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43화. 대 마법사(1)

낡고 허름한 붉은 벽돌로 지어진 6층 건물의 숙소였다. 이렇다 할 집합 장소도 없이 마차들을 세워두는 곳에 666명이 꽉 채워 도열하자, 카인은 눈에 보이는 바위 하나에 올라가 부대원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다들 잘 잤나?”
“악!!”
사신부대원들의 우렁찬 소리는 조용한 서쪽도시의 아침을 일깨웠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무엇부터 듣겠나? 스미스 소위.”
“흐흐- 좋은 소식부터 듣겠습니다.”
사용한 비용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안심과 함께 연신 웃고 있던 스미스가 대답했다.
“좋아, 그럼 말해주지. 내 직위는 제군들도 알다시피 사신부대의 대대장이다. 하지만 한 개가 더 있지.”
아린을 제외한 665명의 병사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카인중령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카마수트라 공국의 중앙정보부 원장이다.”
공국 내에 중앙정보부를 아는 사람은 극히 적다. 당연히 사신부대원들에게도 중앙정보부는 소문만 무성한 조직이었을 뿐이지, 이렇게 숨겨졌던 조직의 실체를 들어보는 일은 처음이었다.
“앞 열에 있는 아린 소위는 중앙정보부 부원장이며, 남은 665명의 제군들 또한 앞으로 모두 중앙정보부의 일원으로써 함께 하게 될 것이다. 주요한 것은 중앙정보부에 소속되면 죽을 때까지 퇴직은 없다.”
한 명의 병사가 손을 들었다.
“말해 봐.”
“그럼 저희는 이제 왕실군 본대 소속이 아닙니까?”
“이제부터 좋은 소식을 들려주지, 본대 장성들에게 사신부대와 중앙정보부의 겸직을 승인 받았다. 이 뜻은 제군들에게 앞으로 두 군데서 월급이 나올 것이라는 뜻이다.”
“와아아아아-!!”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살아가는데 있어 꼭 필수인 요소이다. 그들의 힘찬 함성과 밝은 미소를 보니 카인 또한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단 한 명 웃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스미스 소위였다.
“저기 대대장님 그럼 나쁜 소식은?”
“사실 나쁜 소식이랄 것도 없지, 더 좋은 소식이다. 제군들이 공국을 위해 피를 흘릴 장소가 정해졌다. 목적지는 산클루즈 공국이다.”
사실 부대에서 카인의 비문을 받고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대부분의 사신부대 병사들은 감각적으로 큰일이 일어날 것을 머릿속으로 미리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물론 자신들이 예상하며 그렸던 상상보다 훨씬 큰 일이 되어 현실로 찾아왔지만 말이다.
“오늘부터 나는 아린소위를 사신부대의 중대장으로, 스미스 소위와 쉐인 상사를 소대장으로 임명하겠다. 그리고 카마수트라 공국을 위협하는 적들에게 알려주겠다. 우리가 누구인지!!”
카인의 마지막 한마디가 사신부대원들의 가슴에 꽂혔고, 눈빛은 타올랐다.
“그럼 가자!!”
“악!!”
카인을 포함한 667명의 인원은 썰물처럼 숙소에서 빠져나갔고, 허름한 붉은 건물을 그들을 배웅이라도 하듯 아침 햇빛을 받아 주황색으로 불타올랐다.
.
.
.
***
[카인 게오르그, 19세 9개월째 되는 날]
탕-
탕- 탕-
맑고 청량한 하늘에 총성이 연거푸 울려 퍼지고 있었다.
“A경계초소 점령 완료, C경계초소 점령 완료, B경계초소 아직 전투 중이랍니다.”
마법통신을 받은 아린이 신속히 카인에게 내용을 전달했다.
“쉐인, B초소를 지원한다. 필요한 인원은?”
“30명이면 충분합니다.”
“다녀와라.”
“넵!!”
카인의 명령을 받은 쉐인은 부대원들을 이끌고 빠르게 전장으로 뛰쳐나갔다.
‘후우- 이제 한 개 남았나.’
근 6개월 동안, 산클루즈 공국의 동쪽 주요 방어기지 5곳을 무너트렸다. 출발하기 전 라인하르트 대장과 약속한 완파까지 이제 단 한걸음 남았다.
“다음 방어기지는 어디지?”
작전지도를 한참 뚫어지게 보던 카인은 6번째 방어기지의 위치가 유독 마음에 걸렸다.
“왜 무슨 문제 있어?”
다른 병사들이 주변에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을 편하게 하는 아린이었다.
“이거 봐, 다음 작전지인데, 들어가는 입구는 외길인데다가 기지 주변이 모두 절벽으로 막혀 있어.”
카인의 생각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는 아린이었다.
“들어가서 공격하는 것도 어려운데 이후에 나올 때가 더 문제라는 거네?”
“흐음-”
깊은 한숨을 내쉬며 카인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점령 후에 절벽 위를 모두 포위당하고, 입구 쪽으로만 우리의 선택을 강요하겠지.”
“생각해 둔 대안은 있어?”
“있긴 한데, 시간 싸움인지라···.”
“시간만 벌어 주면 된다는 거지?”
아린은 웃으면서 지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카인의 눈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죽더라도 시간을 벌어 줄 테니깐 너는 산클루즈 공국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
아린의 눈은 진심이었다.
“개소리 하지 마 아린, 너와 나의 목표는 여기가 끝이 아니다.”
거친 대답과 함께 카인은 아린의 이마에 약한 꿀밤을 먹였다.
딱-콩-
“아씨!! 뭐야!!”
카인은 처음으로 아린의 감춰진 성을 부르며, 자신의 목표를 확고히 타인에게 전했다.
“아린 시슬라, 우리의 목표는 제국과 7왕국이다.”
낮고 차가운 어조로 말하는 그의 진심을 들은 아린의 눈매는 가늘어지며 심장은 뜨거워졌다.
“그래, 그때까지 살아 있을게.”
탕-
텐트 밖에서 대화를 그만하라는 듯 뜨거운 총성이 두 명의 귓가에 바람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
.
.
***
-카마수트라 공국 본대 장성급 회의실
“본대 쪽 정보원들이 알아낸 바로는 산클루즈 공국의 수도로 향하는 총 5곳의 방어기지가 격파되었다고 합니다. 라인하르트 대장님.”
키실리 소장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입가에 미소를 띠고는 라인하르트 대장에게 보고를 올렸다.
“수도로 향하기까지 이제 하나 남았다는 거군, 슬슬 준비를 할 때가 온 건가.”
“솔직히 무례한 카인중령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인정할 건 인정 해 줘야겠습니다, 솔직히 말해 사람이라면 접근 못할 절벽 길을 지나 송곳처럼 수도를 향해 진격하다니···.”
사라예보 중장은 눈앞의 작전지도에 놓아진 사신 그림이 그려진 말을 보며 말했다.
“우회해서 돌아갔으면 절대로 지금 같은 승전보는 기대하기 어려웠겠지. 다만 아쉬운 건 방어기지는 파쇄 됐지만, 적군의 병사 피해가 너무 적어.”
노련한 라인하르트 대장은 멀리서도 전장을 확실히 파악하고 있었다. 산클루즈 공국은 갑작스런 사신부대의 기습으로 5개의 방어기지를 빠르게 잃었지만, 신속히 후퇴하여 병력손실을 최소화 하였다. 이는 아직 산클루즈 공국 서부전선에 다수의 군대가 온전히 존재한다는 뜻이다.
“결전은 아마 여기가 될 걸세.”
라인하르트의 지휘봉은 6번째 방어기지를 가리켰다.
“라일라 준장!!”
“넵!!”
“4개 군단의 부대이동을 명령하겠다, 위치는 카마수트라 공국의 서쪽 국경 지역!!
그곳에서 대기한 채 내 명령을 기다린다.”
“알겠습니다!!”
“슬슬 폐하의 얼굴을 뵙고 와야겠군.”
라인하르트의 눈은 작전지도를 진지한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으나 연신 웃고 있는 그의 입은 누가 봐도 최고로 기분 좋은 상태였다. 나이를 먹었어도 그는 카마수트라 공국의 왕실군 대장이었다.
- 카마수트라 공국 왕실
너털웃음을 지으며, 크리앙 카마수트라 공왕은 라인하르트에게 물었다.
“허허- 짐을 놀리는가? 라인하르트?”
“아닙니다, 폐하.”
“갑자기 산클루즈 공국과 전쟁이라니?”
“이미 정보원장이 카마수트라 공국의 서쪽 국경을 넘어 방어기지 5곳을 이미 파쇄 했습니다.”
진지한 라인하르트의 표정을 본 크리앙 공왕의 눈썹이 팔자로 올라가며 언성을 높였다.
“뭣이?”
“원장이 직접 가지고 온 정보에 의하면 산클루즈 공국이 저희국가와 전쟁을 벌이기 위해 각국에서 물자를 구매했다는 정황을 포착해 왔습니다.”
흔들림 없는 노장의 담담한 발언에 크리앙 공왕은 노기를 가라앉히고 물었다.
“산클루즈 공국이?”
“네 맞습니다, 폐하. 그래서 정보원장은 공격받기 전에 먼저 그들의 야욕을 뿌리 뽑기 위해 선봉에 선 것입니다.”
“라인하르트 그 중요한 사실을 왜 이제야 말하는가? 그리고 정보원장은 또 왜 내게 일절 보고 없이 공격을 진행한 것이고?”
크리왕 공왕의 질문을 받은 라인하르트는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일련에 있었던 키메스 공국의 암살 작전을 기억해 주십시오, 폐하.”
“쥐새끼가 있다는 뜻이군.”
“범인은 오르캄벨 후작으로 밝혀졌지만, 그 뒤에 또 다른 존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염려하여 정보원장은 모든 것을 숨긴 채 단독으로 사신부대를 이끌고 적진을 향했습니다.”
“허어- 정말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정보원장이로구나···.”
크리앙 공왕은 이전에 보았던 카인공작의 모습을 떠올렸고, 이후 자신의 아들인 1왕자 샤를로트를 떠올렸다.
‘훌륭한 벗을 두었구나, 샤를로트. 하지만···.’
생각을 잠시 멈추고 크리앙 공왕은 근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라인하르트 자네의 생각은?”
“4개 군단을 공국 서쪽에 대기시킨 후 선봉에 선 정보원장에게서 산클루즈 공국의 동쪽 6개 방어기지를 모두 파쇄 했다는 통신이 들어오면 바로 출진할 계획입니다.”
“라인하르트 그대의 작전을 윤허하겠다.”
“감사합니다, 폐하.”
공왕을 뵙고 돌아서는 라인하르트 대장의 눈빛은 젊었을 적, 홀로 몬스터 무리를 격파하던 그때로 돌아가 있었다.
.
.
.
***
- 산클루즈 공국 동쪽국경 본대 회의실.
“빌어먹을!!”
산클루즈 공국 동쪽국경 총사령관의 노기어린 음성이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겨우 1개 대대밖에 안 되는 병력에 5개의 방어기지가 털렸다는 게 사실이냐!!”
그의 우측에 앉아 있던 부사령관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맞습니다.”
“우리군은 그들이 오는 동안 뭘 하고 있었던 거냐!!”
“절벽길입니다. 사람이 오르내릴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회하지 않고 그곳을 통과해 국경을 넘어왔습니다.”
“그걸 변명이라고 하나!!”
분노가 가득 찬 총사령관은 앞의 테이블이 젖어가는 게 보일 정도로 침을 튀기며 불같이 화를 냈다.
“총사령관님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산클루즈 공국 내에서 유능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부사령관이 성조의 변화 없이 담담하게 말을 건네자, 총사령관도 이내 감정을 추스르고 말을 이었다.
“대안이 있나?”
“사신부대가 국경을 넘은 이후로 카마수트라 공국에서는 추가 지원 병력을 일절 보내지 않았습니다, 이는 현재 본국을 향한 침공이 사신부대의 단독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단독행동이라···.”
“물론 사신부대가 어느 정도 성과를 얻으면, 카마수트라 공국에서도 손을 내밀겠지요. 하지만 총사령관님도 아시다시피 저희는 방어기지만 털렸을 뿐, 동쪽을 수비하는 병사들의 직접적인 피해는 미미합니다.”
카인은 송곳같이 날카롭고 빠르게 산클루즈 공국의 동쪽 방어기지 5곳을 점령하고 폭파 시켰지만, 실제적으로 제대로 된 전투는 거의 없었다. 갑작스런 기습에 당황한 적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길 보십쇼.”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