭐, 이런 상황이면 도망은 못 가겠지.
따로 먼저 잡아뒀던 놈들 중 한 놈의 재갈을 벗기고 자세히 보려는 순간, 놈이 미묘한 눈빛으로 나를 본다.
아니, 나를 먼저 알아봤다. 그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어스름파수대······"
"······네반. 너 네반이지."
나는 놈의 얼굴을 한눈에 알아보지는 못했다. 눈도 풀려있는 데다 바깥에서 유물 사냥꾼 노릇 할 때보다 애가 더 망가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놈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나타나고 있었다.
놈은 턱을 바들바들 떨며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사······살려줘. 진짜······ 살려줘······"
이놈이 아까 소변이라도 안 봤으면 지리기라도 했었을 것 같았다.
"나······ 나는······ 저, 정말 자, 잘못했어! 사, 살려줘! 제발!"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놈이 내 얼굴을 알고 있으니 두려워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겁에 질려하는 태도는 좀 너무······.
"너는······ 너희를 죽인 건 진짜 잘못했다! 제발!"
이 새끼. 날 유령으로 아는 건가.
"······죽였다고 되살아나서 나타날 줄은 몰랐다고! 진짜! 흑······흑······"
아예 운다. 울어.
다그쳐 물어보고 싶은 게 태산 같지만, 제대로 된 답을 줄 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나는 한숨을 쉬고, 이 가장 중요한 놈의 입을 막은 다음 다시 묶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상태가 좋은 놈을 풀었다.
"······너는 어때."
"뭐, 뭐든 말하겠습니다! 살려, 살려만 주십쇼!"
이놈은 술도 깼고······ 저놈처럼 뭔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오바질은 안 하고 있다. 좋다. 이놈으로 정했다.
"너희, 여기에 원래 살던 사람은 어떻게 했나?"
"연구자 할아범 말씀이죠? 그 할아범에게 알아낼 걸 다 알아낼 때쯤 사라졌습니다!"
"······사라져? 너희가 어떻게 한 게 아니라?"
"그, 그게! 어떻게 하려고 했는데! 다음 날 찾아보니까 사라졌습니다!"
"······그 할아범 생김새는?"
"어······ 마, 말할 때마다 기침했습니다!"
생긴 걸 물어봤더니 특징을 답했다. 짜증은 나지만, 놀랍게도 그게 더 나은 답변이었다.
"······할아범 이름이 뭔지는 아나?"
"모, 모 모릅니다?! 우리는 그냥 대장이 가져온 유물 감정을 부탁했을 뿐이니까요!"
그래. 몰라도 된다. 그 할아버지, 어차피 내가 아는 사람인 것 같으니.
"네 이름은?"
"아탄입니다. 헤반 마을의 아탄."
······왜 헤반 마을 이름이 여기서 나오지. 마을 사람 좀 태워봤다는 노예, 빈스 헤반이 있던 마을 아닌가.
빈스의 이름을 한번 말해볼까? 아니다. 지금 이놈을 써먹으려는데 그게 실이 될지 득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지금은 그냥 공포로 지배하자.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너, 내가 어떤 놈인지 알겠지? 여기 놈들이 작정하고 덤빈다고 해서 날 어쩔 수 없을 것 같다는 건 알겠지?"
"예! 옙!"
놈은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놈의 권한 제한 수갑을 풀었다.
"네가 내일까지 간수 역할을 하면, 여기 놈들 모두를 살릴 생각이다. 하지만 네놈이 혼자 도망가거나, 어떤 놈이라도 입을 막은 옷감이 벗겨지면, 모두 죽여버릴 거다."
놈의 목울대로 침이 넘어간다. 나머지 놈들도 일단 귀가 뚫렸는지 조용하다 듣고 부들부들 떨고 있다.
"간수가 필요한 건, 내가 잠깐 여기서 자리를 비워야 하기 때문이야. 어쩌면 아침이 될 때까지 못 돌아올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시간에 너희가 도망가면 얼마나 도망갈 수 있겠나?"
타앙!
확실한 시연을 위해 내가 여기 들어올 때 넘어뜨렸던 드럼통의 바닥에 총질해 보였다.
내가 쏜 총알은 드럼통 바닥을 뚫고 지나가 그 구멍 자국을 선명하게 남겼다.
도망가다가 나한테 들키면 저게 네 등이 될 것 같지 않니. 놈들은 부들부들 떨며 내 메시지를 받아들인 것 같았다.
"내 사정거리는 못해도 1km는 된다. 그리고······"
타타타타탕!
이제 드럼통의 바닥은 갈기갈기 찢겨 바닥이 뻥 하고 뚫려 버렸다. 아탄이라는 놈의 동공이 흔들리고, 턱이 떨린다.
뭐, 내가 진짜 1km의 저격이 가능한 것도 아니지만 이 정도면 되겠지. 그리고 사실 멀리 도망가도 많이 쏘면 된다. 많이 쏘면.
"행여나 바깥에 두고 있던 자전거들을 기대하고 있다면, 그것들 역시 내가 박살 내놨다. 그러니 얌전히 있어."
솔직히 거짓말이다. 개조되었을지 몰라도 자전거는······ 너무 아깝다. 나는 그걸 파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좋은 소식도 있어. 너희가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걸 보면 알겠지만, 나는 네놈들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아탄이라는 놈이 눈길이 내가 실수로 죽인 두 놈의 시체로 갔다. 나는 조금 급히 말을 이었다.
"야, 야, 걔들은······ 솔직히 자연사지! 뭐, 내가 생각이 없었다는 거다. 알겠지? 하지만 죽일 힘이 있고, 죽이는 데 그렇게 큰 부담을 느끼는 것도 아니야. 그러니 얌전히 기다리면, 너희는 산다."
죽일 수 있지만 안 죽인다. 그 진실성을 무기로 협상한다. 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조금만 더 얌전히 기다려라.
모처럼 찾은 다른 단서부터 확인 좀 하고 돌아올테니.
"할아범이 마지막으로 사라진 곳이 어디야?"
***
하넬 드록스는 목을 꺾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벌써 밤이 되었으니 슬슬 오늘 하루도 퇴근이라는 걸 할 때가 되었다.
"일은 그렇게 줄지 않았군."
하넬 드록스 군벌령은 원래부터 그렇게 복잡한 관료 조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좋게 말하면 지방 분권화가 이루어져 있었고, 나쁘게 말하자면 지방에 또 다른 작은 호족들이 제멋대로 착복하며 적당한 수위의 세율만 내고 있었다.
하넬 드록스도 그가 통치하는 동안 내내 그 상태를 유지할 생각까지는 없었다.
당장이라도 알루드 카렉의 위협이 사라지면 국경에 배치된 병력을 돌려 내부를 정리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생각이었고.
그리고 알루드 카렉은 해결되었다. 남은 문제는, 이제 그의 것이 아닐지라도 자진해서 신경을 써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새로운 상관은 그런 것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고 있었다. 불필요한 위협을 제거하고는 또 다른 곳을 '정복'하러 훌쩍 떠나가 버렸다.
그에게는 어느 정도로 충성을 보여야 할까?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전투력 이상의 신뢰를 받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데인스 곤은 그럴 수도 있다. 아예 급여도 받고 있다고 했고.
카니스는 어떤 영문인지 남녀 간의 기류 같은 게 흐르는 것이 그럴 수도 있다.
물론 카니스가 결코 그것만으로 따르는 것 같지도 않고, 오피아가 그저 자기 선배 연애를 돕기 위해 그 남자의 편을 드는 것 같지도 않지만.
가장 큰 미스터리는 켄세이다. 능력도 그렇지만 그녀가 아녹 테라 이후에 다른 누군가를 섬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오히려 아녹 테라까지 그 남자를 따르고 있는 건 정말 독특한 경우였다.
왜?
이건 그냥 흥미로 하는 질문이 아니다.
부하가 되는 것까지는 좋다. 선택지도 없고.
하지만 충성을 바칠 것인가, 설렁설렁할 것인가? 행정가 하넬 드록스는 케이운의 부하가 되는 것을 마음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우당탕!
그때, 그의 사색을 방해하는 소리가 울리고, 오스완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들어왔다.
"구, 군단장! 아니 대장! 아니 어······ 총리······님?"
"······케이운이 오면 명칭부터 정리해야겠군. 일단 대관이라 불러라. 케이운 쪽을 군단장으로 부르고."
"그, 그럼 대관님! 말씀하셨던 움직임이 잡혔습니다! 검은 양복 차림의 인간들이 근처에서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나름 예상되었던 사항이다. 하넬 드록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전 기사들에게 알려. 놈들이 함정을 물었다."
아직 케이운에 대한 충성도를 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걸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건 충성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 문제가 될 것이다.
아니, 그런 걸 떠나 이곳은 애초에 그의 말을 믿고 따르던 부하들이 있는 곳이다.
외부의 또 다른 세력이 설치는 것을 막는 건 아예 양심과 자존심의 문제다.
그리고······ 하넬 드록스는 고민하던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함정을 같이 파기로 한 아녹 테라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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