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의 역모

ㅡ ...헐대박을 잡아 먹고 싶으시다고요?
ㅡ 흠흠, 그렇소
ㅡ 아니되옵니다
어의가 꿇어 엎드렸다
ㅡ 그것만은 아니되옵니다
울음을 참는 궁인들도 다 꿇어 엎드렸다
ㅡ 방금까지 다 된다고 하지 않았소?
ㅡ 게다가 곧 혼인도 하는데
ㅡ 아무리 죽을 병에 걸렸다고 해도 사람이길 포기하는 행동은 아니되옵... 흐윽, 인육을 드시고 싶다는 게.. 흐읍, 그것만은 아니되옵니다
ㅡ 최이군 자가, 최이군 자가
옆 방에서 들리는 울음소리를 듣는 하늘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라 25.545를 쳐다보자 주먹을 입 안에 넣은 채 울음을 참고 있었다
하늘이 조용히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초상집 같은 초이궁 상황이 온 궁에 퍼지고 있었다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신하들이 연회장으로 모였다
술에 취했는지, 행복에 취했는지 얼굴이 발그레한 왕이 잔을 높이 들었다
ㅡ 여기 모인 모두의 힘으로 랑캐를 무찌르고 대한민국을 지켰다
ㅡ 오늘만큼은 마음껏 마시고 마음껏 즐기거라
와 ㅡ
음악이 시작되고 본격적인 잔치가 시작되었다
가운데 자리에 왕이 앉고 한쪽에는 신하들이, 한쪽에는 세자, 최이, 하늘이, 군사들이 순서대로 앉아 있었다
개인 상에 차려진 음식을 본 하늘이 무기 당당 신하들을 향해 눈을 부라리려고 찾아봐도 앉은 자리가 먼 탓에 보이지가 않았다
잡곡밥, 시래기 국, 시래기 무침, 동치미 무가 중간중간 섞인 시래기, 이름은 모르지만 어쨌든 녹색, 또 녹색, 또 또 녹색, 구석에 고기반찬 하나, 식혜 한 잔
'하아, 먹는 것에 마음 상하면 얼마나 오래 가는지 몰라서 이래?'
'두고 봐, 삶은 계란 왕창 먹고 얼굴에다 방귀 껴 버릴 테다'
최이의 상을 보았다
완벽했다
하늘이의 엉덩이가 최이쪽으로 슬금슬금 다가 갔다
다가오는 하늘이를 느낀 최이가 빙긋, 웃었다
이래도 되나?, 싶은 하늘이 왕을 쳐다보자 부부가 될 최이와 하늘이가 예뻐 보이는 왕이 흐뭇하게 웃으며 술을 한 잔 마셨다
최이를 보자 방금 전 들었던, 최이의 죽을 병 때문에 초이궁이 울음바다가 되었다는 얘기가 다시 생각난 왕이 슬픔을 삼키려 또 술을 한 잔 마셨다
입을 삐죽이는 하늘이 최이에게 자기 상을 가리켰다
피식, 그저 웃음만 나왔다
ㅡ 신무기 창고가 텅텅 비었다더니 무기 담당 신하들이 준비했나보구나
ㅡ 그래도 그렇지, 오늘 같은 잔치에 이건 너무하잖아요
ㅡ 그래, 내 상에서 먹고 싶은 것 다 먹거라
ㅡ 왕자님, 쵝오
술을 마시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참지 못하고 하늘이를 만질까 봐 걱정이 된 최이가 술병을 아예 바닥으로 내려놓았다
옆자리 앉아있는 세자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최이가 예쁜 진달래가 박힌 전을 집어 앞접시에 놓아주었다
ㅡ 먹어보거라,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최이가 전을 집자 밝아졌던 세자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몸을 앞으로 훅 내밀어 최이쪽을 보았다
최이에 가려 안 보였던 하늘이가 전을 입에 넣으려고 하고 있었다
당황한 세자가 하늘이를 향해 버럭 소리쳤다
ㅡ 먹지 마
입을 벌린 채 쳐다보는 하늘이를 비롯한 모두가 세자를 쳐다보았다
ㅡ ...그건 내 아우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다
ㅡ 네
민망한 하늘이 전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뭔가를 눈치챈 최이가 세자에게 엎드려 절했다
ㅡ 아우 생각해주는 형님의 마음에 소자 감읍할 뿐이옵니다
고개를 든 최이가 진달래가 곱게 박힌 전을 집어 세자에게 가까이 가져갔다
ㅡ 소자가 제일 좋아하는 것, 형님께 먼저 올리겠사오니, 받아주옵소서
당황한 세자가 고개를 뒤로 뺐다
ㅡ 네가 좋아하는 것을 어찌 내가.., 괜찮으니 너 먹거라
최이가 손을 치우지 않자 열 받은 세자가 최이의 손을 쳐 냈다
ㅡ 너 먹으...으아아악
세자의 손에 맞은 최이가 교묘하게 전을 세자의 다른 손에 떨어뜨린 것이다
전에 닿은 손을 옷자락으로 마구 닦아 내는 세자를 보는 최이가 버벅거렸다
ㅡ 귀하신 몸에 소자가.. 어찌..
당황한 듯 몸 동작을 크게 움직이는 최이가 바닥에 내려 둔 술병을 쳐서 엎었다
쏟아진 술이 세자가 앉은 방석을 적시자 화들짝, 놀란 세자가 벌떡 일어서려다 상을 뒤엎어버렸다
와장창창, 쨍그랑랑랑
..., 세자가 "먹지 마"라고 소리칠 때부터 조용해진 연회장이 지금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몸에 술이 묻었는지 호들갑스럽게 살펴 본 세자가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고는 부리나케 연회장을 나가 버렸다
모두의 시선이 세자의 뒷모습을 따라갔다가 왕을 향했다가 최이의 상으로 향했다
입에 든 음식을 급히 뱉어낸 사람들이 자기 상태를 살폈다
'아픈가? 피를 토히려나? 쓰러지려나? 몸의 모든 구멍에서 검은 피를 토해내며 죽으려나?'
'... 내 상에는 독이 없었던 것 같군'
ㅡ 여봐라, 모든 음식을 조사하라
왕의 싸늘한 명령이 선포되자 급히 은으로 된 물건을 가져온 내시들이 음식에 대 보았다
최이의 상에 있던 진달래 박힌 전에 은비녀를 대자마자 닿은 부분이 시꺼멓게 변했다
으헉
놀란 내시가 은비녀를 던져 버리는 바람에 모인 모두가 시꺼멓게 변한 은비녀를 보았다
왕이 휘청거렸다
ㅡ 전하
ㅡ 전하를 뫼시어라
내시들이 왕 곁으로 다가오는데 청그랑, 상에 떨어진 은비녀가 큰 소리를 내었다
모두의 시선이 소리 난 곳으로 향했다
부들부들 떠는 내시가 법도를 어기고 왕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헉, 놀란 왕이 목을 부여잡았다
내시가 왕의 입안에 은수저를 넣었다
입에서 빼낸 은수저의 색이 그대로였다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쉰 왕이 소리쳤다
ㅡ 당장 죄인을 추포하라
ㅡ 궁의 모든 문을 걸어 잠그고 절대 궁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라
ㅡ 예, 전하
흥겹던 잔치 자리가 한순간에 왕의 시해 시도 장소가 되어 버렸다
최이가 어금니를 으드득 갈았다
'날 죽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바마마까지?'
'게다가 하마터면 헐대박이 죽을 뻔했다'
'절대 용서 못 한다'
하늘이 최이의 손을 잡았다
하늘이의 온기에 정신을 차리니 자신이 숨을 안 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숨을 제대로 쉰 최이가 왕을 쳐다보자 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가 직접 세자를 잡으러 가지 말거라'
얌전히 기다리자 세자를 잡으러 갔던 군 지휘관 28.888이 급히 들어왔다
ㅡ 송구하옵니다, 전하
ㅡ 벌써 몸을 피하신 것 같사옵니다
ㅡ 오늘 밤이 지나기 전에 잡아들이라
ㅡ 명 받들겠나이다, 전하
잔치를 제대로 즐겨보지도 못한 군사들이 세자를 찾으러 각 구역별로 흩어졌다
얼굴이 흑빛이 된 왕이 어의도 물리치고 최이와 마주 앉았다
ㅡ 최삼과 최사는 어찌 되었느냐?
ㅡ 안팎으로 굳게 지키라 명하여 두었나이다
ㅡ ...
ㅡ 소자가 직접 가 보도록 하겠사옵나이다
ㅡ 그리하라
왕이 힘 없이 의자에 기대는 것을 본 최이의 표정이 흐려졌다
ㅡ 아바마마, 이럴 때일수록 강하게 버티셔야 하옵니다
ㅡ 그래, 네가 죽을 병만 아니었어도, 내가 이렇게까지 괴롭진 않았을 터인데
ㅡ 걱정하지 마옵소서, 소자는 죽지 않사옵니다
ㅡ 그래, 그래야지
나가보라고 왕이 손을 젓자 최이가 물러나왔다
하늘이 기다리고 있었다
ㅡ 임금님은 괜찮으세요?
ㅡ 충격이 크시다
ㅡ 당연히 충격이 크시겠죠, 에휴
ㅡ 가자, 최삼과 최사와 허연과 희부연이 잘 있나 보러 가자
함께 걸어가면서 하늘이 말했다
ㅡ 혹시 내가 걸리적거리면 먼저 초이궁에 가서 기다리고 있을까요?
하늘이를 떼어놓기 불안한 최이가 말했다
ㅡ 내 곁에 있거라
ㅡ 그래야 군사들이 그대를 따로 지키지 않아도 되니 세자를 더 빨리 찾을 것이다
ㅡ 네
최삼이 거하는 궁으로 가까이 갔는데 지붕 위에 서 있는 세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ㅡ 죄인이 나타났다
누군가 외친 소리에 군사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세자의 뒷모습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모인 사람 중에 최이가 제일 높으므로 군사들이 최이가 신호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이가 팔을 높이 들었다
최이가 팔을 내리면 모든 화살이 지붕 위의 세자의 등으로 꽂힐 판인데
하늘이 소리쳤다
ㅡ 잠시만요
굳은 최이가 세자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팔을 움직이지 않자 하늘이 속사포로 의견을 쏟아냈다
ㅡ 저 사람은 세자가 아닌 것 같아요
ㅡ 세자 저하가, 평소에 운동도 안 하고, 움직이는 것도 잘 안 하는데 지붕 위를 올라간다고요?
ㅡ 더더군다나 주위에 도와 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요? 세자는 절대로 저기에 못 올라 갈껄요?
일리 있는 말에 최이가 제일 가까이에 있는 군사에게 명했다
ㅡ 얼굴을 확인하라
나머지 군사들은 여전히 세자의 뒷모습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고 있고 한 군사가 소리쳤다
ㅡ 몸을 이쪽으로 돌리고 고개를 들어라
세자의 뒷모습이 몸을 돌리자 얼굴이 복면으로 가리워져 있었다
ㅡ 복면을 벗어라
복면을 벗자 정인이 있는 까망이었다
군사가 소리쳤다
ㅡ 세자 저하가 아니시옵니다
까망이가 땅으로 내려와 최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ㅡ 죄인은 어디 있느냐?
ㅡ 알지 못하옵니다
ㅡ 자네는 세자 저하께 목숨을 맹세한 자다
ㅡ 분명코 뒷일을 도모하기 위해 모일 장소를 자네에게 일러뒀을 것이다
ㅡ 그렇치 않사옵니다
ㅡ 소인에게 이 옷을 입히시더니 지붕 위에 서 있으라,하시고 어디론가 가셨사옵니다
ㅡ 소인이 아는 것은 이게 다이옵니다
ㅡ 세자의 다른 사람들은?
ㅡ 모르옵니다
ㅡ 이 자를 지하 감옥에 가두거라
ㅡ 혹여라도 빠져나가는 일이 없도록 단단히 지켜야 할 것이야
ㅡ 예, 최이군 자가
혹시라도 세자가 보낸 사람이 까망이를 없애버릴까 봐 차라리 안전한 지하 감옥으로 보낸 것이다
힘 없이 끌려가는 까망이는 속으로 울고 있었다
'세자 저하의 명으로 죽이려고 접근한 인간은 자기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날 살릴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정작 목숨을 맹세하고 십 수년간 곁에 머문 세자 저하는 자기 대신 날 죽음의 자리에 몰아세우고'
'방금도 인간이 아니었다면 난 죽었겠지'
'나도 인간처럼 좋은 주인을 만날 수 있었더라면...'
같은 시각, 멀찌감치 최사가 거하는 궁의 지붕에도 세자로 변장한 까망이가 서 있었다
피잉, 피잉, 피잉
ㅡ 죄인을 잡았사옵니다
데구르르, 바닥으로 떨어진 사람의 얼굴을 본 군사가 흠칫, 놀랐다
ㅡ 세자 저하가 아니시옵니다
등에 무자비하게 화살이 꽂힌 까망이는 살아날 가망성이 없었다
한편, 세자는 내시 등에 업혀 궁궐 안에서 가장 멀리 있어 사람이 잘 오지 않는 우물로 내려가고 있었다
조그만 두레박에 올라타고 불안 불안하게 내려가는데 내시가 허둥대는 것이 느껴졌다
ㅡ 무슨 일이냐?
우물 안에서 크게 울리는 소리에 꿈쩍 놀란 세자가 소곤거렸다
ㅡ 무슨 일이냐?
ㅡ 입구가.. 입구가 사라졌사옵니다
ㅡ 뭐야?
ㅡ 저하, 소리를 낮추옵소서
ㅡ 군사들이 랑캐와 전쟁을 하러 가기 전에 내 확인해 보라 일렀지 않느냐?
ㅡ 그때는 분명코 구멍이 있었사옵니다
ㅡ ...
ㅡ 혹, 초이궁 궁인들이
ㅡ 헉, 저하께옵서 궁의 모.든. 우물을 청소하라 하셨사옵니다
ㅡ 그럼 이제 어찌하느냐?
ㅡ 그..그것은 저하께옵서
ㅡ 뭣이?
ㅡ 제발 목소리를 낮추옵소서
ㅡ 일단 다시 올라가겠사옵니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ㅡ 여기는 궁에서 외진 곳이다
ㅡ 궁을 빠져 나가지 못했다면 이런 곳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샅샅이 뒤지거라
ㅡ 예, 장군
군사들의 소리를 들은 세자와 내시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마음을 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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