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립무사 (白笠武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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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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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2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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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경 혈투

DUMMY

단주로 향하는 길은 가을이 다 가지 않았는데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태건 일행 앞에 크고 작은 돌들로 빼곡한 너덜경이 나타났다. 돌아서 가는 길도 있기는 했지만 빠르게 가려면 비탈진 너덜지대를 통과할 수밖에 없었다.


“흔들리는 돌을 밟으면 발목을 다칠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제가 밟은 돌만 밟으며 오면 돼요.”


거식이 말을 마치고 너덜경에 널브러진 돌들을 확인하듯 옮겨 다니더니, 다시 돌아와 천천히 밟으며 가기 시작했다. 작도가 웃으며 말했다.


“날다람쥐가 따로 없네요. 몸도 날래고 단단해 보이는 것이 보통 아이가 아닙니다.”


“맨손 격투로는 당해낼 재간이 없는 아입니다. 눈치 못지않게 행동도 빨라 내가 도움을 받고 있지요.”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앞서가던 거식이 되돌아오더니 다급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복색을 보아하니 여진 무사들 같습니다. 모두 여덟 명입니다.”


태건은 평평한 바위를 골라 올라서며 일행을 멈추게 하고 다가오는 자들을 바라봤다. 눈발이 제법 흩날려 얼굴이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으나 분명 무사들이었다.


그들도 태건 일행을 발견하고는 더 빠른 몸놀림으로 다가왔다. 가장 앞서 다가온 자가 태건을 보더니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서툰 조선말이 이어졌다.


“오호, 백철립 무사. 제대로 만났어.”


야인 무사는 뒤돌아보며 누군가에게 상황을 알리는 것 같았다. 태건이 그자를 바라보니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었다.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른 그자는 조용히 앞으로 나섰다. 복색도 그렇고 풍기는 기운에 살기가 돌았다.


“네놈이 바로 그놈이구나. 내 아우들의 목숨을 거둬간 백립무사.”


태건은 말을 듣자마자, 그자의 얼굴에서 토몽과 토진의 모습이 겹쳤다.


“오호라, 반은 조선인 반은 여진의 피로 태어난 토몽의 형제인가 보구나. 너 또한 조선을 해하려 오는 것이냐?”


“나는 나라 따위도 중요하지 않고 명분도 필요 없다. 다만 내 아우를 죽인 자를 편히 숨 쉬며 살게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토몽도 그렇고 토진, 게다가 너까지, 그렇게 애써 배운 무예를 사사로이 개인의 일에만 쓰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태건의 입에서 토몽에 이어 토진의 이름이 나오자, 주위에 있던 무사들이 칼을 빼어 들었다. 태건이 다시 물었다.


“목숨을 거두기 전에 너의 이름이나 알자.”


“나는 여진 무사 토강이다. 조선에는 무사다운 무사가 없다 들었는데, 아우 둘이 바로 네 놈 하나에게 당했다 들었다. 오늘로 조선의 그 대단한 무사 이름도 지워질 것이다. 내 이름을 알았으니 황천 가는 길에도 꼭 기억하고 있거라.”


토강이 태건을 향해 공격을 시작하자, 나머지 무사들도 삼검과 이작도를 향해 달려들었다. 거식은 돌멩이 몇 개를 집어 들어 던지며 무사 한 명을 유인했다.


너덜지대에서 거식을 따라잡을 자는 없었다. 여진 무사들도 이렇게 크고 작은 돌들이 널브러진 너덜지대는 익숙하지 않아 보였다. 무예를 익혀서 몸놀림이 빠르고 반사신경이 좋아서 그나마 버티고 있을 뿐이지 달아나는 자를 잡아 제압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돌팔매질을 해대던 거식이, 무사가 발을 헛디뎌 비틀거리는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어 그대로 밀어버렸다. 무사는 넘어지지 않으려 뒤로 발을 디뎠지만, 눈에 젖은 돌에 쭈욱 미끄러지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곧바로 거식의 묵직한 발길이 무사의 얼굴에 작렬했다.


“조선 땅엔 말구종도 이 정도는 한다. 꼭 알고 가거라.”


발길질을 당하고도 중심을 잡으며 일어서려던 무사는 거식의 거센 발길질에 다시 머리에 돌이 부딪히며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 거식은 바지춤에 넣어뒀던 단도를 꺼내 무사의 목숨줄을 끊어놓고는 다른 무사에게 향했다. 이작도가 거식을 보며 소리쳤다.


“거기 있어라. 여기는 우리가 맡는다.”


거식을 쫓으려던 자는 너덜지대의 특성을 몰라 당했지만, 큰 이동 없이 맞서는 무사들은 달랐다. 일검이 주의를 줬다.


“빈틈이 없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경지에 이른 무사들이다.


일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삼검의 공격을 쉽게 쉽게 막아내며 빈틈을 노려왔다. 삼검 역시 노련한 무사들답게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작도와 상대하는 무사는 달랐다.


이작도의 힘이 워낙 출중하기도 했거니와 쇠도리깨가 예측 불가의 방향에서 날아오는 바람에 피하기에 급급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너무나 가벼운 물건을 휘두르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 이작도의 쇠도리깨는 일반 장정들은 들기도 어려울 정도의 무게였다.


무사가 이리저리 피하며 칼을 휘둘러봤지만, 먼 거리에서 예측불허의 방향으로 날아오는 쇠도리깨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머리로 향하는 쇠도리깨를 칼날로 막아내던 무사는 도리깨의 무게에 밀려 자기 칼등에 머리를 강타당하고 말았다.


”크흑“


무사가 뒤로 휘청거리자, 이작도의 쇠도리깨가 순식간에 다리를 노리고 바람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무사의 정강이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부러지고 말았다. 끝을 보려는 듯 다시 작도가 무사의 머리를 향해 도리깨를 들었다.


태건을 상대하던 토강이 이 장면을 보자마자 나는 듯이 달려들어 이작도의 등허리를 베어버렸다. 이작도가 급하게 피해 보았지만, 토강의 칼끝이 스치듯 베고 지나갔다.


이작도의 등에서는 곧바로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다시 토강이 이작도의 머리를 노리고 칼을 드는데, 태건이 토강의 칼을 받아내며 발로 토강의 배를 차 밀어내었다. 태건이 작도를 바라봤다.


“괜찮은 거요? 뒤로 물러서시오.”


“나는 괜찮소.”


이작도가 다리가 부러진 무사에게 다시 일격을 가하고 뒤로 물러나자, 태건은 토강 앞으로 나서며 등 뒤에서 해심도를 빼어 들었다.


태건은 토강의 무예가 궁금했던 터라 벽조검을 칼집에서 뽑지도 않은 채 그의 공격을 받아내고 있었다. 토몽과 토진 모두 추연소 대주를 제외하고 조선에서는 겪어보지 못할 정도의 고수들이었기에 대적하면서도 배우는 바가 있던 터였다.


토강 역시 토몽과 토진에 못지않은 실력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던 차에 이작도가 당하고 만 것이었다.


“너의 상대는 나다. 이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수 없게 해주마.”


태건은 오른 손에 벽조검, 왼손에 해심도를 들고 온갖 잡념들을 떨쳐내었다. 오롯이 상대하는 토강의 검과 그의 몸놀림에만 집중하며 한 발 한 발 다가섰다.


토강의 입에서 기합소리와 함께 강력한 사선베기가 행해짐과 동시에 태건의 벽조검이 막아서며 곧바로 해심도의 가로베기가 이어졌다. 그러자 토강은 가볍게 몸을 뒤로 빼며 무력화시켰다.


태건은 틈을 주지 않고 곧바로 벽조검으로 배를 찔러 들어가며 몸을 반 바퀴 회전시켜 해심도로는 목을 노렸다. 너무나도 빠른 몸놀림이었지만 토강은 당황하면서도 가까스로 공격을 피해냈다. 그렇게 십여 합을 넘겼지만, 승부는 쉽게 가려지지 않았다.


“과연 조선의 고수로구나. 내 일찍이 조선의 무사들을 많이 상대해 봤지만 너와 같은 고수는 만나보지 못했다.”


태건은 일단 대결이 시작되면 말을 아꼈다. 조금 전 토강의 동작을 복기하며 다음 공격 방법이 정해졌다. 토강은 말을 이어갔다.


“그렇더라도 너는 내 적수가 되지 못한다. 오늘 내가 네놈 목을 쳐서 다시는 조선 무사가 내게 대적하지 못하게 하겠···”


“쨍”


토강이 말이 마치기도 전에 태건의 해심도가 허벅지를 노리고 들어오자 토강은 급하게 이를 막아냈다. 곧이어 벽조검이 토강의 머리를 노리며 날아들었다. 토강은 다시 칼로 이를 비켜 받아냈다. 다시 해심도가 배를 노리고 들어왔다. 토강은 다시 이를 막아내며 벽조검을 바라봤다. 벽조검이 태건의 머리 위로 치솟는 모습이 보였다.


토강의 칼이 벽조검을 막으려 오르는 순간, 벽조검은 공중에서 멈춰서고 해심도가 방향을 바꿔 가로베기로 토강의 배를 갈랐다. 재빠르게 몸을 빼긴 했지만, 토강은 배에 깊은 자상을 입고 말았다.


“크흐흑”


눈발은 점점 거세져 바위에 쌓이는데, 토강의 붉은 피가 그 위에 떨어져 선명한 무늬를 그려냈다.


“너희 형제는 나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토강은 칼을 바위틈에 찔러 박고 그것을 버팀목 삼아 버텨보려 했으나 곧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 광경을 본 여진의 무사들이 싸우다 말고 뒤로 물러서더니 토강을 향해 달려왔다.


무사들은 토강이 가망 없음을 알게 되자, 모두 태건에게 칼을 겨누었다. 태건이 조용한 말투로 일렀다.


“너희들은 너희 부족에게 돌아가 오늘의 일을 알려라. 그리고 조선 땅에 함부로 발을 디디지 말아라.”


말귀를 못 알아듣는지 무사들이 모두 한 인물을 바라봤다. 그자가 통역하자 무사들이 일어서더니 천천히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통역하던 자가 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은 그냥 물러가지만, 꼭 다시 온다.”


일검이 태건에게 다가와 물었다.


“저들을 왜 살려둡니까? 저들은 언제든 다시 우리에게 칼을 겨누고 달려들 것입니다. 이참에···”


“아니오. 지금은 작도님 구완이 더 급하오. 저들과 더 시간을 지체하다간 위험해질 수 있소이다. 그리고 저들이 사는 곳에서, 조선에 두려워할 만한 무사가 많다는 소문을 내는 것이 나쁜 일만은 아니오.”


태건은 여진 무사들이 물러가고 나자, 피뿌리풀과 병풀 말린 것을 가져오게 해 작도의 상처에 붙였다.


“가실 수 있겠습니까? 불편하면 거식이와 함께 다시 북청으로 돌아가···”


“아닙니다. 태건님, 저는 갈 수 있습니다. 제가 걱정거리가 되었네요.”


작도는 괜찮다고 했지만, 태건은 상처를 입은 채 먼 길을 가는 것이 무리라 생각하고 근처에서 하루 묵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이미 깊은 산속이라 주변에는 인가도 없고 노숙할 수밖에 없었다.


태건의 결정을 듣고는 거식이 손도끼를 빌리고는 산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나타나서 일행을 안내했다.


너덜 지대를 살짝 벗어난 비탈길에, 나뭇가지를 잘라 눈을 막을 수 있게 만들어 놓았고 바닥에는 낙엽과 풀 부스러기를 모아 쉴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이작도는 아픈 중에도 거식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야, 거식이 솜씨 보통이 아니네. 언제 이렇게 만든거야. 거식이랑 같이 다니면 집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거식은 씩 웃더니 다시 산속으로 사라졌다가 한참만에 나타났다. 손에는 토끼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삼검이 불을 지피고 토끼를 굽는 사이 태건은 작도의 상처를 살펴보았다. 작도가 태건을 보며 물었다.


“태건님이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요? 여진은 오랑캐일 뿐이지 않습니까? 가끔 노략질은 한다 해서 나라가 위태로운 것은 아니고요.”


태건은 작도의 상처가 심하지 않은 것에 안도하고는 작도에게 걱정되는 부분을 말해주었다.


“장군께서는 늘 여진의 통일을 걱정하셨습니다. 그들이 쉽게 하나가 되기는 어렵지만, 뛰어난 인물이 나타나 이들을 뭉치게 하는 날이면 우리 조선에 가장 큰 위기가 오게 될 거라 하셨습니다.”


“아, 여진 놈들이 건주와 해서, 야인으로 나눠져 있지요? 어차피 그들은 사는 곳도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도 달라서 통일이 되기는 어려울 텐데요.”


“지금은 그렇지요. 농사지을 땅이 부족해 수렵으로 연명하는 그들이지요. 명나라와 조선에게 오랑캐라 무시당하는 그들은 언제든 약한 쪽을 노리고 빼앗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장군께서 특별히 신경을 쓰던 부분이라 노략질은 있을지언정 전쟁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럼 태건님은?”


“조선에 대해 아예 넘볼 생각을 갖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지금은 저들이 우리를 넘보고 있다는 말이지요?”


가만히 듣고 있던 일검이 생각을 말했다.


“열 여섯 어린 왕이 있고, 서로 편을 갈라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대는 작금의 조선을 아는 자라면 누구라도 넘보려 하겠지.”



***



모두 단잠에서 깨어나 다시 길을 나서려는데 아무리 찾아도 거식이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그대로 단주를 향해 길을 줄이는데, 멀리서 거식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지금, 단주에 난리가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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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명불허전(名不虛傳) 24.07.13 40 1 13쪽
68 진검승부 24.07.12 40 1 13쪽
67 격투장 24.07.11 44 1 13쪽
66 암살 24.07.10 45 1 13쪽
65 허룽으로 들어서다 24.07.09 42 1 13쪽
64 기인 기공선 24.07.08 42 1 13쪽
63 북로연합군을 무너뜨리다 +1 24.07.07 48 1 13쪽
62 이마제이(以馬制夷) 24.07.06 44 1 13쪽
61 룽징의 유령 24.07.05 49 1 13쪽
60 신들의 포석 24.07.04 43 1 13쪽
59 문소자 24.07.03 43 1 13쪽
58 강해지는 방법 24.07.02 44 1 13쪽
57 탈환 24.07.01 47 1 13쪽
56 지원군 +1 24.06.30 51 1 13쪽
55 싸움은 기세다 24.06.29 49 1 13쪽
54 승전보 24.06.28 51 1 13쪽
53 사기를 올려라 24.06.27 58 1 13쪽
52 수리검(壽理劍) 24.06.26 51 1 13쪽
51 두만강(豆滿江) 물에 말을 씻기고 24.06.25 52 1 13쪽
50 육검연 완전체 24.06.24 53 1 14쪽
49 새로운 거점 24.06.23 54 1 13쪽
48 나라를 구하는 일 24.06.22 57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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