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보물섬에 가고 싶어요

여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관심없고 CCTV 저리 가라 할 정도인 노인들을 피해야 하는 밀렵꾼의 마음이 급해졌다
ㅡ 나는 물고기나 잡으러 가야겠다
따라오라는 말인 줄 눈치챈 여자가 슬그머니 일어섰다
작살을 챙긴 노인들도 여자 뒤를 따랐다
아아악, 짜증이 솟구친 여자가 홱 째려보았지만 노인들에게는 삶의 활력이었다
'여자를 이용해서 팔 꺾인 노인에게서 비둘기 교육시키는 법을 알아내야 하는데'
마음이 급한 밀렵꾼이 물고기 잡는 척 무작정 여자 가까이 다가가서 속삭였다
ㅡ 내가 비둘기를
ㅡ 네?
파도 소리 때문에 밀렵꾼의 말을 못 들은 여자가 가까이 다가왔다
ㅡ 내가
푸핫, 밀렵꾼과 여자 사이로 장님 노인이 튀어 올랐다
으힛, 놀란 여자가 뒷걸음질 치다가 허리까지 오는 물에 넘어졌다
모든 노인들이 여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물에 빠진 여자가 가까이 있는 노인의 무릎 뒤쪽, 오금을 발로 찼다
무릎이 꺾인 노인이 넘어지면서 아수라장이 되었다
어푸, 어푸
노인들을 피해 멀리 헤엄쳐간 여자가 밀렵꾼 뒤에서 나타났다
밀렵꾼이 재빨리 속삭였다
ㅡ 팔 꺾인 노인을 구슬려서 비둘기 교육 시키는 방법을 알아내요
'비둘기를 구했구나'
'짜식'
밀렵꾼의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다가 놓은 여자가 허우적거리고 있는 팔 꺾인 노인에게 다가 갔다
여자 손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팔 꺾인 노인이 바닷물을 꿀꺽, 꿀꺽 마시면서 행복해했다
우아왁, 남성의 상징이 떨어질 뻔한 팔 꺾인 노인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여자가 손에 힘을 주고 있는데 장님 노인이 팔 꺾인 노인을 뒤에서 확 잡아 당긴 것이다
성난 노인들이 몰려왔다
ㅡ 진짜 이럴 거여?
ㅡ 이건 너무 하잖애
ㅡ 하 나 참, 어이가 없어서
ㅡ 내가 팔 병신보다 못한 게 뭔데?
여자가 새침하게 눈초리를 치켜떴다
ㅡ 할아버지들 하는 거 봐서 해줄게요
물속으로 들어간 여자가 멀리 헤엄쳐 가 버리자 노인들의 도끼눈이 팔 꺾인 노인을 향했다
한마음이 된 노인들이 팔 꺾인 노인을 물 속에 쳐박았다
ㅡ 어푸, 어푸, 내가 잘 난 건 어쩔 수가 없다고
ㅡ 한 10년은 물 밖으로 못 나오게 해
ㅡ 찬성이다
ㅡ 살려엌푸
여자 덕분에 비둘기 날리는데 성공한 밀렵꾼이 감격에 겨운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신난 밀렵꾼이 씩씩하게 말했다
ㅡ 어르신들 몸 보신 좀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밀렵꾼이 다리 하나 뜯겨나가고 세 발이 된 고라니를 가리키자 만장일치로 찬성이 나왔다
노인들이 고라니 목을 비트는 동안 나무를 해온 밀렵꾼 덕분에 저녁 식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지난번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오늘은 고기가 익을 동안 아무 말도 안 하기로 했다
눈도 안 마주치기로 했다
무한정 얻을 수 있는 소금과 소금술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모두의 얼굴이 기대로 가득했다
장님 노인이 코를 킁킁 거렸다
ㅡ 된 것 같다
ㅡ 난 바싹 익혀줘
장님 노인이 지팡이를 치켜들자 밀렵꾼이 말렸다
ㅡ 고기 먹을 때만큼은 참으세요
고기를 죽죽 찢어 주고 바싹 익을 것을 원하는 노인은 바싹 익힌 고기를 주었다
오랜만에 먹는 고기에 음식 씹는 소리밖에 안 들렸다
허허허허, 허허허허, 입에 고기 기름이 번지르르한 노인들이 별 이유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남학생 아버지와 어머니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고래고래 싸우면서 통화를 하고 난 다음날 남학생 어머니가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갔다
짜증이 머리끝까지 차 있는 어머니를 본 남학생이 아무 말도 안 했다
아들이 여전히 제대로 된 말을 못 하는 줄로 알고 있는 어머니 또한 어떤 말도 건네지 않았다
새로 이사한 집 거실에 남학생을 덩그러니 놓아둔 어머니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방문마다 턱이 있는, 휠체어 이용하기 불편한 집에서 남학생이 아등바등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들을 보자 좋은 생각이 난 남학생 어머니가 남자 간병인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몇 시간 동안 이력서를 봤지만 마음에 드는 얼굴이 한 명도 없었다
ㅡ 그놈이 딱이었는데
다음날, 수감되어 있는 간병인에게 어느 때보다 화장이 진하고 도도한 남학생 어머니가 찾아왔다
...
말없이 노려보는 남학생 어머니의 시선을 묵묵히 받던 간병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ㅡ 험한꼴 겪었을 텐데 누님은 여전히 예쁘네요
ㅡ 하!
마구 쏘아주려고 단단히 벼르고 갔는데 간병인의 말에 기분이 좋아져 버린 남학생 어머니가 미소를 지을까 봐 입을 앙다물었다
ㅡ ...
ㅡ 나 사랑해?
ㅡ 하, 이 누님 아직 정신 못차리셨네
ㅡ 아들이나 잘 보살펴요
ㅡ 흥, 지 팔자 지가 꼬았으니까 지가 감당해야지
ㅡ 누님은 빨리 나왔네요
ㅡ 집행유예로 나왔어, 변호사 사는데 돈 들어간 거 생각하면, 으으
돈에 관한 질문을 하기 좋은 타이밍인데, 질문하고 나면 간병인과의 인연이 깨끗하게 끝나버릴까 봐 걱정스러운 남학생 어머니가 머뭇거렸다
이를 눈치 챈 간병인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
ㅡ 내 캐리어를 찾을 수가 없어요
ㅡ 뭐? 그럼 네가 가져간 통장이랑 서류는?
간병인이 말없이 어깨만 으쓱거렸다
가방에서 서류를 꺼낸 남학생 어머니가 간병인의 눈앞에 들어 올렸다
ㅡ 여기 서명하면 내가 찾을게
ㅡ 싫어요
ㅡ 왜? 왜 싫어?
ㅡ 어차피 나 주려고 한 거잖아요
ㅡ 줬다고 생각하고 잊어요
ㅡ 캐리어 못 찾은 거 거짓말이지?
ㅡ 그 돈 있으면 감방에서 황제노릇하고 있겠죠
ㅡ ...
ㅡ 누님은 그 돈 없어도 돈 많죠?
ㅡ 돈 많으면 다시 나한테 올래?
ㅡ 돈이 없어야 되는데..
ㅡ 으응?
ㅡ 이제까지 뭐든 돈으로 해결했잖아요
ㅡ 돈이 없어봐야 정신을 좀 차릴 텐데
ㅡ 으응?
ㅡ 이제 나 찾아오지 말아요
간병인이 미련 없이 돌아서자 조급해진 남학생 어머니가 유리문을 두드렸다
ㅡ 자기야, 자기야, 그게 무슨 말이야? 응?
ㅡ ...
덩그러니 혼자 남은 남학생 어머니가 당황스레 눈을 깜박였다
돈도 못 찾고, 간병인에게 버림받고, 사업가 남편과 이혼해서 모임에 나갈 일도 없고, 태국에서 있었던 일이 소문나서 친구들 만나는 것도 꺼림칙하고, 할 일이 없어져 버린 남학생 어머니가 불나방처럼 술과 남자를 찾아 헤매고 다녔다
그동안 버림받아 혼자 집에 있는 남학생은 배를 채우기 위해, 화장실을 가기 위해,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하니까 몸의 마비가 서서히 풀리고 있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10분 만에 끝내는 일을 3시간, 5시간이 걸리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상태가 되면 만찢남과 반장에게 전화했다
남학생과 집의 상태에 기겁한 처음 이후로 스스럼없이 청소해주고, 몸 씻겨 주고, 밥 먹여주고, 남학생의 팔이 닿는 곳에 물건을 옮겨 놓아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만찢남과 반장, 세 사람의 사이가 어느새 돈독해져 있었다
처절한 노력 끝에 상체는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게 된 남학생이 만찢남과 반장에게 말했다
ㅡ 난 복수를 해야겠어
멈칫한 만찢남이 조심스레 물었다
ㅡ 누구한테?
ㅡ 우리 아버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는 만찢남을 보던 남학생이 불쑥 말을 꺼냈다
ㅡ 간병인과 무슨 사이야?
ㅡ 어? 어...... 삼촌
ㅡ 그래, 나도 너한테 못할 짓 많이 했으니까 쌤쌤이로 치자
ㅡ 콜?
ㅡ ..응
ㅡ 아버지한테 복수하려면 돈이 필요해
ㅡ 그래서 난 보물섬에 갈 거야
여태 가만있던 반장이 입을 열었다
ㅡ 미친 거야?
남학생이 쪽지를 내밀었다
ㅡ 이것 봐, 저기 베란다에 있는 비둘기 발에 묶여 있었어
< 나의 귀요미 신부에게
이제서야 당신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운명의 질투인지 배가 파선되었소
여기는 싣고 갈 금이 많으니 튼튼한 배를 타고 나에게로 와 주시오
나에게 오는 길은 비둘기가 알려줄거요
02 ㅡ 010 ㅡ 0100 >
이성적인 반장이 코웃음을 쳤다
ㅡ 딱 봐도 장난이잖아
남학생이 창문이 열려 있는데도 날아가지 않고 베란다에 있는 비둘기를 가리키면서 흥분했다
ㅡ 비둘기를 훈련시키면서까지 장난을 이렇게 고급으로 친다고?
쪽지를 찬찬히 다시 읽어 본 만찢남이 핸드폰을 들었다
ㅡ 그럼, 여기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해 보고 결정하자
ㅡ 콜
ㅡ 이렇게 넘어가면 사기를 당하는 거라고
ㅡ 사기 당하는 거 한순간이야
ㅡ 전화해 봐, 아니 핸드폰 줘 봐, 내가 해볼게
말리는 반장을 뒤로하고 비장한 남학생이 전화번호를 눌렀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ㅡ 경호야?
ㅡ ...
ㅡ 경호 맞지? 경호야
ㅡ 저기.. 음.. 귀요미 신부 되십니까?
픕, 통화 내용을 듣고 있는 만찢남과 반장이 웃음을 터트렸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물기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ㅡ 네가 내 신랑이야?
ㅡ 아니요, 저 아닌데요, 절대 저는 아닙니다
놀란 남학생이 극구 부인했다
ㅡ ...
ㅡ ...
ㅡ 만나자
당황한 만찢남이 친구들을 보았다
ㅡ 주소 보낼께
뚜뚜뚜..
끊긴 전화를 보는 남학생이 당혹스러워하는데 문자가 띠링, 왔다
ㅡ 히익, 주소 왔어, 어떡해?
ㅡ 서울이야?
ㅡ 지역번호가 02였으니까 당연히 서울이지
ㅡ 짜식, 긴장했구나?
ㅡ 더 긴장해야 돼
ㅡ 왜?
ㅡ 서울 중에서도 땅 값 제일 비싼 동네야
만찢남과 눈을 마주친 남학생이 문자에 적힌 주소로 지도 찾기를 했다
검색 결과를 친구들에게 보여 준 남학생이 반장을 보았다
ㅡ 찾아갔다가 신장 떼이고 이러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때?
무의식 속에 장기적출 트라우마가 생겨 있는 남학생이 장기 이야기를 꺼내며 친구들을 설득했다
눈빛을 주고받은 세 사람이 쪽지와 비둘기를 챙겨서 집을 나섰다
3대 회장, 3대 손자, 남학생, 만찢남, 반장이 소파에 앉아 있고 130 담당과 식사 담당은 주방 벽에 달라붙어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다
쪽지를 본 3대 손자가 감격에 젖은 얼굴로 일어섰다
ㅡ 할아버지 요트 좀 쓸께요
ㅡ 예끼, 쪽지 한 장 달랑 보고, 저런 쯧쯧쯧
ㅡ 할아버지도 알잖아요, 귀요미 신부가 나한테 어떤 의미인지
ㅡ 내가 집 전화번호를 절대 못 바꾸게 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잖아요
마음에 안 드는지 고개를 팩 돌리는 3대 회장을 보자 3대 손자가 기다란 소파에 드러누웠다
ㅡ 할아부지, 후앵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청소년 세 명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ㅡ 나 갈 거야, 비둘기 따라 갈 테야
3대 손자가 꼬구라지다시피 앉아있는 3대 회장의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ㅡ 할아부지도 같이 가요
ㅡ 어차피 이제 회장도 짤리고 쪽팔려서 밖에도 안 나가잖아요
ㅡ 손님도 계시는데 그런 얘기를, 흐음
ㅡ 뭐, 어때? 다시 볼 사이도 아닌데
똑바로 앉은 3대 손자가 청소년 세 명을 쳐다보았다
ㅡ 계좌 불러
ㅡ ...
ㅡ 현금은 안 돼, 할아버지가 철문
ㅡ 쓰읍
비장한 눈빛을 한 남학생이 허리를 쫙 펴고 입을 열었다
ㅡ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ㅡ 그 몸으로?
남학생이 그동안 갈고 닦은 휠체어 쇼를 보여 주었다
자신을 업고 수족이 되어 줄 경호가 없어진 3대 회장의 눈이 반짝였다
무슨 소문이 어떻게 돌고 있는지 평균치를 넘는 실력을 갖춘 경호는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지원한 경호들은 도무지 마음에 차지 않아 아직까지 경호를 못 구하고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3대 회장의 구미가 당겼다
3대 회장이 입을 열려는데 3대 손자의 대답이 더 빨리 나왔다
ㅡ 안 돼
3대 손자의 거부에 남학생의 눈썹이 삐죽 솟았다
ㅡ 왜요?
ㅡ 할아버지 두 분이서만 가시는 것보다 젊은 사람 세 명 더 데려가시면 든든하잖아요
응?, 섬에 가려는 생각은 해보지도 않은 만찢남과 반장이 남학생을 쳐다보았다
ㅡ 내가 거길 왜 가?
ㅡ 그럼 나 혼자 보낼 생각이었냐?
ㅡ 응
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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