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나 확 망해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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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astaiji
작품등록일 :
2024.05.08 10:11
최근연재일 :
2025.02.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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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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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악의 나라 52

DUMMY

*

채리가 날 불러 세웠다.


한참이나 머뭇거렸다.

할 말이 있는 것이리라.


“뭔데 그래? 잘생긴 얼굴 보니까 가슴이 막 뛰고 그래? 그래서 할 말이 생각 안나?”


“네.”


“야, 그 따위로 인정하지 마. 그게 더 기분 나쁘거든!”


“아휘 꼭 찾아서 오라고요. 그리고 조심하고요.”


“걱정하지 마. 꼭 찾아서 올 테니까. 근데 우리 어디서 만나지? 장소 정하자.”


“우선 아휘부터 데리고 도망쳐요, 최대한 멀리. 내가 아저씨 있는 곳으로 갈 테니까.”


“어딘지 알고 온다는 거야?”


“난 아저씨 찾을 수 있어요. 그곳이 어디라 해도.”


“네가 무슨 인간내비냐? 아, 몰라. 각자 일 끝나면 독산동 역으로 와. 1번 출구. 그 앞에 PC방 있거든. 거기서 만나.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워. 왜 말이 없어?”


“알겠어요... 아저씨?”


“왜 또?”


“우리... 우리 바다로 꼭 같이 가요.”


“당연하지. 바다로 꼭 갈 거야. 우린 그렇게 되어 있어. 아, 바다 가서 수영 가르쳐줄게. 아저씨 잠수 잘해.”


“나 수영 선수예요. 서울시 청소년대표. 침공 전에 출전했던 대회에서 3관왕 했어요. 자유형, 배영, 접영.”


“... 너 다시 보니까 겁나 반갑다.”


“빨리 아휘나 찾아요.”


본관 맞은편 교사로 휑하니 달려가는 채리였다.


훗, 지도 좋으면서.


믿음직했다.

뭘 하려고 하는지 모르지만, 채리라면 잘해낼 것이다.

슬핏 미소 띤 얼굴에선 자신감이 엿보였다.


그래, 채리야!

함께 바다로 가서 오순도순 살아보자꾸나!


“그 전에 아휘부터 찾아야지!”


**

“코코? 코코 어딨어?”


코코를 발견한 곳은 본관 중앙계단 밑 지하복도였다.

어둠이 짙어 선뜻 내려가기가 겁났다.


바깥은 소란스러웠다.

예배당에서 나온 뚱보와 사람들이 운동장에 쓰러져 있는 사내들을 발견했다.


“곧 이곳으로 들이닥치겠는데? 아휘가 있긴 한 거야? 너 잘못 온 거면 혼난다.”


코코가 책상과 의자들이 가득 쌓여 있는 복도를 내달렸다.


소묘 연습할 때 쓰는 석고상들이 노려봐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 했다.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공포영화에는 꼭 석고상들이 무섭게 등장하지 않는가!


그 순간, 복도 끝 교실에서 불빛이 새나오는 것이 목격되었다.

그곳이 목적지임을 코코가 알려주었다.


“음악실?”


음악실 팻말이 걸려있었다.

그런데 많은 쇠막대로 용접되어 있는 창문이었고, 검은 커튼 같은 것으로도 가려져 있었다.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게끔 하겠다는 의도인가?


살짝 벌어진 틈으로 안을 살폈다.

불꽃을 일렁이고 있는 수십 개의 촛불이 교실 가운데에 놓인 침대를 밝히고 있었... 그 위로 작디작은 그림자가 떨고 있었다.


아휘였다.


“아휘? 아휘야? 왜 옷은 벗고 있어?”


등진 채 앉아 있는 아휘는 알몸인 채였다.

이상하게도, 정말 이상하게도 실오라기 하나 걸쳐져 있지 않았다.


내 불길함과 코코의 의지가 여지없이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아휘야! 아저씨 왔어. 아휘야! 여기 좀 봐봐! 여기 좀 보라니까!!”


쇠막대를 흔들고 주먹으로 두들겼으나 미동조차 없었다.


지하 교실에 다섯 살 꼬맹이가 알몸인 채로 홀로 있다는 것은... 하, 상상이 너무 앞섰다.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상상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 순간, 교실 한쪽 벽이 좌우로 스윽 열렸다.

사람 그림자가 바닥으로 길게 떨어졌다.


“장, 장철?”


조금 전까지 예배당에서 설교 중이던 장철이 교실로 들어섰다.

돋보기 안경을 썼지만, 그가 분명했다.


“뭐야? 지금 뭐하는 거야?”


장철이 입고 있던 가운을 벗어던지고 아휘에게로 향했다.

놈의 성기가 발기되어 있었다.


조금 전 내 머릿속에 들어찼던 수만 가지 상상들 중에, 가장 최악의 것이 현실로 나타나려 했다.


“가지 마! 아휘한테서 떨어져!! 아휘 만지지 말란 말이야!!!”


장철이 혓바닥을 길게 늘어뜨리고 아휘의 등을 핥아댔다.


아휘는 바르르 떨었다.


나는 일시에 몸이 굳었다.

모든 세포가 마비되었고, 형언할 수 없는 충격이 한꺼번에 덮쳐왔다.


두려움으로 물든 아휘의 떨림이 훅하고 다가갔다.

지금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다섯 살 꼬맹이의 소스라침이었다.


그것은 절망이었다.


뭘 한들 놈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절망감, 소리 없는 비명, 토해내지 못하는 눈물에 아휘는 휩싸여 있는 것이다.


“안, 안 돼... 사람이 할 짓이 아니야... 떨어져... 제발... 아휘한테 떨어져! 하지 마!! 당장 그 손 치우란 말이야!!!”


거꾸로 피가 솟는다는 게 이런 것일까?

죽어도 용서가 안 된다는 게 이런 것일까?

내 안에 불타는 살기가 그 살기일까?


나는 악마를 보았다.


인간성 회복이니 선한 영향력이니 사랑이니 씨부렁댔던 건 무엇이란 말인가?


듣기 좋은 말로 나를 현혹시킨 장철은 악마였고,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 같은 아휘에게 하는 짓은 악마의 짓거리였다.


날름거리며 아휘를 빨아대는 저 혓바닥을 반드시 뽑아내리라.


내 너를 죽이리라.

인간이 아닌 악마를 죽이리라.

나 또한 악마가 되리라!


“아휘, 아저씨가 갈게.”


복도에 있던 소화기를 들어 자물쇠를 내려쳤다.

워낙 힘이 잘 실린 덕분인지 한방에 부서졌다.

나는 주저 없이 문을 열고, 똑바로 총구를 겨눴다.


“멈춰, 개새끼야!!”


장철은 당황스런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그 틈을 타 달려온 아휘가 내 등 뒤로 숨었다.


어린 것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온몸이 떨리고 있었고, 그 몸부림은 그대로 내게 전달되었다.


왜 이제야 왔냐고, 날 왜 버려뒀냐고 하소연하는 듯 했다.

터지지 않는 입으로 꺼억대기만 해댔다.


아팠다.

애처로웠다.

몹시도 슬펐다.


이 말 못하는 어린 꼬맹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도대체 세상은 왜 이리도 엉망진창인 것인가?


나는 도대체 뭐하는 놈인가?


“아휘, 아저씨가 미안해. 너무 늦게 왔어. 지금부터 아휘가 아팠던 거 수십 배로 갚아 줄 거야. 아저씨 뒤에 꼭 숨어 있어.”


***

“진정하시죠. 위험한 물건도 들고 있는데.”


“네가 사람이야? 어떻게 아휘한테? 어떻게 다섯 살 밖에 안 된 애한테 그런 짓을?”


“아, 오늘 새로 온 분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인간성 회복? 선함? 사랑? 이딴 거였어? 이런 짓이나 하려고 그 딴 말들을 늘어놔? 네놈 변태욕이나 채우려고?”


정철은 대꾸 없이 침대 옆 서랍을 열어 담배를 꺼내 피웠다.

그럴 동안 교실을 둘러보았다.


사방 벽 전체에 방음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이유였다.

개새끼가 철저히도 준비한 것이다.


“당신, 사람 죽여본 적 없죠? 당신은 사람 죽이는 눈이 아냐. 당신은 날 못 죽여요. 내 장담하죠.”


“입 닥쳐. 당장이라도 쏠 수 있으니까.”


“당신 말대로 우린 인간성회복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그러기 위해선 사랑을 가져야 하죠. 워낙 흉흉하잖아요, 지금 세상은. 우리, 말로 합시다, 좋게 좋게.”


“지랄하지 마. 가장 흉흉한 건 너야. 아직도 모르겠어? 넌,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거야.”


“날 죽인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이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올 것 같나요? 천만에. 변하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당신은 여기서 빠져나가지 못해.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고. 그러지 말고 나와 함께 합시다. 우리 함께 좋은 세상 만들어 봅시다. 젖과 꿀이 흐르는 세상, 파라다이스, 해븐! 어때요? 생각만으로 흥분되지 않나요? 난 당신에게 그런 세상을 제공할 수 있어요. 자, 이제 총 내려놔요. 당신 목숨, 내가 책임지고 살려주죠.”


“닥치라고 했어, 닥치라고!”


“설마? 설마 당신?”


장철이 온몸을 들썩이며 웃기 시작했다.

눈물까지 글썽여대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미안해요. 너무 재미있어서 그만. 설마 당신, 나와 다른 인간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죠? 우린 다르지 않아요. 당신과 난 똑같죠. 모든 사람이 똑같아요. 원한다면 그 아이, 당신이 가져도 돼요. 내가 양보하죠.”


어떡하든 이성을 잡고 있으려 했지만, 이제 놓아도 될 시간이었다.


악마를 이성적으로 대한다는 건, 애당초 의미 없는 일이었다.

장철이 흘려대는 비웃음엔 나 또한 자신과 똑같은 악마란 걸 말하고 있었다.


틀렸다.

난 악마가 아니라 인간이니까.


“개소리 집어치워.”


탕!!!!!


총소리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올지도, 어쩌면 날 잡으러 오고 있을지도 몰랐다.

개의치 않았다.


난 네놈과 다른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싶었다.

때마침 내뱉은 놈의 말은 내 인내심의 끝을 보게 했다.


죽어라, 괴물아!


내가 쏜 총탄은 그대로 날아가 장철 이마에 정확히 꽂혔다.

내 사격 솜씨에 스스로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솟구친 피가 사방으로 튀는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다.


“이, 이게 뭐야? 이게 어떻게?”


장철이 내게 총구를 겨눈 건, 그때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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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지구의 길 150 25.01.23 16 0 9쪽
149 지구의 길 149 25.01.21 18 1 10쪽
148 지구의 길 148 25.01.20 18 1 9쪽
147 지구의 길 147 25.01.17 18 1 9쪽
146 지구의 길 146 25.01.16 17 1 9쪽
145 지구의 길 145 25.01.15 20 1 9쪽
144 지구의 길 144 25.01.14 19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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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지구의 길 134 24.12.31 19 1 9쪽
133 지구의 길 133 24.12.30 23 1 10쪽
132 선의 증명 132 24.12.04 31 1 9쪽
131 선의 증명 131 24.12.03 21 1 9쪽
130 선의 증명 130 24.12.02 22 1 9쪽
129 선의 증명 129 24.11.29 25 1 9쪽
128 선의 증명 128 24.11.28 20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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