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49화.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4)

탁-탁-탁-탁-
홀로 뛰는 동굴 안에서는 카인의 급한 발걸음 소리가 넓게 퍼지며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언제부터인가 총성이 멎었다··· 조금만 버텨라, 아린.’
40분 동안 들어온 거리를 10분 만에 주파해 빠져나온 카인은 동굴입구 앞에 3명이 쓰러져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정체는 이름 모를 두 명의 병사와 아린.
“아린-!!”
동시에 카인은 주변을 빠르게 살폈지만, 로셀은 보이지 않았고, 누워 있던 두 명의 병사 머리에는 아린의 사격으로 인한 총구멍이 나 있었다.
“빌어먹을!!”
카인은 빠르게 아린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건 8성급 화 속성 마법? 미쳤구나, 로셀.’
피의 세습 받은 지 며칠도 되지 않아 고위 성급 마법을 사용한 로셀이었다. 세습으로 선택된 자가 아무리 체내에 마나량이 많다고 할지라도 8성급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는 많지 않았다.
‘무리 했다면,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다.’
아린이 당한 8성급 화 속성 마법의 명칭은 ‘하이피버’로 체온이 급격히 높아져 10분 안으로 즉사하는 단일 적에게 사용하는 고위마법이었다.
‘처음 당했을 때 내가 옆에 있었다면 몰라도 지금은 시간이 부족해.’
쓰러져 있는 아린이 살짝 눈을 뜨며 카인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전하고는 바로 의식을 잃었는지 고개를 돌렸다.
‘아린에게 남은 시간은 5분 정도, 하지만 도망가는 로셀을 놓칠 순 없어!!’
생각하고 분석할 시간은 없었다. 카인은 왼손에 든 마권총을 단검으로 변환 시킨 후 오른손 검지를 살짝 찔러 핏방울이 맺히게 하였다.
뚝- 뚝- 뚝-
그리고 동시에 아린의 머리를 들어 입을 열고는 자신의 피를 3방울 떨어트려, 목구멍으로 넘기게 하였다.
“대기의 마나까지 체득한 너다. 이후의 일은 네가 하기 나름이다, 아린 시슬라.”
카인은 그녀를 두고 바로 자리에서 이탈했다.
목적이 있다면 중간의 장애물 따위는 모두 무시하고 뚫고 가는 자.
전생의 에시앙 에드워니아로 돌아왔다.
카인이 떠난 자리에 쓰러져 있던 아린의 주먹에는 무언가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하지만 서둘러 이동한 그는 그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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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해 봐야 20살 언저리일 거다. 당연히 본인도 마법사니깐 그보다 어린 세습자를 고르지는 않았겠지.’
카인은 성별이 여성에다가 20살 초반 왕족의 체력이라면, 자신이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젠장!’
하지만 이내 카인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바깥쪽 바닥에 선명하게 패여있는 말발굽 자국, 그리고 동굴 주변에 전혀 안 보이는 타고 왔던 말들.
‘그 짧은 시간에 타고온 말들을 야산에 모두 풀어주고, 홀로 여유있게 말을 타고 도망갔다라··· 긴박한 상황에서 짜증 날 정도로 이성적인 판단이군.’
역시나 자신이 가르친 옛 제자다웠다.
‘하지만 관광지도를 모두 외운 내 예측대로 흘러간다면, 아마 그쯤(?)에서 만날 수 있을 거다.’
빠르게 판단을 마친 카인은 방향을 틀어 달리기 시작했다. 로셀은 동굴로 왔던 길을 따라 역으로 돌아갔을 가능성이 컸다.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해 카인은 그들을 데리고 올 때 완만한 길을 한참 돌아서 왔다.
‘물론 휘하 병사들은 지리를 알고 있었을지 몰라도, 자신들의 상관에게 보고할 정도로 중요한 내용은 아니라고 판단했겠지.’
“심장아 버텨 내라, 1000년을 넘어선 내 첫 복수다!!”
카인은 자신의 심장에게 직접 말을 걸 정도로 간절하게 빌며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달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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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헉-”
‘아차- 늦은 건가.’
도시입구 어귀에 다다른 카인의 시야에는 태화국 수도 방위군 초소에 다다른 로셀이 보였다.
‘이렇게 되면··· 끝을 볼 수밖에 없겠지.’
카인은 숨을 고르며, 도시 안으로 입성해 천천히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하늘에는 동이 트려고 하는지 거리의 불꽃각인은 희미해져 있었다.
“나를 안으로 들여서 지켜라!!”
“네가 누군데?”
“나는··· 여왕··· 아니, 나는 태화국의 왕족이니라.”
방위군 초소에 있던 4명의 병사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낄낄낄 웃었다.
“저기 아가씨 집이 어디요?”
4명 중 나이가 있어 보이는 병사가 점잖게 물었다.
“네놈들이 정녕 죽고 싶은 것이냐!!”
로셀의 얼굴에는 긴박함이 서려 있었고,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얇은 천으로 가려진 그녀의 얼굴은 그들에게 보이지 않았다.
“음? 저게 누구야?”
왕실의 방문을 위해 정복을 입었던 카인은 조금 전의 전투로 피가 묻은 손을 허리 뒤로 재빠르게 숨기며 말했다.
“수고들이 많군.”
카마수트라 공국의 공작 배지, 9개의 무공훈장과 태화국의 불꽃 휘장, 그 누구보다 신원이 확실한 그가 병사들의 눈에 보였다.
“저 자다!! 저 자로부터 나를 지켜라!!”
로셀의 강한 외침이 동트기 전 새벽녘 공기를 뜨겁게 갈랐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말은 자연스럽게 무시되며 병사들의 시선은 뒤에 오는 카인에게 집중되었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카인 공작님.”
“찬란한 불꽃께서 태화국 수도는 야경이 좋다하여 구경하며 밤거리를 거닐던 중 한 어미의 간곡한 청을 받아 사람을 찾고 있었네.”
“사람이라면?”
“머리가 많이 아픈 친구일세, 아마도 그녀인 거 같군. 본인이 왕족인 줄 안다지?”
천천히 걸어오면서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던 카인이었다.
‘어디서 흘렸는지 모르지만, 왕족의 신분을 나타내는 표식을 잃어버린 게 분명하군.’
“아하-”
4명의 병사는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강하게 상하로 끄덕였다.
“이런 미친 놈들을 보았나, 지금 태화국의 왕족을 앞에 두고 누구 말을 믿는 게냐!!”
욕설과 고함을 연신 질러대는 그녀의 말은 신원이 확실한 카인의 이야기로 인해 신빙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위치를 알려주시면 저희가 그 집 모친에게 데려다 주겠습니다, 카인 공작님.”
“나도 신분이 군인이 사람이네, 근무 중인 자네들을 귀찮게 할 수는 없지, 자주 오지 않는 도시라서 동선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우니, 내 직접 데려다주고 숙소로 돌아가겠네.”
카인의 말은 병사들을 감동시켰다. 높은 계급을 가진 사람이 하찮은 자신들을 위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특히나 로셀이 통치하는 태화국에서는 말이다.
병사들은 눈앞의 여자를 바로 카인에게 내주었고, 병사들에게 주먹까지 휘두르던 로셀은 카인의 어깨에 짐짝처럼 들려서 이동하게 되었다.
뒤로돌아 그녀를 매고 걸어가는 카인의 손에는 피가 굳은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지만, 병사들의 눈에는 그저 훌륭한 귀족으로 보였고, 존경을 표하며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하는라, 떠나는 그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못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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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놔!! 놓으라고!! 이 개자식아!!”
“왕족배지를 잃어 버렸나 봐?”
'자신의 욕심으로 죽을 길을 스스로 걸어간 어리석은 제자야.'
카인은 씨익- 웃으며 발걸음을 도시 밖으로 옮겼다. 도시 입구의 병사들은 로셀의 지시를 받은 왕실 근위대장이 깔끔하게 치워뒀기에, 출입이 굉장히 편했다.
털레털레 수도 인근의 야산으로 자리를 옮긴 카인은 어깨에 들처맸던, 그녀를 바닥으로 내 던졌다.
“너! 이 개 자식, 내가 누군 줄 아느냐!”
“알지, 태화국의 하나뿐인 찬란한 불꽃, 로셀 에틀렌타.”
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대답이었다. 숨겨진 자신의 신분을 정확히 알고 있는 놈이라면?
로셀은 그가 무언가를 자신에게 바라고 있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살포시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누구인지 안다면, 지금 네 행동으로 인해 카마수트라 공국에 큰 위험이 닥칠 것 또한 알고 있을 텐데?”
“푸하하하-”
카인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로셀은 그 모습을 보고 긍정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기억해라. 너와 나의 위치를!! 원하는 바가 있으면 짐이 들어 주겠노라, 또한 지금의 일도 묻어주지.”
“그럼 너도 기억하고 있으려나? 검은 마녀 안젤리타.”
로셀의 동공이 지진이 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 이름을 네가 어떻게?”
***
“야 더러워!! 쟤 근처에도 가지 마!”
여러 명의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이 모여서 한 여학생을 두고 험담을 하고 있었다.
“검은 마녀, 너 그냥 자퇴하면 안 되냐?”
“아 이쪽으로 오지 마, 불결해.”
안젤리타 크리스토퍼.
그녀의 어린 아카데미 시절에는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했고, 귀족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가문이 몰락하여 형편이 좋지 못해, 항상 때가 덜타는 검은 옷을 입고 다녔었다. 그러한 그녀를 학생들은 검은 마녀라 놀리며 매일같이 괴롭혔다.
‘언젠가는··· 모든 것을 내 아래로 무릎 꿇게 만들 거다.’
날이 갈수록 주변 아카데미 학우들의 괴롭힘은 심해졌고, 그녀의 억셌던 다짐은 조금씩 무너져 가고 있었다.
“네가 안젤리타인가?”
그러한 힘든 삶 속에서 극적인 기회가 찾아왔다. 안젤리타의 능력을 일찍이 알아본 대현자 에시앙 에드워니아가 그녀를 제자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맞는데요, 당신은?”
“에시앙이라고 한다. 체내에 가진 마나량이 많아 보이는데 내 밑에서 마법을 배워 볼 생각이 있느냐?”
언제나 자신의 상황을 바꿔줄 무언가를 고대하던 그녀는 즉시 에시앙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시간이 지나 스승의 정확한 신분을 알게 된 안젤리타는 그의 신분과 힘을 배경삼아 그 누구도 자신을 무시하게 두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몰락한 가문의 성과 이름을 버리고는 바로 새로운 이름을 지었다.
그 이름은 로셀 에틀렌타.
***
아카데미 졸업 후 신분을 완전히 바꿔 버린 로셀이었다. 불우했던 아카데미 시절의 학우들도 로셀과 안젤리타가 동일 인물일 거라고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앞에 있는 카마수트라 공국의 귀족은 정확하게 자신의 눈을 직시하며 학창 시절 별명과 함께 이름을 불렀다.
“어디서 주워들은 게냐, 설마 네가 찾았다던 동굴에 적혀 있더냐.”
로셀은 카인이 찾은 기연에서 자신의 신분을 알아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여전히 냉철한 분석과 이성적인 판단이야. 칭찬해주고 싶군.”
목소리는 다르지만 많이 들어 본 말이었다.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던 시절 유독 다른 이보다 로셀에게 칭찬을 많이 했던 에시앙이었다.
“그저 욕심 많은 아이라고 생각했었지. 그저 화 속성에 대한 마법 학구열이 지나치게 높을 뿐이라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도대체 이유가 뭐냐? 로셀.”
로셀은 아직까지 정확한 판단이 안서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나를 죽이려고 했냐는 말이다.”
카인의 차가운 눈동자가 로셀의 눈을 꿰뚫었다.
“스···승님?”
“1000년 만에 이뤄진 스승과 제자의 마지막 해후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거라,
곧 이승과 이별을 맞이하게 될 테니.”
카인은 어떠한 설명도 없이 직설적인 말로 로셀의 명석한 두뇌가 회전하기 전에 그녀를 정신적으로 압박했다.
“어···떻게?”
“할 말이 없나보군.”
순간 로셀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멈칫했던 그녀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한 것이다.
“스승님 저를 살려주신다면···.”
서걱-
카인은 가차 없이 그녀의 목을 베었고.
슥-
다시 한 번 심장에 검을 찔러 넣었다.
카인이 그녀를 고민 없이 마무리한 이유는 두뇌가 회전하여 판단이 선 똑똑한 로셀에게서는 어차피 무언가를 들을 수 없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더 대화해봤자 가진 상황으로 거래나 하려고 덤벼들었겠지.’
생각지 못한 공격이었는지, 그녀의 눈은 충격과 놀라움을 담은 채 그 상태로 죽음을 맞이했다.
카인은 미련 없이 뒤돌아 숙소를 향해 걸어가며 무영창을 시전했다.
‘블러드 밤’
눈을 뜨고 죽어있던 로셀의 시신은 붉은 꽃이 봄을 맞아 개화하듯.
사방에 붉은 피를 퍼트리며 흔적 없이 사라졌다.
‘화 속성 마력회로 구속이 풀렸나? 그럼 이제 그거는 가능하겠군.’
7제자가 모두 죽기 전에 타 속성 마법은 쓰지 못한다.
다만 마력 회로 구속이 하나 더 풀림으로써 가능한 일은.
‘더블 캐스팅이 가능하지.’
카인은 2개의 마법을 동시에 시전 가능하게 되었다.
‘피곤하군.’
‘씨익-’
돌아가는 길, 이전에 로셀에게 약속했던 미소를 돌려준 카인의 머리 위로는, 어느새 태양이 높게 떠올라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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