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혀진 성역 - 12
"······."
좋아, 무사히 결계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이제 가옥의 대문쪽을 향해 달렸고 문을 열려고 했으나······.
"쳇."
역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굳게 닫혀있을뿐 밖에서 열 방도가 없어보였다. 외벽의 담을 넘자고 하니 내 키를 훌쩍넘어서 제법 컸고···외벽의 윗부분 외형이 외부에서 기어올라가기 힘들게끔 되어있어서 무리인듯했다. 잠시, 주변의 숲을 둘러보았다.
사실 이곳은 완전히 '노출지'다. 아마 요괴들이 지금 이렇게 문앞에 서있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결계밖으로 다시 나갈수도 없는 노릇이라 가옥을 빙 둘러보기로 한다. 뒷문이라도 있음 좋겠는데······.
돌던 도중에 발견한것은 가을날씨에 조금은 말라버린 담쟁이 넝쿨들이 가득한 부분이 외벽중에 있었다. 과연 오래된 가옥이라 그런지 이런것이 있긴 한가보다. 일단 그 담쟁이를 손으로 부여잡고 담을 기어오르기로 한다.
"읏차."
우두두두득-
"아야······."
내가 매달리기 무섭게 담쟁이들은 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뜯겨져 나갔다. 무엇보다 가방무게도 장난아니라서······. 가방을 벗어놓고 할걸 그랬나···잠깐, 그러고보니 이놈의 가방은 뭐한다고 이렇게 무거운거야?
가만히 앉아서 숲속의 눈치를 살피며 가방을 열어보았다.
"음?"
뭔가 여러가지 장비들이 많이 있었다. 구급키트부터 비상식량과 밧줄과 갈고리랑······음? 밧줄과 갈고리.
"오호."
나는 그것을 집어들고는 외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면 애초에 이건 가옥안에 들어가기위한 작전이었는데···가옥문이 '어서옵셔'하고 열려있을 보장은 없는게 당연했다. 나는 얼추 갈고리를 담장너머로 넘겨보내곤 끌어당겨서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리곤 밧줄을 잡고 천천히 벽을 발로 짚으며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이거 좀 많이 힘드네······.
정말 미도리가 보고있으면 부끄러울 정도로 허우적거리고 미끌미끌 아둥바둥하며 겨우 외벽의 위에 손을 짚었다.
"이대로 다시 떨어지면 진짜 좌절할거다···."
있는 힘껏 몸을 일으켜 외벽을 넘어 몸을 넘겼을때 의외로 내려갈때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꼭 방어를 위한 중세시대 성의 구조인것처럼 외벽의 안쪽에서는 외벽에 붙은 '침입자'에 대항하기 위해 저항자들이 서서 싸울수 있도록 발판들이 있었기에 그냥 다리를 발판쪽으로 내리면 되는것이다. 그리고 밧줄과 갈고리는 회수했다.
"와, 멋진데?"
안에서 본 가옥의 안은 정말로 더욱 멋졌다. 가을의 단풍잎들이 가득 떨어지고 있는 옛전통가옥들···그리고 제법 큰 5층정도의 큰 건물이 있고 주변으로 조금 더 작은 건물들과 1~3층정도의 보통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과연 수인족들도 일부가 지낼정도로 규모가 실로 대단했다. 이런곳이 거대한 결계안에 있어서 인공위성으로도 촬영이 안된다라······정말 신기한걸.
지금 내 몸은···비록 오니의 피로 얼룩지고 상처도 조금 있고···옷도 엉망이지만 외벽 안 만큼은 조용하고 정말 아름다웠다. 외벽밖의 숲들을 보았는데···그러다가 바짝 말랐으면서 크고 붉은 눈을가진 어떤 요괴가 날 빤히 바라보는걸 보곤 얼른 몸을 숙이고 외벽 발판 밑으로 내려갔다.
자, 이제 이 주변을 '관광'하면 되는건가! 나는 카메라를 든채 야심차게 가옥을 따라 걷기시작했다. 이 안은 결계안이며 수인족도 통과못할정도로 결계가 강한상태같은데 그럼 이 안은 안전하다는 거겠지?
마당과 마당을 지나 전통의 미가 느껴지는···. 그러다가 나는 뭔가 일본전통이 아닌 다른 가옥도 있는것을 보았다. 이상한 형태의 기와가 얹혀진 건물들도 몇몇이 보였다.
"······."
한국식···전통가옥인가. 한국이라면 일본 옆의 반도국가다. 전통문화하면 절대 빠질 수 없는 나라인것도 사실이고 예전부터 일본과 교류도 있었으니 딱히 크게 이상할것은 없다. 다만 츠이시가문의 가옥에 한국식 전통가옥이 있다는것은···옛날부터 한국에 있는 어떤 자들은 츠이시가문과 서로 아는 사이였다는 것일까? 일단 추측일 뿐이지만 새삼 문화의 교류를 느껴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나는 이 거대한 가옥들의 가장 중앙인듯한곳에 도착했다. 뭔가 커다란 나무 하나가 있었고 그 나무주변으로 알수없는 문양들이 새겨진 작은 돌들이 빙 둘러져있었다.
"흠?"
잘보면 커다란 나무의 밑둥의 뿌리쪽에 어떤 바위가 있어보인다. 바위속으로 나무가 뿌리를 내린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바위와 나무는 아주 오래전부터 함께였다는듯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딱히 신사처럼 나무에 하얀 끈이나 줄들이 있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 나무가 아주 신성한 나무인것은 분명해 보인다. 단지 지금은 가을빛을 가득 머금어서 붉고 노란 빛의 잎들을 가지고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나무의 조금 앞에 다른 조금 큰 돌이 있었다. 그 돌에는 묘한 글귀들이 가득 새겨져 있었고 주변의 바닥도 고른 돌바닥인데 묘한 글귀들이 가득했다.
"······."
그것까진 좋은데 뭔가 이 돌의 밑둥쪽이 약간 검어보이기도 하고···붉어보이기도 하고······조금 꺼림칙하다. 일단 사진을 찍어두기로 한다. 뭔가 조사는 해가야 하니까.
나는 카메라를 들어서 이왕찍는거 배경도 나름 신경써본다. 나무와 돌을 중심으로 가장 큰 건물도 있었고 주변으로 가옥들이 두르듯이 있다. 아, 멋지고 좋아. 조용하게 낙엽도 떨어지고 마루에는 어떤 여자애가 상의를 벗고 있기도 하고 사진 찍기 딱좋······.
"······."
잠깐, 여자?
나는 카메라의 렌즈를 내린다. 지금 내 표정이 뭐냐고 묻는다면 '이건 또 뭐야.'라는 표정이다.
지금 내 정면에 보이는 어떤 건물의 마루에서 뭔가 검은색 니삭스에 검은 스커트를 입고 검은 블라우스까지 입은 초등생쯤의 여자애가 검은색 니트긴팔조끼같은것을 벗으려고 하고있다···근데 벗다가 걸렸는지 벗지도 못하고 혼자 낑낑거리고있다.
"······."
도망가야겠지?
내가 물러서려고 발을 옮기는 순간 하필 그곳에 낙엽더미님들이 계셨다.
바스락-
"···뭐야, 시로? 마침 잘왔네. 지금 나 이거 걸렸는데 벗는거 좀 도와줘."
"······."
대답하면 안돼. 이대로 천천히 빠져나와······.
"쿠로!! 큰일이야! 누군가 외벽을 넘었어! 내 경고광선을 누가 건들였다구!!"
"······."
이건 또 뭡니까······. 주변이 좀 더 밝아지나 싶더니 갑자기 가옥의 지붕위로 새하얀···. 검은녀석과 같은 스타일인데 옷만 전체적으로 흰색의 초등생 여자가 또 나타났다. 머리스타일은 귀밑으로 머리를 내린 약간 긴 생머리에 오른쪽으로만 머리한쪽을 묶었다.
"······!? 뭐야! 저기있다!"
"뭐!? 시로 이거 다시 입는거 좀 도와줘!"
"이긍···알았어."
하얀 '시로'라는 녀석이 검은 '쿠로'라는 녀석의 옷을 다시 입혀주었고 검은 녀석이 옷을 완전히 입자. 둘은 색만 흰색과 검은색으로 다르지 완전 똑같이 생긴 쌍둥이 자매였다. 단지 내 방향에서 봤을때 하얀애는 오른쪽으로 머리를 묶었고 검은애는 왼쪽으로 머리를 묶은 차이뿐이다.
도, 도망치긴 늦었겠지?
내가 뻘줌하게 카메라만 들고 서있자 쿠로라는 녀석이 치잇하며 뭔가 검은색의 전투장갑같은 가벼운 재질의 장갑을 끼며 말했다. 하얀녀석은 이미 착용중이다.
"시로! 아직은 낮이라 내가 힘을 제대로 못쓰니까 부탁해."
"알았어 쿠로! 낮이면 나에게 맡기라구!"
저기 얘들아···어려보이는데 뭔가 위험한 짓 하지마렴. 나 나쁜사람 아니거든······? 얘들아?
"시로, 그래도 조심해. 저녀석 요괴들이 드글거리는 숲을 통과하고 여기까지 돌파한 녀석이야 분명 강한놈이야."
"그정도는 알고있어 쿠로. 방심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서 싸울거니까!!"
저기···얘들아 뭔가 큰 착각을 한거 같은데 나 여기 그냥 여기저기 도움받고 묻어서 온거거든? 단지 이 옷만 보고 쎄보인다고 생각하지말라고!!
나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저기···나 이상한 사람아닌데."
"전력을 다해 상대하겠어."
시로라는 녀석이 하얀장갑으로 허공에 무슨 술식같은것을 새겨넣으며 말했다.
"화이트 필드에서 브라이트(Bright) 필드 전개."
그리고 하얀 백장미를 들고는 입술앞에 살짝 대며 무섭게 눈을 부릅뜨더니 날 노려보았다.
"간다!!"
"에!?"
[3분 30초 뒤] - - - - - - - - - - - - - - - - - - - - - - - - - - -
지금 나는 어떤 건물의 방안에 묶여있다···. 어찌 된건지···내가 잡히는데는 45초도 안걸렸으니까 말도말자.
도망은 쳐봤는데 애가 무슨 빛속성인지 공간이동 비슷하게 추격해오면서 이상하고 다양한 도형들···프리즘······뭐 그런걸 이용해서 뭔가 태양빛의 레이저 같은걸 쏴대던데 진짜 죽는줄알고 식겁했다. 다행히 그 빛들에 제대로 맞기전에 그냥 잡힌게 다행이다 싶을뿐이다.
뭐랄까···내가 약한건 알겠는데 이건 뭐 주먹싸움도 아니고 현란한 기술싸움이다보니 대항도 못하고 그냥 사로잡혔다······. 장미쓰는거보면 츠이시 유이씨와 비슷한 쪽같은데 얘들도 츠이시가문?
검은색의 쿠로가 의자하나를 들고오더니 방의 큰 기둥에 묶여있는 내 앞에 의자를 놓고 형사처럼 앉더니말했다.
"의심스러울 정도로 쉽게 잡혔어."
옆에서 하얀색의 시로가 대답했다.
"정말로 저 요괴들이 많은 숲을 통과한거 맞을까?"
"이녀석의 동료들이 더 있을지도 몰라."
"음···그래도 가옥안으로 들어온건 이녀석 뿐인거 같은데······."
시로라는 녀석이 오더니 초등학생 고학년쯤 되어보이는 주제에 고등학생 형님···아닌 오빠-······.-의 턱을 잡더니 말했다.
"일단 내가 쳐놓은 경고감지광선을 건들인건 1명뿐이었어. 다른 동료들은 있나?"
"딱히···없는데."
"그럼 넌 누구고 뭘하러 온거지?"
"······."
그냥 불기는 뭐하고 이쪽에서 한번 물어볼까.
"그전에 너희들 소개 먼저 해줄래? 하하···."
"뭐, 좋아."
"······."
너무 간단히 받아들인다. 확실히 애는 애구나······.
시로라는 녀석이 흰색의 생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내 이름은 후타코 시로."
쿠로라는 녀석이 의자에 앉은채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딱봐도 냉정하고 차가운 성격같은 삘.
"내 이름은 츠이시 쿠······."
"쿠로! 츠이시라고 하면 안돼! 우린 이제 '후타코'잖아!"
"아······."
쿠로라는 녀석이 살짝 뺨을 붉히며 실수를 인정하기 싫다는듯이 조심스레 말했다.
"후, 후타코 쿠로다."
"······."
그리곤 시로라는 녀석이 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 '여성'퇴마사용 방어조끼를 착용한채 있는 오빠는 누구!?"
······일단 나쁜 애들은 아닌거 같다. 말실수라지만 일단 츠이시가문 애들인거 같으니까 정체를 말해도 되겠지?
"나는 츠이시가문 협력자 나마루 켄지."
"가, 가문 협력자!?"
쌍둥이 답게 둘다 화들짝 놀라더니 시로가 내 얼굴 바로 앞까지 와서 민망할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거짓말하지마! 우리가문 협력자가 이렇게 약해빠졌을리가 없잖아!!"
"시로, 이번에는 네가 말실수했어. 우린 이제 후타코잖아. 츠이시가문 협력자를 우리가문이라니."
"아."
시로가 새하얀 얼굴을 가득 붉히더니 쿠로에게 말했다.
"에, 에이! 이런 실수는 할수도 있지!!"
"그래."
보면 볼수록 그냥 '애들'이다. 나쁜 사람들은 아닌듯. 말이나 더 걸어볼까.
"얘들아 그만 이거좀 풀어줄래?"
"아직."
쿠로라는 녀석이 무표정하게 말을 이었다.
"질문 안끝났어, 협.력.자."
"······."
그래, 더 물어봐라 꼬맹이들아······.
[13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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