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나 확 망해버려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완결

astaiji
작품등록일 :
2024.05.08 10:11
최근연재일 :
2025.02.24 09:00
연재수 :
157 회
조회수 :
13,700
추천수 :
288
글자수 :
647,337

작성
24.07.03 10:30
조회
44
추천
2
글자
9쪽

악의 나라 54

DUMMY

*

“아저씨, 난 왜 죽어요?”


“아휘?”


아휘는 자신이 왜 죽어야 했냐며 물었고, 난 대답하지 못했다.


원망의 눈빛으로 떠나는 것도 붙잡지 못했다.

그 모든 게 꿈인 줄은 알았지만, 그럼에도 너무 괴로웠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아휘를 지키지 못한 내 탓만 하다, 눈을 떴다.


- 깼어요?


“채리?”


채리의 몰골은 흉측했다.

심하게 폭행을 당한 듯 피가 흐르는 얼굴에다, 한쪽 눈두덩은 뜨지 못할 수준으로 팅팅 부어있었다.

뿐만 아니라 나무 기둥에도 묶여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우리가 왜 이 꼴로 있는 거지?”


채리가 주변을 살피라는 듯 고개 짓을 해댔다.


운동장이었다.


한복판에 나무 재단이 만들어져 있었고, 그 위 십자가 모양 기둥에 묶인 우리였다.

그러나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군중 속에 날 노리는 눈빛이 있다는 걸 곧 알게 되었다.


“자, 장철???”


분명한 장철이었다.


내가 산산조각을 내버린 그가 멀쩡히도 살아있었다.

현실감 없는 현실로 인해, 기어이 놈을 따라 나도 지옥으로 떨어진 게 아닌 가 싶었다.


“저놈이 어떻게... 어떻게 살아있지?”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다면 대체 뭘 믿어야 하는가?

설마, 지금까지의 일들은 내가 만든 환영일까?


놈이 불사신이 아닌 이상 살아있는 것은 불가능하잖아!


“아니야! 난 분명히 놈을 죽였어! 내 손으로 직접 죽였다고! 저놈은 살아있어선 안 돼. 이건 악몽일 뿐이야. 어서 깨어나, 이지구!”


“조용히 좀 해요. 그렇잖아도 죽을 판인데.”


“채리야, 나 살아있어? 살아있는 거 맞지? 저놈은 왜 살아있는 거지? 도대체 왜?”


“살아있어요. 근데 죽을 것 같다니까요.”


우린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처지에 놓여 있었다.


장철도 장철이지만, 탱크도 있었다.

부대원들과 공동체 사람들이 도열해 있었고, 그 중엔 빡빡이와 족제비도 있었다.


“저놈들은 모두 한패예요. 누가 누가 더 나쁜 놈들인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놈들이죠. 온갖 악행들만 해대는 놈들이니까.”


그때였다.

장철이 재단으로 오르고 있었다.


상처 하나 없이 멀끔했고, 웃음기까지 띠고 있었다.


“네놈이 어째서 살아있는 거지?”


“엄청난 일을 했더군요. 지구씨는 사람을 죽였어요.”


“네놈이 사람이었나? 하긴, 악마는 사람의 얼굴로 나타난다고 하더군. 그래, 맞아. 난 네놈을 죽였어. 분명하고 확실하게.”


“훗, 난 살아있어요. 눈앞에 산 사람을 죽였다니요? 그리고, 당신은 날 죽이지 못합니다.”


“닥쳐!”


장철에게 침을 뱉었다.

수그러져 있던 살기가 다시 끓어올랐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요. 성치 않은 몸 더 상합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만은 알고 있다. 널 죽여야 한다는 사실이야. 네놈이 열 번 백 번 살아나도 상관없어. 열 번 죽이고, 백 번 죽이면 되니까. 반드시, 반드시 널 죽인다.”


“그럴 기회가 있을지... 지구씨는 두렵지 않은가 보군요.”


묘한 일이긴 해도, 내가 죽을 거라는 무서움은 없었다.

기꺼이 받아들일 의향도 있었다.

살려 달라 애원하는 것도 볼썽사나운 짓이었다.


무엇보다 악마에게 내 영혼을 파는 짓은 죽는 것보다 싫었다.


한 가지 속상한 건 있었다.

한 정거장 밖에 남지 않은 독산동에 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집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에게, 바다로 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게 해주고픈 어머니에게, 안부조차 전하지 못한 불효한 아들로 남을 것이기에, 그것이 몹시 괴로웠다.


미안해, 엄마.

먼저 갈게.

날 용서해줘.


**

장철이 허리춤에 넣어둔 권총을 꺼내 향했다.


똑바로 주시했다.

너 같은 놈에겐 절대로 고개 숙이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여주련다.


“너? 너 이 새끼? 대체 너, 누구야?”


내가 죽였던 장철과 내 앞에 선 장철은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음악실 장철은 한기를 느낄 정도의 차가움이었다면, 지금 장철은 호감을 느꼈던 첫인상 그대로였다.

그러고 보니 안경을 쓴 것과 안 쓴 것도 달랐다.


그리고 손.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손가락 개수였다.

내가 죽인 장철은 육손이였다.

오른손 엄지 위로 새끼손가락 같은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지금 장철의 오른손과는 확연하게 구별되는 거였다.


“내 동생은 악마가 아니에요. 메시아를 따르는 종이었을 뿐입니다.”


“네 동생? 육손이 그놈이 네 동생이었다고?”


“그 애는 늘 숨었어요. 다른 이들과 다른 모습 때문에 자신을 돌연변이라고 여겼죠. 형으로서 미안했습니다. 동생 것을 내가 뺏은 건 아닐까, 받아야 할 사랑이 모두 나에게 온 건 아닐까. 그래서 의사가 되었죠. 동생을 고치고 양지로 이끌기 위해. 동생이 달라진 건 그때부터였습니다. 메시아인 나를 받아들이고 세상 밖으로 나왔어요. 천국의 길을 가르쳐주니, 스스로 걸어갔지요.”


나는 장철의 쌍둥이 동생을 죽였다.

내 앞에 악마는 내가 죽인 악마가 아니란 말이었다.


상관없었다.


두 놈은 똑같은 악마이니, 그놈이나 이놈이나 죽어 마땅할 놈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네놈도 메시아야? 그 새끼도 메시아라고 하던데? 뭔 놈의 메시아가 이리 많냐?”


“메시아는 누구나 될 수 있지요. 단, 나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천국의 길이라는 게, 꼬마나 겁탈하는 거였어? 그런 짓거리를 네가 가르치고, 그놈이 해왔던 거야? 훗, 소아성애자 변태 주제에 갖다 붙이기는. 쓰레기 새끼들.”


“메시아의 은총을 받아야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겁니다. 내 동생은 그 애를 천국으로 데려가고 싶었을 뿐이에요.”


“똥 싸고 있네. 니들 변태 짓거리가 무슨 은총이고 지랄이야? 고작, 고작 다섯 살밖에 안된 아이를 죽였어. 그 애가 무슨 잘못을 했지? 왜 죽어야 했냐고? 그놈과 네놈이 죽인 거야. 네놈들은 용서를 빌어야 해. 사이비 개똘아이 새끼들아!”


“악귀가 들어도 단단히 들었군.”


“이제야 알겠어. 네놈 속셈이 뭔지. 바다. 넌 바다에 관해 거짓말을 했어.”


내 머릿속을 쾅! 때리는 기억이 있었다.


내가 바다에 관한 얘기를 꺼냈을 때, 장철은 믿지 않았다.

그건 거짓이었다.

사람들의 희망을 자기 입맛대로 조종하려는 놈의 농간이었다.


목적은 빤한 거였다.

지가 만든 사이비 세상을 지키려는 것이다.


“내, 내가요?”


슬핏 눈동자가 흔들리는 장철이었다.

내 얼굴에 뜬 미소가 궁금하겠지.


자, 이제부터 네 거짓을 벗겨주마!


“넌 바다에 관해서 알고 있었어. 그곳으로 가면 살 수 있다는 것을. 그런데 넌 가지 않을 거라 했지. 왜? 네가 만든 사이비 세상이 무너질 테니까. 물어볼까? 여기 사람들이 바다에 관해 알고 있는지? 당연히 모를 거야. 네놈이 눈과 귀를 막았으니까. 너만이 메시아라 떠들어댔겠지. 이곳 사랑공동체, 이 사이비 세상을 지켜내기 위해. 인정해라. 넌 사람들을 여태껏 속였던 거야.”


“... 사람들이 날... 용서해줄까요? 진실을 알게 된다면 죽이려 들 텐데?”


“지 목숨은 아까운가 보지? 모든 사실을 말해. 용서를 하고 말고는 사람들이 결정할 문제야. 네놈에게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어.”


“내가 인정을 해야 하는군요. 그래요. 그래야 하는군요.”


장철이 사람들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내가 똑똑히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외쳐댔다.


바로 그거야!

사실을 말해!!

용서를 빌라고!!!


“자매님들, 여기 이 자매님이 말하길 내가, 이 메시아가 자매님들을 속였다고 합니다. 내가 바다에 관해 얘기를 안 했던가요? 모두 함께 바다로 가자고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사탄이라는 소리가 제일 먼저 들려왔다.

헛소리를 해대는 나는 사탄이니, 당장 죽이라는 것이다.


“지구씨, 이게 진실입니다. 사람들은 바다 대신에 메시아인 날 선택했지요.”


장철이 보란 듯 실소를 터뜨렸다.


놀라울 따름이다.

사람들은 바다에 관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왜 이곳에 남은 건가?

왜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하지 않는가?


역시나 결핍 때문인가?

결핍이라는 것이 진정 이 많은 사람들을 바보천치로 만든 것인가?


네가 뭔데 메시아인가?

네 말에 왜 우리가 따라야 하는가?

네가 진정 사랑인가?


단 한 사람, 딱 한 사람만이라도 놈에게 의문을 품었다면, 최소한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놀랍군 그래. 사람들을 잘도 삶아댔어. 인정이다, 시팔.”


“지구씨가 나에게 기회를 주었으니, 나도 기회를 드리죠. 이 아이를 죽이세요. 그럼 지구씨는 살려주죠. 메시아가 주는 마지막 기횝니다.”


“뭐? 채, 채리를 죽이라고?”


장철이 총구를 채리에게로 향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지구나 확 망해버려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7 남은 자들 157 25.02.24 35 0 11쪽
156 남은 자들 156 25.02.21 12 0 11쪽
155 남은 자들 155 25.02.20 16 0 10쪽
154 남은 자들 154 25.02.19 15 0 9쪽
153 남은 자들 153 25.02.18 13 0 9쪽
152 남은 자들 152 25.02.17 14 0 9쪽
151 지구의 길 151 25.01.24 22 0 10쪽
150 지구의 길 150 25.01.23 16 0 9쪽
149 지구의 길 149 25.01.21 18 1 10쪽
148 지구의 길 148 25.01.20 18 1 9쪽
147 지구의 길 147 25.01.17 18 1 9쪽
146 지구의 길 146 25.01.16 17 1 9쪽
145 지구의 길 145 25.01.15 20 1 9쪽
144 지구의 길 144 25.01.14 19 1 9쪽
143 지구의 길 143 25.01.13 19 1 9쪽
142 지구의 길 142 25.01.10 20 1 9쪽
141 지구의 길 141 25.01.09 18 1 9쪽
140 지구의 길 140 25.01.08 19 1 9쪽
139 지구의 길 139 25.01.07 21 1 9쪽
138 지구의 길 138 25.01.06 19 1 9쪽
137 지구의 길 137 25.01.03 21 1 9쪽
136 지구의 길 136 25.01.02 20 1 9쪽
135 지구의 길 135 25.01.01 20 1 9쪽
134 지구의 길 134 24.12.31 20 1 9쪽
133 지구의 길 133 24.12.30 24 1 10쪽
132 선의 증명 132 24.12.04 32 1 9쪽
131 선의 증명 131 24.12.03 23 1 9쪽
130 선의 증명 130 24.12.02 23 1 9쪽
129 선의 증명 129 24.11.29 26 1 9쪽
128 선의 증명 128 24.11.28 21 1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