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식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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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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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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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식 레코드 - 023

DUMMY

23-






지난 몇 달 아카식 연구소는 많이 달라졌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보안을 위한 첨단설비가 가득한 건 당연하고 보안요원도 증원됐다. 신원확인 철저하고 예전처럼 무작정 찾아와 만나달라는 요청은 먹히지 않는다.


분위기가 이렇게 되자 틈만 나면 와서 엉겨붙던 잡상인(?)들과 기자들도 모습을 감췄다.


그럼 겉모습만 달라졌을까?

작은 형과 현우의 여자친구인 혜영 씨가 합류해 연구소 운영과 행정지원을 맡고, 현우가 연구원 관리를 맡았다.


이 깡촌으로 어떻게 꼬드겼는지 합류한 두 사람이 직원들도 여럿 데려왔다. 자기들이 혼자 갈려나가긴 싫어 데려왔겠지만 인원이 늘자 제대로 된 지원체계가 잡혔다.


주변엔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다.

거주를 원하는 연구원이나 직원들에게 제공될 아파트형 숙소, 건너편엔 존슨앤존슨 연구소다.


차량 두 대 겨우 지나가던 도로도 정비하고, 무인 편의시설 들어설 건물도 따로 짓고 있다.


역시 많은 돈은, 많은 걸 가능하게 한다.

6조 4천억의 현금이면 마법에 가깝다.


아, 6조 4천억도 아니다.

바이엘의 라페른 로열티가 입금돼서 이리저리 지출이 계속됐어도 오히려 잔고가 늘었다.


시장 점유율 고작 10%대의 라페른 매출이 그만큼이나 나왔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다 좋다.

다 좋은데 그래도 문제는 있다.


연구원 지원이 없다는 점이다.


“존슨앤존슨 연구원들이 상주한다니 꺼리는 것 같아.”


현우의 설명이었다.

아니 존슨앤존슨 연구원이 상주하면 더 좋은 거 아닌가?


그게 왜 지원을 망설일 이유가 돼?


“영어로 의사소통 이뤄져야 하고 무엇보다 연구성과 비교될까봐 걱정하는 거야.”


현우도 영어 좀 한다고 자신했지만 부담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긴장해야 한다나.


연구성과는···

우리나라 재촉하는 문화에 길들어서 그런다.


시간과 돈은 조금 주고,

결과는 빨리 내놓으라 재촉하는 문화에.


그런 식으로 오랜 시간 가스라이팅을 당해온 사람들의 생각은 뻔하다.


연구원 모집요강 보니 연봉도 그저 그렇네.

돈도 똑같이 주면 그 시골까지 내려갈 이유가 뭐야?


숙식도 제공한다고?

거기서 먹고 자고 일만 하라는 얘기잖아.


영어 능숙해야 하고, 연구결과는 빨리 내놓으면서 존슨앤존슨 연구원들과 비교해 떨어지지 않아야 하고,


교통 열악하고, 주변에 문화시설 하나 없고, 장점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데 갈려나갈 것만 예정돼있고?


미쳤어? 왜 가?

이런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


물론 연봉을 두세 배로 뻥튀기하면 명품관 오픈런처럼 몰려들겠지만 현우가 그건 반대했다.


“연봉은 평균. 연구비 사용은 넉넉히.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많이 주는 방향으로 가.”


“이유는?”


“돈만 보고 지원해 묻어가려는 인간이 분명히 나오거든. 그런 인간들이 잠식하는 조직은 반드시 문제가 생겨.”


“꽃가루 인생 방지 목적이네. 혹시 형네 회사 경험담이냐?”


“······ 그래. 아버지가 군 출신이면 제한 없이 받아들인다 소문이 나자 온갖 쓰레기가 몰려들던 때가 있었어.”


현우의 말은 종종 필터가 없다.

모르는 사람은 오해하기 딱 좋은데 그래도 쓰레기란 표현이 나왔을 정도면 상황이 심각했던 거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결국 사람을 통해 치유된다?


좋은 말이다.

저 치유를 가장 크게 경험한 사람이 나고.


하지만 치유받기 전까지는 인간 자체에 대한 혐오가 치솟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나 역시 사람 자체가 싫었던 적이 종종 있어 연봉 인상은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대신 하나만 걸려라, 하고 있다.


현우랑 머리 맞대고 결정한 인센티브는 연구소 수익의 15%다. 연구원 100명이면 100등분이지만 연구원이 혼자면 몰빵으로 가져간다.


그것도 수익이 났을 때 얘기겠으나,

이미 세상이 들썩이고 있다.



[존슨앤존슨, 신약 도디톡스 임상 3상 돌입.]



저 뉴스가 첫 테이프를 끊었고, 미국의 유명 제약사들이 차례로 신약 임상 소식을 전하는 중이니까.


종종 한국에 들어오는 로버트 말에 의하면 존슨앤존슨이 독하게 밀어붙이는 중이다. 3상 대상 인원을 10만 명을 뽑는 중이라나.


듣는 순간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보통 임상시험 크게 하면 수천 명에서 만 단위도 자주 보긴 한다.


그런데 10만 명이면···


신약 개발 비용이 평균 50억 달러 시대를 열었다고 하는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임상이다. 특히 3상.


1상이 소수의 건강한 사람 대상.

2상은 인원 더 늘려 환자도 포함.

3상은 환자 대상 대규모 집단 테스트.


딱 봐도 알겠지만 많은 인원을 대상으로 할 때 많은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시험 자체의 비용도 크지만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치료비는? 보상금은?


이런데 10만 명이라니.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을 때도 임상시험 인원 10만 명 소리는 못 들어봤다. 돈을 얼마나 쏟아붓는 걸까?


어쨌든 3상은 이미 진행 중이고, 이제 서너 달 안에 마약중독 치료라는 부작용(?) 소식이 전해질 것이다.


고도의 정치공학 설계에 따른 작품.

파급력이 계산이 안 된다.


그냥 확실한 건 효과는 보장한다는 것, 따라서 팔린다는 것, 추가 수익이 발생한다는 것뿐이다.


특허는 내 소유.

당연히 라이센스 비용도 내가 받지만 로열티 수익은 연구소로 돌리기로 결정했으니 누구든 들어오기만 해.


돈에 깔리는 기분을 알려준다.


그렇게 혼자 망상에 젖어있을 때 로버트를 통해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 준, 알고만 있어요. 마이크가 CEO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습니다. 임시 주총이 열려요.




***




“특허를 넘겨받은 것도 아니고 고작 라이센스를 발급받더니 이번엔 임상시험 규모가 10만 명입니다. 그 비용만 60억 달러라는데 경영진은 생각이 있는 겁니까?”


“존슨앤존슨 단독 개발이라면 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습니다. 특허 하나를 놓고 47개 제약사가 동시에 라이센스를 받아 시장 점유율도 자신하지 못합니다.”


“한국까지 찾아가 특허권자를 먼저 만나고 협업까지 했으면서 라이센스는 공동으로 발급받아요? 이건 명백한 배임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영업 양도로 봐야 하고, 주식매수 청구권 대상이 됩니다.”


“그렇게 출혈 투자를 해놓고 경쟁에서 이기면 된다? 맞습니다. 이기면 됩니다. 그런데 이기기 위해서 판매망 정비에만 또 얼마나 많은 자금이 투입돼야 할까요?”


“임상시험 비용과 판매망 정비에 소모되는 자금까지 생각하면 내년 존슨앤존슨은 배당 지급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수십 년 만에 처음 있는 사례가 되겠지요.”


“이런 방만한 경영이 어디 있습니까? 기업의 가치는 무엇보다 이익 창출이란 사실을 잊은 겁니까? 그렇다면 우리 주주들이 마이크 할리 CEO에게 계속 존슨앤존슨의 키를 맡길 이유가 무엇입니까?”


“계속된 주가 하락이 존슨앤존슨의 가치에 의문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그 의문이 확신으로 바뀌기 전에 현 경영진의 교체를 건의합니다.”


.

.


날 선 추궁.

그 추궁을 입증할 온갖 자료들.


존슨앤존슨의 임시 주주총회는 현 경영진에 대한 성토로 물들었다. 주장하는 내용이 사실이기도 했다.


일단 라이센스부터 문제가 된다.

우울증과 조현병, 양쪽에 모두 효과를 기대하는 신약이라고 세상을 속이고 있지만 마약중독 치료제다.


존슨앤존슨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했다.

과거 연합국이 추축국을 물리쳤던 것처럼 연대가 필요한 상황이라 인정해야만 했고, 정부와 은밀한 거래까지 마쳤다.


하지만 이 사실을 밝힐 수가 없다.


그리고 연대의 대가로 경쟁이 불가피해졌으니, 출혈을 감수해야 하는데 이 사정 또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앞의 사정을 모르고 뒷사정을 어떻게 이해하나.


“모든 제약회사가 신약 출시 전에는 진통을 겪습니다. 임상 의견 하나에 주가가 파도를 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진통 때문에 경영진을 교체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적어도 존슨앤존슨 내에선 없던 일입니다.”


“또한 마이크 할리 CEO의 임기가 몇 년씩 남았습니까? 4개월 남았습니다. 지금 상황에 경영진 교체는 위기감을 더 증폭시키는 결과만 낳을 겁니다.”


결국 원론적인 방어밖에 할 수 없었다.


이후에도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으나 끝내 결론을 내리지 못했으니 남은 해결책은 권리 행사뿐이었다.


민주사회의 투표는 1인 1표지만,

주식회사의 의결은 1주 1표.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를 따른다.

투표가 시작됐다.


.

.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존슨앤존슨의 주식 중 실제 거래되는 양은 30%에 불과하다.


나머지 70%는 대주주들의 몫.

그 가운데 경영진 교체를 요구하는 세력의 지분은 30%에도 못 미쳤지만 그들은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열심히 추궁하고, 입증자료 제출하고?

모두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 방어 논리가 옳은 말이다.


임기 4개월 남은 경영진 교체는 존슨앤존슨의 현 상황이 그만큼 안 좋다는 증거가 되니까. 위기감을 부채질해 주가나 더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오니까.


하지만 마이크 할리의 유임은 막아야 했다.


이미 1상, 2상에서 좋은 결과를 얻은 신약 도디톡스가 남은 3상을 통과할 경우 마이크 할리의 유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것을 막기 위해 압박이 필요했다.


해임안이 통과되면 좋다.

주가야 출렁이겠지만 대응책도 준비해뒀다.


통과되지 않으면 원래 계획대로 주식매수 청구권을 행사한다. 월터 다이먼의 자산은 모두 파악했고 그에게 합류한 이들도 자금을 지원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면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

마이크 할리의 유임은 없는 것으로.


그들은 꿈을 꾸었다.




***




“결과 나왔습니다.”


“가지.”


월터 다이먼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 친구를 뒤따라 일어선 마이크 할리가 말을 건넸다.


“아직도 안 알려줄 건가?”


“뭘?”


“자네 마지막 카드.”


“참아. 금방 보게 될 건데.”


“그거 악취미인 거 알지?”


“자네 마음에 안 들면 악취미야?”


“······ 걱정돼서 그래. 내가 물러나는 거야 차라리 바라던 바지만 우린 정부와 밀약을 했어.”


이제 중간선거가 반 년 남았다.


정부는 그 중간선거를 위해 도디톡스에 신속허가과정을 허락했고, 존슨앤존슨은 보답을 해야 한다.



[우리 도디톡스가 사실은 마약중독 치료 효과가 뛰어나답니다. 정부에서도 그 사실을 알고 지원 중이었어요.]



이런 발표를 해야 하는 것이다.

시기는 선거를 한 달 정도 남겼을 때.


그런데 마이크 할리가 CEO 자리에서 물러나며 그런 사실이 저쪽에 알려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더불어 야당 쪽에도 알려지면?


존슨앤존슨에 어떤 바람이 불지 모른다.

태풍만 돼도 괜찮겠지만 토네이도에 뿌리가 뽑힐 것까지 걱정해야 할 수 있다.


알고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시기가 너무 안 좋았다.


“그러니까 내 카드로 주식매수 청구를 막을 수 없을까봐 걱정된다는 소리잖아.”


“자네만 아는 카드면 누구나 걱정할 걸.”


“저녁에 술을 사게 해주지. 버번이어야 해.”


“망할 인간.”


.

.


결과는 예상한 그대로였다.


찬성 39%, 반대 61%.

고작 4달 남은 CEO를 자리에서 끌어내려 주식시장에 큰 파도를 치게 하느니 4달 더 지켜보자.


이것이 해임안을 부결시킨 주주들의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 결정은 1라운드.

2라운드는 따로 은밀하게 시작됐다.




***




“월터, 아직도 마음을 바꿀 생각 없나?”


“여전히 그런 기대를 갖고 있나?”


“자네가 여전히 블러핑을 치고 있으니까.”


“카드에서 블러핑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방법은 항상 하나뿐이야. 상대 레이스에 맞춰 돈을 내고 콜을 부르는 거지.”


“······ 좋아. 카드 확인해야겠네.”


월터는 상대가 내민 서류를 받아들었다.


주식매수 청구. 금액.


“전부 1,160억 달러?”


“지난 두 달 존슨앤존슨의 평균 주가로 계산했는데 문제라도 있나?”


평균 주가 계산이 문제가 아니다.

28.4%의 지분이 늘어났다는 것이 문제지.


그러니 1,050억 달러면 해결할 수 있었던 상황이 지금은 무려 110억 달러가 추가로 들어가야 한다.


110억 달러.

우연의 장난일까? 애송이에게 넘겨준 지분 3% 가치와 맞아떨어지는 금액이다.


“제법 끌어모았군.”


“자네가 너무 자신 있게 블러핑을 쳐대니 어쩔 수 없었네.”


“그래. 자네 정도면 숨겨둔 카드 한 장 더 있다고 해도 놀랍진 않아.”


“다시 말하지만 마이크 할리의 유임만 포기하게. 그리고 그 서류는 찢어버려. ”


“거절하겠네.”


“······ 진심인가?”


“청구권 행사 받아들이고 다음 달까지 입금하지. 사실 자네가 이 망할 서류를 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 많이 했어.”




***




“정말이야? 바이엘에 투자한 게 언제야?”


“라페른 임상 들어가기 직전이었을 걸. 새로운 비만 치료제를 내놓는단 소식을 들었는데 당시엔 워낙 위고비와 마운자로가 잘 나가고 있었어. 그래서 반응도 시원찮고 주가가 오히려 떨어지는 중이었지.”


“그런데 자네는 오히려 들어갔고.”


“결국 그 애송이 덕분에 많이 번 거야.”


“······ 어쩐지 통 크게 쏴준다 했더니.”


“부족하면 조금 더 쏴주지 뭐.”


.

.


네 달 뒤, 예정보다 조금 이른 시기.


우울증 치료제가 아닌 마약중독 치료제 도디톡스에 대한 기사가 언론을 뒤덮기 시작했다.



[존슨앤존슨, 도디톡스의 핵심 성분에 대한 추가 연구 중 우울증 치료보다 마약중독 치료에 더 높은 효과를 발견······]


[마약중독 치료의 시대가 열리나?]


[도디톡스 임상 참가자 중 경증 중독자 4,278명 치료 확인!]


[중증 중독에도 효과 있는 것으로 판명.]


[도디톡스 핵심 성분의 특허를 낸 원천 개발자는 과연 마약중독 치료 효과를 몰랐던 것일까?]



세계의 관심이 한국의 작은 연구소를 향하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다른 모든 내용도 마찬가지지만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에 관해선 소설적 각색이 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내용이 현실과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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