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뒤따라온 그림자 (2)

단순히 봐도 3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몸과 마치 강철로 이루어진 듯 매끈한 표면을 보여주는 골렘이 외눈을 주홍빛으로 반짝이며 젠에게 몸을 날렸다.
후욱- 쾅-!
골렘의 몸통 박치기를 받아내는 것이 아닌 왼쪽으로 굴러 피하자 같은 모습의 골렘이 똑같이 몸을 날렸다.
쾅-!
골렘들의 매끄럽게 이어진 공격에 그대로 골렘의 왼팔에 부딪힌 젠은 뒤의 나무에 부딪혔다.
자리를 피하고 싶어도 골렘의 팔과 나무 사이에 몸이 끼어버린 지금, 눈앞의 골렘은 외눈을 반짝이며 마나를 외눈에 집중하고 있었다.
우우웅-!
곧 광선이 쏘아질 것인지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골렘의 외눈이 이글거렸다.
“하하!”
그대로 있으면 골렘의 광선을 맞고 통구이가 될 젠을 상상했는지 소서러가 배를 부여잡고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당신도 결국은 조금 강한 슈발리에···.”
콰드득-!
훽, 예상했던 광선의 소리가 아닌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에 소서러의 고개가 들렸다.
“쯧···.”
혀를 차는 그녀의 눈앞에는 방금까지 젠을 밀어붙이고 있던 골렘이 머리가 뚫려있었다.
쿵-!
의식을 잃은 골렘은 결국 무거운 몸을 이겨내지 못하고 뒤로 넘어졌다.
“··· 이걸 그 가까운 거리에서 뚫는다고?”
자신이 만든 골렘인 만큼 정령들이 만들어 내는 골렘보다 몸이 무를지언정 이렇게 쉽게 뚫릴 거라 예상하지는 못했는지 로브 속의 그림자에 감춰진 얼굴을 찡그렸다.
‘일부러 파괴력이 좋은 불의 골렘만 만들어 데려왔더니만···.’
캉- 캉-!
‘아무리 만든 거라도 내가 만든 건데···.’
남은 골렘이 지금은 최대한 머리를 팔로 감싸 검으로부터 머리를 방어하고 있지만, 저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쓰러질 것이 눈에 훤했다.
“후··· 그래, 그럴 수 있지.”
씨익, 로브에 가려져 하늘색으로 빛나는 눈이 호선을 그렸다.
‘저 슈발리에에게 쓴 골렘이 3기.’
‘하지만 아직 24기의 골렘이 남아있으니···.’
짝짝-!
소서러가 가볍게 양 손바닥을 서로 부딪쳐 손뼉을 치자 경쾌한 소리가 나무 사이를 타고 넓게 퍼졌다.
쿵-! 쿵쿵-!
이어진 육중한 몸을 이끌고 걸어오는 소리와 함께 숲속 여기저기에서 주홍빛을 반짝이며 다가오는 골렘들이 눈에 선했다.
‘게다가 골렘을 여기만 보낸 건 아니니까.’
소서러가 둥글게 휘어진 눈으로 젠이 본래 돌아가려 했던 곳을 바라보자 그곳에서 들리는 소리에 입꼬리가 더 올라갔다.
‘예상보다 조금 틀어졌지만··· 서둘러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겠군요.’
골렘이 소서러의 앞으로 지나치자 잠시 모습이 가려진 짧은 시간 사이 골렘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
쾅-!
태화의 주먹과 골렘의 무거운 주먹이 충돌하자 주변으로 바람이 굉음과 함께 퍼져나갔다.
“점화!”
투쾅-!
태화의 외침과 함께 주먹과 맞닿아 있던 골렘의 주먹이 안으로 폭발하며 뭉개졌다.
위이잉-!
하지만 골렘도 순순히 쓰러질 생각은 없는지 외눈을 빛내며 광선을 준비하고 있었다.
쾅-!
어느새 골렘의 눈앞까지 다가온 태화의 주먹이 빛을 가렸고.
쾅- 쾅-!
충격에 중심을 잃고 뒤로 쓰러진 골렘의 얼굴을 태화의 주먹이 사정없이 내리쳤다.
우우웅···.
결국 완전히 으깨진 얼굴을 보여주며 아무런 빛도 내지 못하고 동작을 멈췄다.
“눈으로 바라볼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주먹을 날려···.”
흠···.
“또 옛 버릇이.”
묵묵부답인 골렘을 뒤로 태화가 주변을 둘러보자 점점 이쪽으로 다가오는 골렘들의 수가 만만치 않았다.
‘··· 보이는 것만 해도 여덟 기.’
쾅-! 뒤에서 들려오는 금속음에 태화가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골렘의 돌격을 몸으로 막아낸 이리스의 뒤로 레이너가 위로 뛰어올랐다.
“레이너! 골렘의 머리를 노려야 해!”
콰드득-! 이리스의 외침에 레이너가 하늘색 마나로 뒤덮인 글라디우스를 골렘의 외눈에 꽂아 넣었다.
“좋았어! 메이블! 그쪽은···.”
“미분.”
콰콰쾅-!
연이은 폭발음과 함께 육중한 몸을 받쳐주던 골렘의 다리가 무너지자 골렘이 두 팔로 바닥을 짚으며 쓰러졌다.
“흡!”
콰드득- 두둑!
쓰러진 골렘의 앞으로 다가간 메이블이 골렘의 머리에 검을 꽂아 넣고 반시계 방향으로 반쯤 돌리자 골렘의 팔이 안쪽으로 접히며 무너졌다.
“이리스, 저기 뒤에 골렘 두 기.”
자신을 바라보며 동작을 멈춘 이리스에게 메이블이 검지로 다가오는 골렘을 가리켰다.
“··· 좋아, 그러면···.”
“오른쪽은 내가 맡을게.”
타닷! 어느새 이리스의 옆을 빠르게 지나친 메이블은 눈앞으로 다가오는 골렘 두 기 중 오른쪽으로 뛰어들었다.
위이잉-!
다가오는 메이블을 확인한 골렘이 눈으로 빛을 모으기 시작했지만, 공격에 시간이 걸린다는 것부터가 이미 기회를 잃은 것이었다.
콰드득-!
찰랑이는 물결을 담은 검날이 외눈이 빛을 모으기 전에 빛을 꺼트렸다.
쿵, 결국 힘도 쓰지 못하고 뒤로 넘어진 골렘의 옆으로 길동무가 되어준 것인지 골렘이 한 기 더 쓰러졌다.
“이리스, 그러면···.”
“··· 끝도 없이 몰려오는군.”
왼쪽의 골렘을 쓰러뜨린 게 이리스와 레이너인 줄 알았지만, 고개를 왼쪽으로 돌린 메이블의 눈에는 검은 머리와 주황색 불꽃으로 주먹을 감싼 태화가 있었다.
“태화 님···?”
“메이블, 너희 세 명이면 숲을 빠져나가는 건 가능할 것 같다.”
화륵, 태화의 몸을 주황색 불이 감싸자 마치 갑옷처럼 태화의 팔뚝과 몸을 감싸 형상을 이루었다.
“지금 내가 가리키고 있는 방향으로 쭉 걸어가면 숲이 끝날 거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지만, 일단 숲을 빠져나가면 그곳은 평지다. 어둡더라도 올리비에가 머무르는 야영지의 불꽃이 멀리서도 보일 거다.”
“혼자서··· 괜찮으신 겁니까?”
“내가 너의 상태를 조금 호전시켰더라도 어디까지나 시간을 버는 것일 뿐. 이런 곳에 너의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
“혼자서도 충분하신··· 거군요.”
팡팡-! 태화가 주먹을 서로 부딪치자 주황색 불똥이 주변으로 튀며 소리를 냈다.
“가봐라. 네가 지금 네 몸을 좀먹고 있는 그것에 먹히면···.”
뒤로 돌아 다가오는 골렘들을 마주 보는 태화가 고개만 옆으로 돌려 메이블을 바라보았다.
“내가 후에··· 호프를 볼 면목이 없다.”
“···.”
“조금 불안한가?”
화륵!
태화의 심장에서 튀어나온 불꽃이 뱀처럼 오른쪽 팔을 감싸더니 모두 주먹에 모였다.
쿵- 쿵- 쿵-!
어느새 앞으로 다가온 골렘이 2기가 팔을 앞으로 휘두르는 모습이 보였다.
쾅-! 태화의 오른 주먹이 더 가까운 골렘의 주먹과 부딪혔다.
“점화.”
후웅, 예상했던 폭발 소리가 아닌 위이잉 소리와 함께 곧 태화의 팔뚝부터 주먹까지 피부에 새겨진 회로가 빛을 내자, 태화의 주먹과 골렘의 주먹 사이로 골렘의 주먹과 맞먹는 크기의 주황색 마법진이 생겨났다.
“[권]. 소각.”
푸와와와-!
마법진에서 주황색의 거센 불꽃이 앞으로 내뿜어짐과 동시에 태화에게 주먹을 날린 골렘의 팔이 안으로 찌그러지며 점점 뒤로 밀리고 있었다.
투- 쾅-!
이어진 폭발 소리와 함께 옆으로 다가오는 골렘까지 집어삼킨 주홍빛 불꽃은 안에 든 골렘들의 몸을 여러 번 주먹으로 내려친 것처럼 온몸을 뭉개버리고 있었다.
“이 정도면 마음 놓고 떠날 수 있겠나?”
치이익,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태화의 팔뚝의 회로가 빛을 내며 주먹에 불꽃을 공급했다.
“내가 소서러의 클래스 중 하나 배틀 메이지(Battle Mage)인 만큼 이제는 믿어주고 먼저 떠나주었으면 한다.”
“네! 태화 님.”
탁, 어느새 메이블의 왼팔을 잡은 이리스가 메이블 대신 답했다.
“가자! 우리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그래···.”
“길은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태화를 혼자 두고 떠나는 것이 마음에 편하지 않은지 앞장서는 레이너와 뛰어가는 도중에도 메이블은 계속 고개를 뒤로 돌려 혼자서 몰려드는 골렘들을 막아내는 태화를 눈에 담았다.
&&&
“레이너! 꽤 뛴 것 같은데 아직 멀었어?”
“··· 방향은 맞아.”
눈을 가로로 가늘게 뜨고서 앞을 바라보는 레이너의 시야에는 숲이 끝나는 지점이 아닌 끝없이 이어진 나무들만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분명, 아빠한테 들었던 내용 대로면··· 지금쯤이면 숲의 끝이 보여야 하는데?’
예전보다 숲이 우거져 시간이 걸리는 것인지.
‘이러다 해가 지면 그게 더 위험해.’
아니면 점점 빛이 사라지는 숲속이 만들어 내는 으스스한 분위기 때문인지 레이너는 일부러 걸음을 재촉했다.
“이리스! 일단 속도를 더 낼ㄱ···!”
푹-!
“끄읍!”
순간 왼쪽 다리에서 느껴진 날이 박히는 고통에 눈을 돌리자 정강이에 단검이 박혀 있었다.
“··· 단검!”
스릉, 곧바로 허리춤에 손을 옮겨 글라디우스를 잡은 레이너의 몸으로 단검 3개가 날라오고 있었다.
‘이건 그냥 맞을 수밖에···.’
팅, 티딕-!
몸을 덮은 단단한 판금 갑옷을 보여주며 레이너의 앞으로 날아드는 단검에 몸을 던진 이리스가 등으로 막아냈다.
“괜찮아?”
단검 따위로는 제 갑옷을 뚫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지 몸을 던진 시점부터 이리스는 단검이 날아온 방향을 등지고서 레이너를 감쌌다.
“··· 고마워.”
픽, 정강이에 박힌 단검을 뽑은 레이너는 하늘색 마나로 다리를 감싸 당장이라도 뛸 수 있도록 만들었다.
훅-! 이리스가 뒤로 돌아 다가오는 검은 형체가 앞으로 내지르는 공격을 왼쪽 팔뚝으로 막고서 오른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가 망치 손잡이를 잡았다.
우둑-!
곧바로 망치를 쥔 오른팔을 옆으로 휘둘러 다가온 적의 옆구리를 가격하자 경쾌한 소리와 함께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 레이너! 저쪽이 숲이 끝나는 나무가 적은 것 같아!”
머리에 쓰고 있는 투구 때문에 조금 울리는 이리스의 말대로 이리스가 가리키는 곳에는 확실히 주변보다 나무가 적어 보였다.
‘방향이··· 저쪽이 아닌 것 같은데···.’
조금 꺼림직했지만, 숲속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여럿 들림과 동시에 이리스가 쓰러뜨린 이의 복장을 보면 놈들은 슈발리에 중 암살과 잠입에 특화된 ‘암살자’에 속한 이들인 것 같았다.
가죽으로 이루어진 갑옷과 머리와 입을 감싼 천, 끝까지 손에서 놓고 있지 않은 숏소드 그리고 허리춤에 잔뜩 보이는 단검들을 바라보는 레이너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기로 가면 돼?”
서걱, 검으로 다가오는 또 한 명의 암살자를 베어낸 메이블이 이리스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
옆으로 다가온 메이블의 오른쪽 얼굴이 점점 꿈틀거리며 검은 오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레이너···?”
조금 삐딱하게 고개를 꺾은 메이블의 오른쪽 눈이 또다시 공허해지는 것이 보이자 레이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일단 저기로 가보자.”
&&&
“윽! 도대체 얼마나 숲속에 숨어든 거야?!?!”
앞으로 달려 나가며 주변에서 날아드는 단검을 갑옷으로 막아내는 이리스가 짜증이 났는지 크게 소리쳤다.
팅!
“후··· 저기! 이제 다 왔어!”
또 날아드는 단검을 막은 이리스가 저 앞쪽의 나무들이 적어진 것을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늘에서 내려오던 빛이 거의 사라지기 직전 나무 사이를 빠져나간 이들의 눈앞에는 평지가 보였다.
“··· 어?”
서 있는 자리는 확실한 초원인 것처럼 짧은 풀이 땅을 덮고 있었지만, 그 앞으로는 여전히 나무들이 무성한 숲속이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하늘에 내려다본다면 넓은 공터가 숲 안에 있는 흔히 숲에서 구멍 난 곳으로 빠져나온 것을 깨닫자 이리스가 당황한 듯 뒤를 돌아봤다.
“미안해··· 나무가 적어 보여서 여기가 맞는 줄 알았어···.”
“이리스, 우선 뒤를 봐.”
레이너의 말대로 이리스가 다시 뒤를 돌아보자 저 앞의 나무 사이에서 암살자가 세 명 걸어 나오고 있었다.
“저 정도면 나 혼자서도···.”
세 명이 끝이 아닌지 계속해서 숲속에서 걸어 나오는 같은 복장의 암살자들이 걸어 나오며 숏소드를 꺼내 들기 시작했다.
보이는 적들의 숫자만 적당히 잡아도 40명은 족히 보이는 숫자에 아직도 저 뒤에서 걸어오는 것까지 합치면 거의 60은 넘는 숫자의 암살자들이 일행을 중심으로 호를 그리며 둘러싸자 그 숫자에 짓눌린 것인지 이리스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하, 이렇게 무리를 지으면서 암살자라고···?”
이리스는 눈앞에 보이는 60명에 가까운 암살자들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 후우. 그렇다고 물러설 수 없지.”
자신이 물러선 한 걸음을 만회하듯 앞으로 두 걸음 전진하며 오른손에 쥐어진 망치에 힘을 불어넣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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