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숨찐 정령의 갓생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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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킴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5
최근연재일 :
2024.06.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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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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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정체>

DUMMY




“저 거미는 마인드 컨트롤이 되지 않아.”


“어째서?”


“자식을 지키려는 어미거든.”


“..아.”



최악의 상황이다. 새끼를 낳고 지키려는 어미 거미라니.


보금자리를 위협당한 어미는 극도로 분노한 상태이리라.


흘깃 살핀 아이는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다.



정령 둘을 소환만 한다면 반나절.


둘을 꺼내 힘을 쓴다면 얼마나 짧아질지 알수 없다.


랑이는 짧게 심호흡을 했다.



1분이 하루가 된 것 같다.


초 단위의 시간이 영원인 것 처럼 쪼개져 압박한다.


번쩍 들린 거미의 다리가 랑이의 온 몸을 찢어 발길 것 처럼 쇄도한다.


다리끝에 뾰족한 창살모양의 갈귀가 달려있다.


갈귀의 끝이 랑이의 몸에 닿기 직전 란드가 방어막을 세운다.


방패모양의 방어막이 랑이와 갈귀 사이에 생겨나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막아낸다.


끼이잉-.


그 소리가 끝을 맺기도 전에 방어막을 두들기기 시작한다.


두둥둥둥둥둥!!!!


모든 것을 생생하게 인지하여 오히려 시간이 느려진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거미의 배를 향해 날아오는 얼음창이 있다.


얼음을 써서 공격하는 훈이다.


크게 뜨인 카아의 눈동자가 보인다.


변화 없는 애쉬의 눈동자가 이질적으로 보인다.



거미가 뒷 다리를 훈의 몸을 향해 날릴때 카아가 그것을 미리 감지하고 훈을 밀쳐낸다.


다리에 대신 맞은 카아가 날아가며 거미의 뒷다리에 칼집을 내고야 만다.


캬아아아아아악!!



뒷 목을 서늘하게 하는 거미의 괴성이 들리고 녹색 피가 튀는 것이 보인다.


문득 거미의 눈동자가 붉어졌다는 느낌이 든다.


중얼거림을 끝낸 소녀의 눈동자에서도 붉은 기운이 느껴진다.


땅에 진동이 울려퍼지기 시작하고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았다.



“부정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리아, 거미의 몸에서 수분을 없애줘.”


“가능은 하지만 그러면 역소환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는?”


“해보겠습니다만 유지시간이 길지 않을 겁니다.”


“해줘.”



시체가 일어나고 있다.


랑이의 감각에는 확실히 느껴졌다.


없어졌다던 시체가 소녀의 손짓을 따라 일으켜 세워지고 있다.


랑이가 소환했던 골렘이 거미로부터 훈과 카아를 보호하고 있고, 랑이는 나머지 골렘을 불러 올라탄다.


애쉬를 두고갈 수 없어 골렘의 양 어깨에 올라탔다.



“..벗어나야 해. 네크로맨서까지 상대하기는 무리야.”



훈과 카아도 그 의미를 이해했는지 골렘을 타고 오른다.


카아의 움직임을 보니 다친 것 같다.


두 골렘이 은신처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비록 자오가 그들을 속였을지라도 그 장소 외에 떠오르는 곳이 없다.



수도 없이 많은 시체들이 일어서기 시작한다.


그들이 있던 땅 아래에 그토록 많은 시체들이 잠들어 있었다니.


빼곡한 그들을 보는 모두의 눈에 절망이 차오른다.



거미도 한쪽 다리를 다쳤을 뿐 아직 멀쩡하다.


할수 없이 랑이는 재차 공격을 시도한다.



“지진을. 땅굴을 흔들어. 폭우도 부탁해.”



염려어린 둘의 시선을 받으며 랑이는 담담히 뜻을 전한다.


훈이 만들어내는 얼음 창살들이 거미의 배를 노리고 날아간다.


카아가 다친 것을 본 그의 심정이 느껴지듯 날카로운 공격이 이어진다.


시체들이 몸을 날려 그것을 막아서 거미의 배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란드의 도움으로 두 골렘을 제외한 땅이 울렁이기 시작했다.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엄청난 양의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 후 거미가 꿈틀거린다.


아무래도 폭우를 내리며 거미를 제지하던 힘이 약해진 모양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시체들이 폭우에 쓸려간다.


꿈틀거리는 거미는 란드에 의해 땅에 다리가 단단히 잡혀있다.



‘네크로맨서의 힘이 다하는 것이 먼저일까, 나의 힘이 다하는 것이 먼저일까.’



이대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애쉬의 표정없는 얼굴이 신경쓰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랑이가 잠시 딴 생각을 한 사이 시체들이 한군데 뭉쳐지기 시작한다.



“.....하아.”



시체들이 스스로 날아가 뭉쳐 공이 되어가는 광경은 그 뒷일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저것이 굴러오면?



던져지나? 어떻게 하려고? 어디까지 하려고?



수많은 의문을 뒤로 하고 건물만큼 크게 뭉쳐진 시체뭉치는 그대로 폭발했다.


히이이이이이이이-.



마치 웃는 것도 같고 우는 것도 같은 곡성을 낸 공이 폭발한 여파는 상당했다.


골렘 두마리가 그대로 부서져내렸고 때를 맞춰 날아오른 거미가 실을 뽑아 쏘아내기 시작했다.


얼마나 오랫동안을 거미줄을 막고 다시 일으킨 골렘으로 시체를 파괴하고 있었을까.


이미 온 몸이 비와 흙으로 더러워졌고, 젖은 옷에 몸이 무거워져 피로도가 극에 달하고 있다.


정신이 몽롱해져가는 순간 주변의 흙과 물이 뭉쳐 애쉬와 랑이를 감싸 작은 공간을 만들고 단단하게 굳어진다.



‘..부디 안전하길.’



리아의 걱정어린 목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란드? 리아?”



힘없이 정령들을 부르던 랑이의 입에서 울컥 피가 뿜어나온다.


작은 공간에 피냄새가 가득찼다.



“..괜찮아?”


“애쉬?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네.”



푸식-.


작은 소리가 들리더니 작은 빛이 생겼다.



“오래가진 않을거야.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빛벌레라.”


“빛벌레?”


“정글에 서식하는 벌레인데, 스스로 빛을 내.”


“..그런게 있구나.”


“괜찮겠어?”


“뭐가?”


“나와 둘이 있어도.”


“......”


“날 의심하는 걸 알아. 감이 꽤 좋다고 생각했지.”



이미 전력을 다한 상태에서 애쉬까지 염두에 둘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이 지경이다.


랑이는 그나마 대화를 하고자 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든거야? 게르짐한테서.”


“물든건 아니고. 그럴싸한 말을 해서. 귀를 기울이게 됐네.”


“그럴싸한 말?”


“..가치있게 살수 있게 해준다잖아. 늘 버림받고 없는 사람 취급 당하던 나를. 믿어준다잖아.”


“그걸 믿어? 게르짐을 보고도?”


“보여주더라고.”


“..무엇을?”


“그분의 실체를. 그리고 나의 정체를.”


“..정체?”



애쉬의 얼굴에 공허함이 스쳐지나간다.


다행히 그는 완전히 물든건 아닌 듯 했다.


그들의 소리에 혹한 것 은 분명하지만.



“어릴적 난 버림받았어. 엄마에게.”



이어진 이야기 속 애쉬의 과거는 기구했다.


애쉬가 기억하는 과거는 쿨란족 마을이 아니었다.


엄마와 살던 오두막. 작고 때로 배가 고팠지만 행복했다.


가끔 찾아왔던 성인 남자.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고 가끔 애쉬를 안아주기도 했다.


어느날 기사들이 엄마를 찾아왔고 엄마는 한밤중에 애쉬와 함께 길을 떠났다.


쿨란족을 찾아온 엄마는 애쉬를 남겨두고 떠난다.


남겨진 애쉬를 두고 어른들이 하던 얘기.


엄마가 외간 남자를 끌고 온게 걸려 추방당했었다고.



“..분명 기다리라고 했는데. 그 남자가 아빠였던 걸까.


엄마는 왜 날 다시 쿨란족에 두고 간걸까. 왜 버린걸까.


그 남자가 아빠였다면 왜 우릴 보호해주지 않은거지.”


“그래서 네 정체가 뭔데?”


“난에게 물어봤지. 많은걸 알고 있길래. 기사들이 입고 있는 문양을 기억했거든.


그들은 필 왕국 기사들이었어.


그때만 해도 필 왕국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어.


하지만 게르짐이 모시는 그 자가 알려줬지.


난 필왕국의 사생아 왕자라고.”


“그래서 도움을 청하러 가는걸 꺼렸구나.”


“날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고. 만약 가더라도 그런 식의 첫만남은 원하지 않았어.”


“그래서 무슨 생각이야?”



깊은 생각에 잠긴듯한 그의 얼굴이 무표정하다.



“..어떻게 할까.”


“아직도 생각중인가?”



순간적으로 그가 내뿜는 기세가 폭발했다.



“생각보다는 결정이란 말이 맞겠지. 힘은 이미 가졌어.”


“..그렇구나. 네가 가치있어지는 일이라는게 정확히 뭐지?”


“시간을 끌 셈인가?”


“아니, 정말 궁금해져서. 인간이 가치있어진다는 의미가 뭔지.”


“새로운 세상의 주역이 될거라더군.”


“..주역이라. 새로운 세상. 그런 식으로 현혹중이구나.”


“틀리다고 생각하나?”


“이미 늦었다고 생각한다면 틀렸어. 내가 도와줄 수 있다.”


“..무슨 뜻이지?”



처음으로 애쉬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대화를 하는 모습에서 내심 짐작했다.


어떤 이유로든 흔들려 힘을 받아들였지만 망설인거다.


몇마디 말로 그의 인생이 어땠는가 판단할수는 없다.


하지만 버림을 받고 배척을 받으면서도 애쉬는 부족을 떠나지 않았다.


할리를 보는 눈에서는 애정을 갈구하는 길고양이 같은 모습도 보였고.


애초에 세상을 멸망시킨다던가 복수한다던가 할 마음은 없었던거다.



“모두는 각자 인생의 주역이야. 그건 남이 정해주는게 아니지.”


“......”


“할리와 함께 하고 싶었는지 세상밖으로 나오고 싶었는지 네 목적은 모르겠어.


하지만 분명히 그건 네 의지였어.


남의 손을 빌려 이루는건 좀 부끄럽지 않겠어?”



잠시 고민하는 듯한 애쉬의 눈동자가 언뜻 불투명해졌다 투명해지기를 반복한다.


랑이는 고민에 빠진 애쉬를 잠시 내버려두었다.



‘급한 불은 껐어.’



훈과 카아 또한 이런 식으로 보호했다고 친다면, 나머지 일행들은 어떻게 됐을까.


무지개를 만들지 않았어도 이정도의 난리가 났으면 이미 이변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들이 무모하게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랑이는 잠시 쉬었다.



뺨을 토닥이는 느낌이 든다.


잠시 눈을 감으려고 했는데 깜빡 잠이 든 모양이다.


머리로는 깨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서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희.”


“미안하지만 희는 여기 없다.”



애쉬의 목소리에 순식간에 현실로 끌어당겨졌다.



“미안. 잠시 졸았나봐. 얼마나 지났지?”


“..아마도 지금 저녁쯤 되었을 것 같군.”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잤다고..?”


“악몽을 꾸는 것 같길래 깨웠다.”


“밖에 어떤 상황인지 알아?”


“모른다. 이 상태가 안전하지 않을까 싶어 그대로 있었다.”


“..걱정되지는 않고?”


“내가 걱정하는 유일한 사람은 이 곳에 없어서.”



할리를 말하는 것이겠지.


여행을 같이 하는 동료들이 걱정되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이 잠든 사이에 해를 끼치지 않아줘서 고마웠다.


이 소년도 랑이 처럼 사람 관계가 어려운 것이다.


소년이 어떤 결론을 내리든 당장의 위험은 아닌 것 같다.


그거면 되었다.



잠을 자고 난 후 많이 회복되었다.


조용히 소환된 란드는 어두운 얼굴로 여전히 연초를 입에 물고 있다.


“괜찮은가.”


“걱정해준거야? 그냥 좀 무리했나봐.”


“..역소환 되면 소환자에게 무리가 간다. 앞으로는 조심해라.”


“그럴게. ..밖은?”


“거미와 시체는 주변에 없다.”


“은신처에는?”


“일행이 모여있다.”


“..상태는?”


“치료중인 것 같군. 울고 있는 이도 있고.”



자오를 더이상 믿기 힘들어졌다.


본의건 타의건 그동안 수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만약 훈과 카아도 이런 상태로 회복중이라면 나머지 일행이 위험하다.



“이제 가자. 애쉬 너도.”


“..믿는건가. 나를.”


“하나만 물을게. 마인드 컨트롤로 우리 일행을 조종 한 적 있어?”


“아니.”


“그럼 됐어.”


“시도는 했다.”


“누구에게? 언제?”


“너를.”




<정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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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무대에 오르다> 24.06.22 16 0 11쪽
34 <전직> 24.06.20 17 0 11쪽
33 <어쩌면 핑크빛> 24.06.18 15 0 11쪽
32 재회 24.06.16 18 0 12쪽
31 필 왕국 24.06.15 18 0 12쪽
30 <쉼표> 24.06.14 18 0 11쪽
» <정체> 24.06.13 19 0 11쪽
28 <난관> 24.06.12 16 0 11쪽
27 <미지의 적> 24.06.11 18 0 11쪽
26 <자오> 24.06.10 18 0 11쪽
25 <더치> 24.06.07 20 0 11쪽
24 <게르짐> 24.06.06 17 0 12쪽
23 <감옥> 24.06.05 15 0 11쪽
22 <아담 커피숍> 24.06.04 18 0 11쪽
21 <랑이의 정체> 24.06.03 15 0 11쪽
20 <할리의 능력> 24.05.31 19 0 11쪽
19 <남작가 저택> 24.05.30 16 0 12쪽
18 <실마을의 보석상> 24.05.29 16 0 12쪽
17 <헤어짐> 24.05.28 19 0 11쪽
16 <여행의 시작> 24.05.27 17 0 12쪽
15 <동향> 24.05.24 18 0 11쪽
14 <던전 공략> 24.05.23 17 0 11쪽
13 <던전> 24.05.22 16 0 11쪽
12 <정화의식> 24.05.21 19 0 12쪽
11 <시험> 24.05.20 19 0 12쪽
10 <정글> 24.05.17 21 0 11쪽
9 <검은 숲> 24.05.16 18 0 12쪽
8 <한걸음> 24.05.15 19 0 13쪽
7 <변화> 24.05.14 2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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