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숨찐 정령의 갓생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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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킴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5
최근연재일 :
2024.06.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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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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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정글>

DUMMY



랑이는 그를 잘 알고 있었다.


오랜 세월 세계수의 곁을 지켜온 수문장.


그가 랑이의 기운을 느끼고 세계수 곁을 떠나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어머니는?”



말없이 랑이를 내려다보던 그가 가까이 다가온다.


어찌할바를 모르던 쿨란족의 사내는 주춤 물러났다.


세계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허락받은 이는 쿨란족 안에서도 몇 되지 않는다.


그로서는 고릴라와 만나는걸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까이 다가온 고릴라는 조심스레 랑이의 냄새를 맡았다.


커다란 콧구멍을 벌렁거리던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랑이는 머리를 수그려오는 고릴라의 머리를 찬찬히 쓰다듬어주었다.



“..그래. 물을 필요도 없는 일이지.”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 땅에 들어온 후 점점 더 예민해지는 자신의 모든 감각이.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는 어머니의 향기가.


세계수는 확실히 봉인되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연결이 끊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봉인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나쁜 상황이지만 최악은 아니다.


봉인된 이유는 아마도 게임 시스템.


잘 해내야할 이유가 더 생겼다.




주신 ‘한'의 대신전을 눈앞에 두었다.


실리아 제국에서 바로 이 곳을 본따 무너졌던 왕궁을 재건했다고.


여유가 있었으면 이 곳도 찬찬히 둘러볼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사정상 그대로 지나가야 하는 마음이 무거웠다.



순백색이 신성력을 띄고 흐르고 있는 완벽한 구체의 건물.


오랜 시간 방치되었다고 들었는데, 언제 복구된건지 모르겠다.


건물도 부서져있고 잔해가 상당하다고 들었는데.



‘또 하나의 천족의 유적'



각성 후로 직접 가보지 못한 두 장소중 하나다.



“..마릴족인가.”


“그렇다. 회담이 성사되기 전까지 우리 부족의 거처에 머무르실 것이다.”


“다행이군.”


“..별일은 없었나?”


“..지금 말할 내용은 아닌 것 같군. 족장님께서 따로 듣는 것이 좋겠다.”



각성 후 오랜 시간 떠돌았다.


이들이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대를 이어 약속을 지켜오는 것이 대견하면서도 애틋하다.



당연하게도 이들은 랑이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지만 당분간 정체는 비밀로 하기로 했다.


어두운 갈색과 푸른 색사이에 새하얀 피부는 눈에 띌 수 밖에 없었지만.


쿨란족의 사내는 비밀을 지켜주기로 약속했다.



‘정령이 사람이 되다니.’



구경거리가 되는건 사양이다.



어쨌든 방금 들려온 대화로 추측해보건데, 역시나 이 곳도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



‘분명히 후에 이런건 중요한 정보가 된다.’



게임에서는 정보가 생명이다.


괜히 공략 비디오나 글이 생성되고 인기를 얻는 것이 아니다.


다음 패치가 오기 전,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는다.



검은 숲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정글이다.


마릴족의 모두가 숲에 그나마 적응이 되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상쾌한 공기와 높은 키의 나무들도 줄곧 보였던 곳에서 공기도 텁텁해지고 무엇보다 비정상적인 동물과 식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ㄹ..랑랑. 우리 맞게 가고 있는거야?”


“물론. 아직 근처에도 안갔어. 어깨 펴.”



물에 몸을 담그고 씩씩하게 살아났던 말괄량이 희가 기죽어 있는 모습을 보니 약올려주고 싶은 마음과 측은한 마음이 동시에 밀어 닥친다.



“..꽃?!”



앞서 가던 이들에게서 적지않은 소란이 일어났다.



“가까이 가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래플시아군.”


“이..이게 뭐야, 랑랑?”



그들이 보고 있던 것은 어른 키만한 크기의 꽃이었다.


푸르름이 가득한 정글에서 화려한 붉은 색으로 유혹하고 있다.


잎 하나가 어린애만한 크기에 꽃 안쪽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크기.


정글에서 당당히 상위 포식자 중 하나로 자리잡은 여왕님.



저도 모르게 홀린듯 가까이 가던 희를 쿨란 부족 사내가 잽싸게 낚아챈다.


직후 날아오는 꽃의 침.



“저 꽃의 침은 독입니다. 닿는 순간 몸이 마비되고 꽃에 잡아먹히게 되지요.


산채로 꽃에게 먹히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면 최대한 멀리 떨어지십시오.”


“..도대체 어떤 곳에 살고 있는거야, 쿨란 족은?”


“하하. 정글도 나름대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규우우웅.


이들이 멀어짐과 동시에 꽃이 이상한 소리를 낸다. 마치 놀아달라는 듯이.


푸른 빛의 피부가 더욱 더 푸르러진 채로 마릴족은 하나로 뭉쳤다.



“..나, 잘못 생각한걸까?”


“섣부른 판단은 하지마. 내 고향이라구.”


“맞네. 랑랑 고향이네.”


“인간의 몸으로 보는 이 곳은 완전히 다르긴 해.”


“랑랑도 무서워?”


“아니. 무서운건 아냐. 그저, 모든 것이 더 생생히 느껴질 뿐. 이 곳의 어떤 것도 나에게 해를 가할 순 없어.”



무슨 생각을 한건지 그 말을 들은 후 희는 바짝 붙어 손을 꼭 잡아왔다.



“걱정마. 내 보호 아래서 정글의 어떤 것도 너희에게 해를 가하지 못하니.”


“진짜로? 랑랑 최고!”



‘해를 가하지 못한다고 했지, 아무 일도 없을거라고는 안했는데.’


활기를 찾은 희의 모습이 보기 좋아 뒷말은 삼켰다.



“희. 낯선 것은 무서울수 있지만 멋진 것이기도 해. 그렇지 않아?”



랑이는 눈을 감고 정글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습기를 머금고 생명을 가득 품고 있는 공기.


빠르게 움직이는 작은 동물들의 움직임.


자세히 들어야 느껴지는 맹수들의 조용한 숨소리, 그들의 시선과 경계.



고요한 바다와 다른 활기가 존재했다.


한동안 그런 랑이를 보던 희 또한 눈을 감고 느껴본다.



“..랑랑. ㅂ···벌···.”



불행히도 그 모든 것을 느끼기 전에 희의 얼굴로 커다란 지네가 떨어졌다.



“살려줘!!”



온몸으로 진저리를 치며 포효하는 희를 보며 랑이가 싱긋 웃음지었다.


지네를 뗴어주려는 마릴족 전사의 얼굴이 제법 비장하다.



“이제 준비가 된 것 같네.”



이제 곧 쿨란족의 영역이다.


사방에서 느껴지는 시선을 보니 궁금한 이들이 미리 마중을 나온 모양이다.


기척을 내지 않고 지켜보는걸 보니 몰래 나왔거나 시험을 하는 중이겠지.


의식이나 시험이니 하는 것을 퍽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족이니.



‘기대되는걸.’


랑이의 눈이 흥미로 반짝 빛났다.


시험이라면 인정사정 봐주지 않을 쿨란족을 알고 있어서.



“..불렀는가.”



란드를 미리 소환해두었다.


나를 옆에 둔 희의 심정이 이랬을까, 그저 옆에 있는 것 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자꾸 불러내는게 싫으면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면 되잖아.”


“..싫다는 것이 아니라.”


“역시 좋은거지? 심심했을거잖아.”


“......”



알고보니 란드는 츤데레였다.


툴툴거리고 차갑게 굴지만 그의 속마음은 다르다는걸 이제는 안다.



“..느껴지지, 란드?”


“쿨란족 애송이들이군.”


“시험을 하려는것 같아. 회담이 눈앞인데 무슨 생각인지.”


“..어떻게 하고 싶으냐.”


“적당히 당해주는 척 해야지.”


“세계수의 땅에서 그 분신에게 시험이라니. 가당찮구나.”


“저들은 모르니까. 내 정체는 비밀로 할 생각이야.”


“보아하니 이전에 썼던 수법을 다시 쓰려는 것 같군.”


“납치 후 정화 의식이겠군.”



엘에게 들은 적이 있다.


원로와 대립하던 젊은이들이 멋대로 엘과 일행을 납치해서 정화의식을 했다고.


쿨란족의 사내를 흘끗 보았다.



“..모르는걸까?”


“모른다.”


“이거 아무래도 500년전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 같네.”



긴장이 된다기보다는 흥미로웠다.


갑작스런 위협도 이미 감지하고 있는 이상 결말이 정해진 스릴러를 보는 흥만 있을 뿐이다.



‘자, 와보라고! 나도 마침 시험할 상대가 필요했어!”



시작은 은밀했다.


쿨란족 사내 - 마릴족 전사 두명 - 희 - 랑이 - 마릴족 전사 세명.


이 순서로 직진중이던 일행은 뒤에서부터 하나씩 납치당하기 시작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는데 벌써 마릴 족 전사 세명이 뒤에서부터 차례로 사라졌다.


이 모든걸 인지하고 있는건 랑이 뿐이었다.


미리 란드에게 언질을 한 랑이는 그들이 이끄는대로 얌전히 납치당해주었다.


아마 그들도 해를 끼치고 싶은 마음은 없었던 모양인지 일단은 조용히 코를 막아 정신을 잃게 만들었다.



랑이는 기절한 척 하며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짓이야?”


“무슨 짓이긴. 관례대로 하는거지.”


“자레드님이 초청한 분들이시다. 외부인이 아니잖아!”


“아니, 누구든 부족에 들어오려면 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정화의식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알텐데.”


“..자레드님은 알고 계신가?”


“그분까지 아실 필요는 없지. 우린 따로 지시가 있기 전까지 우리가 할일을 할 뿐이야.”



역시나.


그들 중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와 전령이 서로 다투는 사이, 마릴족 전사 다섯명과 희, 랑이는 전부 머리 위로 무언가가 씌워졌다.


마치 지푸라기로 엮어 만든 큰 푸대자루 처럼 생겼다.


‘..숨이 막힐 염려는 없네.’



“..그런데 이 여자는 뭐지? 마릴족이 아닌데.”


“알 것 없다.”


“뭐, 그들과 일행이니 예외는 없다.”



태연한 척 말했어도 랑이의 전신에 내리꽂히는 시선들이 따가웠다.


건강한 구리빛 피부들만 주로 보아온 그들이 푸른색의 피부와 새하얀 피부를 본 적이 있겠는가.


일행을 짐짝처럼 들어서 이동하는 와중에도 멈칫 멈칫 낯설어 하는 반응이 다 느껴진다.



“..근데 이 여자 뭔가 성스러운 느낌이 나는 것 같지 않아?”


“맞아. 이렇게나 하얀 피부라니. 게다가 이 머리카락과 눈썹색도.. 꼭 자작나무 같지 않아?”


“..무슨소리야. 자작나무라면 ‘수'님을 말하는거야? 말이 돼?”


“..그렇지? 아니 그냥.. 죄를 짓는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들어서..”



개중에 쓸모있는 녀석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내 기운을 눈치챈 듯하나, 이미 늦었단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고 얼릉 옮겨.”



얼마쯤 이동했을까. 눈을 살짝 떠 보니 도착한 곳은 공터였다.


이쯤되면 이들의 한결같음에 감탄이 나온다.


500년이 지나서도 같은 패턴이라니.


그때의 빛기둥은 없겠지만,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타이밍인걸까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모두를 옮긴 후 그들은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큰 나무의 잎사귀를 사용해서 바람을 일으키고 그걸로 마취에서 깨우려는 것 같았다.


대충 마릴족 전사가 꿈틀거릴때쯤 자연스럽게 같이 일어났다.



“..응? 이게 뭐야?”



모두의 손이 묶여 있었기에 눈을 떴을때 보이는 것은 푸대자루 사이로 비추는 햇살이 전부다.


이런 일을 당한게 처음인 희는 패닉하기 시작했다.



“풀어줘! 누군지 잡히면 죽는다!”



..패닉이라기보다는 분노하고 있다.


이미 깨어나있던 마릴족 전사들은 조용히 제압된 끈을 풀기 시작했다.


조용히 지켜보던 쿨란족 이들이 드디어 입을 연다.



“전령이 그대들을 호위해왔다고 하나, 쿨란족이 머무르는 곳은 신성하다.


시험 없이 들어갈 수 없으니 그대들은 자격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무슨 시험? 그대들의 초청에 응하여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시험?! 이런게 쿨란족의 예의인가!”



생각보다 희가 당차게 옳은 말로 받아친다.



“우린 우리에게 주어진 책무를 따를 뿐이다. 자격을 증명한 후 마을로 찾아와라. 그럼.”



한마디를 던진 이들은 그렇게 홀연히 사라졌고.


정막이 흘러야할 공터엔 어느새 맹독을 가진 뱀, 그리고 비정상적으로 덩치를 키운 맹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정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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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재회 24.06.16 1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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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쉼표> 24.06.14 18 0 11쪽
29 <정체> 24.06.13 19 0 11쪽
28 <난관> 24.06.12 16 0 11쪽
27 <미지의 적> 24.06.11 18 0 11쪽
26 <자오> 24.06.10 19 0 11쪽
25 <더치> 24.06.07 20 0 11쪽
24 <게르짐> 24.06.06 17 0 12쪽
23 <감옥> 24.06.05 15 0 11쪽
22 <아담 커피숍> 24.06.04 18 0 11쪽
21 <랑이의 정체> 24.06.03 16 0 11쪽
20 <할리의 능력> 24.05.31 19 0 11쪽
19 <남작가 저택> 24.05.30 16 0 12쪽
18 <실마을의 보석상> 24.05.29 16 0 12쪽
17 <헤어짐> 24.05.28 19 0 11쪽
16 <여행의 시작> 24.05.27 17 0 12쪽
15 <동향> 24.05.24 19 0 11쪽
14 <던전 공략> 24.05.23 17 0 11쪽
13 <던전> 24.05.22 17 0 11쪽
12 <정화의식> 24.05.21 19 0 12쪽
11 <시험> 24.05.20 19 0 12쪽
» <정글> 24.05.17 22 0 11쪽
9 <검은 숲> 24.05.16 18 0 12쪽
8 <한걸음> 24.05.15 20 0 13쪽
7 <변화> 24.05.14 2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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