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나 확 망해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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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astaiji
작품등록일 :
2024.05.08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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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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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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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나라 46

DUMMY

*

젖과 꿀이 흐르는 파라다이스!

교문 안으로 한 발짝을 내디뎌 만난 이상향!


이 말이 가장 정확했다.


학교엔 식량이 넘쳐 났고, 사람들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형광등이 빛났고, 클래식도 들려왔다.

전기가 있다는 뜻이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태양열을 이용한 비상발전기가 가동되고 있던 거였다.


개꿀! 개꿀!


고생 끝에 낙이라고, 드디어 내가 개꿀 빠는 천국을 발견했다!!!


- 사랑공동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동네에서 흔히 볼법한 뚱뚱한 아줌마가 우릴 향해 웃고 있었다.


나도 웃었다.

아휘와 코코도 웃었다.

우린 무언으로 웃음의 의미를 주고받았다.


“어디라고요?”


“사랑공동체요. 어머, 꼬마 아가씨와 댕댕이도 있었네! 이쁘게 생겼다. 따님이세요?”


“사랑? 공동체?”


“다쳤네요?”


뚱보가 허벅지를 보고는 혀를 차댔다.

그러더니 내 팔짱을 끼고 무작정 끌고 갔다.

누가 보면 오랫동안 알아온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선생님!”


운동장을 가로질러 도착한 곳은 학교 본관 건물이었다.


외벽 페인트 작업을 하고 있던 사람이 돌아보았다.

뒤로 묶은 꽁지머리에다 균형 잡힌 몸매가 인상적인 중년의 사내였다.


“어서 오세요. 장철이라고 합니다.”


“이... 지구입니다.”


장철.


내 손을 잡고 흔들어대는 그가 낯설지 않았다.


어디서 봤더라?

분명히 본 적 있는 얼굴인데?


생각났다.

주부들을 주 시청층으로 하는 TV토크쇼 패널로 출현해, 건강 솔루션을 제시하며 인기를 끌었던 의학박사였다.


신뢰를 주는 세련된 외모에다 재치 있는 유머까지 겸비해, 대한민국 대표 닥터테이너로서 각광을 받았었다.

유전자인가 뇌인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국내 최고 권위자라 불렸던 자가 내 앞에 있으니, 신기했다.


덥석 끌어안았다.

그러자 장철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낯섦보다 낯익음이 낫겠고, 무엇보다 의사이지 않는가!


**

“조금만 늦었어도 불행한 일이 일어날 뻔 했군요.”


2시간 가까이 진행된 내 허벅지 수술은 교실을 수술실로 바꾼 곳에서 진행되었다.

필요한 도구와 의약품들이 비치되어 있다는 게 놀라웠다.


“꼭 안정해야 합니다. 여기서 덧나면 정말 잘라야 할 수도 있어요.”


이로써 난 다리 잘릴 공포에서 벗어났다.


장철은 허벅지 속살을 소독하는 것을 시작으로 막힘없이 치료를 해갔고, 마취에서 깨나니 꼼꼼히 봉합되어 있었다.


훗, 독산동으로 가는 건 잠시 미뤄야 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장철은 아휘에게 실어증과 영양부족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큰 충격으로 인해 말하는 법을 잊어버려 자신도 모르게 말을 못하는 지경까지 이른 것이고, 그건 이곳에 있는 몇몇 아이들에게도 비슷한 증상이 있다는 거였다.


이해되었다.

부모를 잃고 컴컴한 하수도에서만 지냈으니, 안 생기려야 안 생길 수 없겠지.

심신의 안정을 찾고 또래들과 지내다 보면, 아휘가 말할 수 있을 거란 좋은 소식도 있었다.


훗, 그 목소리가 어떨지 자못 궁금했다.


“여긴 뭐하는 곳인가요?”


“보다시피 사람 사는 곳이죠.”


누가 몰라서 물었나?

어째서 이곳은 다른 곳과 다른지,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가 궁금한 거지.


장철은 질문의 의도를 빤히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척 장난을 쳐댔다.

확실히 내공이 깊은 자다.


“지구씨도 지금 현실을 알고 있죠? 필요한 게 뭘까요?”


“... 의식주?”


“잘 알고 있군요. 너무나 중요하죠. 하지만 전 사랑이 먼저라고 봅니다. 그래서 이곳을 만들었습니다. 의식주뿐만 아니라, 사랑을 바탕으로 인간답게 살아보고자 하는 것이죠.”


침공 후 인간들이 서로를 죽이는 것에 환멸을 느껴 사랑공동체를 만들었다고 한다.

인간성을 파괴하지 않는 최소한의 한도 내에서 스스로 살아보자는 취지였다.


그 뜻에 따르는 이들을 하나둘 모아 이곳 학교에 정착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온 것이라 했다.


“인간성 회복을 위해선 사랑만이 답이에요. 요즘 같은 시기엔 더욱 필요하죠.”


“여긴 침공 전 세상과 똑같네요. 먹을 것도 많고 전기도 들어오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똑같아서 놀랐어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생활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게 다 사랑 때문이죠. 서로 돕고 아끼고 나누니까, 불필요한 다툼은 발생하지 않아요.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어요. 바깥 세상과 별다를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배우게 되고 실천을 하니, 자연스레 안정이 찾아왔죠.”


“선생님께서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혼자서는 못했죠. 다함께 한 겁니다.”


“근데... 다른 부대들이 공격해올 것 같은데요. 놈들은 이곳을 식량창고라고 여기지 않을까요?”


원초적인 의문이었다.

본인 뜻이 아무리 숭고하다한들, 다른 부대는 그처럼 생각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다.


부지불식간에 쳐들어와 사람들을 죽이는 상황에서, 인간성회복이니 사랑이니 하는 신념은 방어책이 되지 않았다.


총칼로 들이미는데 신념만을 외쳐댄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그에 따른 대책이 있는지 궁금했고, 사실 의문보다는 걱정이 된다는 게 맞았다.


“지구씨는 꽤나 비관적이군요. 나는 인간의 선함을 믿자는 겁니다. 지금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말이죠. 그렇게 걱정할 필욘 없어요.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 있습니다.”


“지켜주는 것?...”


“지구씨는 선하고 좋은 분 같군요. 내가 보는 눈이 틀렸나요?”


내가 그런가?


장철의 말은 어딘가 좀 답답하다는 느낌이었다.

핵심에서 뱅뱅 돌고만 있을 뿐, 속 시원함은 없었다. 하지만 묘한 설득력도 있었다.

사랑이란 단어에 내 맘이 동한 것이리라.


그래서 바다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좀 뜬금이 없다고 해야 하나? 신뢰할 수 없더군요.”


“신뢰요? 바다에 관해서요?”


“달리 말해 근거가 없다는 겁니다. 바다로 가면 살 수 있다는 말은 좀 믿기 어려워요.”


장철은 바다에 관한 소문을 믿지 않았다.

과학적인 이유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럼 가보면 되지 않는가?

진짜면 좋은 것이고, 아니라 해도 딱히 손해 볼 것은 없었다.


나와 미래씨, 미래씨 아버지와 있었던 이야기를 급히 들려주었다.

그러나 뚱한 표정을 풀지 않는 장철이었다.


“바다를 찾아 떠난 분들도 있지요. 하지만 다시 돌아왔습니다. 막상 가보니 별반 차이가 없었던 거죠. 알다시피 난 의사예요. 과학적이지 않은 것을 신뢰하기에는... 내 지식이 좀 부족한 것 같군요. 자, 오늘은 이만하고 좀 둘러보면서 휴식을 취하도록 하세요. 여기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고요. 모두 좋은 사람들입니다.”


께름칙함이 들어찼다.

과학적 근거만을 신뢰한다는 의사가 인간성 회복이나 인간의 선함을 믿는다는 것을, 과연 과학적 근거를 두고 하는 말인가 싶은 거다.


앞뒤가 맞지 않았다.

장철과 언쟁을 벌이고 싶은 맘은 없으나, 이상한 건 이상한 것이다.


하, 내가 너무 의심병에 차있나?


***

우린 간단히 저녁을 먹고 씻었다.


침공 후 처음으로 샤워를 한 것이라, 때 구정물이 그득했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기도 해 한층 더 개운했다.


이 모든 걸 장철이 있기에 가능하다며, 뚱보는 입술이 닳도록 칭송을 해댔다.


“대단한 분이시군요.“


“그렇고말고요. 공동체 사람들은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모두 죽었을 거예요. 우린 모두 그분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있답니다. 그 옷은 버리시죠?“


“소중한 거라...“


“좋을 대로 하세요.“


벗어둔 양복을 가져가려해 급히 말렸다.

어머니가 사준 것이라 버릴 수 없었다.


잘 접어 품속에 넣었다.

어머니를 만날 때 다시 입으리라.


학교 종이 울렸다.

일과 중에 해야 할 일과 전달할 사항을 종을 울려서 알리고 있었다.


예를 들어 정해진 스케줄에 맞게 개인시간을 보내거나 공동의 작업을 하는 방식으로 쓰이는 식이었다.

시스템 안에서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시간이에요.”


아휘와 코코와 떨어졌다.

꼬맹이들은 치료를 위해 의무실로 갔고, 난 치유실로 향했다.


이곳으로 온지 얼마 안 된 사람은 으레 치유실 절차를 밟고, 사람들과 안면도 튼다는 뚱보의 설명이었다.


“오늘 처음 오신 이지구씨 입니다. 모두 박수로 환영합시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블립 이후 캡틴 아메리카가 갔던 모임처럼, 치유실에선 둥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고통과 슬픔을 나누고 있었다.


외계인 공격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괴롭다는 사연들은 대부분 비슷했다.

그럴수록 힘을 내고 다가올 앞날을 위해 서로가 함께 해야 한다는 반응들도 비슷했다.


“이것 자체가 굉장한 기적이죠. 맘속에만 있던 고통을 밖으로 꺼내놓음으로써 위로와 평안을 찾게 될 테니까요. 이제 지구씨 차례예요. 기적을 보게 될 겁니다.”


그렇게 치유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휘가 나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아휘는 지옥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아휘를 구해야 했다.

지옥에서 빼내야 했다.

그렇기에 난, 살인을 저질렀다.


장철이란 악마를 죽여야 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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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지구의 길 151 25.01.24 21 0 10쪽
150 지구의 길 150 25.01.23 15 0 9쪽
149 지구의 길 149 25.01.21 17 1 10쪽
148 지구의 길 148 25.01.20 17 1 9쪽
147 지구의 길 147 25.01.17 17 1 9쪽
146 지구의 길 146 25.01.16 16 1 9쪽
145 지구의 길 145 25.01.15 19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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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지구의 길 134 24.12.31 18 1 9쪽
133 지구의 길 133 24.12.30 22 1 10쪽
132 선의 증명 132 24.12.04 28 1 9쪽
131 선의 증명 131 24.12.03 19 1 9쪽
130 선의 증명 130 24.12.02 21 1 9쪽
129 선의 증명 129 24.11.29 24 1 9쪽
128 선의 증명 128 24.11.28 19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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