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나 확 망해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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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astaiji
작품등록일 :
2024.05.08 10:11
최근연재일 :
2025.02.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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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7,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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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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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끝과 시작 43

DUMMY

*

갇힌 순간 끼쳐오던 곰팡내에 후각이 마비될 정도였다.

나무로 만들어진 관은 낡았고 썩었다는 말이니, 구멍을 내서 탈출하는 것이 유일했다.


그렇다면 필요한 건 딱 하나, 튼튼하고 뾰족한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내 가슴 윗부분, 다른 곳과 다르게 텅텅 소리가 나는 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면 뚫릴 것이다.


“내가 가진 게 뭐가 있지?”


젠장, 3만 원과 일회용 라이터뿐이었다.

평생을 걸려도 안 뚫릴 것이다.


급한 맘에 구두를 벗어 뒷굽으로 쳐보았다.

힘만 뺐다.

뭉뚝한 고무 밑창으론 타격을 주지 못했다.


“튼튼하고 뾰족한 게 필요해...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어떡해... 어떡하지?...”


초조가 나를 두들겨댔다.


암흑은 시간의 흐름을 막았고, 부족한 산소는 답답함을 채웠다.


닦고 닦아도 손바닥에 땀이 차올랐... 주먹?

내 주먹으로 쳐댄다면?


킬빌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그 주인공은 주먹을 이용해 관을 뚫고 땅속에서 나온다.


나도 하면 되려나?


어림없는 소리.

내가 무슨 무술 유단자도 아니고, 주먹으로 어떻게 나무를 뚫겠다는 것인가?


“그래도 한번 해볼까?... 설마 되겠어?... 혹시 모르잖아!... 에이, 그래도... 다른 수 있어?... 좋아, 해보자.

정신일도 하사불성! 수리수리 마수리!! 아브라카다브라!!!”


얍!!!


좆나게 아팠다.


정권 지르듯 뚜껑을 향해 팍!!! 올려쳤으나, 뚜껑엔 아무런 타격도 가해지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면 충고를 해주고 싶다.

당신은 절대 관에 갇히지 말도록! 갇혔다 해도 주먹은 사용하지 말도록!

영화는 영화일 뿐.


“으아아악!!!!!”


폐쇄공포란 게 이런 것인가?



진정할수록 진정이 안 되는 기분?


그 기괴함이 끔찍해 머리통을 박아대고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열불이 올라 온몸이 뜨거웠다.


가장 못 견디겠는 건, 몸뚱이를 자유로이 움직이지 못하겠는 구속감이었다.


“미치겠네. 왜 이리 가려운 거야?”


그 뒤론 가렵기만 했다.

피가 나도록 긁고 또 긁어도 만족되지 않았다.


급격히 졸렸다.

산소가 희박해지고 있는 것이리라.


이대로 영원히 잠드는 것인가?


자지 말자... 부릅떴다... 자면 안 돼... 감겼다... 자면 죽음이야... 주먹 쥐고 악다물었다... 자고 싶어 미치겠어... 스르르 주먹이 풀려갔... 다... 응?


이게 뭐지?

풀려가던 손길에 차가운 감촉이 느껴진 건, 바로 그때였다.


“허리띠?... 혁대?... 버클?... 모서리? 쇠! 혁대 버클은 쇳덩이잖아!!!”


번쩍 눈이 떠졌다.


곧바로 혁대를 확인했다.

명함 크기만 한 버클은 쇠로 되어 있었고, 모서리는 기특하게도 뾰족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아니 땅에 파묻혀도 살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그 순간 자고 싶단 욕망은 살고 싶단 의지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기필코 나가주마!”


혁대를 풀어 팔뚝에 감아 단단히 고정시키고, 버클을 꽉 쥐었다.


쳐댔다.


무조건, 무작정, 무대포로 쳐대기만 했다.


버클에 밀려 찢긴 손바닥에 피가 흐르는 건, 문제될 게 아니었다.


빠자작!


관 뚜껑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날 왕따시킨 개새끼들, 날 장난감 취급한 첫사랑 시발년, 날 취업에 떨어뜨린 십새끼들, 날 이 지경까지 오게 한 외계인 좆망이들을 죽인다 하고 쳐대니, 절로 힘이 났다.


훗, 진즉에 이럴 걸!


“오케이! 좋았어!!!”


내 머리통이 들어갈 수 있게 원을 그리며 부러뜨렸다.

그리고 잡아 뜯었다.


뜯겨졌다!


자, 이제 나가자!!!


“시팔, 이젠 흙이 문제네...”


좋다 말았다.

기쁨이 절망으로 순식간에 바꼈다.


뜯겨진 구멍으로 흙이 쏟아져 내렸다.

내가 곧 묻힐 거라는 뜻이었다.


“하, 왜 갈수록 태산인 건데? 2미터나 되는 흙이 쏟아지면 나보고 어쩌... 라고?...”


아니다!!!!!


쏟아지는 게 나았다.

흙이 관 속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관 밖의 흙이 없어진다는 것이 아닌가!


이른바, 위치 체인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나가고야 만다고!”


내 얼굴로 쏟아지는 흙을 우선은 다리 쪽으로 밀어냈다.

아래에서부터 빈 공간 없이 꾹꾹 채우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게 여러 번을 반복하니, 내 가슴 높이까지 채워졌다.

이젠 손을 이용해 위에서 쏟아지는 흙을 굴삭기처럼 파댔다.


“됐다! 빛이 보여!”


흙 양이 줄었다는 것이 체감적으로 느껴졌다.


얼굴까지 차올랐을 때 어슴푸레 빛이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미적거림 없이 구멍으로 냅다 머리통을 들이밀었다.


“이야야악!!!!!”


하, 간당간당했다.


관 밖으로 얼굴만 간신히 내밀었다.

몸뚱이는 파묻혔지만, 어찌됐든 나온 건 나온 거였다.


그제야 입 안 가득 담긴 흙을 뱉어내고, 새로운 공기를 듬뿍 빨아들였다.


“1시간 지났나?”


외찾사는 어리벙벙한 얼굴로 굳어있었다.


설마 했겠지?

죽을 거라 여겼겠지?


훗, 실망시켜 미안한 걸!


“관 속에서 생매장 놀이를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깜빡했군 그래. 어때? 제시간에 나왔나?”


“5, 59분... 52초...”


“아쉽군. 59초쯤에 나왔어야 더 쫄깃했을 텐데. 자, 어서 옥상으로 안내나 해.”


“다음 테스트가 있습니다.”


“뭐? 또 뭔 테스트? 이것들이 정말 좋게 좋게 하니까 누굴 호구로 아나? 이쯤하면 됐잖아! 기어이 날 죽이려는 거야?”


“당신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어요. 다음 테스트를 통과해야 합니다.”


“그놈의 증명 증명! 좋다. 이번에도 성공해주지. 아무거나 들이대 봐! 내가 모두 박살내줄 테니까!”


죽었다 살아나면 배포가 커지는 걸까?


난 전에 없던 오기로 불타올랐다.

모든 세포와 감각이 날카롭게 날이 서는 듯도 했다.


생매장 당했어도 살았는데, 그 무엇이 두려우랴!


“뭐하고 있어? 빨리 시작하자고!”


25층으로 오르게 됐다.

그 즉시 후회했다.


총 한 자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나보고 지금 이걸 하라는 거야?”


25층엔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었다.

리볼버 권총 한 자루가 놓인 채였다.


“이미 눈치 채셨군요. 이번 테스트는 러시안 룰렛입니다. 방식은 아시겠죠? 당신 머리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만 당기면 됩니다.”


“총탄을 내 머리에 박으라는 거잖아! 이걸로 외계인에게 선택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증명을 하라? 당신들 진짜 왜 그래? 이런 게 뭔 증명이야? 사람 목숨을 복불복으로 결정하겠다는 거잖아!”


“세 번의 기횝니다. 제한 시간은 5초. 당기세요.”


“이런 씨!”


안경잡이가 원형으로 된 탄창을 빙그그르 돌리고 내려놨다.


무심결에 즉시 총을 집어 들어 내 머리에 겨눴다.

방금 전까지의 오기와 용기는 완전히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릴 대신하는 공포였다.


당겨야 하나?


손목시계의 초침으로 카운트를 세는 안경잡이 목구멍에 총탄을 박아야 하나?


“삼, 이,”


에잇, 철컥!!!!!


당겼다.


내가 당긴 게 아니었다.

내가 방아쇠를 당긴 건 맞는데, 내 의지가 아니라, 얼떨결에 당겨진 것이다.


총탄은 발사되지 않았고, 내 머리통은 멀쩡했다.


“자, 두 번째.”


숨 돌릴 틈도 주지 않았다.

총을 빼들더니 다시 빙그르르 돌리는 안경잡이였다.


“한 번이면 됐잖아! 니들이 한번 해보던가?”


“오, 사,”


빌어먹을,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자, 외찾사가 총을 꺼내 겨눴다.


어차피 벌집이 되는 건가? 철컥!!!!!


휴... 이번에도 발사되지 않았다.


“이제 마지막입니다.”


“자, 잠깐! 숨 좀 돌리자. 머리통이 터지기 전에 숨 막혀 죽겠다...”


탄창은 총 여섯 개의 구멍이었고, 그 중 한 곳에 총알이 있는 것이니, 난 두 번 연속 16, 6%의 확률로 살아남은 것이다.


기적이었다.


이런 우연이 수학적으로 가능한 것인가?

외계인에게 선택받은 것인가?


시팔,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당기시죠.”


다시 빙그르르 돌려진 총이 테이블에 놓였다.


까짓 것 두 번이나 통과했는데, 세 번째라고 못할 쏘냐! 라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

16, 6%는 83% 이상 죽을 수 있다는 말과 같으니!


“오, 사,”


어느 때보다 신중히 총구를 갖다 댔다.


내 주위로 달뜬 열기가 감돌았다.

외찾사는 마지막을 보고 싶은 것이다.


내가 살거나, 머리통이 터지거나!


“삼, 이,”


“이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내 목숨 가지고 내가 방아쇠 당기는 건데, 왜 당신이 탄창을 돌려? 탄창도 내가 돌리는 게 맞는 거지, 안 그래?”


“탄창을 직접 돌리겠다는 말입니까?”


“그게 맞잖아. 그래야 죽어도 억울하지 않을 거 아냐?”


“좋습니다. 직접 돌리고 당기세요.”


“시팔, 좆나게 쿨하네.”


안경잡이가 돌린 탄창은 미세한 스크래치가 난 구멍에 멈춰 있었다.

내가 다시 돌린 탄창은 바로 옆 구멍에 멈췄다.


“이, 일,”


난, 방아쇠를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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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지구의 길 147 25.01.17 18 1 9쪽
146 지구의 길 146 25.01.16 17 1 9쪽
145 지구의 길 145 25.01.15 20 1 9쪽
144 지구의 길 144 25.01.14 19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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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지구의 길 134 24.12.31 19 1 9쪽
133 지구의 길 133 24.12.30 23 1 10쪽
132 선의 증명 132 24.12.04 31 1 9쪽
131 선의 증명 131 24.12.03 21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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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선의 증명 128 24.11.28 20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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