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 노인의 예전 직업

이미 자리 잡고 누워 있는 노인들 한가운데를 파고들던 남자가 누군가의 허벅지를 밟고 휘청거리면서 꼽추 노인을 떨어뜨렸다
ㅡ 으어, 내꺼
아오, 허벅지 밟힌 노인이 남자의 등을 철썩 때리면서 짜증을 냈다
ㅡ 늦게 왔으면 끝에 누우라고
ㅡ 덩치는 산만한 게 겁은 많아가지고
투덜거리면서도 자리를 내주던 한 노인의 손에 남자가 밧줄로 감아 놓은 것이 스쳤다
멈칫
흐흐, 손에 스친 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 챈 노인이 슬쩍 일어났다
ㅡ 오늘은 아무한테서도 똥내가 안나니까 멧돼지나 뱀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불을 피우자고
ㅡ 뭐 하러!
꼽추 노인이 소리를 빽 질렀지만, 이미 신난 노인을 막을 수 없었다
불붙인 장작을 항상 두는 곳에서 들고 일어선 노인이 괜히 주위를 휘 둘러 비췄다
ㅡ 다들 잘 있지?
ㅡ 잠 깨게 뭐 하는 짓이야?
ㅡ 흐미, 저게 뭐여?
짓궂은 웃음을 참는 노인이 불을 꼽추 노인에게 가까이 가져다 댔고 모든 노인들이 일어나서 구경했다
튀어나올 것 같은 꼽추 노인의 눈이 이글이글 노려보았지만 불을 든 노인은 즐겁기만 했다
ㅡ 네가 이랬냐?
ㅡ 내껀데, 도망가잖아, 그래서 묶었어
간단명료한 남자의 설명에 혹시나 다음에 잡혀도 도망치면 안 되겠다, 다짐하는 노인들이었다
꼽추 노인을 비웃을 만큼 비웃은 노인들이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근육질 남자 세 명을 품에 안은 노인 세 명 외에는 꿀잠 중인 한밤중에 여자가 낮에 일을 생각하며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기어코 내 손으로 모래 구덩이를 끝까지 파게 만들 것 같은데'
'이제는 영감탱이들이 날 여자라고 봐주지도 않고'
'어차피 닳고 닳은 몸뚱어리, 진작에 염감탱이들한테도 베풀었어야 했나?'
노인들이 누워 있는 곳으로 기어간 여자가 제일 끄트머리에서 자는 노인의 거시기를 움켜잡았다
노인이 움찔, 하더니 격렬하게 발버둥 치다가 저 멀리 도망가 버렸다
ㅡ 싫어, 싫어
ㅡ ...
ㅡ 왜 저래?
혼자 머쓱해 한 여자가 옆의 노인의 거시기를 움켜잡았다
앞의 노인과 똑같은 반응을 보이고는 도망가려다가 줄줄이 누워 있는 노인들 위로 엎어졌다
자다가 날벼락 맞은 노인들이 꿈쩍, 놀라면서 깼다가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눈앞에 누가 있는지도 안 보이는 깜깜한 공간에 움직이는 불빛이 보인 것이다
ㅡ 저것이 뭐여?
밀렵꾼의 눈이 번쩍, 떠졌다
ㅡ 배다
날이 밝았다
3대 회장의 새하얀 요트가 섬에 닿았다
배에서 내리기 전 망원경으로 섬 구석 구석을 살피는 사람들이 갸우뚱, 거렸다
ㅡ 여기 맞아?
ㅡ 사람이 있던 흔적이 없는데?
3대 손자가 섬을 날아다니는 비둘기를 가리켰다
ㅡ 비둘기를 보면 제대로 온 것 같은데
3대 손자가 심호흡을 하고 큰 소리로 외첬다
ㅡ 귀요미 신부가 왔다
노인들의 손아귀를 빠져나온 밀렵꾼이 모습을 보였다
누군가 나타나자 기대에 찼던 3대 손자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ㅡ 녹조 바다 같이 더러운 저건 뭐야?
밀렵꾼은 배 위에 있는 3대 회장, 3대 손자, 남학생, 만찢남, 반장을 둘러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여자도 없는데 귀요미 신부가 누구야?'
밀렵꾼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저건 뭐야?'
배 표면에 매달린 덩어리 2개를 보는 밀렵꾼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설마 저게 여..자?'
일주일 이상 되는 시간을 산악용 로프 여러 개에 매달려 있었던 130 담당과 식사 담당이 20년은 늙은 모습으로 기진맥진해 있었다
온몸에 딱 달라붙는 고무 잠수복에 방수 털모자, 방수 장갑, 무릎까지 오는 고무 장화를 신고 방수 가방에 먹을 거리와 마실 것을 바리바리 준비했었던 130 담당과 식사 담당의 가방이 여전히 빵빵했다
부득이한 상황이니까 배설물은 어쩔 수 없이 바다에 투척하는 수밖에, 라며 웃던 130 담당과 식사 담당이 배설물을 옷 안에 간직한 채 일주일을 지내는 바람에 식욕이 뚝, 떨어진 것이다
밀렵꾼의 시선에 요트 위에 있던 사람들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ㅡ 뭐 있어?
ㅡ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3대 회장이 밀렵꾼에게 소리쳤다
ㅡ 자네 뿐인가?
노인들이 힘으로 잡고 있을 수 없는 근육질 남자 세 명이 나타났다
3대 손자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ㅡ 내려가자
신난 발걸음으로 요트에서 내리는 3대 손자 뒤로 위엄있는 탱크같은 휠체어가 나타나더니
탕, 탕, 탕, 탕
밀렵꾼과 남자 세 명이 쓰러졌다
ㅡ 할아버지
기겁한 3대 손자가 소리쳤지만 요트에서 내려가는 3대 회장의 얼굴에는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퍽, 모래사장에 내려간 3대 회장이 옆으로 픽, 넘어갔다
ㅡ 할아버지
돌아보는 남학생도 날아오는 돌에 맞아 옆으로 쓰러졌다
퍽, 퍽, 퍽
날아오는 돌에 맞은 3대 손자, 만찢남, 반장이 쓰러졌다
잠시 후
으으음, 기절했던 남학생이 깨어나 보니 배에서 내리려던 일행들이 모랫바닥에 파묻혀 있고 모두가 얼굴만 내민 채 기절해 있었다
ㅡ 아이고, 허리야, 다 묻었어
ㅡ 이제 배 안에 뭘 싣고 왔는지 어서 가보세
ㅡ 흐흐흐, 김치 있으면 좋겠다
ㅡ 킬킬, 기대 한 번 쪼잔하구만
ㅡ 꼽추, 어서 가 보자니께
요트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던 꼽추가 마음을 정하려는데
ㅡ 저놈 깼어
남학생이 눈 뜨고 있는 것을 들켰다
ㅡ 지가 깼으면 깬 거지
노인의 발길질에 남학생의 얼굴로 모래가 푸악, 날아들었다
켁켁, 다행히 눈에 모래가 들어가지는 않았다
몸을 돌릴 수 없는 상태라 제한된 시야속에 누군가가 지나갔다
...응?
ㅡ 윤리쌤!
남학생의 고함에 걸어가던 장님 노인의 움직임이 그대로 멈췄다
ㅡ 윤리쌤, 착한중 윤리쌤 맞죠?
ㅡ 한 학기하고 사라진..
ㅡ ...
타국에서 옆집 아저씨를 만난 기쁨이던 남학생이 멈칫거렸다
'윤리쌤 아닌가?'
노인들의 시선이 굳어 있는 장님 노인에게 쏠리더니 동시에 배를 부여잡고 웃기 시작했다
ㅡ 크허허허허, 크허허허, 윤리쌤이라니
ㅡ 다른 사람도 아닌 장님이 윤리 선생님이었다니
ㅡ 크하하하, 크하하핫
ㅡ 윤리가 다 얼어 죽었겠네
ㅡ 입 닥치지 못해
ㅡ ...
장님 노인의 버럭질에 몇 초동안의 정적이 이어지더니 노인들이 눈물까지 흘리면서 동시에 웃어제꼈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ㅡ 윤리라니, 윤리라니, 낄낄낄
ㅡ 저 녀석 선생이었으면 나이도 우리 중에 제일 어린거 아녀?
ㅡ 아따, 폭삭 삭은 얼굴이 지 나이가 아니었다고라?
ㅡ 다들 닥치라고 했지?
장님 노인의 주머니에서 나온 왕가시 무기가 날아가더니 꼽추 노인의 고추를 맞췄다
아악, 숨이 턱 막힌 꼽추 노인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보기만 해도 아파보이는 것이 다리 사이에 꽂혀 있었다
양다리를 벌리고 살며시 왕가시 무기를 뽑는 꼽추 노인의 손등에 장님 노인이 던진 돌멩이가 날아왔다
왕가시 무기를 스스로 자기 고추에 찔러박은 꼽추 노인의 입에서 길고 긴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악
사타구니를 가린 노인들에게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ㅡ 어제부터 꼽추의 고추 수난 시대여, 크허허허
눈을 찔끈 감고 왕가시 무기를 뽑자 꼽추 노인의 다리가 벌벌 떨렸다
ㅡ 내 이놈들을
어기적거리면서 걸어간 꼽추 노인이 총 맞고 쓰러져 있는 밀렵꾼에게서 쇠사슬을 끄집어냈다
눈치 빠른 노인들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ㅡ 니들도 당해 봐라, 으아악
뛰지 못 하는 다리 저는 노인이 일단 바닥에 엎드렸다
도망치기에 시간이 부족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노인들도 엎드렸다
꼽추 노인 손에서 휘몰아치는 쇠사슬은 부리나케 도망가던 노인들의 등을 때렸다
커흑, 쇠사슬에 맞은 노인들이 한 방에 정신을 잃었다
마네킹 넘어지듯이 꼬구라지는 노인들을 보며 미리 바닥에 엎드렸던 노인들이 네발로 기어 도망가기 시작했다
'쇠사슬이 못 미치는 곳으로 도망쳐야 한다'
눈빛이 번쩍거리는 꼽추 노인이 처음 돌려보는 쇠사슬을 세심하게 조절했다
휘몰아치는 쇠사슬이 기어가던 노인들의 엉덩이를 내려쳤다
눈에 불이 번쩍 튀긴 노인들이 풀썩 엎어졌다
엉덩이를 내밀고 기절한 노인은 날아오는 쇠사슬을 한대 더 맞고 옆으로 쓰러졌다
크하하핫, 미친 듯이 쇠사슬을 돌린던 꼽추 노인이 만족스러워하며 팔에서 힘을 뺐다
힘착게 돌아가던 쇠사슬이 꼽추 노인의 몸을 힘차게 휘감았다
쇠사슬에 휘감긴 꼽추 노인의 몸이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
상황 제공자인 남학생이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충격을 받았다
모든 사람이 보이지는 않지만 보이는 모두의 얼굴이 시퍼런데다가 하는 행동도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었다
금덩어리고 나발이고 빨리 이 섬을 떠나야겠다, 싶은 남학생이 아직 기절해 있는 일행들을 불렀다
ㅡ 야, 일어나, 눈 떠, 새끼들아
ㅡ 할아버지, 정신 좀 차려보세요
3대 회장이 힘겹게 눈을 뜨자 130 담당과 마주 보고 있었다
ㅡ 흐억, 이놈은 누구냐?
ㅡ 이 섬에 우리 말고 금 캐러 온 사람이 또 있는 게냐?
130 담당도 힘겹게 눈을 떴다
ㅡ 저예요 할아버지, 130 담당
ㅡ 130 담당? 헉
ㅡ 넌 요트에 타지도 않았는데 여길 어떻게 온 게야?
ㅡ 요트에 매달려서 왔어요
ㅡ 미친년
130 담당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ㅡ 여기까지 온 이상!
ㅡ 금은 먼저 찾는 사람이 임자예요
ㅡ 그려려무나, 대신!
ㅡ 집에 갈 때 내 요트에 탈 생각 마라
ㅡ ...
ㅡ 금덩어리 하나 줄게요
ㅡ 그걸로?
ㅡ ..두 개요
ㅡ 네가 얻은 것에.. 반!
ㅡ 씨발, 도둑놈 새끼
ㅡ 무..뭐?
남학생이 조급하게 외쳤다
ㅡ 지금 금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ㅡ 빨리 이 섬을 빠져나가야 해요
ㅡ 주위를 봐요
ㅡ 미친놈들 소굴에 잘못 왔어요
턱까지 모래에 파묻혀 있는 사람들이 힘겹게 주위를 살펴보았다
살랑이는 치마가 지나갔다
ㅡ 응? 뭐지?
잠자코 기다리고 있던 여자가 육지에 숨겨둔 돈을 생각하며 황홀한 상태로 요트로 뛰어갔다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는 노인들 사이를 지나가며 공중에 돈 뿌리는 상상을 하는 여자가 두 팔을 하늘 높이 올리고 한 바퀴, 두 바퀴를 돌다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하필 그 자리에는 꼽추 노인의 고추에서 빠진 왕가시 무기가 놓여 있었다
커읍, 모래 구덩이 파다가 노인들에게 왕창 얻어맞은 엉덩이에 왕가시 무기가 콱, 박힌 여자가 비명도 못 지르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장님 노인의 돌팔매질로 요트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기절시킨 이후 모든 섬 노인들이 숨어 있던 숲에서 나왔을 때, 꼽추 노인이 3대 회장 일행을 모래에 파 묻어라고 지시하면서 총에 맞은 밀렵꾼과 근육질 남자 세 명의 지혈도 지시했었다
요트 탐험 등, 할 일이 많은데 지독한 냄새에 방해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응급처지를 받은, 총 맞은 네 명에게서 고약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요트에서 당황스러운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던 경호 일행이 지독한 냄새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쌌다
경호가 비틀거리면서 일어섰다
ㅡ 안 되겠어, 내가 가 볼게
ㅡ 아니야, 정장 언니가 나랑 같이 가요
ㅡ 그래요, 경호 아저씨는 뒤에서 우리를 호위해 줘요
경호에게 총을 쥐어 준 정장 도우미와 동생이 구급약통을 들고 요트에서 내렸다
의식이 돌아와 꿈틀거리는 노인이 있는지 매의 눈으로 살피는 경호의 든든한 호위 속에 정장 도우미와 동생이 남자 네 명에게 다가갔다
아직 엉덩이에서 왕가시 무기를 못 뺀 여자가 움직이는 그림자에 고개를 들었다가 기절해 있는 노인들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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