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과 시작 41

*
구로 역까지 오는데 몇 시간이나 걸렸다.
오른쪽 허벅지 상태가 매우 심각했다.
팅팅 부은 데다 까맣게 변했고, 누런 진물도 계속 흘러 바지를 적셔댔다.
아무래도 병균에 감염된 것이지 싶었다.
아프진 않았다.
사실 그것이 더 두려웠다.
태풍이 오기 전 잔잔한 기운이랄까?
곧 누적된 아픔이 한꺼번에 올까 무서웠다.
“아휘, 코코. 나무 좀 모아봐. 배 좀 채우자.”
배는 고픈데 나는 아프니, 여태 눈치만 살피던 꼬맹이들이 아싸! 하고 좋아했다.
훗, 마지막 남은 토끼 고기는 어머니를 만나면 먹으려 했는데, 저렇게나 좋아하니 그냥 먹어야겠다.
고기가 익는 동안 꼬맹이들이 주변을 뒤져댔다.
대견하면서도 짠했다.
어느 순간부터 아휘와 코코는 식량 찾는 것을 당연시 했다.
오는 도중에도 잠깐씩 쉴 때마다 계속 찾으려 애써댔다.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게 뭔지 잘 알고 있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어서 빨리 바다로 가야 한다.
물고기라도 잡아서 하루 한 끼라도 먹어야 한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저 빌딩 보이지? 밥 다 먹으면 잠깐 들렀다 가자.”
잿더미로 변한 주변과 어울리지 않게, 30미터쯤 떨어진 곳에 빌딩 하나가 멀쩡히 서있었다.
대충 50층은 되어 보였는데, 1층에서부터 뒤진다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혹, 지하주차장에 운행 가능한 차라도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다 익었다. 뜨거우니까 후후 불어서 먹어. 웬만하면 뼈까지 씹어 먹어. 언제 또 먹을 수 있을지 모른다. 저건 또 뭔데?”
들개 한 마리가 나타났다.
고기 냄새를 맡고 온 것이다.
몽둥이를 쥐어들고 쫓아내려 했다.
“좋은 말 할 때 꺼져라. 이래봬도 내가 호랑이하고 싸워서 이긴 놈이다.”
놈은 아랑곳없이 자세를 낮추고 달려들 기세를 취했다.
믿는 구석이 있었다.
놈 외에 세 마리나 더 되는 들개들이 전후좌우에서 접근하고 있었다.
낌새를 못 챌 정도였다.
오랫동안 우릴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젠장, 네 마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까딱하다간 광견병에 걸릴 수 있겠는데?”
고기를 멀찌감치 던져버렸다.
꼬맹이들이 말렸으나, 놈들의 주의를 돌려야했다.
그 틈을 이용해 줄행랑치는 게 가장 현명한... 빌어먹을, 아까운 고기만 버렸다.
놈들이 곧장 달려들었다.
“고개 숙여!!!”
몽둥이를 휘두르지도 못했다.
한 놈이 그대로 덮쳐와 나를 넘어뜨렸고, 다른 놈이 옷자락을 물고 끌어댔다.
손발이 척척 맞는 공격전술이었다.
아휘가 내 다리를 붙잡아 힘을 써댔고, 코코가 반항을 해댔다.
어림없었다.
꼬맹이들은 들개들이 휘두르는 앞발에 채여 이내 나가떨어졌다.
돌멩이를 잡아 나를 끌어대는 놈을 사정없이 내려쳤다.
머리통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세 놈이 나를 포위해댔다.
돌멩이를 지랄방광으로 휘둘러댔으나, 빈 허공만 내려쳤다.
좀 전부터 느꼈는데, 놈들은 경험치에서 오는 사냥 기술을 매우 적절히 사용하고 있었다.
물어뜯을 듯 말 듯 간을 보다, 내가 지친 틈을 이용해 한꺼번에 들이닥칠 타이밍을 재었다.
하, 참으로 똑똑한 놈들이었다.
그 순간,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즉시 공격 의지를 꺾는 개들이었다.
온순한 강아지마냥 꼬리를 흔들며 혓바닥을 헤헤거리기도 했다.
“뭐, 뭐야?”
휠체어를 탄 노인이 오고 있었다.
얼핏 노숙자처럼 보였는데, 주름진 얼굴만 드러나 있을 뿐 판초우의로 온 몸이 가려져 있었다.
굉장히 괴기스러웠다.
“놀라게 했다면 미안하구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네. 잡아먹지는 않을 테니까.”
“방금 전까지 죽을 뻔했는데 뭔 소리야? 이 새끼들 주인이에요?”
노인이 저만치 떨어진 고기를 가리키자, 개들이 달려가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아휘와 코코가 꽤나 전투적으로 식식댔다.
저 고기가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 것이리라.
노인이 다시 휘파람을 부니, 개들이 먹는 것을 중단하고 우릴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내가 서둘러 발걸음을 돌렸을 때였다.
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목적이 분명했다.
“이 새끼들이 먹는 게 우리가 가진 마지막 식량이었어요. 아무것도 없으니까 우릴 죽일 게 아니라면, 괜한 협박 같은 건 하지 말아요. 그땐 나도 가만있지 않을 거니까.”
“난 자네가 필요하네.”
잉?
뜬금없었다. 언제 봤다고?
설마?
“나 그런 취향 아니거든요. 개취는 존중하는데, 나는 여자 좋아해요. 딴 데 가서 알아봐요.”
“미안하네만, 내 부탁을 들어주겠나?”
“아니, 언제 봤다고 그딴 소릴 해? 나 알아요?”
“자네에게 필요한 게 뭔지는 알지.”
“참나, 뭔 뜬구름 잡는 얘기를 하시나? 난 할아버지랑 볼일 없으니까, 어서 개새끼들이나 치워요.”
노인이 내 다리를 가리켰다.
허벅지 피가 다리를 타고 흘러내려 바닥에 고이고 있었다.
“잘라야 할 것 같은데?”
“이 양반이 미쳤나? 말이면 단 줄 알아요? 누구 맘대로 잘라야 한다는 거요? 당장 개들이나 치우라고요!”
“내 다리도 자네와 비슷했네. 그러다 결국엔 잘랐지.”
노인이 판초우의를 걷었다.
오른쪽 다리가 허벅지 깊숙이 잘려있었다.
순간 구역질이 올라왔다.
아직 아물지 않은 잘린 면에서 구더기들이 살을 파먹고 있었다.
노인이 쓱 밀어내니, 후두둑 떨어지는 구더기들이었다.
개들이 부리나케 핥아 먹었다.
“뭡니까, 대체? 내 다리도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이렇게 될 거야. 자네 다리는 속부터 썩는 중이네. 그 부위를 도려내지 않으면, 평생 한쪽 다리로만 살아야 할 걸세.”
“이런 씨!”
욕이라도 퍼붓는 게 맞는데, 절대 그럴 일 없다고 부정하는 게 맞는데, 웬일인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시부랄, 노인의 말대로 내 다리를 잘라야 하나 싶은 쎄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신도림 역에서 이곳 구로 역까지 오는 동안 몇 분 간격으로 마비가 찾아왔었다.
점점 더 그 주기가 빨라지고 있었는데, 급기야 완전 마비가 온 것처럼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 구더기가 내 허벅지에서 꿈틀거리는 듯 부르르 몸이 떨렸다.
“내 부탁을 들어주게나. 그럼 자네 다리는 잘리지 않게 해주겠네.”
“의사예요?”
“그 다리를 치료할 의사를 알고 있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고약한 노인네 같으니라고. 내 다리를 가지고 지금 흥정하겠다는 거야, 뭐야?”
기묘한 수렁에 빠졌다.
뭔지도 모르는 부탁을, 더구나 처음 만난 노인을 뭘 믿고 하겠다고 하겠는가?
그러나 그 말을 하기가 힘들었다.
다리를 잘라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인은 그 점을 아주 잘 파악하고 있었다.
개들이 우릴 오랫동안 지켜본 것처럼 노인도 그랬겠지.
들어준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무시해야하나?
하, 너무 어려운 선택이었다.
“부탁이라는 게 뭐예요? 말이나 들어봅시다.”
“내 손녀딸을 데려와주기만 하면 되네.”
“손녀요? 어디에 있는데요?”
“저곳에. 저 위 꼭대기에 있지.”
뜻밖이었다.
멀리에 있나 싶었는데, 손녀는 바로 앞 50층 건물 옥상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직접 가면 되는 것이 아닌가?
걷지 못해 못 가는 것인가?
“잡혀있는 거예요?”
“그렇진 않네. 그 애 부모와 함께 있지, 자발적으로.”
“그런데요? 부모와 함께 있으면 더 잘된 거잖아요?”
“그게... 죽으려고 있는 거야. 살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게 무슨?”
“내 손녀는 외찾사들과 같이 있어. 내 아들놈과 며느리가 외찾사로 자발적으로 들어간 거야.”
“외, 외찾사요?”
“외계인을 찾는 사람들이라네. 그들은 지금 외계인을 기다리고 있지. 자신들을 데리고 가라고 말이야.”
“외계인을 기다려요? 미친 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이 어딨어요?”
정리하자면 이랬다.
침공 후 일부 생존자들은 외계인에게 지들 운명을 의탁하고자, 외찾사라는 부대를 만들었다.
지구 밖으로 자신들을 데리고 가달라며 옥상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외계인을 신으로서 받들고 있는 셈이었다.
하, 백 번 천 번 양보해도 도무지 말이 되지 않았다.
인류를 죽이는 외계인을 신으로 모셔?
정신병자들이구만!
노인의 부탁이 이해 되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곳에서 손녀를 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직접 데려오면 되잖아요? 아들 며느리 있다면서요?”
“시도는 해봤지. 그러다 내 다리만 잘렸어.”
“근데 나보고 가라? 부모 말도 안 듣는데, 생판 모르는 내가 가면 들을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부탁이네. 손녀딸을 데리고 와주게나. 그 애를 바다로 데려가야 해. 그것이 내 마지막 의무야.”
“자, 잠깐만요. 지금, 바다라고 했어요?”
“자네도 알고 있나? 바다에 관해서?”
난 그만 홀린 듯 빌딩으로 가게 되었다.
바다 얘기에 급격히 흔들려 버렸다.
그러나 세 번의 죽음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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