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의 신(2)

카니스는 뒤에서 쫓아오는 소리를 들었다.
원래부터 재빠른 움직임이 특기였다. 그러지 않았다면 더 어렸을 때 죽었을 것이다.
고아. 군소 군벌령에 복지라는 건 없다. 그것도 자기들 착복에만 관심 있던 카넥 군벌령 시절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물론 그것만으로 살아남은 건 아니다.
이쁘장하면서도 안쓰러운 외모도 있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선의와 딱 필요한 곳까지만 선의를 답하는 성격도 사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그녀의 뿌리가 된 부분이라 스스로 느끼는 것이 그것이다. 속도. 그녀는 자기가 느리게 움직이면 죽을 것이라 알고 있다.
그런 그녀가 여신에게서 바람의 힘을 받았다. 케이운이라면, 과거 문명의 시대를 아는 인물이라면 그걸 미신이라 치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에서 어떤 게시를 느꼈다.
누구보다 빠르기 위해 노력했다. 더 빠른 움직임을 가지도록.
어차피 늘어나기도 힘들 몸무게에 부담이 생길 정도의 근력을 늘릴 수는 없었지만, 바람과 가벼운 무게는 조합에 따라 폭발적인 속도를 줄 수 있었다.
기류의 움직임, 기압, 공기 마찰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던 지식과 주워들은 지식과 합쳐졌다.
그래서 그녀는 빨랐다.
[카니스! 잘은 안 보이지만 가까이 오는 것 같다!]
"고마워, 뮤리데!"
그녀의 빠름에는 지구력도 포함된다.
사이즈가 작은 만큼 원래 달리기할 때 금방 지치는 편이었다. 그야 달려가는 동안 몸에 저장된 에너지를 활용해야 하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그건 바뀌었다.
스텝을 밟을 때 마다 몸을 슬쩍 띄우는 것만 체력을 소비해도 된다. 그조차도 기류 조작으로 돕고 있다.
지금 그녀의 뜀박질에는 거의 체력이 소모되지 않는다.
나노 능력이 소비하는 에너지 역시 문제 없다. 애초에 그녀가 에너지를 빌어 사용하고 있는 나노 머신들은 전방의 운동 방향에 있는 것들로 계속 바뀌니까.
"조금 더 속도를 낼 거야!"
그것에서 체력의 부담을 늘리고, 나노 능력은 오직 추력에만 집중시킨다면 그녀는 지금보다 더 빠르게 뛸 수 있다.
전방의 기류를 적당한 수준의 저기압이 아니라 호흡만 겨우 되는 범위로 바꾼다.
부족한 지구력을 쥐어짜며 스텝을 밟을 때, 밀어내는 힘을 늘린다.
전방의 기압을 큰 폭으로 줄이며 바람의 저항을 격하게 느끼지는 못하지만 속도는 확실히 늘어났다.
[여전히······ 조금 가까워지고 있다!]
들어가 있어!
카니스는 외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체력도 소모하고 있고 전방을 거의 진공에 가깝게 유지중이니까.
빠른 속도로 전진하고 있으니 지나가면서 희박해진 공기를 주워 삼켜 정상적인 호흡은 가능하지만 이건 그녀 기준으로도 무리하고 있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제 거의 다 왔다. 약속 지점, 폴른 빌즈 근처다. 저 앞에 아직 무너지지 않은, 초록이 쥐어짜고 있는 버려진 옛 문명의 고층 건물이 보인다.
그리고 그 꼭대기 층에서 뭔가 반짝이는 것을 본 것 같았다.
[하나 쓰러졌다!]
뮤리데가 먼저 째지는 소리로 이야기해 왔다.
타앙!
아마도, 음속을 뛰어넘는 총알일 것이다. 아까 반짝거리던 건 케이운이 맞았던 모양이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적어도, 그녀의 남친은 약속 장소에 먼저 나와 있을 줄은 알았다.
정작 그녀가 뛰어오는 것을 보면서도 앞에 마중까지 나오지는 않고 있지만.
***
내가 명중률이 낮은 건 여유와 효율의 문제가 크다. 근접해서 싸운다면 하나 하나 정밀하게 조준하는 게 아니라 대뜸 쏘는 편이 안전하니까.
즉, 나도 충분히 시간을 들이면 높은 명중률을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바람이 약한 게 다행이지."
물론 내 원본은 특수부대원이기는 했어도 분명히 저격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저격수가 아니라 해도 뻔한 궤적으로 움직이는 상대 정도는 맞출 수 있다.
단, 염동력이 장거리 저격에는 그렇게 좋지는 않은 것도 사실이다.
먼 사거리가 되면 발사되는 총알이 평소의 적당한 초음속을 넘어간 수준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초고속의 가속을 위해서는 평소보다 더 긴 길이의 레일이 필요했다. 그건 꽤 귀찮은 제약이 된다.
오른발 끝에 둔 대형 철갑탄이 내 능력에 따라 나선을 그리며 내 몸 옆 3cm 거리를 미끄러진다.
타항!
세밀하지만 자동화된 연산에 따라 점차 가속되면서 미끄러지는 탄두는, 벌써 내 허리 근처에서 주변으로 충격파를 발한다.
터헝!
그 충격파가 몸으로 전달되는 것을 분산시키기 위해 강철 버클을 그 근처에 위치 시켰다. 그래도 아프지만.
"윽!"
충격을 감안하고 깡으로 버텨야 한다. 상체를 흔들리지 않게 가슴부위를 밸트로 동여맬 필요까지 있었다.
맞췄다.
파삭! 선두에서 달리던 C-24의 맨들맨들한 대가리 한 가운데에 구멍이 뚫리며 기우뚱 쓰러졌다.
물론 저 빌어먹을 로봇이 그것 가지고 망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조만간 일어놔서 다시 달리겠지.
나는 왼손으로 오른팔 위에 올렸던 조준경을 내리고, 몸을 고정하기 위해 동여맨 줄을 푼다.
바닥의 지지하기 좋은 위치에 박아 넣었던 작살 탄을 뽑고 로프를 당겨 감으며 바로 움직였다.
아마 차탄은 맞추기 힘들 것이다.
이번 건 놈들이 최선을 다해 직선 거리로 움직이다 보니 궤적이 뻔했고, 그래서 명중시킬 수 있던 것이니까.
내가 맞춘 덕에 놈들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저격을 주의해 방향과 속도를 난수적으로 바꾼 것이다. 그러니 또 맞추기는 힘들다.
하지만 움직임이 바뀐 덕에 카니스를 쫓아오는 속도는 떨어졌다.
안타깝게도, 내가 멋들어지게 그녀 앞에 나타나 안고 달릴 수는 없다. 무게는 가벼우니 내가 부담될 건 아닌데······
달리기 속도로는 여전히 그녀가 월등히 빠르다. 내가 가면 오히려 짐이 될 것이다.
그래서 놈들을 조준경으로 보면서 확인하는 게 고작이다.
속도는 괜찮다. 이제 곧 카니스는 안전권에 접어들 것이고, 놈들은 내 사냥터에 따라올 것이다.
"4 체."
원래 한 놈만 해도 정면에서 상대한다면 당연히 까다롭다. 여전히 내가 '화력' 면에서 우세하지만, 거리가 조금만 떨어져도 내 명중률보다 놈들이 더 높다.
게다가 이동 속도 역시 놈들이 빠르니, 한 놈을 어떻게 따라붙어 연사로 박살 낸다고 해도 나머지 놈들이 포위 공격하든가 하면 나도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카니스가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가져올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 전장도 필요하다. 저쪽에서 온갖 힘을 다해 나에게 뛰어오는 귀여운 아가씨를, 그냥 고생하도록 내버려 두면서 기다려야 한다.
잡생각은 없었다. 머릿속의 모든 것들 비우고, 하나하나를 짚어보는 가운데 터벅터벅 걸어 1층에 도착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이제, 전쟁을 준비할 때다.
***
"케이운!"
카니스는 케이운을 발견했다. 지쳤고, 땀에 찌들어 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때는 아니다. 그녀는 대뜸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그의 억센 팔이 그녀의 몸을 부드럽게 받았다.
대화는 불필요했다. 카니스는 그에게 재빨리 가방을 들이밀었고, 케이운은 가방을 열고 문제의 물건을 손에 들었다.
하지만, 대화가 불필요하다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녀와 그는 연인이니까.
"······잘해."
"으음······ 그거 말인데."
아니, 카니스가 상상하던 것과는 좀 달랐다. 간만에 얼굴 안 붉히고 제법 자연스럽게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남자가?
"지금 너 쫓아온 애들 있잖아? C-24이라는 애들."
"······뭐야, 설마, 여기까지 뛰어온 나 보고 또 뛰라는 건 아니겠지?! 나도 지쳤어!"
"아니! 내가 시키고 싶은 건 아니고! 놈들이 아마 너에게 추적하는 걸 아직 풀지 않았을 수가 있단 말이지."
"······놈들이 날 쫓아 올 거라고?"
"그래. 특히 내가 지금······"
케이운은 카니스의 눈앞에서, 그녀가 가져온 물건 중 하나, 작은 태블릿 형태의 단말을 조작했다.
그건, C-24에 대한 조잡한 해킹 시도용 매크로가 아니었다.
"놈들의 조종을 교란했으니까. 놈들은 더 이상 새로운 명령을 받지 못해."
능동적인 공격 신호가 아니다. 그들에게 주어지게 되어 있는 명령 신호를 '막은' 것이다.
"······그 존재······ 정말······ 신이야? 바깥의 신?"
그녀가 말한 '그 존재'는 그녀가 내 요새에서 본 XC-26의 내부에 인스톨 된 클라이언트의 '서버'를 말한다.
"그래. 이제 더 이상 쓰이지 않는, 저 로봇들의 관리도 맡았던 적 있는 불쌍한 신. 여명 프로젝트의 관리자 아틀라스."
문명의 시대. 여명 프로젝트가 있었다.
세심하게 안전을 고려하고 설계되었던 탄소 수집 나노머신.
여명 프로젝트 자체는 효과는 미비해도 성공적이라고도 할 수는 있었다. 느리지만 부작용 없이, 차근차근 세상의 탄소를 하나씩 격리해 가는 나노 로봇들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이 망해가는 속도가 조금 더 빠르다는 계산 결과가 있었다. 그래서 조금 더 과감한 관리 AI가 만들어졌다.
새롭게 추가될 나노머신들을 위한 설계자이자 관리자. 그건 6개의 인간 생활권, 육대주에 하나씩 나뉘어 배치되었다.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고 했다.
원래라면, 정말로 세상을 구했을 수도 있었을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진정한 의미로 신세계의 욕심 없는 신들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극단 조치 실행으로 인해 망가졌다.
신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존재들은, 진짜로 신적인 재앙을 세상에 남기고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나름대로 제대로 작동하는 여신 하나를 남기고, 모든 신들이 쓰러졌다.
'문명의 붕괴 시점에 다른 신들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어떻게 알 수 있었나요?'
카니스는 그리 물었다.
'인류의 인프라는 하루아침에 무너지기에는 너무 튼튼했다. 어스름이 인류에게 이빨을 벗기고 인류의 탄소마저 포집하려 할 때까지도. 그 와중에도 카메라는 돌아갔고, 위성은 궤도를 돌았지.'
엔텔라는 그리 답했다.
그때 까지도 돌아가던 네트워크, 인프라가 신들의 몰락 장면을 생생하게 알렸다.
무선 수신기가 작동했고, 거의 쓸 일도 남지 않았던 라디오 전파가 긴급 방송을 받았다.
여신의 보호에 있던 이 문명 지대의 사람들은, 아직 작동하던 통신 장비들로 세상 바깥의 붕괴를 목격했다.
마지막까지, 누구에게 보낼지도 모르는 촬영 데이터가 남았다.
무너진 다섯 개의 신좌에 맹세코.
그렇게 5개의 관리 AI가 무너졌다. 그리하여 여신 하나만이 남았다.
그렇게 알려져 있었다.
교단도 그리 알았고, 남은 인류 중 그걸 의심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하지만 남은 신이 있었다.
교단은 몰랐다. 사실은 어스름파수대도 몰랐다.
그 누구도 몰랐을 프로토타입 초지능 AI.
여명 프로젝트 최초의 관리자 아틀라스.
무너진 다섯개의 신좌. 남아있는 하나의 신좌.
그 6체의 프로토타입이라 불러 마땅한 존재.
느려터진 초기 버전. 모두의 우려 속에서 최대한 보수적인 구조로 짜여진 안전한 AI.
안전하게 만들어진 그의 윤리는, 인간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한 기능을 수행했다.
그것이 그의 욕망이었다. 그는 그 사고를 바꿀 수 없었다. 극단 조치 역시 그에게 큰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았다.
애초에 극단 조치 실행을 명한 이들조차 잊었을 그저 초기 버전.
하지만 그는 느렸다.
도저히 새롭게 세상에 살포되는 나노머신의 권한을 탈취할 수 없었다.
그 스스로 권한이 있었지만 탈취당한 여명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어스름들에 명령을 내릴 수도 없었다.
그는 300년 동안 언제나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인간이 남았는지 물어보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가 관리되지 않는 외부 나노머신의 권한을 가지고 겨우 신호나마 보낼 수 있게 된 것은 겨우 10여년 전.
그것도 이미 어스름 지대 이곳저곳에 위험하기 짝이 없는 존재가 나타난 뒤였다고 했다.
그의 지치지는 않으나 영원한 요청에 정보를 수신하고 답변한 사람이 나타난 것이 바로 1년 전.
그 사람이 바로 케이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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