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29화. 사신부대의 첫 작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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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부대원들에게 휴식을 명령한 카인은 맨바닥에 앉아 숨을 헐떡이며 쉬고 있는 그들을 돌아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군들 지치지 마라, 우리가 목표를 놓치면 출발하기 전에 보았던 A-28지역 병사들의 목숨은 이 세상에 없다.”
부대원들은 일절 답하지 않고, 강한 눈빛으로 카인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장에서 큰소리를 스스로 억제하는 행위는 기존의 수준 높은 훈련을 통해 실전연습이 제대로 되어 있다는 뜻이다.
‘15일이라··· 이때쯤이면 벌써 크고 작은 전투가 몇 번이고 펼쳐지고 있겠군,
빨리 오크 킹이 있는 곳을 찾아야 하는데.’
전생에서도 오크 킹의 군락지를 찾는데 꽤나 고생했었다.
걸린 기간은 대략 3개월 정도?
‘젠장! 어디에 숨어있는 거냐···.’
쉬면서 한참을 고민하던 카인의 코끝에 시큼한 향이 스며들었다.
‘이건···? 포도향이네. 이 근처에 포도밭이 있나 보군.’
별생각 없이 다시 출발하려고 일어난 카인에게 문득 잊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오크들의 주식은 오로지 육식이었지.
단 1마리만을 제외하고!!’
카인의 생각대로 오크들은 오로지 육 고기만을 먹는 종족이었다. 다만 개체 중 유일하게 높은 지혜(?)를 갖고 있는 오크 킹은 자신의 건강을 생각해 간혹 대량의 과일들을 일정 기간에 몰아서 섭취하곤 했었다.
‘포도밭을 일구는 인간도 없는 지역에서 포도향이 이렇게 진하게 풍겨 온다? 답은 하나지.’
카인은 바로 부대원들에게 포도향의 진원지를 찾으라고 지시했다. 명령을 받은 그들은 현 지점을 중심으로 두고 사방으로 흩어져 주변을 세밀하게 수색했고, 잠시 후 돌아온 부대원 중 한명에게 카인은 좋은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대대장님, 기존 오크보다 덩치가 4배는 큰 존재가 포도를 다량으로 섭취하고 있습니다.”
‘찾았다, 오크 킹!!’
그의 예상을 적중하였다.
“주둔하는 오크의 마리 수는?”
“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대략 100마리 정도는 되어 보입니다.”
오크 개체들 중에서도 지혜를 가진 똑똑한(?) 오크 킹이다. 절대로 위험하게 혼자서 이동은 하지 않는다.
“잘 들어라. 오크는 목이 잘리지 않는 한 죽지 않는다. 반대로 그들 손아귀에 잡히면 인간은 바로 죽은 목숨이지.
시간도 숫자도 부족한 너희들이 노려야 할 곳은 바로 여기다.”
카인은 자신의 발쪽을 보며 손가락으로 뒤축을 가리켰다.
“여기는 근육이 없어서 빠른 시간 내에 오크들에게 충분한 타격을 줄 수 있을 거다. 뒤축을 베이는 동시에 오크들은 육중한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무게중심을 잃어 바로 쓰러지지.”
한참을 듣던 스미스 소위가 말했다.
“대대장님, 그럼 양쪽 발목의 뒤를 그어 버리면 되는 겁니까?”
카인은 냉소를 지으며 스미스의 머리를 톡하고 치고선 말했다.
“양쪽 벨 시간이 어디 있나!! 한쪽만 그어도 시간이 부족 할 거다.”
“아······.”
고개를 끄덕거리는 대다수의 부대원들을 보니 말 안 해줬으면 큰일 날 뻔했다.
‘어차피 밤눈이 좋은 오크들이다, 지금 보다 시간이 더 늦어지면 오히려 우리에게 불리하겠지.’
“작전은 지금으로부터 5분 뒤 시작한다. 다시 한번 장비정검하고 모두 명령대기 해.”
“넵.”
부대원들은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후우-”
하늘의 준 기회였다.
오크 킹이 포도를 먹은 뒤 원래 있던 군락지로 돌아간다면 더 많은 수의 오크들과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카인은 오른쪽 손목의 검은 해 문신에서 혈검을 소환해 강하게 쥐었다. 흐르는 1분, 1초 동안에 A-28지역의 병사들은 목숨을 잃고 있을지도 모른다.
5분 뒤 대대장 카인 중령의 조용한 목소리가 부대원들의 귓가에 송곳같이 꿰뚫었다.
“가자.”
카인은 선두에 서서 빠르게 달렸고, 32명의 사신부대 검사들은 그의 뒤를 따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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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다.’
앞서 보고를 받은 대로 오크 킹은 육중한 몸을 바닥에 드리운 채 쌓여 있는 포도나무를 통째로 씹어 먹고 있었다.
“흩어져!! 오크 킹은 내가 맡는다.”
카인의 지시에 일사불란하게 흩어진 부대원들은 주변 오크들의 시선을 본인들에게 돌렸다. 이유는 대대장이 오크 킹으로 향하는 길목을 열어 주기 위함이었다.
쿵-
머리 위에서 쏘아지는 거대한 주먹이 강한 풍압과 함께 왼쪽 지면에 꽂혔다. 카인은 내려오는 권을 작은 간격을 두고 회피하고는 눈앞의 오크를 빠르게 지나쳐 계속 달렸다.
일반 오크들을 상대할 시간은 없었다.
오크 킹을 놓치면 작전은 끝이다.
카인의 시선은 처음부터 오로지 한 놈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콰당-
육중한 오크가 지면에 쓰러지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온다.
“으악-”
부대원들 중 한 명이 오크의 손아귀가 잡힌 듯했다.
탁- 탁- 탁-
모든 소리를 외면한 채 카인은 오크 킹을 향해 끊임없이 질주했고, 곧 거대한 몸을 가진 놈과 대면할 수 있었다.
크르릉-
오크 킹의 눈은 먹이가 자신에게 제 발로 찾아왔냐는 듯 거만했다. 그리고 바로 거대한 주먹을 휘둘러 강한 풍압과 함께 주먹질을 거침없이 해 왔다.
타탁-
카인은 날아오는 주먹을 향해 오히려 달려들었고, 놈의 육중한 팔에 올라탄 후 점프를 하여 오크 킹의 눈에 혈검을 깊이 찔러 넣었다.
크르르르르릉-
거대한 육체가 거친 울음과 함께 산 전체를 울렸다.
서걱-
눈을 찌르고 지면에 발이 닿자마자 오크 킹의 왼쪽 뒤축을 베었다.
크르르르르릉-
더욱 우렁찬 소리와 함께 무게중심이 무너지며 오크 킹은 왼쪽 무릎을 꿇었다. 이후 마구잡이로 사방을 휘젓는 녀석의 두 팔을 피하여 잠시 간격을 두고 놈과 떨어진 후.
다시 빈 공간으로 기척 없이 달려 들어가.
서걱-
남아있는 오른쪽의 뒤축마저 베었다.
차가운 카인의 시선은 한곳을 향해 있었고, 조용히 담담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위로 든 채 나를 쳐다보고 경배하라.”
카인은 두 무릎을 꿇은 상태로, 한쪽 눈을 가리고 울부짖는 오크 킹의 뒷목에 올라서서 가차 없이 서슬 퍼런 혈검의 예리한 검날로 오크 킹의 목을 베었다.
서걱-
순간 모든 오크족들에게 오크 킹의 교감이 툭 하고 끊어졌다. 주인을 잃은 세력은 너무나 위험하다. 더군다나 장기간 먹이를 찾지 못하고 굶주렸다면?
“뛰어!!”
목이 떨어진 오크 킹의 시체를 뒤로한 채 카인은 부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든 오크 족의 움직임이 잠시 멈칫한 사이, 허공을 가로지르는 상관의 날카로운 목소리를 들은 부대원들은 부리나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작전 종료 시 집합지점은 카인이 출발 전에 이미 고지해 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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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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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뒤 약속했던 집합지점에 뿔뿔이 흩어졌던 사신부대가 모두(?) 모였다.
“상황보고 해, 스미스.”
카인의 차분한 육성을 들은 스미스는 숨도 고르지 않고 빠르게 대답했다.
“총원 32명 사망2명 부상8명 현재원 30명 이상입니다.”
“알았다. 잠시 휴식 후에 복귀하자.”
“대대장님.”
“왜?”
“옆구리에 피가 흐르십니다. 나무라도 대서 압박해야 될 거 같습니다.”
오크 킹을 향해 달려갈 때 일반 오크의 주먹을 회피하다 옆구리를 살짝 스친 듯했다. 놈들의 육중한 몸에서 나오는 펀치는 스치기만 해도 중상이다.
“크흠-”
‘왼쪽 갈비뼈가 나간 거 같은데······.’
상급자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부대원들의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는다.
“됐다, 애들부터 챙겨.”
“대대장님······.”
“네 말대로 부목 댈 테니깐, 다른 부상당한 애들 먼저 챙기고 와서 도와줘.”
“알겠습니다.”
카인은 주변에 털썩 앉아 지그시 복귀한 부대원들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살았다는 안도감 따위는 없었다. 그저 차가운 작전지 바닥에 두고 온 2명의 동료를 계속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잠시 후, 카인의 허리에 부목을 대러 온 스미스 소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대장님, 우리 오늘 잘한 거 맞지요?”
군대식 화법도 잠시 잊은 스미스의 질문이었다.
“오늘 우리는 최소 카마수트라 공국 5개 도시의 시민들을 살린 거다.”
대답을 들은 스미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평탄한 나무판자와 벨트로 허리를 신고하게 동여맸고.
“흐흑-”
카인의 허벅지에는 스미스의 눈에서 흘러나온 뜨거운 물로 축축하게 젖어갔다.
“후우-”
부목으로 허리를 강하게 묶은 카인은 아픔을 참고 일어나서 부대원들이 모두 들리게 크게 외쳤다.
“세 아이의 아버지인 중사 켐벨!!
20대 청춘을 군대에 바친 상병 하사르!!
둘은 내가 평생 기억하고 마음에 묻겠다.
너희들도 하늘 위의 빛나는 별이 되어 우리가 앞으로 가는 길을 지켜봐주기 바란다.”
자신들의 내력과 이름을 모두 기억하는 대대장을 조용히 바라보며 부대원들은 뜨거운 눈물을 연신 내뿜으며 죽은 동료를 마음속에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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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일라 장군님 오크들이 조금씩 물러가고 있습니다.”
“그래, 나도 보고 있다.”
국경 바깥으로 전면배치한 A-28 부대의 병사들은 20일이 넘게 오크들과 하루도 안 빠지고 뜨겁게 싸웠다. 피해는 카인 중령이 남겨둔 마총병(마법 총병)의 활약 덕분에 경미했지만, 그럼에도 50명이나 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대규모 전장에서 사실 50명이라는 사망자의 숫자는 그리 큰 편은 아니다, 이곳의 피해가 생각보다 적은만큼 적지에 침입한 사신부대원들의 피해는 상상이상으로 클지도 모른다.
‘30일 안으로 돌아온다고 했는데, 눈앞의 결과를 보면 잘 돌아오고 있는 거겠죠. 카인?’
만약 작전 수행 중 부상을 크게 입었다면 임무를 성공하고도 적지의 한가운데 위치한 사신부대는 사방이 고립되어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전멸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고 병력을 이동시켜 그들을 구출하러 갈 수는 없다. 라일라 본인 혼자라면 몰라도 장성이라는 높은 상급자의 힘으로 자신의 고집 섞인 명령을 병사들에게 쉬이 내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라일라의 시선은 멀리 보이는 산을 향해 있었다. 이상하게도 뚜렷하게 보이던 산은 점점 뿌옇게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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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저기 누군가 옵니다.”
“경보!! 경보부터 울려!!”
망루에서 오크들을 경계하던 병사들의 다급한 외침에 A-28부대에는 긴급 경보 알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위잉- 위잉-
넘어가는 석양을 등으로 지고 긴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터벅터벅 걸어오는 부대가 있었다. 그들의 초록색 군복은 대부분 붉은 피로 얼룩져 있었고, 그중 8명의 움직임은 부상을 입었는지 걸음이 눈에 띄게 불편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A-28 부대의 병사들은 모두 모여서 좌우로 도열한 채 그들을 맞이했고, 비어진 가운데 길로 그들이 부대 안으로 들어왔을 때는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그들에게 무언의 거수경례를 올렸다.
A-28 소속 병사들은 몰랐다.
같은 장소에서 라일라 장군도 복귀한 사신부대 병사들을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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