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시작된 걸음 (3)

이른 아침 저 멀리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라마빌의 수업이 시작되었다.
“어젯밤 수업은 괜찮았니?”
휘리릭.
라마빌의 오른손 위로 초록빛으로 빚어진 한 손 망치를 던지자 망치가 두세 번 회전하더니 다시 라마빌의 손에 잡혔다.
“네, 생각보다 제가 배웠던 동작이랑 비슷한데 막상 해보면 많이 다른 것 같아서 좋았어요.”
“좋다, 그럼 오늘은 할애비의 마법 중 하나를 알려주마.”
“마법이요?! 하지만 전···.”
“일단 보여줄 테니 한번 보아라.”
라마빌이 앞으로 손을 뻗자 짚 마당의 흙이 모이며 허수아비가 생겨났다. 망치를 잡고 자세를 천천히 잡은 동작은 어젯밤 이리스가 배웠던 동작이지만 망치의 초록빛이 모이기 시작하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망치 머리의 앞면이 마치 물결이 일어난 것처럼 파동이 동심원을 그리며 웅웅 소리를 냈다.
쾅-!
망치가 그대로 허수아비의 왼쪽 옆구리를 가격하자 충격 때문에 허리가 옆으로 휘었다.
우우웅-!
하지만 이대로 끝이 아닌지 망치 머리의 면의 동심원이 반짝이더니 빛이 망치 머리가 허수아비의 허리를 가격한 지점으로 모였다.
펑-!
허수아비의 옆구리에 모인 빛이 한 번 반짝거리는 순간 녹색으로 이루어진 구멍 난 원이 망치 머리가 적중한 지점에 동심원을 그리며 폭발음을 내었다.
퍼석, 그대로 허수아비가 옆으로 완전히 넘어지며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어떠니? 나름 할애비가 ‘폭발 타격’이라고 부르는 마법이란다.”
“망치에 마나를 감싼 건 알겠는데··· 이후의 폭발을 어떻게···.”
“그런 건 걱정하지 말고 어제 새로 받은 네 망치를 들고 할애비가 한 것처럼 대충 따라 해보겠니?”
라마빌의 지시에 고개를 끄덕인 이리스는 어젯밤 올리비에의 부탁으로 제작된 자신의 망치를 오른손으로 쥐어 보았다.
16살에 슈발리에가 되고 나서 젠에게 받았던 망치는 망치 머리와 손잡이만 있는 수수한 형태인 대신 4년 동안 마음껏 휘둘러도 멀쩡할 정도로 강도와 내구성이 어마어마했었다.
‘이건 마나석이 박혀 있는 건가?’
그에 반하면 지금 손에 쥐어진 망치는 망치 머리 가운데에 눈동자 크기만 한 녹색의 마나석이 자리 잡고 있었고 제작자의 취향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망치 머리가 일반적인 한 손 망치보단 한 뼘의 반 정도 더 컸다.
후우, 망치 머리에 비하여 손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은 무겁지 않기에 라마빌이 만든 허수아비 앞에 선 이리스가 배운 대로 자세를 잡았다.
‘마나로 망치 머리를 감싸고!’
우웅-! 망치 머리에 녹색 빛이 감돌기 시작하자 곧 앞면에 동심원이 생겨 물결처럼 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쾅-!
지금 망치가 이전 망치보다 좋은 것인지 허수아비의 왼쪽 허리가 움푹 패 들었다.
우우웅-!
‘이제 폭발만 하면···!’
우우웅-! 갑자기 망치 머리에 빛이 사라지며 망치의 소리가 흐려졌다.
‘아···.’
역시 당장 따라만 해서는 안 되는지 이리스의 망치 머리는 계속 웅웅 거리고만 있지, 폭발을 일으킬 것 같지는 않았다.
“할아버지 역시 아직은···.”
“이리스 아직 끝이 아니다. 다시 방금처럼 망치로 허수아비를 타격해 보겠니?”
스윽, 라마빌이 멀리서 손짓하자 이리스의 옆에 다시 흙으로 빚어진 허수아비가 생겨났다.
‘좋아, 다시···!’
쾅-!
방금 보다 더 깔끔해진 동작으로 망치를 휘두르자 허수아비의 허리가 크게 휘어졌다.
우우웅-!
하지만 뭔가 부족한지 망치 머리는 똑같이 작게 소리만 울려대며 별다른 걸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이리스! 이제 네가 할 수 있는 것, 망치에 마나를 불어 넣거라!”
“네!”
밑져야 본전인 만큼 이리스는 자세를 유지한 채로 있는 힘껏 망치에 제 마나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정신을 집중하는 이리스의 갈색 눈이 녹색 빛으로 반짝거렸다.
우웅-! 마나를 더 공급받은 망치 머리가 갑자기 녹색으로 크게 빛나기 시작하더니 허수아비와 맞닿은 면에 빛이 모이기 시작했다.
펑-!
이어진 폭발음과 함께 허수아비와 맞닿은 면에 녹색 원 두 개가 동심을 이루며 나타났다.
푹, 그대로 허수아비의 허리를 뭉개버린 결과에 이번에도 허수아비가 땅에 머리를 처박으며 고꾸라졌다.
“이게··· 어떻게···?”
“하하, 마법이 각인된 무기를 써본 소감이 어떻니?”
자신의 결과에 당황하는 이리스의 옆으로 라마빌이 크게 웃으며 다가왔다.
“마법이 각인된 무기라고요?”
“그런 건 없을 것 같았니? 물론 마나석이 필수로 들어가는 만큼 가격이 배로 뛰지만, 중앙에는 이런 무기를 쓰는 이들도 많단다.”
“그럼 이 망치에는 마법이 몇 개가 있는···?”
“일단 3가지를 각인해 놨단다. 방금 내가 시범으로 보여주었듯 3가지 마법 모두 내가 만든 걸 넣어두었지.”
이곳에 찾아올 때부터 이리스에게 망치에 대한 것과 마법도 알려주려 했던 것인지 라마빌이 이리스의 손에 쥐어진 망치의 마나석을 가리키며 답했다.
“오오오! 방금 엄청 신기했어요! 이런 게 있었으면 진작 마련해 볼걸···.”
“그렇게 좋으냐?”
“네! 매번 갑옷이랑 무기에 마나를 두르는 게 다였는데 이런 걸 써보니까··· 물론 제가 마법을 만든 건 아니지만! 어쨌든 기분 좋아요!”
“사용법도 간단하단다 마나를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망치에 넣느냐에 따라서 출력되는 마법이 달라질 것이다.”
기본적인 출력은 지금처럼 많은 양의 마나만 충분히 공급하면 나타나는 ‘폭발 타격’이 첫 번째 소량의 마나를 공급하면 망치 머리가 더 단단해지고 손잡이를 잡은 손과 마법으로 이루어진 줄기로 서로 묶여 망치를 놓치기 어렵게 하는 ‘강화’ 마법이 두 번째.
“방금, 우리 이리스가 망치에 각인된 마법을 처음으로 사용해서 주인이 되었으니 망치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망치를 바라보며 집중하면 망치가 네 손으로 날아오는 ‘귀소’ 마법이 마지막이란다.”
“오오오! 정말 딱 필요한 것만 넣어서 주셨네요!”
“할애비도 망치만 썼는데 손녀의 고충을 모르겠니?”
“그럼, 빨리 나머지도 더 잘 알려주세요.”
생일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뻐하는 이리스의 모습에 라마빌의 눈이 둥글게 호선을 그렸다.
‘흠, 교역로가 무너져 연락만 끊기지 않았어도 내 진작 보냈을 것인데, 얼마나 간절했으면···.’
진작에 이리스의 17살 생일 선물로써 생각해 두었던 망치인 만큼 그저 더 일찍 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라마빌의 입이 조금 텁텁했다.
“그래, 올리비에가 돌아올 점심 전까지 열심히 해서 한 번 놀래 켜 보자꾸나.”
너무 늦게 준 것이 아닐까 항상 고민했지만, 막상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손녀의 표정에 조금은 웃을 수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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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느냐?”
어느덧 해가 중천에서 조금 지나자 저 멀리서 집으로 걸어오는 올리비에를 보며 라마빌이 망치를 흔들었다. 그런 라마빌의 옆에 서서 눈웃음을 짓는 프시케의 손에 들린 쟁반에는 쿠키(cookie)가 한 가득 담겨 있었다.
“조금 늦었구나.”
으적, 나무밑동에 앉은 라마빌이 프시케에게 건네받은 쿠키를 입에 넣었다.
“네, 왕도의 일을 마치고 잠시 젠을 보고 온다는 게 좀 늦었네요.”
젠과 레이너의 상태도 보고 어제 못 들었던 내용도 확인하던 중 왕국으로 돌아온 마리아도 볼 수 있었다.
“··· 그래서 검은 잘 전달해주었니?”
돌아올 때는 젠을 보고 오겠다는 말에 주문 제작 받은 레이너의 검도 겸사겸사 올리비에의 손에 건네주었었다.
“젠이 검을 보고 많이 놀랐나 봐요. 제가 봐도 아버지께서 이번에 힘 좀 쓰신 것 같은데···.”
물건을 받은 레이너가 검의 표면을 감싼 함을 천천히 열어보자 함께 보던 젠도 동생 마리도 그리고 뒤늦게 온 마리아의 눈이 터질 듯 커졌다.
올리비에도 내용물을 본 것은 처음인 만큼 영롱하게 빛나는 도신(刀身)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12년 만에 아들에게 받은 부탁인데 그 정도까지야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 정도면 평생 쓸 정도겠는걸요? 게다가 마법 각인도 되는 마나석에 자동 수리 마법까지···. 검 하나로 어디 영지 하나 값할 정도니, 저도 놀랄 수밖에 없던걸요?”
“우리 손녀 망치랑 메이블 갑옷에도 두 기능은 기본으로 넣어주었으니 그런 건 걱정하지 말 거라.”
“우리 동생은···.”
“후후, 우리 올리(Ollie). 애초에 개가 오히려 더 좋게 만들어야 한다고 아우성치었다. 물론, 나도 마음 같아선 더 하고 싶었지만··· 너도 알잖니? 중앙 법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으로 담아내었다.”
프시케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올리비에를 애칭으로 부르더니 쿠키를 하나 건네주었다.
휘리릭-! 나무밑동에 앉아 있던 라마빌이 손에 든 망치를 공중으로 던지자 곧 망치를 이루는 마나가 흩어지더니 가루도 남지 않았다.
“흠··· 조금 아쉬운 건. 우리 수중에도 물의 마나석은 못 구했다.”
“저번에는 구하셨다고 하셨지 않나요?”
“··· 뭐 나도 잘 모르는 거라, 말을 줄이지만 그렇게 됐다.”
“그럼··· 이제 슬슬 어떻게 시작할지 정할 생각인데···. 이리스는 집 안에 들어갔나요?”
올리비에가 고개를 두리번거려도 이리스가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물었다.
“내가 몇 가지 알려주고 나니 연습보단 실전이라며 한 시간 전에 어디 다녀오겠다며 뛰어갔단다···. 어디 갔는지 알겠니?”
“··· 저도 잘.”
“어머나. 나는 너랑 같이 올 줄 알고 쿠키도 많이 만들어놨는데···.”
프시케의 내뱉은 한숨에 라마빌이 고개를 끄덕이며 앉아 있던 나무 밑동에서 일어섰다.
“뭐 우리 이리스가 아직 어려 보이지만 올해로 벌써 20살이니.”
“중앙 귀족이 되었다면 16살부터 성인이니. 후후, 이때쯤이면 우리 올리도 손녀를 볼 때일 텐데.”
이후로 간단하게 말을 주고받으며 집으로 들어가는 라마빌과 프시케를 올리비에도 따라 들어갔다.
쾅-!
이리스의 망치가 상대방의 검과 부딪히자 굉음을 냈다.
틈이 보여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건만 상대의 도신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아서 그런지 금세 검 면으로 망치 머리를 막아냈다.
‘그럼···.’
우우웅-!
망치에 마나를 불어넣자 망치가 녹색 빛을 내며 검과 맞댄 부분에 빛을 모으기 시작했다.
동시에 이리스의 뒤편에서 노란빛을 머금은 검의 형태를 띠는 것이 이리스의 등을 노리며 날아오고 있었다.
퍽-!
이리스가 왼쪽 어깨를 앞으로 들이밀며 상대를 밀쳤다.
쾅-!
이어서 몸을 뒤로 돌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망치를 휘둘러 날아오는 검을 맞췄다. 펑, 이어지는 폭발음과 함께 어느새 노란 가루를 내며 검이 사라졌다.
“갑자기 대련해 달라고 해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상대가 말했다.
“이런 게 생겼는데 안 써볼 수 없잖아?”
호기롭게 오른손에 쥐어진 망치를 보여주며 말하자 상대의 입가에 얕은 미소를 보였다.
“어떡할래? 더 할래?”
우웅, 이리스는 고개를 저으며 망치에 마나를 불어 넣는 걸 멈췄다.
“일단 배운 것만 좀 써보고 싶어서 부탁한 거라. 이 정도면 충분해.”
망치를 허리춤에 걸어 놓고 투구를 벗자 이리스의 이마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고마워, 에릭.”
넓은 강당 안에 자리 잡은 대련 또는 훈련을 위해서 준비된 단상에서 에릭과 함께 내려오자 자신보다 머리색이 짙은 녹색 머리인 크리스가 양손에 들고 있던 마나포션을 하나씩 건네주었다.
“그게 저번에 말해줬던 망치야? 확실히 때깔부터 다르네.”
“맞아, 어젯밤부터 써보기 시작했는데 무엇보다 마법 각인이 되어있어서 그게 너무 좋아.”
“아니 그럼 마나석에 마법 각인까지면···.”
이리스의 답변에 크리스도 가격을 짐작했는지 휘둥그레진 눈을 보여주다 곧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 것보다 에릭.”
이리스가 크리스에게 받은 마나 포션을 쥐고서 고개를 돌렸다.
“너도 알아야 할 일이···.”
“아침에 올리비에 님과 주홍 님께 전해 들었어.”
스윽, 에릭이 손등으로 입가를 닦아낸 후 왼손에 들려 있는 빈 병에 마개를 끼워 닫았다.
“그럼 너도 도와 줄··· 아니, 우리 아빠랑 주홍 님께서 어떻게 하실 거래?”
“요즘에 주홍 님께서 주변 전선을 굳히는 데 힘쓰고 계신 것도 있고 무엇보다 올리비에 님은 신원 정보가 새로 갱신되지 않아서 중앙으로는 갈 수 없다고 하시더라. 그나마 젠 님이 가장 그런 쪽에선 자유롭긴 하신데··· 반응을 생각해 보면 딱히 긍정적인 것 같지도 않더라고.”
역시 당장은 바로 나갈 수 없겠다는 생각에 이리스의 표정이 조금 침울해졌다.
물론 에릭도 대장직을 갖고 있어서 아마 올리비에나 젠이 동행하지 않더라도 소수의 인원을 이끌고 중앙이든 어디든 입국 허락을 받을 수 있을 테지만, 그런 걸 바라기엔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부담되는 일이었다.
‘··· 솔직히 지금도 이길 가능성도 없는 것 같고.’
무엇보다 레이너와 이야기를 해본다고 해도 둘 다 부단장인 만큼 그럴 중앙이 인정할 만한 권한은 없는 상황이기에 한숨이 새어 나왔다.
“둘이 무슨 이야기 하는 거야?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크리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인지 에릭과 이리스를 번갈아 바라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래도 고마워. 우리가 어떻게든···.”
“두 분께선 골론도 왕국으로 가는 데 편성할 인원을 어느 정도 정하셨고 나도 목록을 봤는데 오늘부터 한명 한명 직접 찾아가서 허락을 구해보겠다고 하시더라.”
“···?”
“대충··· 구성대로만 된다면 오늘로부터 한 4일? 그때를 출발 일자로 보시더라고.”
“그, 그럼···.”
이리스를 향해 고개를 돌린 에릭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 있었다.
“나도 준비하느라 바쁠 테니까 한동안 대련은 자제해줘.”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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