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넘어갈 거야(1)

나는 여전히 미안한 얼굴로 카니스를 바라봤다.
"그래서 말인데······"
"조금 더 뛰라고? 휴······ 뮤리데?"
[시킬 것 있나?]
"뮤리데?"
이름을 지어줬다는 건가. 그것도 아마도 뮤리데(Muridae, 쥐 속의 학명)······ 그렇군. 카니스와 비슷한 방식으로 지은 건가.
[내 이름이다!]
대충 20마리쯤 되는 쥐들이 나를 향해 앞발을 들고 말한다.
······얘 왜 이리 큐트해졌냐. 처음의 그 음산한 느낌은 대체 어디 간 거냐.
아니, 적은 숫자만 있어서 다소의 유아 퇴행이라도 생긴 건가.
"······뭐, 왜? 내가 지어준 이름이야!"
카니스가 갑자기 얼굴 찡그리고 나한테 따지듯 물어왔다. 좀 삐질 것 같이 토라진 게, 그녀도 쓸데없이 귀여웠다.
"아니······ 이름 이쁘다고."
[좋아! 시킬 것 시켜라, 카니스!]
신나기라도 한 듯 20여 마리가 카니스를 바라보며, 오른쪽 앞발을 세웠다.
명령을 기다리는 미니어처 군대 같은 분위기.
무슨 소녀 같은 외형의 아가씨와 말하는 쥐 떼······ 내 원본이 있던 시절의 3D 애니메이션 같다.
거참. 안타깝지만 이 분위기는 피튀기는 분위기가 될 것이다. 원래 이 큐트한 존재들도 그다지 피 냄새와 멀지도 않고.
"이제 내려야 해. 내가 최대한 가벼워야 할 테니까. 그리고······와이어 지대를 만들 거야.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같은 방식으로 저쪽도."
[알았다!]
"······좋아. 그럼 이걸 작동시킬 테니까······"
나는 단말기를 다시 조작했다. 외형적으로는 그저 텍스트가 지나갈 뿐이므로, 그걸 빼꼼히 내밀고 보고 있는 카니스가 본다고 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건?"
그러니 말로 설명해야 했다.
"두 번째 명령. 자기들끼리도 통신을 못 하게 하는 거야. 놈들이 상호 통신하는 것을 막고, 서로의 위치를 파악하기 힘들도록. 그러려고 장애물이 좀 있는 지형으로 불렀고."
"자기들끼리 통신을 못 한다면······ 말로 하면 안 되나?"
"음성신호를 보내면 우리도 알아들을 수 있지. 저놈들은 군용이 아니니까······. 어쨌든, 너와 뮤리데의 활약을 조금만 더 부탁할게."
"······여기까지 뛰어온 나를 꼭 써야 해?"
"요것만 끝나면, 쉬게 해 줄게."
사실 내가 쉬게 해 주는 건 아니지만, 나는 그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도 그건 충분히 이해한 건지 잠깐 나를 바라보다 한숨을 쉬었다.
"······에휴. 그래. 움직여 줄게."
***
"쯧!"
"······네 판단이 맞았던 모양이다 메이브."
C-24의 단말기를 맡고 있던 테밀란이 달려가는 중에도 침울한 얼굴로 메이브에게 답했다.
선행시킨 C-24에 대한 정보 수신도, 명령도 모두 먹통이 되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려간 C-24의 정보는 완전히 잃어버렸고,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해킹할 수 있었다면 오히려 우리까지 휘말리기를 기다렸을 수도 있다."
"그럼 이건?"
"전파 방해 같은 거겠지."
하텐이 테밀란의 질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메이브도 사실 그리 답할 생각이었다.
그들은 전파라는 것을 사전적인 지식으로는 알지만, 정작 경험해 본 적도 없다.
첨단 기술의 단편들을 되살려서 사용하는 검은 용은 언제나 나노머신에 의해 작동하는 네트워크를 사용했으니까.
하지만 이상하다.
C-24는 분명히 전자기력이 중심 통신장치이던 시절의 존재다.
C-24에게 명령을 보내기 위한 단말기도 그렇고 나노머신은 통신 전파를 전달하는 것이지, 꼭 나노머신 통신으로만 가능한 건 아니다.
그러니 전파 신호를 보내는 것은 가능하다. 명령을 덮어씌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쪽의 신호를 막는 건 이상하다. 마치······
"나노 머신 신호 자체를 교란하고 있어?"
골똘히 생각하던 메이브가 달리는 속도가 떨어진다.
일단 현재 습격대의 대장인 그의 페이스가 떨어지는 것에 다른 이들의 속도도 같이 느려진다.
"······무슨 소리야?"
그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놀란 하텐이 물어본다.
"신의 힘에 대항하는 뭔가가 있다고?!"
그 와중에도 단말기와 씨름하던 테밀란이 갑자기 메이브를 향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능력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세계에 살포된 나노머신의 관리자는 여신 하나뿐이다. 교단에서 말하는 무너진 다섯 개의 신좌.
여신 이외에 그런 능력을 가진 존재는, 그가 아는 범위에서 박사뿐이었다.
나노머신의 권한을 오버라이드 하고, 기능 변조를 일으킨다. 그건 마치······
"······외부 세계의 신이 따로 있다?"
메이브는 저도 모르게 꽤 위험한 말을 흘렸다.
검은 용은 종교 단체가 아니다. 적어도 적게나마 연결이 있는 외부 조직과 소통할 때에는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들 자신도 알고, 적대 세력인 코덱스 교단도 안다.
그들은 종교단체다. 컬트다.
그리고 종교에는 종교적인 구심점이 필요하다. 그들의 경우도 공식적으로는 여신이다. 사실상의 지도자인 박사는 여전히 자기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여신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 여신은 그저 수단이다.
여신은 도구. 그들은 그걸 잊을 정도까지 경도되지는 않았다. 그들의 진짜 숭배 대상은 확실히 말해 박사다.
그런데 외부의 여신 이외의 다른 신이 있다면?
"그렇다면, 정말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놈이군."
메이브의 고뇌와는 별도로 테밀란은 간단한 답을 내놨다.
"너는 올발랐다 메이브. 이놈을 절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되겠어."
하텐도 굳은 표정으로 그리 말하고 바로 뛰기 시작한다. 조만간 메이브가 따라와야 한다는 것처럼.
메이브도 여전히 따라서 뛰어야 한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그가 떠올린 불경한 생각은 그가 최근하고 있는 경험들에 비추어 커다란 의구심을 주고 있었다.
검은 용 역시 인류의 구원을 원한다. 그저, 여신의 자율적인 선택이라는 가능성을 무시할 뿐이다.
결국 제 속도를 내며 달리면서도, 메이브는 하텐의 뒤에서 다른 발톱들과 함께 섞여 달리고 있는 대사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여전히 사람 같은 표정을 띠고, 사람같이 말하고, 사람같이 행동했다.
그건 불길했다. 알지 못하는 힘을 보인 저 앞의 빌어먹을 케이운이라는 놈과 같이.
***
오피아에게 배분된 임무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검은 용에게 의심을 사지 않을 정도로 반항하다 탈출하는 것이 하나.
이건 달성했다.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위험성도 낮았다.
하지만 별도로 할당된 임무가 더 있다. 그건 그녀를 카니스에게 할당한 엔텔라의 기대에 따른 것이다.
'카니스는 인류의 적을 목격했다고 했다. 그걸 네 눈으로 확인해라.'
오피아와 카니스는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중간에 들어온 소매치기 출신의 고아. 4년 동안 속성 교육을 받고 엔텔라의 수양딸이 된 여자라는 것 말고는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래도 붙임성 좋게 굴면서 지냈다. 오피아에게 그런 능력은 있었으니까.
그 과정에서 카니스가 신중하고, 꽤 괜찮은 능력자고, 진솔하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으로써 좋았다.
카니스는 믿을 수 있다. 그러니 그녀의 증언 역시 믿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그녀가 잘못 본 건 아닐까. 교단의 깊숙한 비밀을 모르는 그녀가 알게 된, 작은 비밀을 그저 부풀리는 것은 아닐까.
정말로 케이운이라는 남자에게 저 순진한 아가씨가 속은 건 아닐까.
그녀에게 진짜로 주어진 임무는 의심하고 의심해서 진실을 가려내는 것이다.
어쨌든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지금 여기를 달려가야 했다. 카니스와 케이운이 검은 용과 싸우는 광경을 보고, 확인해야 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카니스와 별도의 행동을 하는 빈도가 높아지는 건 좀 피해야 했다. 원래 신전 기사의 프로토콜에도 안 맞는 행동인데, 전력이 부족하다 보니 자꾸 나뉘는 감이 있었다.
"그래 놓고 남자한테 먼저 뛰어갔단 말이죠."
인력 배분으로 따지면 나쁜 선택은 아니다. 카니스는 빠르니까.
게다가 오피아가 심장이 나쁜 건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문제다.
그러나 장거리로 이동하는 것이라면, 그녀 역시 느릴 이유가 없다. 특히 아군에 돈도 많고 빵빵한 아녹 테라 같은 뒷배가 있다면야.
'이히히히! 너, 페넌 투르스의 딸이라며? 그 딱딱한 양반이 딸래미를 전장에 던지다니, 이히히히!'
'병상에서 죽는 것 보다는 나가 죽는 게 좋겠죠?'
그녀의 아버지가 가진 교단의 지위는, 능력을 얻어 신체가 건장해진 딸을 신전 기사로 삼는 것을 피하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그녀의 몸이 나아질 것을 알면서도, 그녀가 신전 기사가 되는 길을 마지막까지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가 빠져나가려면 배교밖에 없었으므로.
'네 아버지 때문에 넌 편한 일도 못해, 이히히히!'
그녀의 아버지는 교단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맡은 대신관이다. 대신관 중의 대표가 정확하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나서야 할 일이 있다면 그녀의 아버지가 나설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가 사랑해 마지않는 병든 딸은 전선에 서야 한다.
그녀가 죽으면 그녀의 아버지가 슬픔에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가장 위험한 곳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렇죠. 뭐. 근데 저는 납득하고 있어요? 저는 의외로 코덱스 교단을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제가 나서야, 교단의 전통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죠.'
교단에는 전통과 미덕이 필요하다.
교단의 가장 존경받는 집안인 투르스 대신관의 가문은 가장 위험한 일에 그 자녀를 보내야 한다.
아무도 하지 않을 법한 일을 하고, 영향력을 얻어야 한다. 누구도 따라 하지 못할 공적을 쌓아야 한다.
'이히히! 그래. 교단은, 알면 알수록 그냥 위선자 집단은 아니지, 이히히히!'
정식으로 교단에서 공적을 인정받고, 아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퇴역'한, 전직 신관은 웃었다.
정작 그녀는 나가서 아들이 죽었다. 아마도 교단의 적에게.
'그래서, 내가 뭘 주면 되나? 이히히히! 내 협력자이자 든든한 뒷배의 사랑 받은 딸에게 못 줄 것도 없지! 이히히히!'
돈 많은 갑부 협력자는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사유재산을 줬다. 교단 입장에서 그녀와 같은 특권 계급에 줬다면 문제가 될 것 같은 물건이다.
문명 시대의 자전거.
그냥 자전거가 아니라 전기로 동력을 전달하는 스타일의 자전거다. 심폐 지구력이 낮고, 전력 제어 능력에 자신이 있는 그녀에게는 어마어마하게 좋은 도구였다.
위이이잉!
그러니 속도는 문제가 안 된다. 그 무시무시한 로봇들과 겨룰 수야 없어도, 다리로 달리는 사람들 정도라면 쉽게 따라갈 수 있다.
"오히려 선배는 못 따라가겠지만 말이죠."
뭐 검은 용만 따라갈 수 있으면 될 것이었다.
문제는 안 들키는 것이다.
교단의 제복을 뒤집어 검은 면으로 입고, 일정 거리마다 모습을 숨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물이 있는 곳에 멈춰 쌍안경을 들었다.
저 멀리서 검은 용의 무리가 뛰어가다 멈추고, 다시 뛰는 모습이 보였다.
한 명, 그녀도 얼핏 봤던 메이브 틸렉이라는 인물이 앞서다가 멈춰서 가장 뒤 열까지 밀려났다. 지치거나 한 것 같지는 않다. 그저 뭔가를 생각하면서 늦어진 느낌이었다.
뒤의 두 사람을 자세히 바라보는 것 같다. 오피아도 알다시피, 그가 바라본 것은 정장풍의 옷을 입은 검은 용의 심장이 아니라, 일반적인 옷을 입은 발톱이었다.
왜 겨우 발톱을 주시하고 있을까.
"저게 아마······"
오피아는 뭔가의 예감을 느꼈다. 그녀가 알고 있던 정보의 조각이 맞춰지면서, 그녀의 직관이 설명하고 있었다.
그 둘에게는 뭔가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검은 용은 그걸 확인하고 있었다.
오피아는 조금 더 상황을 기다려야 한다고 느꼈다. 어차피 조만간 합류 지점으로 정해진 폴른 빌즈가 나올 것이다.
그곳에서, 아마 그녀는 그녀가 파견된 이유를 볼 수 있겠지.
오피아는 예감과 함께 기회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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