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을 가동해 볼까요(1)

자전거를 파괴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동력을 말하는 건 아니다. 그 자전거를 몰아야 할 중요한 엔진(다리)은 내가 박살 내놨으니, 포로 놈들이 그걸 몰고 달릴 수는 없다.
하지만 무게를 분산한 짐칸으로는 써먹을 수 있었다. 일단 바퀴라도 달렸으니.
부우우웅! 덜컹!
"으악! 으악!"
"살려줘! 아니, 그냥 쏴! 죽이라고!"
"이건 아니야······ 진짜 아니야······"
물론 나는 저기 타고 싶지 않다.
불필요하게 핸들이 꺾여나가는 사태를 막기 위해 자전거의 핸들을 고정하고, 두 개씩 연결해 일종의 수레로 만들었다.
그걸 차량 뒤에 짐칸처럼 매고 달리는 꼴이니 그다지 안정적이지 못하다.
앞의 차량과 고정된 것도 아니다. 내가 만약 작정하고 옆으로 꺾으며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위에 실린 놈들을 던져 버리게 될 것이다.
다행이라면, 가는 경로에 원만한 커브 정도만 있고 통행 중인 차량 같은 건 없는 터라 탈선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 정도.
별로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덜컹!
"으악!"
"살려! 살려줘!"
"상처가 아프다고!"
놈들이 호들갑을 피우기 딱 좋게도 도로 상태가 엉망인 터라, 제어도 안 되는 핸들을 붙들고 부들부들 떨면서 타야 한다.
저속이라면 괜찮겠지만 우리는 제법 빠른 속도로 이동 중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저기 타면 스릴이 좀 느껴질 것이었다.
"그나저나 할아범! 차량도 만들어놨을 줄은 몰랐는데!"
"빼돌린 것도 있고, 저놈들 등을 쳐서 빼앗은 유물도 좀 있었지! 쿨럭······ 전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플라스마 커터가 없었으면 이런 건 못 만들었다!"
"에어 컴프레서는?"
"그건 내가 만든 게 있었지!"
"······엥? 그게 되면 질소도 만들 수 있는 것 아니야?"
"그래, 만들었다. 그래도 총기에 사용할 정도로 많이는 못 만들었지! 다른 곳에도 사용해야 하니······ 쿨럭!"
재미있게도, 내가 몰고 있는 목재 증기 자동차와 제논 헬로드가 만든 전동 차량 양쪽 모두 엔진음은 조용했다.
속도도 바람 소리에 목소리가 파묻힐 정도로 빠른 건 아니다 보니 소리치면서 대화는 나눌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아무리 생각해도 기관지가 그리 좋지 못한 노인이 외치면서 쿨럭거리는 꼴을 보고 이내 입을 다물어야 했지만.
나는 대화의 대상을 바꾸기로 했다.
"너희 뭐 하고 살았냐."
"······"
알아들었을 것임에도 대답을 안 한다. 나는 멀리 보이는 나무 중 하나를 겨냥하고 기관총을 갈겨 보였다.
타타타탕! 휙! 콱!
적당히 부러진 나무 밑동에 작살을 걸고 그래플링 건으로 당겨 끌어들인다. 연료다.
그 꼴을 본 놈들은 결국 앞다투어 입을 열었다. 내가 원하는 답은 아니었지만.
"부, 북쪽 라반드 군벌령을 털어먹었습니다!"
"저, 저놈이 우리 모두를 끌어들인 겁니다!"
힐끗 보면 네반 놈은 아직도 유령이라도 본 것처럼 창백한 표정으로 나를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다.
어젯밤 나를 보고 어스름파수대를 죽여서 미안했다느니, 죽였다고 되살아났다느니 떠들던 상태는 벗어난 것 같았다.
"너는······ 유령이 아니지!"
결국 하는 소리가 그건가.
하지만 술 취해서 하는 소리 같지 않다.
놈은 나'는'이라고 했다. 유령을 전에 본 적이 있었다는 소리겠지.
솔직하게 말하자면 집히는 것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너, 나 말고 어스름파수대를 봤냐?"
"봤어! 난 정말로 봤다고!"
"아 좀 입 다물어 미친 대장아! 너 때문에 우리가 지금 끌려가는 거 아니야!"
"닥쳐! 너희는······"
타타탕!
"······"
나는 방금 괜히 끼어들려던 놈 근처에 총알을 쏘아 조용히 시켰다.
"너희 모두 닥쳐. 네반. 너만 말해. 네놈이 유령을 언제, 몇 명을 봤지?"
"네달 전! 다, 다섯 명 정도였나 그랬어!"
놀랍게도 그건 가능성이 있다. 내가 제논 헬로드 할아범 쪽을 바라보자 그도 나를 의미심장한 눈으로 바라봤다.
나는 기본적으로 복제체다. 나만이 아니라 모든 어스름파수대가 과거 특수부대원이었던 사람들의 유전자 정보를 가지고 만들어진 재생체다.
적당한 연령까지 배양하고, 근육을 늘린 다음 문명시대 때 만의 하나의 사태에 대비해서 저장된 커넥톰 데이터를 재현하도록 뇌를 조절해 만들어진 존재들이다.
그리고 한번 만들어진 건, 다시 만들어질 수도 있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것도 원본을 만들던 사람들이 세상에 남아있다면 더더욱.
"······그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듣기로 한다. 너, 다른 유물 사냥꾼 놈들은 어떻게 됐냐. 너희 대장 셰이넌? 그 새끼 맞지?"
"······그래. 셰이넌. 그, 그 새끼가 우리 두목 맞았어. 그 미친 새끼! 우리는, 우리는 진짜 그럴 생각이······"
"난 네놈 새끼 변명을 듣고 싶은 게 아니야. 상황만 설명해."
징징거리는 합리화 따위도 듣고 싶지 않다. 1차 경고다.
"셰이넌이 너희를 습격하라고 했어! 레이저를 주웠으니까 원거리 기습이 가능할 거라고!"
"안다. 네놈 새끼들 사고방식이 뭔지도 알고. 너희는 솔직히 그냥 명령에 따랐다고 하겠지. 또 말해 주마. 그딴 건 됐다."
2차 경고다. 나는 놈에게 손가락을 향했다. 놈은 또 말하려다 침을 삼켰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이미 알 것 같은 정보를 더 말하면, 넌 뒈진다. 네가 말하고 살아있을 수 있는 건, 내가 모르는 정보다. 그 뒤의 이야기를 해. 돌아온 다음에, 왜 너는 따로 있지?"
겨우 실행범이라고 정상참작 따위 해 줄 생각 없다.
"······"
놈은 자기 주제를 이해했는지 입을 닫고 한동안 눈알을 굴렸다.
그러라지. 잠깐은 참아줄 수 있다. 입 다물고 있는 동안 잘 해봐라.
서슬 퍼런 내 말에 뒤의 놈들은 덜컹거리는 무식한 길 위에서 시달리면서도 입 다물고 얌전히 기다린다.
추가된 무게로 토크가 감소하면서 최대 속도가 거의 반속으로 줄어들었다. 40km 정도. 그 속도라도 지면에서 발생하는 마찰음과 바람을 가르는 소리만 들린다.
덜컹, 덜컹. 후이잉.
아무도 말도 하지 않으니 소음이 들린다. 나는 차분하게 그걸 들으며 기다린다.
네반 놈은 입을 들썩거리다 겨우 입을 열었다.
"······우리, 우리는 중간에 헤어······ 헤어졌어."
이미 아는 내용이다. 그래도 용인 범위 내다. 나는 일단 잠자코 들었다.
"······셰이넌이, 하넬 드록스 군벌령으로 도망가려는 아팬트라는 놈을 쫓아가 죽이라는 소리를······했거든."
아팬트. 우덴 드록스에게 재생 능력을 부여한 도주자. 국경 근처에서 말썽이 있을 때 우덴 드록스 근처에 와 있었다고 했겠다.
"나는······ 그 새끼를 쫓는 명령을 받았어. 하지만 그놈이 나와 함께 간 놈을 죽이고 도망쳐 버린 거야. 뭔가 다친 것 같았는데······ 어떻게 도망갔어. 어디로 갔는지 못 찾았고."
"그놈과 사이가 갈라진 이유는?"
"······내가 1년 전에······ 그놈들에게 유물의 능력을 알려줬기 때문이겠지. 쿨럭! 특히 광학미채와······ 권한 확장 장치."
그 말을 한 건 제논 헬로드 할아범이었다.
사실 그것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있다. 이 할아범이 복원연구기관 출신이라 해도 그야말로 처음 봤을 유물에 대해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이 할아범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 건 확실했다. 그래서 설명했고, 그걸 알아들은 놈들은 유물의 엄청난 힘에 고무되었다.
"내가······쿨럭! 내가 보는 앞에서 그러지는 않았지만,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은 놈들이 있었지."
"들켜도 도망갈 수 있다고 믿은 것 같았어! 아팬트가!"
놈은 내가 모르는 정보를 말할 기회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인지 목청껏 외쳤다. 할아범은 놈에게 발악할 기회를 줬다. 자기 목을 아낀 것일지도 모르지만.
"저, 저 할아범에게 설명 듣고, 얼마 안 되어서 바로 놈이 몇 가지 들고 도망갔다고! 그걸 보고 셰이넌이 우리를 향해 화를 냈고. 나보고 잡으라고 보냈고!"
"하넬 드록스의 군벌령에서?"
우덴 드록스가 바깥에 직접 나가야 했던 이유. 하넬 드록스의 국경 근처에서 말썽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 거기까지 쫓아가서······ 아, 아니! 이거, 이건 모를 거야! 싸우는 도중 놈에게 상처를 크게 입혔다고! 그랬더니 놈이 사라진 거야! 광학 미채인가 뭔가를 썼지."
마치 극적인 이야기인 것처럼 말했지만, 저건 당연하다. 애초에 광학미채는 에너지 소모가 격렬하니 급한 경우에만 사용하는 게 맞다.
"그래도 어떻게 쫓아갔는데 셰이넌 새끼가 준 임무를 제대로 못 했으니······ 빠지기로 했어. 며, 몇 놈이 반항했고, 그놈들이랑 싸우는 데 하넬 드록스의 부하들이 왔고."
우덴 드록스가 아팬트라는 놈에게 능력을 받는 동안, 북쪽의 경계 지역에서 말썽이 생겼다는 건 이놈들의 싸움이었나.
"······함께 빠질 놈들도 다 뒈지고······ 나만 도망갔어. 그래도 유물이 좀 있었으니 돈으로 바꾸고 이, 이 새끼들을 모집했지."
그 '새끼들'은 여전히 험악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내 경고 덕에 으르렁 거리기만 하지 또 말 참견하고 나서지는 않았다.
"그리고 네놈들은 외진 곳 중에 알만한 곳인 할아범의 연구소를 빼앗기로 했고?"
"북쪽, 북쪽에······. 빼앗을 곳이 있으니까!"
좋다. 필요한 건 충분히 들었다. 이 새끼들이 어떻게 된 건지, 셰이넌 놈이 몫을 혼자 다 챙겨먹고 있다는 것도.
셰이넌. 내 복수를 받을 새끼. 제발 부탁한다. 내가 가장 중요한 일을 끝낼 때까지, 제대로 살아 있으렴.
그리고 네반. 너는 살 것이다.
진짜로 안 죽인다. 죽어 있는 게 낫다고 느낄 때까지 살게 해주지.
"······그럼 이제 유령에 대해서 이야기해 봐."
***
메이브는 들어온 정보를 확인하고 있었다.
검은 용의 첩보 조직은 기본적으로 민간에 숨어 있는 발톱에 의존한다. 가능하다면 현지인을 포섭하지만, 없다면 새로 투입하는 방식을 동원한다.
그것이 요사이 삐걱거리고 있었다.
들어오는 정보의 질이 악화하고, 숨겨 보낸 요원들이 요원으로 활동하다 노출되어 죽거나, 다른 곳으로 보내지고 있다.
하넬 드록스 군벌령의 정보는 완전히 차단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다.
결과적으로 메이브 틸렉을 비롯한 검은 용의 타격대는 문제의 어스름파수대, 케이운의 정보를 거의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하넬 드록스의 부하들이 한 것이 아니었다.
아녹 테라.
아녹 테라가 그동안은 적당히 협력적이던 태도를 모두 버리고, 적극적으로 반격하고 있었다.
"미쳤나 할멈."
아녹 테라는 검은 용과도 거래한 적이 있다.
새로운 유물이나 검은 용이 만든 물건들을 유통하는 경우도 있었고, 아녹 테라가 역으로 발톱이 될 법한 노예를 유통해 주는 경우도 있었다.
정체를 밝히고 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아녹 테라는 뒤를 캐지 않고 그냥 거래했다.
그녀의 아들에 대해 의구심이 들 법한 일을 하긴 했지만, 눈치채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아니······ 뭔가 눈치챘어?"
어쩌면.
하지만 그녀가 검은 용에게 나름 협력적이었던 건 안전을 고려한 것도 있었을 것이었다.
거래를 했다는 건 그녀의 가게를 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걸 무시하고 반격을 하다니.
메이브 틸렉은 자기에게 주어진 병력을 둘러본다.
그 자신을 포함한 4명의 심장. 32명의 발톱들.
그리고, 발톱들 사이에 숨어 들어간 두 명의 대사.
숫자만으로 따진다면 겨우 36명. 하지만 발톱이라 해도 그냥 발톱들이 아니라 능력자들이 포함된 타격대 수준의 전력이다.
그것만으로도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 거기에 무시무시한 로봇 4기가 추가되어있다.
여전히 군용 모델이 아니지만, 어차피 지금 시대에 그것 한기만 있어도 군벌령 하나를 완전히 전복할 수 있을 전력이다.
그걸 투입해야 케이운이라는 이레귤러를 쓰러뜨릴 수 있다는 것도 계산되었다.
메이브가 본 바로, 케이운은 굉장히 강력했다.
그러나 C-24 한 기를 상대로도 그렇게 수월하게 이긴 건 아니었다. 2기가 한꺼번에 덤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게 4기다. 놈을 발견하고, 전장에 이끈 다음 교전하게만 하면 분명히 이길 수 있으리라.
문제가 있다면, 이 전력이 외부에 불필요하게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검은 용의 존재는 아직도 교단 이외에는 모른다. 적대 중인 교단도 함부로 그 존재를 대중에게 유출하지 못할 정도의 피해만을 끼쳐야 한다.
교단의 편집증이라는 핑계에 숨고, 그저 도시 전설처럼 남아있을 수 있도록.
물론 케이운이라는 자를 확실히 쓰러뜨릴 수 있다면 외부 노출도 허용된다는 허가까지는 받았다.
아무렴 총격이 퍼져나가는 곳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을 테니까.
그 모든 것에 선행되어야 할, 또는 동시에 노려야 할 임무 목표가 있다.
"첸리 룽. 너희에게 아녹 테라의 가게 급습을 부탁하겠다."
"이런 경우라면 명령해도 된다 메이브. 책임자에게는 그런 권한이 있지."
쾌활하게 웃는 그는 명령에 따라 20명의 발톱과 함께 움직인다.
검은 용이 잃어버린 정보전의 어드벤티지를 되찾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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