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46화.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1)

카인의 시선에 놓인 가면은 흑색의 해골 얼굴 외형을 가진 가면이었다. 아린이 보기만 해도 기겁할 정도로 괴기스럽고 공포감을 심어주는 물건이었다.
“대대장님 야광석 기억하십니까?”
“라일라타 도시에서 푸르게 빛나던 돌?”
“네 맞습니다. 저희 고향에서는 야광석과 반대되는 야암석이라는 게 있습니다.
빛을 흡수해 밤에는 눈앞에 두어도 잘 보이지도 않는 돌입니다.”
“그래서, 그게 왜?”
“이전 전장에서 느꼈습니다, 저희가 흑의를 입고 있기는 하나, 밤에는 생각보다 얼굴에서 빛이 많이 반사된다는 걸 말입니다. 그래서 좀 더 확실히 어둠에 숨을 수 있다면 생존율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카인은 쉐인을 보며 살짝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쉐인 이 자식, 아직도 죽은 병사들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있구나.’
쉐인 소위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장교가 된 기념으로 야암석을 이용해 사비로 사신부대 가면을 제작했습니다, 기초생활 마법도 내장되어 있어 사용하는데 전혀 문제는 없을 겁니다.”
‘기초생활 마법이라··· 돈 좀 많이 들었겠는데?’
공국의 기본 기초생활 마법이라 하면 흑의와 같이 경량마법, 방수마법, 청결마법, 충격흡수마법, 신축마법을 포함하여 말한다.
“그거 계속 쓰고 다녀야 되냐?”
“낮에는 목 뒤나 옆으로 돌려 두면 됩니다. 가벼워서 전혀 이질감은 못 느끼실 겁니다.”
“그래, 훌륭한걸 제작했네, 그럼 모두에게 바로 보급을···”
아린이 급하게 카인의 말을 막으며 쉐인에게 물었다.
“저기! 쉐인 소위, 설마 다 그 모양은 아니지?”
그러자 쉐인은 작전테이블에 추가로 몇 개의 가면을 더 올리면서 말했다.
“아 이거 변형이 가능해서 개인 취향으로 바꾸셔도 가능하긴 한데 색은 야암석이 들어갔기에 흑색으로 통일입니다. 우선 병사들은 흑색 사람가면으로 통일 제작했고, 사신부대의 마스코트(?)인 아린 대위님에게는 여우가면, 리안 하사에게는 고양이가면, 스미스 대위에게는 곰 가면, 대대장님은 해골가면 그리고 저는 늑대가면입니다.”
“야 쉐인 너는 나랑 바꾸자.”
조용히 옆에서 얘기를 듣던 스미스가 늑대가면이 마음에 들었는지 급히 쉐인에게 가면 교환을 신청했다.
“네 상관없습니다.”
가면을 살짝 들어 본 카인은 물었다.
“이거 장교는 분간이 되어도 병사들 간의 소통에 문제가 있지 않겠나?”
“가면 왼쪽 눈 밑을 한 번 봐보시지 말입니다.”
카인은 해골가면의 왼쪽 눈 아래로 시선을 옮겼다.
“대령표식?”
“네 거기에다 계급장 표식을 해 두었습니다. 그 부분만 야광석으로 처리해 두었으니, 평상시에는 계급을 푸른빛으로 보이게 하고, 작전 시에는 가면 왼쪽 눈 밑을 살짝 내리면 계급장이 가려집니다.”
‘쉐인, 이 자식 외모와 다르게 엄청 세심하네.’
“그래 잘했다, 그런데 다들 사람이고 동물인데, 나만 왜 해골이냐.”
“사신이시니까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상식에는 낫을 든 해골 모습을 사신이라고 생각했다.
“휴··· 그래 고맙다.”
이후 카인은 살짝 아린 쪽을 살펴봤는데,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는 것으로 보아 흑색 여우가면이 썩 마음에 든 듯했다.
‘해골가면이 그렇게 별로인건가···.’
“그런데 쉐인, 장교도 아닌 리안이가 동물 가면을 써도 되나?”
“모든 부사관과 병사들이 바라고 있는 일이니 괜찮습니다. 사신부대 장교 마스코트는 아린 대위님, 사신부대 부사관 마스코트는 리안 하사이지 말입니다.”
“그럼 뭐 다행이고.”
「야암석 가면 리스트 확정」
카인 대령: 흑색 해골가면
아린 대위: 흑색 여우가면
스미스 중위: 흑색 늑대가면
쉐인 소위: 흑색 곰 가면
부사관 및 병사: 흑색 사람가면
리안 일병: 흑색 고양이가면
입술을 뾰쭉 내밀며 흑색 늑대가면을 집중해 살피던 스미스가 뚱한 표정으로 쉐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야 스미스 이거 계급장, 왜 소위로 되어 있냐.”
“그거야 중위님이 제 꺼 가져가서 그렇지 말입니다, 안쪽에서 계급표식 떼서 저랑 교체하시면 됩니다.”
“아하! 그렇군.”
“앞으로 다들 진급하시면, 저한테 말하시면 됩니다.
오를 수 있는 제일 높은 계급장까지 미리 만들어 뒀지 말입니다.”
‘열정이 너무 과한 거 아닐까···?’
스미스의 말대로 평상시 취미가 살짝 여성스러운(?) 쉐인이었다. 너무나도 세심한 그의 모습에 카인은 살짝 부담스러워졌다.
‘휴··· 무조건 들고 다녀야겠네. 안 하고 다니면 삐질지도···?’
“그나저나 스미스 중위님이 가져온 거는 뭡니까?”
“아! 내 거는···.”
스미스는 작전테이블 위에 검은 낫 그림이 그려진 작은 배지를 하나 올려 두었다.
“이번에 같이 못 돌아온 애들 집에 제가 다녀왔지 말입니다, 그런데 줄 수 있는 거라곤 전장에서 가지고 돌아온 계급배지밖에 없더라고요.”
이전 6방어기지 전투에서 사망한 부대원들의 시신들은 조국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 부패정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그곳의 양지바른 땅에 묻어주고 왔다. 그로 인해 가지고 돌아올 수 있던 건 그들의 계급배지가 유일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죽은 부대원 가족들이 좀 더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어서, 사신부대 표식 배지를 사비로 제작했습니다. 다만 저는 세심하지 못해서 스미스처럼 구분은 없습니다. 모두 한 가지 모양으로 통일입니다.”
‘스미스 자식도 아직 죽은 애들을 마음에 담아 두었네.’
카인은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의 왼쪽 앞주머니에 검은 낫 배지를 착장했다. 그러자 아린 대위와 스미스 소위도 바로 왼쪽 옷깃에 배지를 착장했다.
“이번에 들어간 비용은 내게 청구해라.”
검은 낫 배지 착장을 마친 카인이 스미스와 쉐인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이번에 사망한 부대원 가족들에게 계급배지 가져다주면서 들었습니다.
대장이 사비로 위로금 전달하셨다면서요?
한두 명도 아니었을 텐데, 됐습니다.
이번 건은 저희가 사는 걸로 하게 해주십시오, 대장.”
부하들을 잃은 둘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카인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나저나 대장, 이른 아침부터 저희를 왜 불러 모으신 겁니까? 작전입니까?”
“공지할 게 있어서 불렀다. 이번 전쟁에서 사신부대의 활동은 최소한으로 줄여서 참여한다.”
예상치 못한 카인의 말에 사신부대 장교들의 눈에는 의아함이 가득 피어올랐다.
“그 이유는 이제 내가 진급할 계급이 없다.”
대령직급 위로는 청룡배지를 달고 있는 공국의 다섯 장군 밖에 없었다. 공식적으로 한정적인 자리였기에 카인은 없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 상황에서 사신부대가 활약을 계속한다면, 두려움을 갖게 되는 자는 총 6명이 생긴다.”
“그들이 누군데요?”
“기존의 5명 장군들과 카마수트라 공왕.”
“설마요, 대장······.”
스미스는 말도 안 된다며, 손 사레를 쳤다.
“사람은 평상시에는 욕심 없는 척하지만, 자신의 자리를 위협받으면 변하게 된다. 안 그래도 우리를 노리는 적이 많은데, 그 머릿수를 굳이 늘릴 필요는 없지.”
그제야 3명의 장교도 카인의 진지한 말을 듣고서는 어느 정도 수긍하는 듯했다.
“기억해라, 이번 전쟁에서 승리자는 사신부대가 아니라 왕과 본대가 되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전생에서 무려 128년을 살아온 카인이었다.
인간의 심리?
눈 감고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당연히 알고 있다면 굳이 정면으로 돌파할 필요는 없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사신(死神)부대.
일반적으로 하얀색 해골도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흑 해골가면은 보는 순간 각인이 한 번에 되며 떠오르는 단어는 ‘죽음’이었다.
그 주인공은 사신이라는 이명을 가진 대대장. [카인]
뜨거운 화 속성 탄환을 끊임없이 쏘아대고, 흑 여우가면의 주인답게 빠르게 이동하며 적들을 제압하면서도 도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차가운 은발의 중대장. [아린]
무식하지만 흑 늑대가면의 주인답게 자기가 맡은 일은 끝까지 묵묵히 해내며 병사들을 이끄는 소대장. [스미스]
흑 곰 가면의 주인처럼 육체파 스타일이지만 때로는 병사들을 누구보다 세심하게 챙기는 민머리(?) 소대장. [쉐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귀여운 흑 고양이 가면의 주인공인 신속(神速)의 금발검사 [리안] 일병과 통일된 흑 사신부대 가면으로 공포를 조성하는 부대원들의 소문은 널리 퍼져갔다.
하지만 키메스 공국과의 전쟁에서만큼은 그들의 소문만큼 활약이 이어지질 못했다. 사신부대의 대대장인 카인이 본대에 후방 지원을 하겠다고 요청해서 전투에 일절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
.
***
- 본대 장성급 키실리 소장 개인막사
“역시 내가 인정한 영웅이란 말인가? 스스로 물러나야 할 시기를 알다니··· 조금만 더 활약을 했다면, 공왕께서 오히려 그에게 불안감을 내비쳤을 거다. 그렇다면 사신부대의 미래는 전장만을 맴돌다가 대부분 죽음을 맞이했겠지.”
다른 누구보다 카인만을 예의주시하던, 키실리 소장이었기에 현재 그의 상황을 누구보다 확실히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이 지속되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카인 대령이 서서히 지워질 텐데···.”
“흐음-”
한참을 고민하던 키실리 소장의 안경이 번뜩였다.
“그래, 그 방법이 있었지!!”
.
.
.
***
이른 아침 보급관련 보고서를 작성하던 카인의 막사에 작전 명령서가 도착했다.
‘응? 나랑 아린은 급히 왕성으로 복귀하라고?’
2년이나 지속되고 있는 장기간 이어진 전쟁 중이었다. 결말도 나지 않은 상황에서 카마수트라 공국 군대의 마스코트인 사신부대의 대대장과 중대장을 현장에서 복귀하라는 일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이유가 뭐지?’
분명 다른 쪽에서 작업을 친 것이 분명했다.
‘오히려 잘 된 건지도 모르지.’
길어지는 전쟁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전방으로 사신부대가 참전하게 될까 봐, 내심 불안했던 카인이었다. 대대장이 빠져 있는 사신부대를 임의로 전장에 내보낼 가능성은 전무 했기에, 해당 명령을 듣고는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그래, 가서 얘기나 들어보자.’
“어우!! 사람이 들어온 지도 모르고 혼자서 징그럽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조금 전에 막사로 들어온 아린은 뚱한 표정을 지으며 혼자서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카인을 향해 나무라듯 물었다.
“우리 왕실로 오란다.”
“지금? 갑자기?”
올해로 20살이 된 아린은 신체는 완벽하게 성숙했지만, 여전히 말이 짧다.
분명 내가 그녀보다 상관일 터인데······.
‘정신적인 성숙이 더 필요한 걸까?’
“너 내 욕하고 있지?”
“아닌데?”
그녀의 눈이 급격히 세모로 변하며 카인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제발 그 눈 좀 뜨지 마, 무서우니깐.”
‘마치 광인 할배가 의심할 때 쳐다보는 거 같단 말이지.’
“흐음- 뭐 알았어. 바로 준비할게, 언제 출발해?”
“아직도 카마수트라 공국을 몰라? 당연히 지금 당장이지.”
카인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