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나타나다니(1)

메이브는 별동대를 기다리지는 않았다. 그가 병력을 나눈 이유가 있으니 그럴 수는 없었다.
"전력을 나눈 게 잘 한 건지 모르겠군."
하텐이 슬며시 소근거렸다.
대부분의 경우 전력을 둘로 나누는 건 본래 좋은 선택이 되지 못한다. 그것도 병력이 부족하다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웬만한 발톱들에게 노출시키지 않아야 하는 로봇이나, 대사는 일반 부대와 함께 섞기 힘들다. 그래서라도 나눠야 했다.
거기에······ 상대에게 기관총이 있으면, 머릿수는 중요하지 않다.
"아니, 전력 문제는 없을 거야. 이대로 진행한다."
"······그래. 어쨌든 네가 지금 결정권자다."
메이브의 답에 하텐은 즉시 수긍했다.
일단 상대도 둘로 나뉘어 있다는 건 확인 되었다.
신전 기사들이 케이운이 건설하던 건물에 들어간 것은 알았고, 지하에 시설을 마련하고 있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들의 지하가 얼마나 깊게 파지든, 얼마나 넓게 파지든 아녹 테라의 지하 상점과 연결될 여지가 없다는 건 문명 지대 모든 지하도를 알고 있는 검은 용이 장담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건 기회였다.
"여기인가."
여기에 배분된 전력은 비교적 엘리트에 가까운 심장이 셋, 발톱은 12명 중 대사가 둘. 심장인 것처럼 숨긴 로봇이 4기.
인간 하나를 잡기 위한 병력으로는 여전히 너무 많다.
하지만 필요한 인원이 맞다. 어차피 대사를 제외한 발톱은 당장 전투원이라기보다는 탐지 요원이고, 문제의 어스름파수대를 상대할 전력은 어디까지나 로봇이다.
심장 셋의 용도는 조금 차이가 있다. 작전에 투입되는 모든 심장이 그렇듯, 각 인원의 지휘관 역할을 나눠 담당하게 된다.
메이브는 총대장, 하텐이 대사를 포함한 발톱들을, 테밀란이 로봇을 담당한다.
"하텐님, 메이브님. 신전 기사의 모습이 다시 확인 되었습니다. 몇 차례 들락날락 거렸지만, 위치는 확실합니다."
하텐의 부하로 배치된 까를, 대사가 하는 답에 메이브는 여전히 불안함을 느꼈다. 어색함이 너무 없었다.
습관 형성이라. 저대로라면······.
아니, 지금 중요한 건 아니다. 메이브는 먼저 고민해야 할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미 그는 그걸 고민해 달라고 상부에 연락했고, 두뇌는 알아들었다고 했다. 그럼 그가 할 일은 다 한 것이다.
"케이운의 모습은?"
"없습니다. 누구도 비슷한 사람을 본 사람이 없는 모양입니다."
정보의 부족은 작전 활동의 제약을 일으킨다. 그건 지휘관에게 커다란 딜레마를 남긴다.
본능이나 예감, 직감은 중단하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계획을 중단하는 것은 언제나 비싼 비용을 발생시킨다. 사용할 수 있는 자원, 작전 입안자의 발언력, 실행자의 충성심.
그 모든 매몰 비용은, 나쁜 예감이라는 것을 모두 이기고 반대 측 무게추에 매달린다.
그래서 고작 예감만으로 작전을 중단시킬 수는 없다.
"한 명, 첸리 룽에게 갔다오······"
메이브가 머뭇거린 것은 아니다. 저쪽에서 먼저 온 것이다. 하지만 온 사람의 상황은 상당히 나빴다.
"함정에 걸려······ 사실상 전멸이고, 작전은 실패했습니다."
메이브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아녹 테라를 잡지 못했나? 그럴 경우 전원 합류를 명했을 텐데. 전멸이라는 게 말 그대로 모두 죽었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상자가 많고, 그······ 쥐 떼라는 게 나타나······ 부상자들을 데려가지 않는다면 쏠아 먹겠다고 했습니다."
그의 부하들이 웅성거렸다.
이쪽에 배치된 12명의 발톱은 대사 2명을 제외하면 그래도 심장에 가까운 이들. 이번 공적만 채우면 심장으로 진급할 예정인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도 물론 '쥐 떼'에 대한 이야기는 모른다. 하지만 쏠아 먹는다는 말의 뜻은 충분히 전달되었을 것이다.
"쯧."
그들은 분명히 함정에 걸렸다.
고민할 필요성을 느꼈다.
적은 그들이 올 걸 알고 있었다. 정보전의 우위를 잃어버린 건 생각보다 더 큰 문제였다.
그래도 여전히 무게 추를 진입 쪽에 두어야 한다고 그의 마음이 불길한 예감을 무시하고 속삭였다.
이대로 돌아가면 그의 형제의 원수도 갚을 수 없다는 것에 생각이 닿아버렸다.
"······할 수 없지. 우리끼리 돌입한다."
검은 용은 감정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러니, 메이브는 방금의 선택을 후회할 것이다. 아마도.
***
케이운의 '요새'는 의외로 많은 것들이 만들어져 있었다.
완성도보다 규모를 우선시 한 결과다.
복잡한 미로가 먼저 만들어졌고, 그 미로는 좁고 허접했다.
뭔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바로 묻혀버릴 것 같이 불안정한 구조의 통로만 잔뜩 있다.
원래는 여기에 하넬 드록스의 부하들을 끌어들여 가둘 생각도 있었다고 했으니 급하게 만들어질 법도 했다.
그런 곳이니 조명 따위는 없다. 아니, 케이운이라면 일부러 조명을 없도록 설계한 것일 수도 있다.
"······나 아직도 이거 쉽지 않은데요. 정말 선배님은 적응 잘도 하셨네요."
카니스는 오피아를 힐끔 바라봤다.
케이운은 가능한 한 그녀를 이 요새에 데려오지 않으려 했다.
이 곳에는 코덱스 교단, 특히나 대신관과 직접 관련이 있는 그녀가 알면 곤란할 것이 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도 교단이 검은 용 놈들보다는 당연히 나았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 어쩔 수도 없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다른 감각으로 보조해야 해."
"그게 되나요?"
[나는 된다.]
"엑! 뮤리데! 너도 듣고 있었어?"
오피아 역시 이 쥐들을 구하는 과정에서 좀 정이 붙었는지, 이제 슬슬 편하게 지내고 있었다. 카니스는 이것도 좀 불안했다.
뮤리데의 존재도 교단에 알려져도 될까.
[나도 여기 있는데 왜 못 듣는다 생각했지?]
"음······ 솔직하게 말하자면, 버섯을 좀 못 먹으면서 머리가 나빠졌을까······ 했는데."
[그건 나도 놀랐다. 생각보다······ 견딜 만한 것 같다.]
"아니, 그 이상으로 거리가 꽤 떨어진 것 같은데 너 말짱해. 우리가 그 고생하던 게 아까울 정도야 솔직히."
[나중에 대가를 치르겠다]
"······그러기보다는, 고맙다고 말해봐."
[고맙다?]
"너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지?"
[모른다.]
"······뮤리데에게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좋은 시간이 아니야. 뮤리데, 조금 참아줄래?"
[알았다. 카니스가 원한다면.]
"어? 뭐야. 진짜 너 선배님한테 빠졌어? 진짜 선배 남친한테 일러버릴 테다."
오피아가 하는 말에 카니스는 얼굴이 붉어진 상태로 마른 세수를 했다.
"······진짜 좀 입 다무는 게 좋지 않을까. 여기 적들이 들어오고 있잖아."
[아직은 괜찮다.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거리에서 조금 멀 것이다.]
놀라운 감시 능력을 가진 뮤리데가 도와주면서 일은 몇 배는 편해진 게 사실이었다. 카니스 입장에서 지금 뮤리데가 도와주길 원한 건 아니었지만.
"흥. 아니, 본인도 귀여운 아가씨가 또 귀여운 친구를 부리면 어떻게 해요?"
"내가 부리는 것도 아니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쥐는 귀엽다기보다는······"
[이제 슬슬 조용히 해야 한다······ 나중에 귀엽다기보다는 뭔지 알려주기를 바란다.]
본능적으로 맛있어 보인다고 말하려던 카니스는 적절한 순간에 대화가 끊긴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이 '요새'의 주된 방위 설비는 지금 당장은 미로를 제외하면 이곳저곳에 설치된 와이어 정도다.
정말로 저지력을 기대한다기 보다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탈출로.
"오피아. 도망 목표 지점 A는 준비 됬지? 뮤리데, 오피아를 부탁한다."
"옙. 그럼 슬슬 출발할게요!"
***
와이어가 이곳저곳 놓여있다는 건 전격 능력을 가진 오피아에게 물론 유리한 장치가 된다.
그러나 그걸 믿고 싸우는 건 나쁜 생각이다. 좁은 통로에서 힘이 부족한 여자가 남자들과 싸우는 것도 피하는 것이 옳다. 애초에 저쪽도 전격 능력자가 있고.
하지만 와이어가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함정이 확실하군."
"좁은 곳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걱정하지 마라. 타격대가 있으면 어느 정도의 붕괴는 견딜 수 있다."
붕괴를 견딘다는 말은 의외로 무서운 말이었다. 이 좁은 터널이 무너져 메워지는 가운데에서도 빠져나갈 수 있다는 말이니까.
검은 용이 가진 힘의 크기는, 그동안 교단이 생각하던 것들보다 훨씬 강력한 모양이었다.
뭐, 오피아가 지금 걱정할 건 아니었다.
파지직.
전격을 일으키자 저쪽에서 작은 통의 아래 뚜껑이 열린다. 같은 방식으로 4개의 통이 열리고, 케이운이 설치해 둔 몇 개의 쇠뇌가 모습을 드러낸다.
"쇠뇌 함정? 겨우?"
"너무 방심하진 마라. 뭔가 다른 장치가 있을 수도 있다!"
메이브가 침착하게 하는 말이었다. 오피아는 좀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일단, 저 쇠뇌에 뭔가 굉장한 것은 없다.
퓩! 화악!
발사된 쇠뇌가 허무하게 능력자의 장벽에 사라진다. 오피아가 빼꼼 고개를 내밀고 확인하니 놈들도 허무해 하는 것이 보였다.
저건 케이운이 그나마 기간에 겨우 설치할 수 있었던 것이라 했다. 정확하게는 눈속임 용이고, 진짜는······
콰앙!
"뭣!"
"악!"
이쪽이긴 했다. 적당한 사이즈의 깡통에 오피아가 수소를 모아두고, 적들이 다가오니 전기 신호로 뚜껑과 아래의 마개를 열었다.
수소와 산소가 결합하며 일정 비율에 도달한 순간, 그 깡통이 터진 것이다.
그 역시 상대가 평범한 인간이라면 어느 정도의 살상력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능력자의 장벽을 뚫을 정도의 위력은 가지지 못했다.
"뭐지. 이 어설픈 함정들은?"
그녀도 마음속으로 동의했다. 솔직히 어설픈 함정들이다.
아주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었다면 그 위치에 오피아 자신도 쇠뇌를 발사한다든가 하는 견제를 더할 생각이었지만, 그건 너무 위험했다.
오피아는 괜한 무리를 하지 않고 그 위치에서 물러났다.
[아직 오고 있다. 조금 더 물러나는 게 나을 것이다.]
"뮤리데. 와줬어? 고마워라."
[고맙다는 것은 아직 대가를 주지 않은 상태로 도움을 받는 것을 말하는가?]
"······대충은 맞지만, 좀 더 본능적인 거거든. 네가 선배님에게 느끼고 있는 것 같은 거?"
[그거라면 정확한 답변이 맞는 듯하다. 나는 카니스에게 대가를 주지 못했다.]
줘 버리면 끝날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지만······뮤리데는 그걸 느낌으로 이해한 것 같으니 더 이상의 설명은 불필요할 것 같았다.
오피아 역시 점점 뮤리데가 마음에 들고 있었다.
"뭐, 내가 맡은 건 여기에 중요한 게 있다고 믿게 하는 것까지니까."
검은 용의 타격에 대해 케이운의 요청은 간단했다.
'그놈들 오면 나와 부딪히게 해야 해.'
그 남자가 어째서 그렇게까지 자신감이 넘치는지는 모른다.
물론 군벌령을 하루 만에 접수해 돌아오는 꼴을 보면 괴물은 괴물인가 본데, 검은 용이 아예 작정하고 핀포인트로 노리는 것조차도 정면으로 보내게 한다고?
'주변 피해만 적으면 돼.'
착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는 진짜로 자신감이 넘쳤으니까.
어쨌거나 좋다. 자신감이 그리 크다면 그에게 정말로 부딪히게 하면 된다.
문제는 습격자들에게 누군가 나서서 '케이운이 지금 다른 곳에 있으니 그쪽으로 가세요!' 하고 말하면 알아들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럴 경우, 케이운이 중시하던 이 시설에 숨어있다고 생각할 수가 있다. 그것만큼은 피해 달라는 것이 그의 요청이었다.
그 요청을 정면에서 들은 건 모두.
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들은 건 오피아의 쪼그만 선배뿐.
"나도 정말 알고 싶거든요 선배? 왜 밀담으로 이야기했을까?"
[필요하면, 카니스가 말해줄 거다.]
"그러고 보니, 당신도 궁금하죠?"
[안 궁금하다.]
"거짓말."
[······방금 내가 한 것이 거짓말인가? 하고 싶은데 안 한다고 말하는 것. 알았다. 좋은 걸 배웠군. 하지만 나는 카니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알려줄 때까지 기다릴 거다.]
"쳇."
가장 쓸만한 정보원을 잃었다. 아마 뮤리데는 정말로 고집스럽게 말 안하고 버틸 것이다.
오피아는 차라리 다른 방법을 동원할 생각을 하며 뛰었다.
"맡은 일 하고 나면 정말 뭔지 알아낼 거야. 웬만하면 두려고 했는데, 궁금해서 못 참겠어."
오피아는 어둠 속을 뛰어다녔다. 여기서 그녀가 최선을 다해 막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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