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관>

언뜻 듣기에는 괜찮은 계획 같았다.
자오를 믿을 수만 있다면.
아무도 그 말을 입밖에 내지 않았지만 각자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자오의 말은 아귀가 들어 맞았지만 확인된 사실은 없다.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수색조에 그를 포함할 수는 없었다.
등뒤에서 칼 맞을 수는 없으니.
관제탑 역할은 듣기는 좋지만 란드를 잘만 활용한다면 감시도 가능할 것이다.
다만 그만큼 랑이가 전력을 다하지 못하게 되니 여전히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랑이팀에 포함된 훈과 카아는 마릴족 출신으로 랑이에게 해를 끼칠 이들이 아니었다.
애쉬는 겉돌았다고는 해도 쿨란 족.
오래전 랑이는 그들의 성물이었지만, 500년 전 각성한 후로 엘과 동행했다.
세상을 마족으로부터 구하는데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엘의 부탁으로 엘의 동생 사니를 따라 마릴족으로 간 후로 마릴족에서는 수호신 같은 역할을 해왔다.
그들은 물의 신 에페를 섬기는 자들이니, 성스럽다기 보다는 친근한 느낌으로.
표면상으로는 그랬지만 랑이는 그저 그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 좋았다.
랑이는 아직 애쉬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이 애쉬에 대한 시험의 장이 될 것이다.
‘생각만 그럴싸하지, 사실 그럴 여유나 있을런지.’
만약을 위해 란드는 자오를 지켜보게 하고 리아는 소환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왠지 더 쓸쓸한 느낌이다.
“랑님, 이쪽이 맞는거죠?”
랑팀이 맡은 구역은 은신처를 기준으로 서쪽이다.
은신처가 북쪽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그 근처인 북서, 북동, 그리고 북쪽을 먼저 수색하기로 했다.
가장 가까운데다 호흡 맞추기엔 안성맞춤이다.
남쪽의 거미 둥지가 있는 곳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시작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일단은 이쪽 방향이 맞긴한데. 카아, 뭔가 흔적이 있어?”
“아직은 이렇다하게 눈에 띄는 점은 없습니다. 독거미라 그런지 모든 것이 부패하기 시작해서 생각보다 어려울 것 같네요.”
카아는 추적능력 보유자다.
뛰어난 시력을 가짐과 동시에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흔적을 가지고 추적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수색에 도움이 되리라 여겼는데.
“일단 한방향을 잡고 쭉 가서 돌아오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익숙하지 않은 지역에서 위험에 대비하며 수색까지 강행해야 한다.
오싹한 느낌을 주는 도시의 광경이 새삼스럽게 춥게 느껴진다.
사막화 되어 가는 지역이라서 사실상 온도가 올라가고 있을 텐데도.
다른 팀은 모두 기척을 줄이느라 속도가 나지 않겠지만 란드의 수호를 받은 랑이팀은 비교적 편하게 이동중이다.
힘을 아끼는 것이 좋겠지만 거미한테 들키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해가 떴어야 할 시간인데.”
“안그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안개가 끼는 것도 같고. 어쩐지 구름이 해를 가린 것 같네요.”
“..더 불길하게.”
"어쩐지 으스스한 느낌이야."
마치 이 도시에 그들 밖에 없는 것 같았다.
생존자가 있기를 바라지만 확률이 희박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폐허가 된 도시에 그들의 발걸음소리만 울리는 것은 꽤나 묘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저벅. 저벅. 저벅. ..스륵.
‘..스륵?’
“잠깐.”
날카로워진 신경 끝에 어떤 소리가 걸렸다.
“카아.”
“네, 들었습니다. 좌측 건물의 뒤 편입니다.”
란드나 리아를 랑이의 곁으로 소환할까 했지만 거미가 아니라면 최대한 능력은 아낄 예정이다.
일행을 믿는 수 밖에.
“......”
숨소리조차 자제하며 천천히 건물을 도는 순간 눈앞에 들어온 것은 조그마한 어린 아이였다.
여섯살쯤 됐을까 싶은 깡마른 여자아이는 다 찢어진 옷을 입고 지쳐보이는 얼굴을 하고 웅크려있었다.
랑이는 일행을 멈춰세우고 우선 지켜봤다.
‘건장한 성인 남성인 자오도 간신히 버텼는데 조그마한 어린아이가 혼자 멀쩡하다고?’
멀쩡하다고 말하기엔 행색이 더러워졌고 초라했지만 분명히 무언가 위화감이 든다.
“..랑이님?”
“위화감. 안느껴져?”
“뭐가요? 그냥 조그만 어린 아이 인데요. 물론 이런 곳에 혼자 있는게 이상하긴 합니다만.”
“그런 사실들 말고.”
“딱히 느껴지는건 없습니다.”
“..애쉬, 너도?”
“별로.”
감히 랑이님께 반말을 하냐고 짚어 주려던 훈의 어깨를 랑이가 살짝 친다.
어쨌든 저들이 보기에 랑이는 마릴족 공주님과 친한 실력있는 정령술사일 뿐이었으니.
‘..애쉬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는것도 나 뿐인 것 같군.’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관심이 없던 랑이가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인건 바늘마을의 게르짐 사건 이후.
정령으로 오래 지난 탓에 지나치게 무심했던 스스로를 돌아본 후다.
무심한 것과는 별개로 타고난 감각은 그대로였는데 애쉬에게서 불쾌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 것이 게르짐과 싸운 후다.
어린아이의 느낌은 애쉬와 다르다.
애쉬가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무언가를 보는 느낌이라면 저 아이가 주는 느낌은 위화감.
눈앞에 보이는 모습과 본질이 다른 것 같은.
지나치게 창백한 피부에 푸르스름한 핏줄마저 드러나 있다.
“...뭔가 있어.”
그들이 내는 소리를 들었을까, 어린아이가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
“헉.”
아이의 눈동자에는 흰자가 없다.
다른 어떤 색도 허락하지 않는 듯한 새카만 눈동자를 하고있는 아이는 공포감마저 들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이도시, 저주 받은 건가?”
“저주가 아닌 축복이죠.”
아이는 어딘가 쉰 목소리로 답을 한다.
혼잣말을 했던 훈은 거의 펄쩍 뛰는 수준으로 놀라 튕겨 올랐다.
“..조심해. 란드가 걸어준게얼마나 유지될지, 효력이 어느정도 인지 모르니 조심하는게 좋아.”
소녀를 등뒤에 두고 거미와 싸우고 싶지 않다. 절대로.
“..이름이 뭐지?”
“이름. ..잊어버렸어요. 아니 나에게 이름이 있긴 했던가?”
의외로 대화가 통하는 아이는 혼란스러워 보이기 까지 한다.
“혼자야?”
“네. 전 늘 혼자에요. 아니, 이젠 혼자가 아니지 참.”
“..혼자가 아니면 누가 또 있지?”
“친구가 됐어요. 모두와.”
“친구라고? 어디있는데?”
“자고 있어요.”
“어디에서?”
“..지하에서. 모든 곳에서.”
섬뜩한 느낌이 점점 강해진다.
이 아이, 살아있기는 한건가?
“네 친구들. 보여줄수 있어?”
“음.. 보여줄 수는 있는데. 기다려야 해요.”
“어째서?”
“그야 당연히 깨우고 싶지 않으니까요.”
“조용히 자는 것만 확인하고 싶은데.”
“안돼요.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아요.”
“깨어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니?”
“하나 있잖아요.”
보일리도 없는 아이의 동공이 급격히 수축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하나 깨어있다니. 설마 자오가 있다는걸 알고 있었나.
“못만났어요? 이상하다. 일부러 살려뒀는데.”
“..살려둬?”
“산 사람은 타리에게로. 죽은 사람은 나에게로.”
처음엔 동정의 눈빛을 하던 모두가 대화가 이어지는 내내 경계 태세로 바뀌고 있던 참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얼굴로 결국은 진실을 뱉어낸다.
“역시 자오는 미끼였군.”
“..이 아이가 죽은 사람을 사라지게 한 주범이라구요? 그 많은 시체들을 이 조그마한 아이가 어떻게 했다는 겁니까?”
“..이 아이를 발견한건 행운인가, 불행인가.”
우리가 잠시 대화를 하는 사이 가만히 지켜보던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 한다.
“어떻게 산 사람이 여기까지 온거에요? 타리가 가만히 안있었을텐데.”
“죽은사람을 너에게 주는 이유가 뭐지?”
“그거야. 죽어야만 착해지니까요. 산 사람들은 모두 나를 괴롭혀. 언니도 그럴거에요?”
“글쎄. 왜 널 괴롭히지?”
“언니도 그럴거지? 날 괴롭힐거지? 저리 가라고 소리 지르고 배고프다고 해도 때리고. 날 버릴거지?”
아이가 변하고 있다.
아무래도 소녀는 거리를 배회하던 부랑아였던 것 같다.
도시에서 그런 아이들이 한 둘은 아니었을 테고 힘도 없는 소녀가 할 수 있는건 많지 않았을테지.
문제는 그래서 아이가 어떤 존재가 되었는가.
“저 소녀, 신에 반하는 존재입니다.”
“그걸 이제야 알았어?”
“죄송합니다. 아직도 눈앞의 모습을 더 믿게 되는 군요.”
반응 없이 이 모든걸 지켜보는 애쉬도 마음에 걸리지만 아이는 이미 발을 쿵쿵 거리고 있다.
쿵. 쿵. 쿵.
거미를 불러들이려는 거다.
“무슨 일인가.”
이변을 느꼈는지 자오를 감시하던 란드가 한걸음에 달려 왔지만.
늦었다.
아이의 피부가 점점 창백해지고 있다.
마치 시체와 같이.
“..거미와 공생하는 개구리가 저 아이였네.”
“공생하다뇨?”
“거미는 살아있는 것만 먹는다. 저 아이가 시신으로 뭘 하는지가 관건이네.”
“..네크로맨서.”
“애쉬? 네가 어떻게 알지?”
“내 능력은 마인드 컨트롤. 때때로 다른이의 마음이 읽히기도 해.”
“그거랑 네크로맨서인걸 안거랑 무슨 상관이지?”
“그거야 저 아이의 세계관이 뚜렷하니까. 죽은자는 친구이자 부하. 산자는 적.”
“......”
거미와 네크로맨서라니. 예상보다 막강한데.
랑이는 저 아이가 흥분할때부터 느끼고 있었다.
마치 저 아이와 연결되어 있다는 듯이 다가오고 있는 타란투라.
분명히 이 근처 어딘가에 땅굴에서 나오는 출구가 있다.
“모두 대비해. 저 아이가 거미를 불렀어.”
‘리아, 출동이야.’
수색대가 공격대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힘을 아낄 여유는 없다.
다행히 계획을 잘 세운 덕분에 다른 일행도 근처에 있을 것이다.
미리 얘기해둔 대로 리아를 소환하자마자 물줄기를 쏘아 올려 무지개를 만들었다.
“바로 이 아래다.”
란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거미가 솟구쳐 올랐다.
당연히 땅굴의 출구로 나올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한번의 공격으로 모두가 사방으로 날아가버렸다.
놀라긴 했으나 이정도는 충분히 대응 가능한 이들이라 별 피해는 없었지만 흩어져서 힘을 모으기 힘들어진건 문제가 됐다.
“골렘을.”
이젠 마음이 어느정도 통하는 사이가 되어 란드와 리아는 간단한 단어로도 골렘을 두개 만들어 경계한다.
이제껏 상대했던 적들과 다르다는걸 안다.
제대로 된 전투를 겪어본 적도 없는 랑이는 효율적으로 상대해야 한다는 자각만 있다.
문제는 과연 힘을 아껴 이길수 있는 상대일까.
할리가 출발한지 아직 하루. 그가 약속을 지킨다고 해도 너무 빨리 조우해버렸다.
“애쉬, 마인드 컨트롤 시도해보고. 훈, 거미의 배를 노려 공격을. 카아는 보조한다.”
간략하게 전략을 설명하고 거미의 움직임을 살핀다.
거미는 공중으로 솟구쳐서 잠시 사방을 보는듯 하더니 먹이를 고른 듯 했다.
작고 여려 보이는 랑이가 그 타겟.
랑이와 가까이에 애쉬가 있었고, 훈과 카아가 멀리 자리해 있다.
골렘 한마리를 그들에게 보내고 한마리로 거미를 상대하기 시작한다.
알수 없는 표정으로 랑이와 거미를 번갈아 응시하던 애쉬가 랑이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랑이는 네크로맨서인 소녀, 거미 그리고 애쉬를 동시에 상대할수가 없다.
<난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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