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34화. 산과 바다 너의 선택은?(1)

게오르그 가문의 식당 테이블에는 어색한 공기가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아마 새로운 인물의 등장 때문이겠지.’
부모님과 아린 사이에 흐르는 고요한 분위기로 인해 눈치를 살피는 카인이었다.
‘하··· 생전 한번 안 보고 살던 눈치를 여기서 다 보는군.’
여전히 미소가 아름다운 천사 어머니가 결단을 내리셨는지 따듯한 목소리로 대화의 물꼬를 트셨다.
“카인, 같이 온 손님은 누구시니?”
하지만 첫 질문부터 카인은 숨이 막혔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려나. 아니, 설명해도 되는 건가?’
고민하는 카인을 도와주려는 듯 아린이 선뜻 먼저 웃으며 답했다.
“미래를 약속한 사이입니다.”
옆에서 아린의 대답을 같이 들은 카인도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수긍했다.
‘음··· 어감이 조금 이상하긴 해도 미래에 같이 복수를 하자 했으니 맞는 말이긴 하지.’
끄덕거리는 카인의 모습을 본 부모님의 얼굴은 이상하게도 환하게 밝아졌다.
“아버지 부탁이 있습니다.”
“말해 보거라.”
“이 사람의 신분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활동하려면 아린의 신분이 필요하다. 그래서 카인은 카마수트라 공국의 대공인 아버지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허허허-”
엄격한 아버지의 만면에 너털웃음이 실렸다. 평소 리안에게만 보이던 털털한 모습이었는데, 조금 의아한 카인이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아가씨는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입가에 웃음을 띠며 허리를 테이블 앞으로 바짝 가까이 붙인 아버지는 아린에게 나이를 물었다.
“올해로 14살입니다. 소녀 아직 어리니 편히 하대하셔도 됩니다, 아버님.”
“허허허-”
아버지의 너털웃음은 다시 시작되었고, 이름부터 시작해서 가벼운 호구조사가 진행되었다. 영특한 아이(?)인지라 알아서 잘 둘러댔고, 동생인 리안이와 같은 나이라서 그런지 부모님은 아린을 너무나 좋아했다.
“카인아.”
“네 아버지.”
“아린양은 아직 성인이 아니니, 내가 직접 왕실에 가서 확실한 신분을 만들고 오겠다, 이후의 일은 차차 천천히 진행하도록 하자꾸나.”
“알겠습니다, 아버지”
말은 어렵게 하시지만 확실한 신분을 만들어 오신다는 확답을 들었으니, 문제 될 건 없을 거라고 카인은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며칠 뒤에 일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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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휴가기간 동안 으레 그래왔듯 나와 아린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가문의 고즈넉한 정원을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며칠 전 아린의 신분을 만들어 오겠다고 떠났던 아버지가 오늘에서야 집으로 돌아와서는 점심 식사를 함께하면서 왕실의 인증을 받은 서류 봉투를 아린에게 건네주었다.
“헐··· 네 이름이 왜?”
아린이 건네준 서류를 본 카인의 얼굴은 석고로 빚어낸 듯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게, 왜 내 이름이 아린 게오르그일까?”
현재 아린의 신분을 보증해 줄 가문이 없으니, 아버지가 나서서 카마수트라 왕실과 게오르그 가 대공의 인증으로 그녀의 카마수트라 공국내의 신분을 완벽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문제는 이름이 변한 것은 물론 서류 봉투 안에는 카인과 아린의 약혼 인증서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분명 확실한 신분이 맞긴 한데······.”
‘어디서부터 어긋난 거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지 못하는 카인이었다.
1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결혼의 풍습은 비슷했다. 결혼을 하게 되면 부인은 남편의 성을 따르게 된다, 물론 약혼 같은 경우에도 간혹 먼저 성을 따르는 케이스가 간혹 있기는 했지만, 약혼은 언제든지 파혼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여성 쪽 가문이 심하게 기울거나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일반적으로 결혼 전에 먼저 남자 쪽 성을 따르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것보다 이건데 말이야.’
인증을 받은 서명의 대공은 당연히 아버지이고, 왕실의 인증에는 카마수트라 공국 공왕의 사인이 들어가 있었다. 만약 약혼을 취소할 경우 당사자 둘이 직접 인증을 해준 사람들에게 찾아가 직접 취소 요청을 해야 한다.
‘아놔··· 공왕이 약혼 인증을 해준 것만도 대단한 일인데, 취소 요청을 어떻게 하냐.’
연신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카인은 아린에게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미안하다. 아버지가 뭔가 오해를 하신 거 같다.”
새침한 그녀의 대답은 의외로 담백했다.
“신경 쓰지 마, 별일 아니니깐.”
카인보다 쿨한 아린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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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개월의 길었던 휴가를 마치고 카인은 사신부대로 복귀를 했다.
새롭게 지어진 사신(死神)부대의 막사는 왕실과 본대에서 투자(?)를 많이 했는지 최신식의 건물이 완성되어 있었고, 위치는 본대와 조금 떨어진 곳에 지어졌다. 최대 1000명까지 대규모 병사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신막사는 현재 카인 중령을 제외한 66명의 병사가 사용하고 있었다.
“대대장님을 향하여 경롓!!”
장교마차에서 내린 카인은 사열대 앞으로 흑의 군복을 입은 채 오와 열을 맞추어 서 있는 자신의 부대원들을 천천히 둘러보았고, 이후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단상 위에 올라가 그들의 거수경례를 받아주었다.
“제군들 3개월간 잘 쉬었나?”
“넵!!”
우렁찬 그들의 목소리로 보아하니 긴 휴가에 충분히 만족한 듯했다.
하긴 카마수트라 공국 역사에서도 몇 없던 긴 휴가이니 불만을 가지면 죽어야지.
“그럼 본론에 바로 들어가지, 최근 여러 국가에서 몬스터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몰랐던 사실이지만, 현재 각국에 비밀리에 파견된 정보원들에게서 본대 지휘 통제실로 들어온 자료들을 종합해 분석한 결과 몬스터들의 범람 주기는 대략 1000년 인 듯했다.
“우리 공국은 제군들의 훌륭한 능력과 대처로 빠르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병사들의 눈빛에는 강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허나!!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불안한 시민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 해결하려는 국가가 생겨나고 있다.”
부대로 복귀하는 동안 읽은 본대의 작전 명령서의 내용 중 하나였다.
“우리가 부여받은 이번 작전은 카마수트라를 위협하는 인근 국가의 위험인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카인은 여기서 자신의 부대원들을 조금 더 고양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두려운가?”
“아닙니다!!”
“무서운가?”
“아닙니다!!”
“조국이 우리의 피를 원하고 있다.
부모가 살아가고 있는 이곳을!!
형제가 일하고 있는 이곳을!!
누나와 여동생이 평안한 삶을!!
그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었는가!!”
“악!!”
부대원들은 어떠한 말도 없이, 오로지 악!이라는 구호로 카인의 질문에 대한 답을 했다.
“바로 이동하겠다, 마차에 탑승해라. 스미스, 쉐인 너희 둘은 장교마차에 탑승해라, 기본적인 작전내용을 하달하겠다.”
“넵!!”
부대원들은 병사마차에 카인은 장교마차를 타고 작전지역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장교마차에 올라탄 쉐인 상사가 물어왔다.
“대대장님 전 아직 장교가 아니지 말입니다.”
“알아. 부대 특성상 장교는 나와 스미스밖에 없으니, 둘이서 내가 별다른 지시가 있을 때까지 임시소대장을 맡아라.”
쉐인 상사는 카인의 말을 바로 이해하고는 민머리를 반짝거리며 빠르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이동하는 장교마차 안에서 카인은 스미스와 쉐인을 잠시 보더니, 이내 지도를 눈앞에 넓게 펼쳤다.
“우리가 지금 향하는 곳은 조국의 동쪽에 위치한 ‘오클리아’라는 도시다.”
스미스는 이빨을 보이며 웃으면서 알고 있는 지명이 나왔는지, 고개를 신나게 끄덕이고는 대답했다.
“흐흐- 들어 본 적 있습니다. 마치 정글 같이 숲이 엄청 우거져 있는 산을 끼고 있는 도시라더군요.”
카인은 스미스의 대답을 들은 후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띠며 물었다.
“그래, 그렇다면 우리의 작전지역은 어디일까?”
그 미소를 보면서 사열대 단상에서 말한 카인의 말이 떠올랐는지, 스미스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눈치챘나보군, 우리가 갈 곳은 여기다.”
카인이 지도에서 손가락으로 짚은 곳은 오클리아 도시와 인접한 키메스 공국의 서쪽에 위치한 ‘라일라타’라고 불리는 중소도시였다.
키메스 공국.
카마수트라에 동쪽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이며 평균보다 작은 영토를 소유하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인근의 국가들보다 계급에 대해 엄격하고 국민의 80% 이상이 군인으로 이루어져 있을 정도로 강력하고 많은 숫자를 가진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특이한 점으로는 키메스 공국의 왕은 공작들에게도 일절 영지를 부여하지 않고, 국가 전체의 군사와 영토를 모두 왕권 강화의 기반으로 삼아 강한 중앙집권적 형태의 정치체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스미스가 놀란 토끼 같은 눈으로 카인을 쳐다보며 물었다.
“국경을 넘어 키메스 공국의 도시로 들어간다는 말씀이십니까?”
카인은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대답했다.
“왜 어려울 거 같나?”
“그··· 그것이.”
카인은 본대에서 받은 지도를 펼쳐서 보여줬다. 해당 지도는 라일라타 도시의 내부가 상세하게 표기되어 있는 지도였다.
‘공국내의 정보원들의 능력이 생각보다 우수하군.’
처음에 본대로부터 해당지도를 받았을 때 든 생각이었다.
“잘 봐, 여기 빨갛게 동그라미 친 5개의 장소가 보이지?”
“네, 보입니다···.”
“여기 있는 5개의 장소 중 한 곳에 자비라는 이름을 가진 왕족이 거주하고 있다. 우리는 그를 타겟으로 삼고 암살한다. 이유는 현재 키메스 공국의 왕이 제일 신임을 하고 있는 형제 중 한 명인데, 문제는 그가 카마수트라 공국의 침공과 관련해 국왕을 열심히 설득하고 있다고 한다.”
카인의 말을 들은 스미스는 뺨으로 흐르는 식은땀이 눈에 보일 정도로 굉장히 심란해 보였다.
“겨우 국가에 일어난 분란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 말입니까?”
“카마수트라 공국처럼 귀족들과 왕이 서로 협력을 통해서 운영되는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지.”
만약 제 3자가 들었으면 카마수트라 공국의 왕에 대한 불충한 발언이 되었을 수도 있었지만 카인은 서슴없이 편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만큼 스미스와 쉐인에 대한 카인의 신뢰가 높다는 증빙이기도 했다.
“그 왕족 한 명이 죽었다고 정책 노선이 바뀔 수 있는 겁니까?”
사실 군인은 명령을 받으면 질문 없이 이행해야 한다. 하지만 카인의 생각은 달랐다.
정확한 근거와 사유도 없이 목숨을 거는 전장에 나선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내리는 상급자는 자신이 직접 목을 끊어 버릴 거라는 마인드를 가진 본인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 지시불이행으로 처벌을 받더라도 해당 명령을 거부했겠지만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키메스 공국의 군권은 모두 왕실에게 집중되어 있다. 왕실은 자신들의 왕권 강화를 위해서 믿을 수 있는 왕족들에게만 군권을 분배했지. 그 중 왕을 제외한 제일 많은 병사를 보유한 왕족이 우리가 노리는 목표인 자비 키메스다.”
키메스 공국에서는 많은 병사를 보유한 왕족일수록 입김이 강했다. 병사들을 보유하지 못한 지방 귀족들은 당연히 명확히 보이는 그 수치를 토대로 더 강한 왕족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결론적으로 자비 키메스는 공국의 왕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넘버원 타겟이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카인의 긴 설명을 들은 스미스는 그제야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쉐인이 새로운 질문을 해 왔다.
“대대장님, 그럼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 도대체 왜 이 작은 중소도시에서 살고 있는 겁니까?”
“자비 키메스가 태어난 고향이다, 지금 이곳에서는 30일간 지속되는 지역축제가 한창 열리고 있지.”
“그렇다면?”
“맞아, 우리의 계획은 오클리아 도시에서 국경을 넘어가는 날로부터 15일 안으로 침투해서 목표를 제거한 후 복귀해야 한다.”
카인은 부대막사에서 국내의 오클리아 도시까지 도착하는 시간은 이미 완벽하게 계산했다. 그리고 축제의 남은 기간과 다른 정보들을 통합하여 분석한 결과, 작전은 15일 안으로 모든 것을 끝내야 했다.
그 이상 작전시간이 길어지면 카인 본인을 포함 부대원들의 생존확률은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스미스와 쉐인은 동시에 간결하게 대답했다.
“그럼 이제 도착 전까지 잠이나 자라.”
둘의 대답을 들은 카인은 바로 옆으로 기대고 눈을 감았다. 카인이 상세작전을 설명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다.
없기 때문이다.
현장상황에 따라 수도 없이 바뀌는 게 작전이다. 굳이 필요 없는 정보를 머릿속에 미리 기입해 줘봤자 현장에서 헷갈리기만 할 거라고 판단해, 작전의 핵심만을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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