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숨찐 정령의 갓생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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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킴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5
최근연재일 :
2024.06.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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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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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변화>

DUMMY



하늘에 잠시 보였던 눈알은 약 두시간 정도 사방을 탐색하듯 움직인 후 사라졌다.


패치가 적용됐을 때만 해도 서로 눈치만 보던 이들은 그후로 좀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


하늘의 구멍 사이로 눈알이 보였던 그날, 마릴족에 전령이 찾아왔다.



“쿨란 족의 수장이신 자레드님의 뜻을 전하러 왔습니다.”



어두운 갈색의 피부색이 인상적인 사내였다.


아마도 쿨란족에서 손꼽히는 전사일 것이다.


마치 그의 몸에서 풀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를 마주한 마릴족 수문장의 어깨가 넓어진다.



“그쪽이 쿨란족이라는 것은 어떻게 증명하지.”



양쪽 다 폐쇄적인 부족들이다.


게다가 평화의 시기가 길었던 만큼 적대적이지 않은 타부족원을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알 턱이 없다.


아마도 그 나름대로의 기싸움 이었으리라.


나이는 어려보이지만 침착해보이는 사내는 품안에 손을 넣었다.



“..움직이지 마라!”


“진정하십시오. 문패를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이전에 희에게 당한바가 있는 수문장은 애써 굳히고 있던 얼굴을 저도 모르게 풀었다.



“..문패? 지슈님을 불러오라.”



수문장으로서 어느 정도 상식은 갖추고 있지만 쿨란족의 문패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족장인 지슈가 확인하는 것이 맞았다.


그 사이 품에서 나무조각을 꺼내들은 쿨란족 사내는 한결 여유있는 얼굴로 기다렸다.


옆눈길로 마릴족의 피부색을 힐끔 보는 것은 감출 수 없었지만.



“내 생김새가 신기한가보군.”


“..사실 피부색이 그렇습니다. 부족 바깥으로 나간 적이 많은건 아니지만 푸른 색은 처음봤습니다. 실례였다면 죄송합니다.”


“실례랄건 없지. 우리로서도 자네와 같은 짙은 갈색 피부는 처음 보는군.”


“아, 그렇군요. 저희보다도 외부 교류가 없으셨을테니. 저희 부족은 전부 이렇습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요.”



기세 싸움을 한 것이 언제냐는둥 둘은 제법 친근하게 말을 주고 받았다.



“얼마만의 교류인거지?”


“아시다시피 필요시 전령새를 통했으나 직접 이렇게 대면한 것은 적어도 100년은 되었을 겁니다.”


“그렇지. 내가 수문장이 되기 전이라고 들었으니, 그쯤 되었겠지.”


“쿨란 족은 처음 보시는 겁니까?”


“그렇다네. 우리 마릴족의 수명이 긴 편이라고는 하지만 마지막으로 세상밖으로 향했던게 무려 500년전이 아닌가.”


“마릴족에 전령으로 올수 있어 영광입니다.”


“하하! 이거, 이제보니 예의가 바른 청년이었구만.”



넓은 바다를 품은 마릴족 특유의 호쾌함과 낙천성이 이렇게 드러났다.


이미 교육을 받아 알고 있던 쿨란족 사내는 조용히 미소를 머금었다.


여러모로 완전히 다른 성향과 문화를 가진 부족이지만 왠지 잘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쿵. 쿵.


사내의 미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흠.”



거구의 사내는 온 몸에 문신을 두르고 있었다.


쿨란족도 나름대로 헐벗고 사는 편이지만 이 사내는 그에 더해 성난 근육들이 존재감을 과시했다.


왠지 숨이 막혀오는 것 같다.


내내 여유롭던 쿨란족 사내가 침을 간신히 넘기는 순간.



“맞군. 쿨란 족의 문패. 환영한다, 어린 전사여.”


“..감사합니다.”



쿨란 족 족장인 자레드도 카리스마가 있었으나, 마릴족 족장인 지슈는 몸 전체에서 뿜어나오는 기운이 상당했다.


신분을 증명한 뒤로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사안이 사안이니 만큼 어서 면담을 마무리짓고 싶었으나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먼길 오느라 수고했다며 만찬 수준의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물론, 쉴 곳 까지 안내받았다.



“..사실 제가 가지고 온 사안은 급박한 것인데. 언제쯤 말씀을 드리면 좋은지요?”



최대한 공손하게 말을 꺼냈으나 별 성과는 없었다.


“하하, 어린 친구가 성격이 급하구만. 잘 먹고 쉬고 있으면 지슈님이 어련히 알아서 자리를 마련하실거라네. 모든건 때가 있음이야!”


“..하하하. 그렇군요..”



이해는 되지 않았으나 원활한 교류를 위해 일단 흔쾌히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루를 푹 쉬고 난 다음날 새벽.


지슈가 들이닥쳤다.


나름대로 긴장을 풀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해가 뜨기 직전 찾아온 그는 아무말 없이 그를 데리고 어딘가로 향했다.


마릴족의 거처가 암벽에 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내부의 구조는 더욱 독특했다.


자연적으로 생긴 것 같은 동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있다.



얼마나 걸었을까, 동굴의 끝이 보이고 있었다.


어디선가 빛이 들어온다고 느꼈을때 절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먼저 걷던 지슈는 털썩 주저앉았다.



“갑자기 끌고와 미안하네. 우리에게도 손님이 오는건 드물다보니, 이 광경을 꼭 보여주고 싶었지 뭔가.”


“... 정말. 아름답습니다.”



발아래 바닷물이 철썩 와서 부딪히고 저 멀리 수평선에서 해가 떠오른다.


평생을 정글에서 살아왔다.


이런 광경을 꿈에서라도 상상했을 리가 없었다.



청년은 저도 모르게 입을 헤 벌리며 그 광경을 바라봤다.


옆눈으로 흘깃 그런 그를 확인한 지슈 또한 눈을 가늘게 뜨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지슈가 입을 다시 연건 해가 완전히 떠오르고 난 후였다.



“아마도, 자레드라면 회담을 제안하려고 하겠지. 맞나?”


“..맞습니다.”


“쿨란은 세계수를, 우리는 일누크를 오랜 시간 지켜왔지. 전혀 다른 곳에 있었으나 같은 목표를 가지고.”


“......”


“마계와의 문이 열렸을 때도 그것이 깨어지는 일은 없었다. 보통의 인간들과 거리를 두며 각자의 사명에 집중했지.”



지슈의 말투는 잔잔했으나 무거웠다.



“하나만 묻지.”


“네, 말씀하십시오.”


“..최근에 ‘수'님께서 계시를 내리신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무례한 질문에 답해주어 고맙네. 역시 그렇군. 나에게 조금만 시간을 주게.”


“알겠습니다.”


“돌아가는 길은 알고 있지?”


“물론입니다.”



역시 소문대로 쿨란족은 공간과 지리 감각이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났다.


꼬일대로 꼬인 동굴지형인데도 그사이에 모두 파악한 것이다.


묘한 미소를 지은 지슈는 그대로 그를 남겨두었다.


잠시간의 평화를 즐기게 두는 것도 좋으리라.



쿨란족의 어린 전사가 놀라지 않도록 옆의 길로 빠져 바로 바다로 뛰어내렸다.


거구의 사내가 뛰어내렸는데도 튀기는 물방울의 수는 극히 적었다.


마치 바다가 두손벌려 환영하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가 향한 곳은 다름아닌 물의신 에페의 신전.


모두의 눈앞에 이해할수 없는 글자가 떠오른 후 부터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마릴족 전부는 사실 물의 신 에페의 신관이나 다름없다.


족장이라 하면 그중에서도 신성력을 가장 크게 타고났다는 의미.


다른 곳이었으면 대신관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깊은 바닷속에 커다란 웅덩이가 보인다.


마치 거인이 주먹을 바닥에 쳐서 만든 것과 같은 거대한 분지의 중앙에 석상이 있다.


살아 숨쉬고 있는 것 같이 정교하게 빚어진 여인이었다.



“..역시. 바뀌었군.”


“오셨습니까, 지슈님.”


“기우. 상황이 상황인지라 인사는 생략하겠네. 언제부터 이 자세로 바뀌셨는가.”


“하늘에 눈동자가 나타나고 부터 입니다.”


“왜 바로 보고하지 않았지.”


“..이리 오십시오.”



세상에 무언가 큰 변화가 일어날때 물의 신 에페를 조각했다고 전해지는 이 석상의 자세가 바뀐다.


그것이 마릴족에게 일종의 계시가 되고 있었다.


현재 석상은 한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다른 팔로 한쪽 방향을 가르키고 있다.



신전을 지키던 기우의 뒤를 따라 석상과 가까이 가자 섬뜩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눈물을 훔치는 걸로 보였던 석상의 눈에서 피처럼 보이는 붉은 것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보고드리러 가려고 했으나 갑자기 피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또 무슨 변화가 생길지 몰라 일단 자리를 지키던 중입니다.”



지슈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말문이 막히는 것은. 이토록 막막한 것은.



자세히 봐야 볼 수 있었다, 붉게 흘러내리고 있는 피눈물은.


흘러 나오자마자 바로 바닷물에 섞여 근처를 분홍색으로 물들이고 있었으나, 바닷물의 양이 워낙 많아 금방 색이 사라지고 만다.



무슨 의미인지 고민하기도 전에 처음 드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불길했다. 모든 것이.


이 모습도, 또한 풍기는 분위기도.



“..마지막 계시.”



그렇다. 신은 더이상 이 석상을 통해 뜻을 전달하지 않으신다.


이 것이 마지막 계시.


신과의 연결이 끊겼다.


이제서야 이해된다. 세계수에 대한 질문에 지어보였던 그 표정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적어도 마릴족이 지닌 고대의 기록에 이런 것은 없었다.


처음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는 의미다.


‘하메르님, 이런 심정이셨습니까.’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그날, 움직이는 일누크를 보며 ‘엘'님의 앞에 섰던 그분의 심정이 이랬을까.


새삼 그동안 대를 이어 족장의 역할을 해왔던 선조들이 떠오른다.



마음은 천근만근 무겁지만 해야할일을 해야한다.


가장으로서, 그리고 한 부족의 족장으로서.


깊게 한번 심호흡을 하고 석상의 바로 앞으로 다가가 자세히 바라본다.



“.....상태창.”


다시 한번 확인하고자 한다.


만약 이 상태창이라는 것이 현재의 상태를 정확히 나타내는 것이라면.


거기에 또 하나의 실마리가 있을 것이다.


이름 : 지슈

클래스 : 미정

진명 : 지슈 하마트라 마릴

능력치 : 근력(8) 체력(7) 민첩(6) 마력(5) 행운(2)

고유 특성 : 방어력[B], 신성력[C]

잠재 능력 : 〼〼



“..흠.”


다행히 신성력이 그대로 존재한다.


그말인즉 신들에게 무슨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니라 연결에 이상이 생겼다는 의미.


상상했던 최악보다는 나았다.



다시 눈을 들어 본 석상에 다른 것이 보인다.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은 서해.



“..인어족인가.”



그러나 여인의 눈동자가 향하는 방향은 검은 숲.



“또한 대륙이군.”



사실 마릴족의 운명은 정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패치와 상태창, 하늘의 눈동자.


세상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


알면서도 굳이 확인받으려 했다.


천년이 넘는 역사를 자신의 대에서 깨야 하는 것이기에.



“..고민은 끝이다.”



첫 걸음이 가장 고될 것이나, 그 후에는 거칠 것이 없으리라.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다들 짐작은 했으면서도 공식적으로 결정이 나자 흔들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대륙의 인간들은 모두 피부가 누렇다던데.”


“아냐. 하얀색도 있다고 했어.”


“초록색은?”


“..초록색은 못들어봤는데. 아무튼 푸른 빛은 우리 뿐이야.”


“오호~ 역시 마릴족은 특별하다니까.”



평생을 숨어 살아온 이들이다.


두렵기도 하겠지만 들뜨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이중에 가장 들뜬 이가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랑랑, 내 꿈이 현실이 됐어. 어쩌면 좋아?”


“..그렇게 좋아?”


“당연하지! 그동안 내가 놀고 먹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겠어.”


“..하지만 네가 읽은 책들은 모두 소설 아니었어?”


“소설은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구! 그런것도 몰랐어?”


“..응, 그래.”



왠지 더이상 대화를 이어나가기 힘들것 같다는 예감에 그냥 수긍해버린다.


뭐든 닥쳐야만 아는 법이 있는 거니까.


별일이야 있겠어. 그저 한 소녀의 망상일 뿐인걸.


내심 랑이는 어린 소녀의 꿈이 그대로 이어졌으면 하고 바랬다.






<변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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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헤어짐> 24.05.28 1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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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던전> 24.05.22 1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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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시험> 24.05.20 19 0 12쪽
10 <정글> 24.05.17 21 0 11쪽
9 <검은 숲> 24.05.16 18 0 12쪽
8 <한걸음> 24.05.15 19 0 13쪽
» <변화> 24.05.14 2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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