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파아앗!
새하얀 빛무리가 터졌다.
힐공명의 몸이 한순간에 입자처럼 분해되었다.
점차 투명해지는 형체 사이에서 놈이 뻐끔거렸다.
‘잘 부탁해요.’
미소 짓는 얼굴.
동시에.
두근!
저번 J공명 때처럼 온몸에 새로운 환류가 돌기 시작했다.
살갗이 저릿할 정도로 맥박이 뛰고, 모든 장기를 박박 닦아 새로 갈아끼운 듯한 파워가 느껴졌다.
‘됐다.’
나는 힐공명을 흡수하고 있는 손등을 감쌌다.
유언이라면 유언인 놈의 마지막 부탁을 최대한 들어주고 싶었다.
‘부순다.’
이 게이트를.
“으아아아!”
새로운 힘을 느끼며 바닥을 박차오르려던 때,
다다다다!
파십봉이 손아귀에서 미친듯이 흔들렸다.
‘응?’
봉은 마치 활어처럼 파닥거렸다.
잡힌 손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것처럼 멈추지 않아서, 결국 붙잡고 있던 손을 쫙 펼쳤다.
그와 동시에, 휘익!
“서···.”
― 드디어 섰다!
연계가 아이처럼 기뻐했다.
나는 허공에 일자로 둥둥 뜬 파십봉을 보며 어안이 벙벙할 수 밖에 없었다.
‘뭔 마법 지팡이도 아니고, 봉이 혼자서 둥둥 뜬다고?’
그러나 파십봉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선두에 달린 돌덩이가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하자, 힐공명의 입자가 그 위로 둥글게 모였다.
그러더니 쑥.
“뭐야, 시발, 뱉어!”
70% 정도 남았던 힐공명이 파십봉의 갈색 파편 부분으로 전부 흡수되었다.
당황한 나는 파십봉을 붙들고 탈탈 털었으나 입자는커녕, 나오는 가루도 없었다.
“이거 어떡하냐?”
난감한 심정이 뇌도 거치지 않고 툭, 연계를 향해 튀어나왔다.
나, 나는 아직 20% 정도 밖에 못 빨았는데?
힐공명의 히읗자도 못 먹은 거 같은데?
하지만 연계는 그게 당연하다는 것처럼 태연했다.
― 많아봤자 20% 흡수되는 게 정상이라고 했잖아. 저번이 특이 케이스.
“그, 그럼 얘는 뭔데?”
파십봉은 아직도 잘게 흔들리며 갈색 부분이 반딧불처럼 깜빡깜빡 빛났다.
연계는 뭐가 문제냐는 듯이 킬킬대며 웃었다.
― 네가 그걸 산 이유?
“슈와아아아앗!”
그 순간 머드맨이 독을 머리 위로 토해냈다.
시야가 온통 새까맣게 덮히고, 머리 위로 뚝. 뚝. 찐득한 독극물이 떨어졌다.
그러나.
【(빨대) 스킬의 효과로 피연계자의 능력이 연계됩니다!】
【스킬 (면역)이 시전되었습니다!】
하나의 고통도 없는 뜨끈한 물을 걷어 닦아내며 소리쳤다.
도대체.
도대체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휘익―!!
파십봉이 허공을 지나 횡으로 머드맨을 뻗어 갈랐다.
그 순간, 뻐엉!!
굉음이 땅을 울리며 머드맨이 물풍선마냥 터져버렸다.
핵을 뚫지도, 약점에 박아넣지도 않은 공격이었다.
그런데.
사사사삿···.
모래시계처럼 공중에서 분사되는 머드맨의 잔해를 보며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강해?”
― 돈 값을 한다니까~
톡톡.
연계가 반려견 쓰다듬듯 파십봉을 매만졌다.
잠시 뒤, 반짝이는 알림창이 떴다.
[공략 성공]
*
“허업!”
빠악!
이번에도 형편 없는 착지에 몸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나마 두 번째라고 등부터 떨어지긴 했는데, 아픈 건 마찬가지였다.
“아우씨···.”
마구 등을 비비고 있으려니 지잉! 지잉―!
[부재중 통화 15건]
[어머니 : 아들 일 끝나고 오는 길에 엄마한테 전화 줘]
[어머니 : 많이 늦니?]
[신동석 담당자님 : 헌터님, 또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어머니께는 일단···]
[어머니 : 담당자님께 여쭤보니까 게이트 공략은 벌써 끝났다는데 너 대체 어···]
[어머니 : 핸드폰은 왜 자꾸 꺼두는거야 엄마 속터지는 ㄲ·ㅡㄹ···]
어머니의 걱정 메세지가 또 몇 십 통씩 쌓여 있었다.
미친, 이번에는 등짝으로 안 끝날 거 같은데···.
손톱을 달달 씹으며 메시지창을 쑥쑥 내리던 차.
[최태풍 팀장님 : 돌아오면 곧장 관리국으로 복귀해라]
아찔한 발신자명에 허억! 숨을 들이켰다.
‘담당자님도 아니고 팀장님이 왜?’
헌터 생활 약 3년 차, 팀장님께 직속으로 문자를 받은 건 처음이었다.
볼 것도 없는 말단 사원을 팀장님이 왜?
그것도 호출?
‘혹시 게이트에서 또 사라져서?’
업무 내팽개쳤다고 짜르려는 건가?
아니, 그럴리가.
‘새로 계약한 지 얼마나 됐다고.’
하지만 내용 역시 심상치 않았다.
‘돌아오면?’
최태풍 팀장은 내가 사라졌다 돌아올 걸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전에 새로 등급 재검사를 받으면서 여러 힌트를 던지긴 했지만, 그 때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확신하는 뉘앙스였다.
‘무섭다.’
이게 국가 관리직 팀장의 감?
한기가 드는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데, 연계는 그런 나에게 관심도 없었다.
도르르 굴러간 파십봉 위에 쭈그리고 앉아 툭툭 건드렸다.
― 역시···.
“뭐가 역시야?”
가까이 다가가자 슬쩍 고개를 들었다.
― 빨아들인 힘을 완벽히 발산하는 건 그 세계에서 뿐만이었나 봐. 느껴지는 기운이 떨어졌어.
그 말을 듣고 파십봉을 쥐어보니 확실히 머드맨을 터트릴 때 같은 박력은 없었다.
빛나던 파편도 다시 고요해졌고···.
‘어떻게 되먹은 무기인 거지?’
진지하게 고찰할 무렵, 연계가 내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 근데 봐.
놈이 띄워준 무기창에는 처음 본 숫자가 떡하니 달려있었다.
-
백금성룡 파십봉 (+1)
-
나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글자에 몇 번이나 눈을 감았다 떴다.
이, 이, 이···.
“1가아아아앙?!”
― 아, 시끄러!
연계가 귀를 틀어막으며 인상을 썼다.
그러나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무기 강화석은 A급 이상 게이트에서만 등장하는 특별 부산물이었다.
거래장에서 기본 부르는 값이 수천 만원을 호가했다.
그것도 확률이 낮은 10% 강화석의 가격이지, 25%, 50%, 심지어 100% 강화석의 가격은.
‘부르는 게 값.’
새하얀 백지수표 덩어리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공짜.’
그것도.
‘스킬 덕분에.’
― 야야, 괜찮냐? 갑자기 어디 안 좋아?
차원이동의 여파인가?
연계가 고개를 푹 숙인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걱정섞인 목소리를 냈다.
그 순간.
“하하.”
― 뭐라고?
“하핫···, 하하하하!”
으학학학학!
어깨를 떨며 미친놈처럼 웃었다.
연계가 질색을 하며 뒷걸음질 쳤지만, 한번 새어나온 웃음은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토록 상쾌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미래가 내 손에 쥐어진 기분.
눈앞에.
‘거대한 태양이 떠오르는 기분.’
하아···.
깊게 심호흡 한 뒤 연계를 바라보았다.
“야.”
― 왜, 미친놈아.
“나 이제 알았다.”
파십봉을 장난치듯 휘휘 돌렸다.
그러다 팍!
일자로 뻗은 봉을 주먹과 함께 내밀었다.
“나는 더 올라갈 거야.”
더 높은 곳에, 너랑 같이.
씨익. 연계가 웃었다.
*
“에휴우우···.”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가 나부꼈다.
평범한 후드 차림에 걸맞지 않는 새까만 선글라스.
누가보면 남들 다 출근하는 아침 시간 역 앞에서 담배나 뻑뻑 피우는 정신 나간 백수로 볼 수 있겠으나···.
“인재가 없어, 인재가.”
정체는 대한민국 관리국의 기밀 헤드헌터.
무려 S등급의 사나이, 김승철이었다.
승철은 사람의 발전가능성.
그러니까, 헌터의 내재된 잠재력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는데, 하나.
‘반드시 육안으로 확인해야만 한다는 점.’
둘.
‘퍼센테이지가 높다고 전부 등급 높은 헌터가 아니라는 점.’
이 스킬이라는 놈도 스캔 기계처럼 따악 딱 A, B, C 알파벳으로 보여주면 좋은데, 뭉뚱그려 1등급, 2등급 3등급으로만 사람들을 분류해놨다.
물론 3등급에는 D, E, F.
저급 헌터들이 많이 포진해 있지만, 옆에 퍼센테이지가 크다면 그것 역시 확인해 보아야 했다.
‘D가 A 될수도 있는 문제니까.’
하지만 당연히 그런 경우는 엄청 드물고.
한 만 명 정도 봐야 하나 건질 수 있다지만, 그걸 해내야 하는 게 승철의 업무였다.
남들이 보기에는 농땡이여도, 승철은 지금도 열심히 일 하시는 중이셨다― 이 말이었다.
근데.
“씨가 말랐다니까.”
담배를 손에 짓이겨 끄고, 들고 있던 커피에 퐁당 담갔다.
웬만히 괜찮은 놈들은 죄다 마석 비율 높게 주는 사기업.
잠재력이 높다 싶으면 긴가민가한 저등급.
국가관리국으로 스카우트할 만한 헌터가 없었다.
제주도부터 거슬러 올라와 전라, 경상, 심지어는 울릉도와 뱃길 따라 이백리 독도까지 안 다닌 곳이 없는데도 이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래도 아직 못 본 사람이 있겠지.’
아니, 존나게 많겠지.
그게 문제였다.
‘왜 하필 육안?’
세상이 디지털로 넘어가다 못해 AI가 판치는 와중에, 직접 발품 팔아 움직여야 되는 게 열받았다.
대한민국 인구가 몇 인데 오천 만명을 언제 다 본다는 소리냐.
말도 안 되는 개소리였다.
‘운으로 만나는 거지.’
하지만 오늘 아침도 꽝이구나···. 생각하며 다음 역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2등급 / 잠재력 : ]
“···응?”
눈앞을 휙 지나가는 인영 머리에 달린 스킬창을 보고 잠깐 눈을 비볐다.
“피곤한가···, 그러니까 어제 적당히 달리다 잤어야 됐는데.”
몇 번 다시 눈을 꿈뻑이고 다른 사람들을 살폈다.
[3등급 / 잠재력 : 1.6%]
[3등급 / 잠재력 : 5.2%]
···
···
‘음, 아주 잘 보여.’
그다음 방금 지나간 사람을 다시···.
[2등급 / 잠재력 : ]
“허?”
커피 컵을 툭 떨궜다.
이게 이럴, 이럴 리가 없는데.
확인하는 고개가 몇 번이고 돌아갔다.
그리고, 결국.
“저기요!!”
후다닥 달려가 그 정체불명의 남자를 붙잡았다.
남자는 놀란 얼굴로 ‘예?’ 되물었지만 거기에 답해줄 시간은 없었다.
머리 위에 글자는 여전히 빈칸이었다.
‘잠재력이···.’
빈칸?
“왜 그러십니까?”
태도가 방어적으로 변했다.
빠져나가지 못하게 손목을 꽉 잡아 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머리 위만 보니 그럴만도 했다.
승철은 ‘실수했다’ 하는 생각과 동시에 빠르게 정중한 모습을 갖췄다.
“실례했습니다. 아, 저는 일단 이런 사람인데···.”
“···관리국 인사팀 소속 김승철 과장?”
“예, 그렇습니다.”
물론 구라 명함이었다.
직급도 그냥저냥 의심 안 받을만한 걸 붙여준 거지, 인사팀에 가보면 승철의 자리도 없었다.
개인 사무실은 있었지만, 어쨌든.
“무슨 일이십니까?”
의심스러운 눈으로 묻는 남자를 붙잡는 게 우선이었다.
“혹시 헌터신가요?”
“예?”
“아, 다름이 아니고, 지금 등급이?”
“··· B-인데요.”
“오케, 등급도 딱 좋고.”
승철의 손가락이 딱딱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이제는 그냥 붙잡는 게 아니라 ‘반드시’가 됐다.
김승철 헤드헌터 인생 10년.
돌연히 나타난 이 이상현상을 확인해봐야 했다.
“혹시 어디 소속이세요?”
“···?”
“아뇨, 됐습니다. 말하지 마세요. 거기는 이제 필요 없게 될 거니까. 이러저러 소문이 많지만, 관리국, 나쁘지 않은 곳이에요.”
“아니, 저.”
“아니면 먹을 거 좋아해요? 내가 또 전국 팔도를 다 다녀봐서 맛집이란 맛집은 빠삭한데. 응? 당장 거절은 하지 말고, 어떻게 맛있는 곳에서 점심이라도 한 번···.”
“아니, 아니, 잠시만요!”
남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잘라냈다.
그러더니 대뜸.
“아시고 오신 거 아니셨어요?”
이상한 말을 했다.
“뭘요?”
“전 관리국에서 나오셨다길래 어제 땡땡이깐 거 들켜서 벌점이라도 먹는 줄 알았는데, 아니예요?”
“···예?”
남자는 답답하다는 얼굴을 하더니, 이내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꺼낸 건.
“···관리국 B- 헌터, 강공명?!”
발급 받은 지 얼마 안 된 새삥 ID 카드였다.
*
“히야, 이거 참 신기하네···.”
김승철이 앉은 채로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신 사나워, 임마.”
믹스커피를 타온 최태풍이 홀짝이며 꾸짖어도 김승철은 도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팔락팔락.
그의 손에 든 검사지가 함께 휘날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잖아요. 우리 소속이면 제가 안 봤을리도 없는데, 기억도 안 나는 사람이···.”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특성 개화를 2번이나 하다니.
탁탁.
손 끝으로 치는 검사지에 이름이 걸려 있었다.
[이름] : 강공명
[소속] : 국가능력관리기구 (대한민국)
[등급] : B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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