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나 확 망해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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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astaiji
작품등록일 :
2024.05.08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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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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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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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악의 나라 50

DUMMY

*

- 그 마음이 어떨지 저도 잘 알아요.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거예요. 힘을 내야 해요, 지구씨.


“그거 알아요, 미래씨? 내가 취업에 실패할 때마다 사람들이 그러데요. 힘을 내라고, 기회가 다시 있을 거라고... 내가 무슨 힘을 내야 하죠? 어떤 기회가 있다는 거죠? 그동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힘을 냈는지 알기나 해요? 당신이 내 맘을 알기나 해? 그딴 소리가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지!”


- 아니 난, 그런 뜻이 아니라,


“나요, 남들이 하라는 거 다 했어요. 하라는 대로 공부했고, 하라는 대로 대학 갔고, 하라는 대로 스펙 쌓았고, 하라는 대로 이력서 넣었어요. 왜냐고요? 그게 정답이라고 했으니까. 그래서 정답처럼 했다고요. 하라는 대로 하라는 거!”


- 진정해요. 지금 너무 흥분해 있어요.


“좆까는 소리 하지 마. 기회가 있다고? 그 기회 부모 잘 만나야 되잖아. 좋은 대학 나와야 하잖아. 잘 나가는 새끼들과 고향이라도 같던가!... 그게 기회잖아, 그게 기회잖아!”


나는 어느 순간부터 울고 있었다.

분명히 웃고 있었는데,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아까 말한 내 꿈, 사실은 다 포기했어요. 사람들이 말하는 정답을 해봐도 안 된다는 걸 알았거든요... 내가 가장 못 참겠는 게 뭔지 알아요? 내일이 돼도 똑같은 오늘이 된다는 거예요. 어제 오늘 내일, 취직도 못한 나를, 내가, 내 얼굴을 보는 걸 견딜 수가 없다고요...”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나와 미래씨 사이에 흘렀다.

나는 나대로 미래씨는 그녀대로 묘한 긴장감을 쌓았다.


그러다 결국 폭발한 건 나였다.

미래씨가 다시 그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 힘을 내요.


“제발 그딴 소리 좀 하지 말라고!!!”


무전기를 던져 버렸다.


날 위로한답시고 던지는 말은 오히려 헤치는 말이란 걸 미래씨는 알지 못했다.


아는가?

내가 아무리 힘을 내고 노력해도 좋은 날은 절대로, 절대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그 빌어먹을 것이 헛소리란 것을!


“무, 무전기를?”


벽에 부딪혀 부서진 무전기를 보자, 그때서야 정신이 들었다.

미래씨와는 대화를 나눌 수 없게 된 것이다.


“미안해요, 미래씨. 내가 이러려고 한 게 아닌데... 내가 잘못 했어요, 내가 잘못 했어요. 제발 이러지 말아요. 나 혼자 어떡하라고. 제발... 제발 나한테 이러지 말아요. 나보고 어쩌라고...”


외롭고 쓸쓸하고 허기졌다.

그것보다 결이 다른 어떤 것이 그때의 나를 감싸 안았다.


해도 안 되는 허탈감, 평범한 꿈조차 이룰 수 없는 좌절감, 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무력감 등이 한데 섞여,나를 옭아매었던 시간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우린 그것도 모르고 또 다시 맥 빠지는 얘기나 하고 있었으니...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전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출근을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참 슬픈 꿈이네요. 너무 슬퍼요.”


치유실 사람들이 그때의 미래씨처럼 침묵했다. 웃긴 건, 그마저도 내겐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뭐 어떨 수 없지.

강요할 노릇도 아니고.


“그 후론 어떻게 지냈어요?”


“무전기도 안 되고 더 이상 할 일도 없고 해서 잠만 잤어요. 그러다 깨보니 8월 23일이었죠.”


“8월 23일? 그건 어떻게 안 거죠?”


“미래씨 목소리가 들렸어요.”


“이상하군요. 무전기는 부서졌다고 했잖아요?”


“저도 이상해요. 분명히 부서졌는데, 미래씨 목소리가 들려왔으니까요.”


- 8월 23일 오전 9시 현재... 지구방위연합군입니다... 여러분... 이제는 각자 알아서... 살아남으십시오.


미래씨는 확실히 그렇게 말을 했다.

각자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말이 인상 깊어 잊으려야 잊을 수 없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 생각해도 부서진 무전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는 것은 묘한 일이었다.

난 아직 그 까닭을 알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꿈꾼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나 싶었다.


허나, 목소리는 분명히 들렸다.


“어때요, 지구씨? 맘이 좀 편안한가요?”


“... 그런 거 같습니다.”


“거봐요, 내가 그랬잖아요. 기적을 보게 될 거라고.”


맘이 편해진 건 사실이었다.

이곳까지 오게 된 과정을 되짚어보니, 내 자신이 안쓰러워 뭉클하기도 했다.


하, 이것이 뚱보가 말한 기적인가!

훗, 본 적이 없으니, 별 게 다 기적처럼 느껴졌다.


학교 종이 울린 건 그때였다.


**

사람들이 예배당으로 향해 갔다.


잠들기 전 공동체 사람들이 전부 모여, 오늘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전 이만 가려고요.”


“어머니 만나러? 다리 괜찮아요? 아직 무리하면 안 될 텐데?”


“어머니 모시고 다시 와도 되죠? 내일이면 될 것 같은데.”


“그럼요. 지구씨는 언제라도 환영합니다.”


아휘와 코코를 잠시 맡아 달라 부탁했다.

밤이 내려 함께 가는 건 위험했다.


꼬맹이들의 생명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사랑공동체에서 보호하는 것이 제일이었다.

그런데 자꾸 뭔가가 아릿했다.

기껏해야 몇 시간 떨어져 있는 건데 말이다.


“우리 아휘는요. 몸집은 작지만 먹는 걸 좋아해요. 특히나 초코파이를요. 라면도 잘 먹어요. 그림도 그릴 줄 알아요. 색연필 좀 챙겨주세요. 아, 참을 줄도 알아요. 의리도 있고요. 가방은 가지고 있게 해주세요. 아휘한테 소중한 거예요. 애착인형 아시죠? 뭐 그런 것과 비슷해요. 말썽 같은 건 피우지 않을 거예요. 순한 아이거든요. 코코와는 좋은 친구예요. 같이 있게 해주세요. 그리고 또,”


갑자기 신승훈의 ‘I believe’ 라는 노래가 스쳤다.

훗, 빨리 어머니를 찾고 다시 와야겠다.


“그러지 말고, 좀 있다 가는 건 어때요? 좋은 말씀 듣고 가요.”


“어차피 다시 올 건데, 그때 들을게요. 그럼 이만,”


막무가내로 예배당으로 끌고 가는 뚱보였다.

거절하기도 뭣해서 잠시만 있다 나오기로 했다.


예배당에 모인 사람들은 족히 200여 명쯤 되었다.

그들은 모두 편안하고 여유로운 보통의 시간들을 사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곳의 리더인 장철의 힘이 아닐까 싶었다.


역시나 사랑의 힘인가!


기적을 볼 수 있다는 뚱보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기적이란 없던 것이 생겨나거나 죽은 사람이 다시 살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다는 것 자체를 말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 세상에 나 혼자 있지 않다는 기분, 이것이 이들을 이렇게나 웃음 짓게 하는 것일 수도.


“여러분, 오늘 하루 어떠셨나요? 잘 지내셨나요?”


장철이 연단 위로 올라섰다.

가벼운 농담을 해대며 사람들과 일일이 눈을 맞춰댔다.


코코가 내 바짓가랑이를 잡아끈 건, 바로 그때였다.


“왜? 뭔데 그래? 너 아휘랑 같이 있는 거 아니었어?”


“주님, 오늘 이곳에 새로운 자매님들이 주님을 뵙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그들을 축복해주시고 주님의 길로 인도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


나 말고도 가족과 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이곳에 들어와 있었다.

일어나 인사를 하자 사람들이 박수를 쳐댔다.


연설을 잇는 장철의 말이 내 신경을 잡아끈 것도, 바로 그때였다.


“인간들을 벌해 주십시오! 인간들은 주님의 길을 따르지 않습니다!!”


“뭔 소리야?”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한 이유는 타락한 인간들을 벌하기 위한 주님의 뜻이며, 지금의 시련은 곧 심판이 끝나면 회복할 거라 했다.


자신들만이 주님 인도 하에 천국으로 가게 될 거라고도 했다.

또한 주님의 역사를 이행할 자는 자신 외에는 없으니, 따르지 않는 자에겐 벌을 내려 그 뜻을 보여 달라 외쳤다.


“우리 사랑공동체 사람들 외엔 모두 사악한 악마의 자식이다! 나는 주님을 대신해 재림했으니 모두 나를 믿고 따를지어다!! 나를 의심하는 자 모두 지옥에 처박히리라!!!”


“굽어 살펴주소서!”


간절히 주님을 찾으며 우는 노인들, 장철을 찬양하는 아줌마들, 무릎 꿇고 비는 아저씨들, 심지어 아휘 또래거나 그보다 조금 더 나이 많은 남녀학생들이 가슴을 쳐댔다.


모두 집단 최면에 걸린 듯 했다.


“뭐지? 이 사이비스러운 기운은?”


그 순간,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불길함이 치솟았다.


내 바짓가랑이를 끌어대는 코코의 눈빛은, 처음 만났던 한강 하수도에서의 그 눈빛이었다.

그것은 단 하나만을 가리켰다.


“아휘 어딨어? 아휘에게 뭔 일 난 거야?”


예배당부터 나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다행히 난 문 가까이에 있었고, 사람들이 설교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빠져나올 수 있었다.


- 어디 가게요?


순간, 뚱보가 가로 막았다.


아휘에게 위험이 닥쳤다는 신호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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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남은 자들 152 25.02.17 14 0 9쪽
151 지구의 길 151 25.01.24 22 0 10쪽
150 지구의 길 150 25.01.23 16 0 9쪽
149 지구의 길 149 25.01.21 18 1 10쪽
148 지구의 길 148 25.01.20 18 1 9쪽
147 지구의 길 147 25.01.17 18 1 9쪽
146 지구의 길 146 25.01.16 17 1 9쪽
145 지구의 길 145 25.01.15 20 1 9쪽
144 지구의 길 144 25.01.14 19 1 9쪽
143 지구의 길 143 25.01.13 19 1 9쪽
142 지구의 길 142 25.01.10 20 1 9쪽
141 지구의 길 141 25.01.09 18 1 9쪽
140 지구의 길 140 25.01.08 19 1 9쪽
139 지구의 길 139 25.01.07 21 1 9쪽
138 지구의 길 138 25.01.06 18 1 9쪽
137 지구의 길 137 25.01.03 19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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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지구의 길 135 25.01.01 18 1 9쪽
134 지구의 길 134 24.12.31 19 1 9쪽
133 지구의 길 133 24.12.30 23 1 10쪽
132 선의 증명 132 24.12.04 31 1 9쪽
131 선의 증명 131 24.12.03 21 1 9쪽
130 선의 증명 130 24.12.02 22 1 9쪽
129 선의 증명 129 24.11.29 25 1 9쪽
128 선의 증명 128 24.11.28 20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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