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

‘저기서 직구를 꽂는다고?’
병실 안.
침대 위에 한 남자가 누워 있었다.
남자는 작은 공 하나에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그런 남자의 옆에는 추레한 고무줄 바지와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를 입은 간병인 아주머니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야구 중계 소리가 어느덧 막바지로 접어들었을 때, 강태무는 고개를 흔들었다.
‘병신.’
그는 욕을 곱씹었지만, 무슨 일인지 병실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또한 어이없는 경기력에 고개를 흔들었지만, 움직임 하나 없이 고요했다.
남들이 보는 그의 모습은 일자로 곱게 누워있던 산송장과 같았다.
산송장 같던 그가 내뱉은 욕이 향한 방향은 멍청하게 수 싸움에 매번 지는 투수 도은한이 아닌 그 볼을 치러 나온 타자에게 향하고 있었다.
상대가 시원찮아 배팅 볼 같은 볼을 쳐 홈런을 만들고 좋다고 배트 플립까지 하고 펄쩍펄쩍 뛰는 놈에게 욕을 뱉어주고 싶었지만 그것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는 이를 꾹 깨물었다. 그게 그가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분노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스포츠 신문 1면은 그의 차지였고, 뉴스 말미에 나오는 스포츠 뉴스에서도 매일 같이 그에 대한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메이저리그에서도 관심을 한몸에 받던 선수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볼의 구속은 150km/h 후반의 특출나게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제구력이 좋고 던질 줄 아는 볼의 종류가 많아 무슨 볼을 던질지 모른다는 것이 그의 주 무기였다. 그리고 머리가 좋아 타자들의 마음을 쉽게 읽어 냈고, 수 싸움에서 진 적이 없었다.
마구 천재라고 불리던 그, 강태무가 그것도 만년 2등이던 자신의 팀을 몇 년째 우승 팀으로 만들었던 그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행복해야 할 결혼식부터였다.
*
결혼식 당일.
그의 신부인 김세림은 아이돌 출신의 배우였다. 딱 보기에도 화려했고 그랬기에 그 잘난 강태무의 눈에도 단번에 들어왔다. 더욱이 스물다섯이었던 강태무와 동갑이었기에 말도 잘 통했다.
결국 1년 동안 연애를 하고 스물여섯에 결혼을 결정했고 어디에 있어도 그녀만 보일 정도로 화려했던 세림은, 결혼식 날에도 몹시 아름다웠다.
결혼식이 끝나고, 신혼여행을 유럽으로 가기로 했다. 비행기를 타기 전 인천공항 주변 호텔에서 하루 정도 쉬고 나가기로 했다.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운 그는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몸이 어째서 경기가 있던 날보다 더 힘든지.
하루 종일 긴장을 하고 있던 탓이었나 보다.
강태무가 침대에 대자로 뻗어 있을 때, 김세림이 주스 한 잔을 들고 왔다.
“오늘 힘들었지? 이거 마셔.”
“어? 고마워.”
몸을 일으킨 태무는 옆에 앉은 세림의 손에 들려있던 유리컵을 들었다. 유리컵에는 노란 오렌지주스가 들어 있었는데, 그가 좋아하던 주스였다.
자연스럽게 주스를 입에 가져다 대는 그는 미간을 미세하게 찌푸렸다.
“이거 왜 이렇게 거품이 많아?”
그는 먹지 않고 손을 멈췄다. 사실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서 먹는 것에 예민한 편이었다. 그러자 얼굴이 붉어진 세림이 얼른 입을 열었다.
“아~ 그거? 내가 너무 많이 흔들었나 보다. 아래에 가라앉아 있어서 조금 흔들었는데.”
“아~ 그래?”
그녀의 미소에 그는 대수롭지 않게 유리컵을 다시 바라보고는 주스를 꿀꺽꿀꺽 마셨다.
다 마시고 유리컵을 그녀에게 준 강태무는 이상하게 눈꺼풀이 무거웠다.
침대에 쓰러지듯 잠든 강태무의 흐릿한 눈 안에 두 사람의 대화가 들렸다. 한 사람은 야구선수이자 태무의 친구인 김두혁의 목소리였고 다른 한 사람은 오늘 태무의 아내가 된 세림의 목소리였다.
“잠 자는 거 맞지?”
“어. CCTV 작동은 멈춰 뒀어?”
“응.”
“그럼 나는 지금 나가서 한 시간 후에 들어올게. 키를 두고 왔다고 직원한테 말해서 들어올 거니까. 꼭 그전까지 일 처리하고 나가.”
“알았어.”
두혁은 알았다고 대답하고 세림의 허리를 잡아 당겼다. 그 후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흐릿한 눈 안에 두 사람이 겹쳐지는 것이 보였다.
머지않아 세림은 나갔고, 세림이 나가는 순간 저항도 하지 못하고 야구 방망이로 죽도록 맞았다.
*
일어나 보니 병원이었고, 식물인간이 되었다. 머리를 집중적으로 맞아 신경이 모두 엉망이 된 상태라고 했다.
말을 할 수 없으니 범인이 두혁이라는 사실은 당연히 밝혀지지 않았고 결국 태무만 마운드가 아닌 비좁은 침대에서 3년을 누워 있게 되었다. 침대에 오래 누워 있다 보니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욕창이라는 게 등에 생기는 일이 빈번한 신세가 되었다.
그를 이렇게 작은 침대 안에 갇히게 만든 사람이 바로 지금 홈런을 친 김두혁이었고, 그래서 TV만 틀면 나오는 김두혁을 보면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구역질 나오는 그들의 악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태무가 누워 있는 병실 안에서 김두혁과 세림은 꼭 달라붙어서 쪽쪽거렸고, 김두혁은 꼭 태무에게 복수를 하려는 사람처럼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그를 보면서 더 즐기는 것 같았다.
처음에 그의 눈치를 살피던 세림도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무덤덤해 지더니 나중에는 눈을 부릅뜨고 있는 태무의 앞에서 더러운 짓을 하며 스릴을 즐겼다.
그럴 때마다 몸을 움직이고 싶어 힘을 주다 발작을 일으키곤 했다.
화면에 나오는 두혁의 모습을 본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다 보니 발작이 일어났고, 입에 거품을 물고 몸을 팔딱팔딱 움직이자 꾸벅꾸벅 졸던 간병인이 벌떡 일어났다.
“어머! 또 왜 이러신데?!”
간병인은 의사를 불렀고, 태무는 의사가 와서 TV를 끄고 난 후에야 안정을 찾았다.
그가 안정을 찾고 의사가 가고 난 후 한참이 지났다.
컴컴한 어둠이 찾아오자, 광고 촬영이 있다며 어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던 세림이 환하게 웃으며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주머니, 오늘은 제가 있을게요.. 이만 가서 쉬세요.”
“그래도 될까요?”
간병인 아주머니가 활짝 웃었다.
“네, 많이 힘드시죠? 제가 일도 해야 하고 해서.. 아주머니 사정도 봐드리고 해야 하는데 죄송해요.”
“아닙니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요 뭘.”
그녀의 말에 아주머니는 실실 웃으며 가방을 챙겨 나갔다.
아주머니가 나가고 난 뒤 눈만 깜빡이던 그의 옆에 앉은 세림의 표정이 굳었다. 세림은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 슬그머니 문 쪽을 바라봤다.
문이 미세하게 열려있었다.
그녀는 일어나 문을 닫고 오며 말했다.
“태무야... 이러고 있는 거 너무 힘들지?”
‘네가 이렇게 만들었잖아.’
그의 눈에는 오기와 분노가 이글거렸다.
“나도 힘들어. 그래서 말인데...”
문을 닫고 그에게 천천히 다가오던 그녀는 말에 뜸을 들였다. 그러다 한숨을 푹 쉬고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후... 편히 쉬어줘야겠어.”
‘뭐?!!’
그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리고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은 눈동자를 흔드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그의 옆에 와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게 왜 나랑 결혼했어...”
‘뭐?!’
“나... 내가 갖고 싶은 거라면 목숨 거는 년이야.”
‘너, 너 뭐 하려는 거야.’
그는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겁이 나 목에는 핏대가 드러나고 온몸은 경직됐다.
“그러게 그냥 쉽게 죽어줬으면 좋았잖아.”
‘너 나한테 왜 그래!!’
그는 눈을 부릅떴다. 그녀는 그가 베고 있던 베개를 한 번에 훅 뺐다. 그러고는 부릅뜬 그의 눈을 피하지 않으면서 깊게 태무의 얼굴을 베개로 짓눌렀다.
작은 신음이, 살려 달라는 그의 발악이 들렸지만, 세림은 멈추지 않았다.
태무는 숨은 점점 차올랐고, 괴로움에 움직이지도 못하던 손을 움직이려 힘을 줬다.
어떻게 해도 움직이지 않던 손에 힘이 들어감을 느꼈다. 오늘 아침 어머니가 일어나라며 손에 들려줬던 야구공의 실밥이 손바닥에 박힐 듯 손에 힘이 들어감을 느꼈지만, 그 무렵 그의 의식은 점점 흐릿해져만 갔다.
***
숨이 차올랐다. 이상했다. 몸으로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고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눈을 뜬 그는 눈동자가 아파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그래도 억지로 눈을 떠보니 까맣고 뿌옇게 보이는 것이 이곳은 물속 같았다.
‘나를 죽여서 물속에 넣은 건가?’
그는 죽기 살기로 손을 휘휘 저어 빠르게 위로 올라갔다.
위로 올라가니 그곳은 호수인 것 같았다. 호수의 모양이 익숙했다. 홈런 공 빠지기로 유명한 대전 구장 옆에 꼭 붙어 있던 커다란 호수인 것 같았다.
그는 숨을 내뱉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발에서 무거움이 느껴졌다.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 보니 까만 물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한쪽 발에 뭔가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수면 위에 얼굴이 올라왔다 들어갔다 반복하며 한쪽 발에 매달린 뭔가를 빼내려 몸을 구부렸다. 확인해보니 발에 돌이 굵고 단단한 줄로 묶여 있었다.
매듭을 풀려고 하면 할수록 돌의 무게 때문에 아래로 가라앉았고, 곧 숨이 막혀왔다.
숨이 막혔던 그는 다급하게 위로 올라가려고 손을 뻗었다. 그런데 순간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았고 돌의 무게와 함께 그대로 가라앉았다.
*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그는 무거운 눈을 떴다.
막 물 밖으로 빠져나온 느낌이었다. 그는 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푸악!”
그의 숨소리에 옆에서 그를 보고 있던 의사가 물었다.
“괜찮으세요?”
“나를.. 나를 죽이려 했어요.”
숨이 찬 태무는 깨어나자마자 죽음의 공포 때문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일단 진정하시고요.”
그는 자신의 가슴을 퍽퍽 치며 말했다.
“그 여자가 나를 죽이려 했다고!!”
병원이 시끄러워지고 차가운 시선들이 그에게 쏠렸다.
“알겠습니다. 알겠는데, 일단 누우세요. 아직 몸이 정상은 아니시거든요.”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니까. 나 경찰서 가야 한다고!”
그가 나가려고 하는 순간, 그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그의 어깨를 잡은 한 여자가 그를 눌러 앉혔다.
“도은한! 너 왜 그래! 어디 가겠다는 거야!”
그녀는 태무도 아는 여자였다. 이름은 정다정으로 대전 드래곤스의 홍보팀 직원이며, 그가 바보 같다 놀리던 고등학교 후배였다. 저를 좋아한다며 따라다니기도 했었는데, 여자 친구가 생긴 뒤 못 보다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가끔 병문안을 와서 보긴 했었다.
그런데 도은한이라니.
‘그 바보 같은 자식 이름은 나한테 왜 붙여.’
“뭐?”
“너 진짜 죽으려고 했어?! 너 거기 떨어진 공 있나 주우러 다니던 할아버지 없었으면 진짜 죽을 뻔했어! 알아!!”
그녀는 그의 어깨를 마구 때렸다. 다정은 눈에는 금방 눈물이 맺혔다.
“아무리 2군 가기 싫어도 그렇지! 아니 네가 2군 가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그렇다고 죽으려고 해?”
가만히 듣고 있던 그는 한 손을 들었다.
“아! 그만.”
아무리 생각해도 정리가 안됐다.
“그만 하긴 뭘 그만해! 너는 더 맞아야 돼! 알아!”
다정이 더 때리려고 하자 태무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만하라고!”
“너 이거 안 놔?!”
“내가 죽으려고 했, 아니 내가 도은한이라고?!”
그의 말에 다정의 눈과 입이 큰 줄 모르고 벌어졌다.
“그럼 네가 누구야! 도은한이지! 너 혹시 기억 상실이야?”
“진짜 내가 도은한이라고?”
“어! 너 진짜 왜 그래! 도은한!”
태무는 머리를 몽둥이로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는 제 얼굴을 두 손으로 만졌다. 그러고 보니 피부가 생각보다 더 부드럽고 코도 너무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이 얼굴을 만지는 손이 움직인다.
그는 움직이는 손을 눈앞에 두고 주먹을 쥐었다 펴며 바라봤다.
"움직이잖아... 이거."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