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36화. 산과 바다 너의 선택은?(3)

- 약속된 집합지점.
스미스는 왼쪽에 있는 시계를 1분 간격으로 계속 쳐다보며 초조해했다. 그러더니 무엇이 그리 답답했는지 오른발로 옆에 있는 작은 돌멩이를 뻥하고 산 밑으로 차버렸다.
“아오···!! 벌써 「오전 03:55」 인데 도대체 대대장님은 왜 안 오시는 거야.”
“곧 오실 겁니다. 스미스 소위님. 아직 정시도 안 됐지 말입니다.”
옆에 있는 쉐인 상사는 차분한 어조로 스미스 소위를 진정시켰다.
푸스슥- 푸스슥-
진정한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일까?
온몸에 피 칠갑을 두른 한 명의 남자가 씩씩거리며 풀숲을 해치고 나타났다.
그가 도착하자마자 한 말은 하나였다.
“방금 돌멩이 발로 찬 새끼 누구냐?”
“······.”
쉐인은 살고자 했다. 아니, 상관의 질문에 진실을 대답하는 것은 부사관으로서 당연한 책무가 아닌가?
“스미스 소위 입니다.”
“배··· 배신자···.”
퍽-!!
자신이 발로 찬 돌멩이보다 3배나 큰 혹이 생긴 머리를 맨바닥에 박은 채 엎드려 있는 스미스를 옆으로 두고 카인은 쉐인에게 조용히 물었다.
“상황은?”
쉐인은 스미스쪽으로 티끌만큼의 눈길도 주지 않고 빠르게 보고했다.
“저와 스미스 소위 쪽은 오답이었습니다.”
동시에 산 밑에서 끊이지 않은 익숙한 마법 총성이 연신 울려왔다.
“그럼 정답은 사다코 쪽이었던가.”
“그런 거 같습니다···.”
‘휴··· 작전실패인가.’
“쉐인, 스미스와 함께 집합지점에 모인 병력을 데리고 먼저 ‘오클리아’로 복귀해라.”
“무슨 뜻이지는 압니다. 하지만 대대장님.”
“구할 수 있는데 까지 노력해보고 안 되면 포기하고 돌아가겠다.”
카인의 마지막 말에 쉐인은 차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작전지역에 남은 병사들을 구하자고 이곳의 병사들에게 목숨을 건 명령을 누가할 수 있단 말인가. 까딱하면 구할 인원보다 죽은 인원이 더 많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사신부대 최고 상관인 대대장 카인 중령조차도 혼자서 구출 작전을 해 보겠다고 하지 않는가.
“빌어먹을!! 아무도 모르게 기습했는데, 왜 이렇게 병사가 많은 거야!!”
옆에서 머리를 박고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스미스는 혼자서 분을 참지 못하고 큰 소리를 질렀다.
‘잠깐··· 병사가 많아?’
“잠시 대기.”
스미스와 쉐인은 동시에 카인을 빠르게 쳐다보았다.
“스미스, 네 쪽 장소에 방어하는 병사가 몇 명이었나?”
“저희 쪽은 60명 정도 되었습니다.”
“쉐인 쪽은?”
“저희 쪽도 비슷했습니다.”
‘말이 안 되지··· 전시도 아닌 일반적인 평시에 타겟도 없는 3장소에다가 도합 근 200명의 병사를 투입해?’
카인의 두뇌는 현 상황을 빠르게 분석했다.
정황상 타겟은 피습을 받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젠장, 우리의 기습 정보가 털린 거다, 털렸다면 어디서?’
카인은 자신들의 죽음으로 인해서 이득을 보는 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으나, 딱히 떠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사신부대 전원 사다코 쪽 팀원들을 구하러간다, 준비해.”
“넵!!”
카인의 새로운 지시가 떨어지자 그제야 부대원들의 입가에 기쁨의 미소가 서렸다.
‘무식한 새끼들, 지들 목숨 귀한 줄 모르고···.’
목숨을 건 뜨거운 전투를 마치고 돌아와 체력이 떨어질 만도 했건만, 오히려 부대원들의 사기는 반대로 높아졌다.
철컥- 철컥-
1분이 채 되지 않아 사신부대원 준비완료 보고가 카인의 귀에 들려왔고, 그들은 빠르게 산을 내려갔다.
.
.
.
***
“하아- 하아-”
가진 마나가 거의 떨어져갔다.
현재 상황은 더할 나위 없이 최악이다.
“사다코 병장님, 이거 우리가 이곳에 온다는 정보, 적들에게 먼저 털린 거 같지 말입니다.”
옆에 있는 상병 놈이 말을 걸어왔다.
“흐흐··· 그런 거 같네.”
상황이 위급하니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흐흐흐-”
“흐흐흐-”
“흐흐흐-”
웃음은 전염된다고 하던가? 사다코가 웃자, 1층 건물 안에 있는 사신부대 병사들 모두가 웃기 시작했다.
“어차피 우리들의 복수는 사신님께서 해주시지 않겠냐!!”
사다코 병장이 1층 전체가 울리도록 우렁차게 소리를 질렀다.
“사다코 병장님, 그럼 우리 사신님 돌아가시는 길, 편히 가시라고 멋지게 음악이라도 연주해드리죠.”
옆에 있던 상병이 웃으며 답했다.
“크크크-”
“크크크-”
사다코의 병장의 눈에는 죽음을 코앞에 두고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미친 병사들이 가득 찼다.
그래서 그런 걸까?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그래, 한번 끝까지 가 보자. 건물 입구는 검사들이 막고, 마총병들은 최대한 기다렸다가 확실할 때만 사격해!! 무조건 한 발에 한 명은 죽인다고 생각하고 쏴라!!”
“넵!!”
창밖으로 사다코 병장 시선의 끝에 걸린 푸르른 밤거리에는 수백의 병사들이 한 남자의 지시에 따라 건물을 에워싼 채 건물 입구로 재진입 준비를 하고 있었다.
.
.
.
***
뛰어가는 카인의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누가? 무엇을 위해서?’
탕-
탕-
멀리서 연이어 들려오는 마법 총성에도 카인은 신경 쓰지 않은 채 현재 상황을 계속 분석했다.
‘본대의 장성들을 제외하고는 우리의 기습정보를 아는 인원은 없을 텐데···’
.
.
.
사다코 팀이 향한 장소에 거의 도착했을 때 한 명의 인물이 카인의 머릿속에 스치듯 떠올랐다.
‘한 명 있었네, 오르캄벨 사이먼.’
국경을 넘기 전 마지막으로 본 귀족.
오클리아 도시 변경백이자 후작의 작위를 가진 그에게 사신부대의 죽음이 무슨 이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본대에서 정보가 새어 나간 게 아니라면 답은 하나였다.
개 같은 자식!!
탕- 탕-
총성은 가까운 전방에서 들려왔고, 근 300명으로 보이는 병사들이 한 건물을 에워싼 채, 건물의 입구로 연신 돌입하는 모습이 보였다.
‘잠깐!! 돌입하는 병사들 뒤쪽에 호통을 치는 남자에게서 뭔가 잠깐 번쩍 했었는데?’
카인의 오른손이 올라와 주먹을 쥐며, 뒤의 부대원들에게 정지를 알렸다.
“왜 그러십니까, 대대장님 빨리 가야죠. 저기에 사다코랑 애들이 있습니다.”
“마총병 애들한테 저기 뒤에서 지시하고 있는 남자를 저격하라고 해.”
전우들의 목숨이 위급한 상황에서 내려온 상관의 지시다. 당황한 스미스는 머리를 긁적이며 혹시 잘못 들었나 싶어 가볍게 되물었다.
“갑자기요?”
“그래야 사다코도 살고, 우리도 산다.”
지금껏 카인이 직접 오더하며 지휘했던 작전은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스미스의 머릿속으로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이곳은 목숨을 건 작전지역이자 전장이다. 생각 없이 상관의 명령을 무조건 이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스미스는 바로 마총병들을 모두 불러 모아 저격을 지시했다.
“후우-”
‘만약 내 예측이 틀렸다면, 기습도 못하고 우리 위치를 알리는 꼴만 되겠지.’
카인의 저격을 지시한 이유는 하나였다. 키메스 공국에서 사신부대가 잡히거나 죽어서 시체를 남길 경우, 확실하게 이득을 보는 자는 바로 자비 키메스였다.
오르캄벨이 어떤 연유로 자비와 내통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신부대가 기습하는 정보를 모두 알고 있는 자비가 그 공적을 다른 이에게 넘길 가능성은 전무 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상황은 자비 키메스에게 무조건 이득이다. 그런 중요한 자리에 본인이 빠질 리가 없지, 게다가 왕족같이 프라이드가 높은 계급을 가진 사람이라면 말이야.’
지금 벌어진 상황의 결과는 자비가 왕에게 적극 추진하고 있는 카마수트라 공국을 침공할 최고의 명분을 만들어 준다.
키메스 공국의 왕족을 암살하려고 한 카마수트라 공국에 대한 강력한 대응.
선전포고 내용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나리오다. 게다가 자신을 공격한 암살자들을 완벽하게 수습한 왕족? 지금 가진 그의 명성에 날개를 더해 줄 것이다.
‘그 욕심이 네 패착일 거다.’
사신부대는 이번 기습작전을 시작하면서 자비의 얼굴은 전혀 몰랐다. 타겟을 확인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그의 왼쪽 깃에 착장된 고급 야광석을 사용한 붉은 배지였다.
탕-
탕-
탕-
탕-
카인의 뒤쪽에서 낯익은 총성이 연이어 발포되었다, 무려 20명이나 되는 사신부대의 마총병들이 대대장의 지시에 따라 단 한 명만을 노리고 마법 저격총을 격발했다.
‘잡았네.’
사신부대 마총병들의 저격 적중률은 모두 70% 이상이 넘었다, 그러한 병사 20명이 한 명을 표적삼아 노린다는 건 절대 살아나갈 수 없다는 뜻이었다.
스르르릉-
카인의 오른손에는 차가운 혈검이
스컹-
왼손에는 뜨거운 단검이 쥐어졌다.
“마총병들은 저격 지원하고, 검사들은 나를 따른다. 가자!!”
「오전 05:12」
동이 트기 전, 푸르른 빛의 도시에 사신이 내려앉았다.
.
.
.
***
- 본대 막사 장성급 회의실
날이 갈수록 주름이 깊어지는 라인하르트 대장이 한숨을 크게 쉬었다.
“흐음-”
사라예보 중장은 라인하르트 대장을 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감정 없이 말을 내뱉었다.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대장님 이제 그만 그들을 정리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키실리 소장은 날카로운 눈으로 사라예보를 직시하며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라예보 중장님, 키메스 공국의 정보원이 보내온 소식에 의하면 분명 자비 키메스는 사신부대의 기습으로 확실히 죽었습니다.”
키실리의 말이 끝나자, 사라예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표정을 구기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들은 조국으로 복귀하지 않고 있잖나, 기다리는 병사들의 가족들에게 얼마나 더 우리는 대답을 회피해야 하냐는 말일세!!”
사라예보 중장의 실망스러운 대답에 키실리 소장은 끼고 있던 안경까지 벗으며 언성을 높여 대답했다.
“만약 사신부대가 사로잡혔거나 시체로 남았다면 키메스 공국에서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입장을 발표했을 겁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조용한 걸로 보면 사신부대는 분명 살아 있습니다!!”
“1000명이나 수용 가능한 신축막사가 1년 넘게 사람이 손길이 닿지 않아 폐허가 되고 있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되는 건가!! 키실리 소장!!”
통통한 볼 살을 흔들며 대답하는 사라예보 중장의 눈에서도 불꽃이 튀었다.
“그만!!”
라인하르트 볼 옆의 십자흉터가 강하게 벌어지며 나온 그의 굵은 음성이 뜨거워진 회의실을 단번에 차갑게 만들었다.
“3개월”
라인하르트 대장은 팔짱을 끼며 딱 한 마디를 더했다. 이후 좌우에 앉아 있던 키실리 소장과 사라예보 중장은 표정을 굳히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멍청한 자비 놈!! 일을 이따위로 만들어!!”
한 남자가 불 꺼진 방에서 화를 참지 못하며 가구들을 부수고 있었다.
“마치 베개 밑에 칼을 품고 자는 느낌이군. 젠장!!”
한참을 허공에 욕을 하던 남자는 휙 하고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남자의 손에는 무거운 여행 가방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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