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중심부 속의 괴물

후드득, 바닥이 무너지며 에반과 함께 떨어지는 돌덩이들과 함께 에반은 방패를 바닥으로 향한 채로 마나를 집중했다.
‘점화.’
방패가 바닥에 닿았을 때 에반의 방패가 붉은 불꽃을 내뿜으며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발포.’
투쾅-! 굉음과 함께 마지막 바닥을 부숴버린 에반의 밑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가 가장 먼저 보였다.
‘검은 괴물!’
곧바로 놈의 정체를 알아낸 에반은 다시 한번 방패에 마나를 끌어모아 마법을 시전했다.
‘발포.’
쾅!
다시 울린 굉음과 함께 방패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폭발을 그대로 머리에 맞아버린 괴물을 그대로 몸을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착, 마법으로 발생한 충격을 이용해 괴물에게서 거리를 벌린 에반의 바닥에 착지하자 그의 옆으로 헐떡이는 숨소리와 함께 그가 찾은 마나의 주인이 나타났다.
“에반님?”
갑옷이 피로 떡칠 되어있는 레이너는 간신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여기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의 레이너의 모습을 확인하자 왜 그의 마나가 가까워져도 여전히 미미하게 느껴졌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혹시, 메이블님은 어디에 계신 겁니까?”
주변을 둘러봐도 자신과 함께 떨어진 돌덩이들은 보여도 다른 마나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기에 에반은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일을 마치고 복귀하는 중 저 괴물이 급습하는 바람에 대장님을 놓쳤습니다.”
키에엑-!
괴성과 함께 저 멀리서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보여주는 괴물은 자신을 공격한 에반과 레이너를 노려보며 이를 갈고 있었다.
온몸에 붉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검은 괴물의 전체적인 모습은 질리도록 봐왔던 와이번의 모습에 마(魔)의 상징인 검은 뿔을 오른쪽에 하나 갖고 있었다.
더구나 주변에서 맡아지는 썩은 내에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한가득 쌓여 있는 와이번들의 시체가 수두룩했다.
‘정말로 마룡을 만들어 낼 생각이었군.’
검은 괴물을 바라보자 욱신거리는 오른쪽 어깨를 왼손으로 어루만진 에반은 다시 방패를 정면으로 들어 올리며 마룡이 되려 했던 괴물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입을 열었다.
“그렇담··· 혼자서 상대하고 계셨던 겁니까?”
“네, 서둘러 처리하고 대장님을 찾아보려 했으나 제가 아직 부족한 것 같군요···.”
와이번들의 시체를 몇십 마리나 집어삼킨 것인지 와이번의 몸보다 10배는 큰 덩치에 검게 물든 비늘.
그 모습은 이미 마룡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 거대했으나 가지고 있는 뿔은 기록보다 작은 사람의 손 크기 정도에 불과했다. 더구나 갈기갈기 찢어진 두 날개를 보면 아직은 그저 와이번의 육체를 가진 검은 괴물에 불과할 정도다.
하지만 검은 괴물의 벌어진 상처 사이에서 멈추지 않고 흘러나오는 핏물을 바라보며 에반은 기회만 있다면 코웃음을 치고 싶었다.
‘부족이라··· 오히려 살아 계신 게 용하신데?’
뿔이 작고 하나만 있다 해도 여전히 주변의 공기를 짓누르는 기운이 가득한 이곳에서 버텼다는 것이 아닌 혼자서 저 괴물을 저렇게 만들었다는 대답에 에반은 스스로 결론을 낸 것인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옵니다!”
콰직, 레이너의 외침과 동시에 검은 괴물이 찢어진 날개 가죽이 연결된 오른팔을 앞으로 내려찍으며 앞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에반과 레이너의 앞으로 다가온 괴물은 그 오른팔에 달린 커다란 발톱을 보여주며 제 머리에 충격을 준 에반에게 오른팔을 위에서 대각선 왼쪽으로 휘둘렀다.
까가각!
에반의 방패로 겨우 가릴 정도로 거대한 3개의 발톱이 에반의 방패를 긁는 소리가 공간에 울렸다.
“카악!”
에반을 완전히 짓눌러 버리려는 듯 방패를 누르는 제 오른팔에 더 힘을 주자 에반의 무릎이 자연스럽게 굽혀졌다.
‘역시··· 오른팔이 없어서 그런지 무게를 지탱하기가···.’
점점 제 오른쪽 팔과 이어져 있던 어깨가 욱신거리고 있었지만 에반은 오히려 어금니를 꽉 깨물며 괴물의 힘을 버텨내고 있었다.
키긱!
순간, 바닥에 비벼진 검날이 소리를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하늘색의 한기를 간신히 머금은 검이 바닥에서 멀어지자 괴물은 오른쪽의 눈동자를 굴려 자신에게 다가오는 또 하나의 이를 확인하고 꼬리를 휘둘렀다.
캉!
하얀색 나비 문양이 새겨진 방패가 괴물의 꼬리를 막음과 동시에 새하얀 광을 내며 겉면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점화.”
불꽃을 머금은 방패가 새하얀 빛으로 주변을 가득 에워싸자 가려진 시야 속에서 날카로운 하늘색의 냉기가 서늘한 검로를 그리며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빙검···.”
레이너가 만든 검로가 괴물의 오른팔에 닿기 전 새하얀 빛이 사라지자 잔뜩 부풀어진 목덜미와 함께 검붉은 불꽃을 머금은 괴물이 붉은 안광을 보여주며 레이너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크르르.”
이미 같은 공격을 당해본 적 있는 괴물은 레이너를 비웃듯 부풀어진 목덜미만큼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모아둔 불꽃을 그대로 내뿜었다.
&&&
“하하!”
이번에는 하늘색 안광을 보여주는 이는 비록 로브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하관에 생기는 미소만큼은 숨길 생각이 없는 듯 서슴없이 상대에게 내비치고 있었다.
“그 반쪽 남은 몸으로도 정말···.”
캉- 캉!
제 앞에서 자신이 날리는 고드름을 전부 막아내는 젠을 바라보는 소서러의 입가에 미소가 멈추지 않았다.
탓, 그리고 조금만이라도 공백이 생기면 어김없이 자신에게 향하는 검 끝을 바라보며 소서러가 오른팔을 덮은 로브의 회로를 작동시켰다.
캉-!
로브에 새겨진 회로를 동작해 제 신체를 강화한 것인지 소서러는 젠의 검격을 오른팔로 막아내며 왼손에는 팔뚝만 한 고드름을 쥐었다.
쿵, 후드득.
지진이라도 났는지 갑자기 울리며 구멍 난 천장과 뚫린 바닥에서 돌가루가 떨어져 나갔다.
“크윽!”
갑작스러운 충격에 대비하지 못한 젠과 소서러의 자세가 바닥과 함께 조금 흔들렸고 틈을 놓치지 않은 젠의 검 끝이 이번에는 소서러의 왼쪽 어깨를 파고들었다.
촤악-!
오른발로 소서러의 배를 걷어차며 동시에 검을 위로 휘두르자, 뒤로 밀쳐지는 소서러의 어깨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피와 함께 검이 뽑혀 나왔다.
‘아쉽다.’
제 어깨에 벌어진 상처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었지만 젠은 여전히 소서러의 왼손에 쥐어져 있는 팔뚝만 한 크기의 고드름을 바라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저 고드름이 몸에, 심장에 박히게 둘 수 없었기에 조금 성급하게 검을 휘두른 것이 아닌가 하는 잠깐의 고민과 함께 다시 자신의 검에 서늘한 한기를 둘렀다.
“재밌네요.”
벌어질 대로 벌어진 상처라 치료를 받지 않으면 왼팔이 그대로 떨어질 수도 있었지만 소서러의 입가는 여전히 미소를 보여주고 있었다.
꾸륵, 동시에 상처에서 나오던 피가 되려 상처로 빨려 들어가며 벌어졌던 살점이 서로를 껴안기 시작했다.
“역시나~ 소서러는 슈발리에를 이기기 어렵네요.”
소서러의 어깨에서 보이는 찐득한 검은 진액이 몇 초 만에 상처를 수복해 버렸다.
“물론~!”
제가 평범한 소서러였다면 말이겠죠?
탁, 콰직, 손가락이 튕기는 소리와 얼음이 부서지는 소리가 동시에 소서러의 뒤쪽에서 들렸다.
“더구나 슈발리에가 검뿐만 아니라 마법으로도 이런 굉장한 걸 보여주다니···.”
소서러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자신을 공격하던 얼음 분신이 고드름에 맞아 몸이 무너진 것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 인정할게요. 에레그론드 왕국이 어려운 상황이라 이런 인재가 찾아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않았는데.”
콰직!
소서러가 왼손에 쥐고 있던 고드름을 가로로 휘두르자 또 다른 얼음으로 이루어진 분신이 부서졌다.
“마룡을 만드는 건 물 건너갔네요~.”
마치 다 포기한 것처럼 소서러는 혼자서 떠들고 있었지만 젠의 분신이 나타나는 방향마다 정확하게 고드름을 날리며 부숴버리고 있었다.
‘동시에 여러 방향을 공격해도 변함없군.’
엇박자에 혹은 이중으로 겹쳐서 분신을 이용해 공격해 보고 있지만 소서러인 만큼 마나의 흐름과 마법의 전조 현상을 금방 파악하는 듯 손쉽게 젠의 분신을 부숴버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입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아까 당신 옆에 있던 검은 머리도 독특한 걸 품고 있는 거 같은데.”
“하···! 이번 일은 정말 운이 안 좋네요.”
슈슈슉-!
이번에는 젠의 앞으로 날라 온 거대한 고드름들을 검으로 튕겨내자 고드름에 의해 감추어졌던 소서러가 어느새 하늘색 안광을 번뜩이며 젠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꽈악, 여전히 왼손에서 놓지 않은 고드름이 젠의 눈에 비쳐 번들거렸다.
&&&
쩌억!
거대한 아니 괴물과 같은 크기의 입이 소리를 내며 벌어졌고 그대로 괴물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케엑?”
갑작스럽게 제 목이 물려버린 괴물이 붉은 안광을 이리저리 굴리자 하얀 비늘을 가진 기다란 목과 함께 그 끝은 자신이 짓누르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를 향하고 있었다.
“저··· 저건···.”
마치 용의 머리와도 같은 오른팔을 보여주는 에반의 모습에 방금의 공격에 실패하고 바닥에 쓰러진 레이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레이너 님!”
그리고 그런 레이너의 정신을 간신히 붙잡은 에반의 외침에 레이너는 고개를 가볍게 젓고 다시 검을 쥐어 들었다.
타닷, 다시 그리고 이번에는 괴물의 머리를 노리고 달려든 레이너의 검이 한기를 머금으며 하늘색 빛으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설(雪)검술.”
그 모습에 괴물은 다시 입가에 불꽃을 머금으려 했지만, 자신보다 먼저 불꽃을 머금은 입에서 브레스가 뿜어져 나왔다.
쏴아아아아-!
“키에에엑!”
브레스에 타버리고 있는 제 목을 보호하기 위해서 목을 물고 있는 머리를 떼어내기 위해서 한번 몸을 움직인 순간 괴물의 붉은 안광에 일렁이는 하늘색 검이 비쳐 번들거렸다.
“1식, 자국눈.”
얇게 한기를 감싼 검 끝이 그대로 괴물의 오른쪽 눈을 파고들었다.
콰드드득-!
까득, 괴물의 눈에 그대로 검을 박아 넣은 레이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것인지 괴물의 머리를 밟아 자세를 다시 잡았다.
“2식, 가랑···!”
그것 때문에 남아 있는 괴물의 왼손의 발톱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이제야 발견한 레이너는 몸을 옆으로 내질러 간신히 자리에서 벗어났다.
‘젠장, 검이···.’
서둘러 벗어나느라 제 검을 챙기지 못한 레이너는 여전히 괴물의 오른눈을 대신하고 있는 자신의 검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쿵, 거대한 용의 머리가 힘이 풀린 것인지 맥없이 바닥에 추락했다.
레이너가 곁눈질로 에반을 바라보니 방패로 팔을 잘라낸 것인지 방패 하단에 묻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후···.”
숨을 돌리며 목에서 뼈가 뚜둑이는 소리를 낸 에반의 두 눈은 어느새 세로로 가늘어진 동공을 보여주며 괴물과 같은 붉은 안광을 보여주고 있었다.
“레이너 님.”
“검을 회수할 테니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겠습니까?”
목을 강하게 짓눌리던 오른팔이 떨어져 나가자 광분하듯 굉음을 내지르는 괴물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레이너의 입이 움직였다.
“무엇입니까?”
“전방 저 멀리 위로 향하는 길이 하나 있을 겁니다.”
콰직- 콰직!
점점 시동을 걸듯 양팔로 땅을 긁기 시작한 괴물은 당장이라도 둘에게 달려들기 위해서 입에 가득 고인 피를 뚝뚝 흘리며 남은 왼쪽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그대로 여기서 두 층만 더 올라가시면 그 층에 메이블님이 계십니다.”
붉은 안광을 보여주는 만큼 에반의 눈에는 무언가 보이는지 그의 입에서 부드럽게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에반 님 혼자서는 어려울 겁니다.”
쾅-!
땅을 박차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두팔을 바닥에 내려찍으며 다가오는 괴물은 금세 발톱을 치켜들었다.
캉- 쏴아아아아-!
에반이 방패로 괴물의 발톱을 막음과 동시에 어느새 오른팔에서 다시 자라난 용의 머리가 브레스를 내뿜었다.
괴물이 보여준 브레스보다 더 밝은 빛의 불꽃을 보여주는 에반의 브레스를 맞고서 괴물이 정신을 못 차리자 그 틈에 괴물의 왼쪽 팔을 타고 올라간 에반은 괴물의 눈에 박힌 검을 뽑아 레이너에게 던졌다.
“시간이 없습니다! 놈들이 먼저 메이블님을 발견하기 전에 레이너님이 아니면 유진 경께서 찾지 못하면 안 됩니다!”
“키엑!”
제 머리에 올라간 에반에게 팔을 휘젓는 괴물의 머리에서 다시 브레스를 뿜어내 놈의 안면을 태워버리고 있는 모습에 레이너는 호흡을 가다듬고 제 두 다리에 하늘색 마나를 감쌌다.
“지상에서 봅시다!”
검은 괴물의 위에 올라타 같은 안광을 보여주는 에반에게 마지막으로 고개를 끄덕인 레이너의 발걸음이 부탁받은 대로 괴물의 뒤편으로 향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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