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숨찐 정령의 갓생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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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킴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5
최근연재일 :
2024.06.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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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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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왕국

DUMMY


<필 왕국>



살았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이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다시 돌이켜봐도 자신들은 죽을 뻔했다.


실수할 마음은 없었다.


그저 드바의 시체를 보고 이성을 잃었을 뿐.



“..드바가 그렇게 되었다고.”



늦게 소식을 전해들은 할리는 그렇게 말을 씹어내듯 뱉어냈다.


3일의 시간을 하루나 단축시킨 그는 지난 몇일간 한숨도 못잤더랬다.


모든 패를 다 드러냈다며 허탈하게 웃는 그는 그야말로 대단한 지원군을 이끌고 나타났다.


완벽한 타이밍에.



“저희는 그저 피해나 더 주고자 했습니다.


무모하게 덤빌 생각은 애초에 없었죠. 부상자도 있었으니까.


다만, 드바의 시체를.. 그렇게.


..그렇게 걸어둔 것을 보고.


참을수가 없었습니다.”


“......”



충분한 휴식 후에 조심스럽게 주변만 탐색하는걸로 했었다.


랑이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모두를 설득시키며 직접 전투에 나서 그걸 증명하려고 했다.


그들이 드바의 시체로 장난질만 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쿨란족의 전사들이 이성을 잃고 덤비지만 않았다면.



‘..아니. 만일이라는 건 없어. 실전 경험이 없어 생긴 실책이다.’



타란투라와 네크로맨서가 드바의 시체를 미끼로 썼다.


걸려든 전사들은 모두 거미줄에 꽁꽁 쌓여졌다.


인질이 생긴 이상 나머지 일행들은 무모하게 덤빌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그대로 떠날 수도 없었다.


노련한 지휘관이 있었다면 모를까 이들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미끼를 사용할줄 아는 것에 더해, 인질에 분리까지.


정보길드의 정보에 허점이 많군요. 반성해야겠습니다.”



긴 흑발에 금색 눈동자를 한 늘씬한 미녀.


할리가 데려온 지원군의 핵심인사다.


한순간에 모두가 위험에 빠지고 랑이가 그대로 거미에게 잡혀 땅굴로 들어갈때 마법으로 이들을 구했다.


그대로 두었다고 랑이가 죽는 일은 없었겠지만 일행의 피해는 커졌을 것이 분명했다.



“신세를 졌습니다. 구해줘서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아가씨.”



나름 진지하게 건낸 희의 감사 인사에 마치 건달처럼 내뱉는데 그 모습이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린다.


한쪽 눈을 찡긋하며 웃는 그녀의 모습에 이제껏 근엄 진지했던 전사들의 눈이 순식간에 풀린다.



“..홀리지 마라.”


“어머, 홀리다니? 난 그저 이 아가씨들이 너무 마음에 들 뿐이라고.”


“건드릴 생각 하지 마라.”


“어머머머! 건드리면? 그러면? 응?”



어쩐지 할리의 대응이 그녀를 더 불타오르게 하는 것 같다.


콧소리까지 내며 말끝을 올리는 그녀의 눈동자가 생기로 반짝거린다.


불행히도 거미의 독에 노출된 랑이는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왜 쿨란족의 전사들마저 저 아가씨를 걱정하는거야? 그렇게 애타는 눈으로들?”


“같이 한 시간이 얼만데. 동료애라고 한다. 모르면 적어둬.”



오랜만에 보는 할리의 빈정대는 모습도 희의 눈엔 그저 정겨워 보인다.


하루가 일년 같은 시간을 보냈기에.


랑이의 정체를 아는 마릴족은 정령이 정신을 잃는다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몰라 우왕좌왕 중이었다.



“훈. 랑님에게 신성력을 사용해보았나.”


“..희님이 쓰시는걸 봤는데, 나 따위가 감히 써봐야 효과가 있겠나 싶은데.”


“그래도 써봐야지. 그냥 손놓고 있을텐가?”


“그렇게 잘 알면 네가 해보지 그래?”


“신성력이라는거, 한번 써봐요.”



대놓고 엿듣고 있던 브린이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있다.


그녀와 함께 온 정보길드원들은 전부 검은 색으로 온몸을 감쌌는데 이동이 편하게 발목과 손목에 끈으로 조여있는 특이한 복장이다.


그들은 전부 입을 가리는 가리개를 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빛만으로도 심경이 그대로 전해졌다.



“..구해준건 고맙지만 그렇다고 멋대로 굴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오.”


“어머. 다른 뜻은 없었어요. 그냥 궁금해서.”


“..무엇이 궁금하다는건지?”


“마릴족이잖아요. 그 신비의 종족 마릴족을 만난 것도 신기한데 신성력이라뇨.


전 지금 심장이 지금 쿵쿵 뛴다구요. 설레어서.”



두손으로 턱을 괸 후 눈을 길게 늘어 트리며 웃는 브린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사킨은 크게 울리기 시작하는 심장소리가 들릴까 싶어 더욱 표정을 굳힌다.



“은빛과 하얀색이라. 할리와 남매처럼 닮았네.”


“남매라뇨? 전혀 닮지 않았는데요.”



랑이가 쓰러진 후 한껏 예민해져있는 희는 어른스러웠던 모습을 벗어던지고 사나운 고양이가 되어버렸다.



“..야생 고양이라니. 이 조합, 재밌는데.”


“고양이? 지금 나보고 고양이라고 했어요?”



도대체 이 말의 어디가 그녀를 자극했는지 희는 사납게 맞받아치면서도 눈에 눈물이 고인다.


순진한 소녀를 울린 악당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브린은 그만 마음이 약해졌다.



“어여뻐서 그래요, 울지는 말고.”


“..울다뇨? 참나, 무슨 말을 하는건지.”



살짝 붉어진 콧등을 감추지도 못한채 고개를 돌려버린다.



“삼각관계구나. 우리 할리, 안됐네.”


“..우.리.할.리? 누가 그렇게 멋대로 부르라고 했지?”


“왜그래? 그런 말 못할 사이도 아니고.”



둘의 대화에 모두의 시선이 꽂힌다.


가까운 사이인건 확실한데 묘하게 둘의 사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친구인가, 연인인가.


팽했던 희마저 살짝 고개를 돌려 기웃거린다.



“..하아.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무슨 짓을 하기는. 나를 평생 은인으로 모셔야 하는 짓을 한거지.”


“..됐고. 회담 날짜나 다른 정보는 없나?”


“알잖아. 이런 상황에서도 서로 잇속 싸움인거. 우리야 정보 교환이 빠르지만 서로 의견 조율에만 한참 시간을 들이겠지.”


“결국 당해봐야 엉덩이를 뗄 거라는 말이군.”


“빙고-.”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세우고 한쪽눈을 찡긋하는 브린이 갑작스레 얼굴을 굳힌다.



“그런데. 너.”



상체를 잔뜩 앞으로 내민채.



“냄새도 나고. 씻고 좀 자라. 안돼겠네.”


“......”



강행군을 하느라 눈이 저절로 감길 정도로 피곤한건 사실이었다.


아직 완전히 안전하다고 할 순 없지만 필란 왕국이 코앞이니 잠시 쉬어도 될 듯 하다.



“그럼 믿을게. 잠시만 쉬고 바로 출발이다.”


“네에, 보쓰!”



할리의 대답만 기다렸다는 듯 브린은 분주하게 야영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잔뜩 지쳐있는 일행은 그대로 놔둔채 정보길드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자리를 마련해주었고 보초까지 서준다.



“이쯤 지켜보셨으면 제가 할리한테 해를 가할 인물은 아니란걸 아시겠죠.


안심하고 잠시 쉬시죠. 짐짝 되고 싶지 않으시면.”



내심 경계하고 있던 이들은 그 말을 끝으로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오랜만의 평화다.



***



“...지점장? ..뭐?”



희는 여행 중 가장 충격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저 늘씬한 마녀(마법을 쓰는 미녀)가 아담 커피숍의 실제 총수라고?


믿어지지 않았고 믿고 싶지 않았다.


내심 소설속에서 보아온 여자 주인공은 자신일거라고 생각하며 꿈을 키워왔는데.


오면서 경험한 험한 현실에 따뜻한 세상에 대한 기대가 산산조각난 건 그렇다고 쳐도.


온몸으로 주인공의 오오라를 뿜어내고 있는 저 여자가 심지어 다방면에 능력이 있다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다가진 여자라고? 그런 사람이 있다고?’



본인이 들으면 동의하지 못하는 말이겠지만, 희에게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사실이다.


세상의 중심은 자신이라고 외치며 살아온건 아니지만 브린은 묘하게 여자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런 감정을 느껴보지 못한 희는 면역력이 전혀 없어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갈피도 잡지 못했다.


키에서 부터 어마어마한 차이가 나지 않은가.



“..불공평해.”



희는 눈에 확 뛸 정도로 화려한 색을 가진 신비로워보이는 미소녀였지만.


브린은 강렬한 색을 가져 단숨에 모두의 시선을 앗아간다.


여자치고 큰 키도 그녀가 풍기는 카리스마에 지독하게 잘 어울렸다.


본인도 잘 알고 그걸 십분 활용하는 것 같아 보였고.



“본점은 실리아 제국에 있지만, 필 왕국 지점도 꽤 멋있답니다. 한번 가보실래요?”



한쪽 눈썹을 늘어뜨린 브린이 희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보아하니 왠만한 사람들에게 가차없이 반말을 하는 당찬 성격같은데 할리의 일행에게는 꼬박꼬박 존대말을 써주고 있다.


브린으로서는 자신을 밀어내는 희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솜사탕같은 아가씨라니, 너무하잖아.’



너무 귀여워서 확 안아들고 부비부비 하고 싶은데, 그러면 화내고 발톱을 세울 것만 같아서.


어쩌다 미움을 받았는지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다.


나름대로 강렬한 첫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위험에서 구해준 용사가 아닌가!


그러나. 쉽게 공략되면 그건 또 재미가 없긴 하지.


브린의 눈동자가 빛을 품고 반짝이기 시작한다.



할리가 대표로 더치도시의 상황을 알리러 간 후 브린이 이들을 보호중이다.


보호라는 말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이들은 여러모로 눈에 띄었고, 도시에서 그런건 위험해지는 지름길이었으니.



정보길드와 관련이 있음을 드러낸 할리는 자연스럽게 나서서 일행을 이끌었다.


희가 볼때 다시 재회한 할리는 묘하게 불안정해보였다.


이따금 브린만 재미있어 죽겠다는 시선을 그에게 보냈지만 그조차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뭔가에 집중한것 같기도 하고 외면하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한.



희가 그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 할때 랑에게서 자그마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어?! 랑? 랑랑?”



이들이 자리잡은 곳은 필 왕국에서 가장 등급이 높은 여관.


이름은 ‘기사들의 쉼터’.


과거 기사들의 왕국으로 유명했던 필란 왕국을 이어받은 이들이 좋아할만하다.


이름이 낯간지럽기는 했지만 시설은 훌륭했다.



돈이 많아도 온갖 사건 사고를 만나 제대로 누리지 못한 이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호사를 누리는 중이었다.


다른이들이 따뜻한 물을 콸콸 틀어 목욕을 즐기는 사이 랑이의 옆은 희와 브린이 지켰다.


좀처럼 랑이가 깨어나지 않아 마음을 졸이던 희의 얼굴이 환해진다.


손가락이 꿈틀한 것이다.



희의 눈치를 보며 열심히 꼬셔보던 브린도 덩달아 집중했다.


하얀 머리카락에 길게 늘어진 하얀 눈썹, 새하얀 피부를 가진 소녀는 마치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백지같았다.


너무 깨끗하고 순수해보여 감히 바라봐서도 안될 것 같은 고결함마저 느껴진다.


천천히 녹색 눈동자가 드러나는걸 브린은 숨도 쉬지 못하고 지켜봤다.


마침내 눈을 뜬 랑이는 한동안 가만히 누워 눈만 깜빡거렸다.



“..랑? 괜찮아?”


“...응. 그런 것 같아. 여긴 어디야?”



정신을 잃었던 것 치고는 멍해 보이긴 하지만 명료하게 대답한다.



“여긴 필 왕국이야. 어떻게 된건지 기억이 나?”


“......”



잠시 생각을 가다듬는 것 같은 랑이는 마침내 몸을 일으켜 앉는다.


왠지 위태로워보여 브린은 인사도 생략한채 쿠션을 등뒤에 대어주었다.



‘존재감으로 밀리는건 처음인데.’



상황에 맞지 않는 생각이었으나 가장 처음 떠오른 생각이다.


본인은 의식하지 않고 있는 것 같지만.


몸짓, 표정, 숨결. 그 모든 것에 시선이 끌린다.


마치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를 대하는 듯.


그리고. 브린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그려지는 찰나.


방문이 벌컥 열렸다.



“......”



일어나 앉은 랑이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건 할리였다.


급히 뛰어온듯 이마에 땀이 흥건한 채 강렬한 시선을 보내며 방안에 발조차 딛지 못하고 서있다.





<필 왕국>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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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무대에 오르다> 24.06.22 16 0 11쪽
34 <전직> 24.06.20 17 0 11쪽
33 <어쩌면 핑크빛> 24.06.18 15 0 11쪽
32 재회 24.06.16 17 0 12쪽
» 필 왕국 24.06.15 18 0 12쪽
30 <쉼표> 24.06.14 18 0 11쪽
29 <정체> 24.06.13 18 0 11쪽
28 <난관> 24.06.12 15 0 11쪽
27 <미지의 적> 24.06.11 18 0 11쪽
26 <자오> 24.06.10 18 0 11쪽
25 <더치> 24.06.07 20 0 11쪽
24 <게르짐> 24.06.06 17 0 12쪽
23 <감옥> 24.06.05 15 0 11쪽
22 <아담 커피숍> 24.06.04 17 0 11쪽
21 <랑이의 정체> 24.06.03 15 0 11쪽
20 <할리의 능력> 24.05.31 19 0 11쪽
19 <남작가 저택> 24.05.30 16 0 12쪽
18 <실마을의 보석상> 24.05.29 16 0 12쪽
17 <헤어짐> 24.05.28 19 0 11쪽
16 <여행의 시작> 24.05.27 16 0 12쪽
15 <동향> 24.05.24 18 0 11쪽
14 <던전 공략> 24.05.23 17 0 11쪽
13 <던전> 24.05.22 16 0 11쪽
12 <정화의식> 24.05.21 18 0 12쪽
11 <시험> 24.05.20 19 0 12쪽
10 <정글> 24.05.17 21 0 11쪽
9 <검은 숲> 24.05.16 18 0 12쪽
8 <한걸음> 24.05.15 19 0 13쪽
7 <변화> 24.05.14 1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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