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40화. 다이나믹한 출장(2)

카마수트라 공국 중앙정보부.
왕실 직속에 있는 왕실 군대와 별도의 조직이다. 주 업무는 보안, 납치, 암살, 파괴 ,첩보 같은 위험한 활동을 하는 조직이지만, 사실 본대에 비해 한참 작은 조직이기에 소속된 소수 인재들의 역량으로 이끌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곳이다.
왕실은 카인에게 이곳의 수장을 맡겼다. 기존의 성과로 보면 재능과 역량은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정보원장이면 정보부소속 인원을 자유롭게 채용하거나 직위를 부여할 수 있다고 했었지?’
정보부 소속인원은 국왕과 정보원장만이 알게 된다. 귀찮은 일을 싫어하는 카인이 정보원장 자리를 승낙한 이유는 왕이 원장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는 한, 정보부는 어떠한 보고도 일절하지 않는다. 중앙정보부의 핵심은 보안이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중앙정보부는 소속을 나타내는 배지나 표식이 없다.
‘다만 5명의 장성정도는 알게 되겠군.’
겸직을 하는 입장이라 부득이하게 자신이 정보부 소속인원이 되었음을 본대 장성급들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카인은 그 부분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정보가 주변에 알려지든 말든 자신은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명 정도 추가되는 건 크게 뭐라고 하지는 않겠지?’
정보원장은 취임하는 순간 1년간 3개국 이상의 공국을 방문해 현장을 파악해야 되는 의무가 생긴다. 카인은 중앙정보부에 아린을 부원장으로 발탁해 함께 이동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약혼녀와 세계여행, 그럴듯하잖아?’
신분이야 위조하면 그만이지만, 타국의 남성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 의심을 사기 쉬웠다.
‘하지만 약혼녀와 함께하는 방문이라면, 그들의 의심을 많이 지울 수는 있겠지.’
함께 고생할 아린을 생각하며 카인은 입가에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다른 이는 몰라도 아린에게만큼은 장난기가 가득한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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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벨론 공국 입국 심사소
입국 심사소에서 한 남자가 커플로 보이는 남녀의 신분을 확인했다.
“카인 게스펠츠, 아린 게스펠츠 방문 목적은?”
카마수트라 공국 중앙정보부에서 마련해준 가짜 신분이다. 생각보다 신분증 위조는 수월하게 넘어간 듯하다.
고지식해 보이는 심사원의 질문에 왼쪽의 훈훈하게 생긴 남자가 대답했다.
“저희가 약혼을 한 사이라 결혼 전에 세계 각국으로 여행을 다니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신분증을 확인하던 남자는 둘을 뚫어지게 한참 쳐다보더니, 성조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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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발의 남자와 은발의 여자가 팔짱을 낀 채 편안하게 거리를 걷고 있었다. 남성은 긴 검은색 털 코트를 여성은 하얀색 털 코트를 같은 디자인으로 맞춰 입고 우리 커플이에요! 티를 내며 추운 길거리를 활보했다.
“그래서 이제 대기의 마나를 쓸 수 있게 된 거야?”
“응. 하다 보니깐 되던데?”
‘2년도 채 안 돼서 성공할 줄은 몰랐는데, 천재인가?’
“그럼 머리카락 색은?”
“나도 몰라, 대기의 마나를 썼더니 자연스럽게 변하더라고.”
“원래 마나를 쓸 때만 변색이 되는 건데?”
카인은 전생에서 대기의 마나를 이용해 마법을 사용할 때만 머리색이 은발로 변했었다.
“응 맞아.”
“맞다고?”
“평상시에도 마나를 쓰고 다니거든,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 게 대기의 마나잖아.”
‘평상시에 마나를 쓰고 다닌다라···.’
마나를 사용하는 게 숨 쉬듯이 편한 사람이 아니면 실천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게다가 마력속성도 2개나 사용하고 있는 그녀이기에 까딱하면 체내에서 두 속성이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만약 충돌이 일어나면 뻥하고 터지며 걸레짝처럼 육신이 분해되어 사방으로 흩어진다.
‘본능적인 감각으로 사용하는 건가? 굳이 그만두라고 할 필요까지는 없겠네.’
카인은 아린을 이해하기 힘든 범주로 넣어 생각하기로 했다. 이미 자신의 피로 암 속성 혈 마법까지 체득한 특이한 인물이지 않은가.
“그래 지금의 네 모습을 보면, 이전의 아린 스프라티스를 떠올리는 사람은 없겠다.”
“응 그것도 생각하고 하는 거야, 그나저나 이 추운 나라는 왜 온 거야?”
“카마수트라 공국에서 제일 떨어진 나라인지라 정보가 많이 없거든, 직접 눈으로 한번 보고 싶었어.”
카인은 대답을 하고 주변을 천천히 눈에 담았다. 추운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의 성지라 불리는 오벨론 공국 수도의 거리는 속까지 투명한 아름다운 얼음 조각상들로 가득했다.
‘예쁘네.’
아름다운 예술품들을 보며 살짝 감상에 젖은 카인은 아린을 보며 본인의 의견에 동의를 구하듯 물었다. 물론 원하는 대답은 정해져 있는 질문이었다.
“저런 거 보면 멋있지 않냐?”
“나 배고파.”
굉장히 이성적인 약혼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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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바람대로 우리는 식당 안에 들어와서 처음 보는 음식들을 주문했다. 때마침 사람들이 붐비는 시간인지, 주변의 소음은 컸다. 북적북적한 사람들을 제치고 힘겹게 자리를 잡은 카인의 귓가에는 옆 테이블 남자들의 대화가 따듯한 음식 냄새와 함께 전해져 왔다.
“자네는 거기 안 갔나?”
“어디? 아 거기 왕실에서 인력 구하는 거?”
“그래 하루수당이 무려 금화 한 닢이네.”
“뭘 하기에 그리 많이 주나?”
“나도 사실 돈을 너무 많이 주기에 고민하다가 들어갔네. 그런데 하는 일이라고는 동일한 규격의 나무상자에 그림을 그리는 게 다였네.”
“그림?”
“그냥 우리들이 원하는 그림을 마음껏 그리라고 하더군. 그게 끝이네.”
“허- 나도 내일은 나가 봐야겠군.”
“늦으면 자리 없네, 일찍 오게.”
“그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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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아, 이상하지?”
아린은 테이블에 깔린 곰발바닥 요리를 먹으며 이상한 표정을 짓더니 답했다.
“응, 이상해.”
“아니, 요리 말고.”
아린은 고개를 앞으로 들이밀더니 카인의 귓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까워진 아린의 얼굴에 본인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오른 카인은 이어진 그녀의 말에 심장이 차갑게 식었다.
“창가 테이블 셋 , 입구 쪽 테이블 둘.”
미행이 붙었다는 뜻일 거다. 여기서 더 이상 수상한 대화가 이어지면 안 된다.
“큼큼- 음료수 맛이 이상하지 않아?”
“난 요리가 더 이상해.”
썩은 고등어를 입에 담은 듯 신들린 연기를 하는 아린이었다.
‘얘 연기가 기가 막히네.’
그녀의 완벽한 대처에 혀를 내두르며 카인도 곰발바닥 요리를 한술 뜨자마자 테이블에는 썩은 표정을 가진 사람이 한 명 더 늘었다. 덕분에 식사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고 잠시 후 카인과 아린은 테이블에 요리를 거의 남겨둔 채 식당을 떠났다.
“아린아, 뒤 쫓아와?”
“아니 식당에서 나오질 않는 걸 보니 미행을 종료했나 봐.”
“아까 옆 테이블 얘기는 들었지?”
“응.”
“어떻게 생각해?”
“예술의 도시니깐 그냥 작품 의뢰하는 거 아냐?”
“평상시라면 그렇겠지, 최근에 몬스터의 대규모 침공을 받은 오벨론 공국이야. 그런데 왕실이 예술인들을 지원하며 작품을 만들고 있다? 말이 안 되는 거지.”
“난 우리가 미행을 받았다는 게 더 이상한데?”
아린의 말을 들어보니 그리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한지 불과 3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누가 봐도 평범한(?) 커플인 우리 뒤를 쫓아 미행을 한다?
이건 누군가 우리에게 뭔가를 감추고 싶거나 반대로 의심할 소지를 우리가 제공했다는 뜻이다.
‘이곳에서 알려진 우리의 정보는 이름, 나이, 성별, 국가, 유명하지 않은 귀족 신분 이라는 게 다인데···.’
“흐음···.”
카인이 깊은 숨과 함께 표정으로 자신의 고뇌를 겉으로 표출하자 그의 상태를 본 아린은 바로 말을 이었다.
“국가야.”
“응?”
“원인이 국가라고, 그 외에 우리를 미행할 이유는 없어.”
‘본국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오벨론 공국이 굳이 우리를 감시할 이유가 없지 않나?’
오벨론 공국과 카마수트라 공국은 교역조차 하지 않기에 어떠한 접점도 없는 상태였다. 이는 지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견제 당할 이유가 하등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린이 내린 결론이 틀렸다고 생각한 카인은 부정적인 표현을 내비쳤지만.
“아린아 그건 아니지 않을까?”
그녀의 귀에는 카인의 말이 전달되지 않았다.
“나는 내일 돌아다니면서 전체적인 정보를 모아 볼게, 너는 왕실의 예술지원 사업에 대해 알아봐.”
“저기··· 정보원장은 나인데? 뭔가 지시하는 위치가 바뀐 거 같지 않니?”
“그게 뭐가 중요해.”
“그··· 그렇지.”
···다음 날 우리는 각자 흩어져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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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인은 일을 할 수가 없다라···. 예술에 국경이 있나?’
카인은 아침 일찍부터 어제 식당에서 남자들이 말한 장소로 달려와 일을 한다고 지원했다.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리라 생각한 거와 다르게 작업관계자가 나와서는 타국인은 안 된다며 손사래를 치며 단호하게 거절을 했다.
‘분명 냄새가 나는데 말이야.’
본국에 가정을 꾸려 국가가 컨트롤 가능한 시민들에게만 일을 시킨다는 규칙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문제가 생길 소지를 애초에 차단하겠다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제국의 금화 한 닢은 일반 시민 기준으로 최소 보름간 배부르게 먹고 잘 수 있는 돈이다.
‘그러한 돈을 펑펑 써가면서, 왕실이 돈도 안 되는 예술 활동을 지원할 리가 없지. 도대체 무엇을 감추고 있는 거냐, 오벨론 공국.’
그 외에도 카인은 자신의 눈에 들어온 모습을 보고 난 이후 더 큰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겨우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장소인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병사가 창고 밖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기요, 공국의 기사님”
카인은 사소한 정보라도 모아보고자 지키고 있는 병사에게 접근했다.
“무슨 일인가.”
“기사님처럼 멋지신 분들이 여기 왜 이렇게 많습니까?”
성별이 남자든 여자든 외모가 출중한 인물이 공손하게 물어오면 사람들은 친절해진다.
“여기는 말이야, 국익을 위해 왕실이 신경 쓰고 있는 장소네.”
‘국익?’
“아! 정말요? 대단하네요. 덕분에 관광 왔다가, 오벨론 공국의 멋진 기사님들을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우리나라 기사가 15공국중 제일 유명하긴 하지, 허허허허”
“다른 곳에 가도 기사님 같은 분들을 볼 수 있을까요?”
“우리가 그리 한가한 사람들로 보이나?
우리 왕실 근위대는 직접 국왕님의 명령을 받아 지금 수도 내에 총 6장소만 지키고 있지.”
“우와!! 왕실 근위대 분들이셨군요.”
“허허허-”
카인의 존경스런 눈빛을 본 기사는 흡족한 듯이 크게 웃었고, 이어서 친절하게 다른 관광지 안내까지 해주었다.
“관광객이라면 수도 중앙의 얼음 분수대를 가보게, 꽤 볼 만할 거야.”
‘일반 병사가 아니라 왕실 근위대라··· 구린 냄새가 더욱 진동하는군.’
“네 감사합니다, 기사님.”
‘다른 6장소를 물어본다면, 오히려 의심을 사겠지. 이 정도 정보가 최선이야.’
더 이상의 정보를 얻기 힘들 거라 결론을 지은 카인은 주저 없이 숙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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