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비된 투수의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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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
작품등록일 :
2024.05.08 10:59
최근연재일 :
2024.07.16 12:37
연재수 :
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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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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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글자수 :
286,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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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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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다시는 당하지 않는다.

DUMMY

분명 초조해 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감정 따위는 없는 놈일까? 아니면 그보다 더 큰 죄가 많아 태무를 식물인간 만든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방망이를 들고 있는 두현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까불지 말라고.


야구든 일상이든 너의 행복은 무너져 내릴 거라고.


태무는 오기가 가득한 눈길로 손을 모으고 다리를 들었다. 힘찬 기합과 함께 그의 공이 앞으로 시원하게 뻗어 나갔다.


“으악!”


휘이이잉


팅!


공이 날아오는 소리와 함께 두현은 방망이를 돌렸다.


비록 파울 볼이 됐지만, 힘이 빠졌는지 힘껏 던졌음에도 방망이에 공이 맞고 말았다.


두현은 예상했던 일이라는 듯 입술 끝을 더욱 높게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


그 모습을 보고 열이 받았던 태무는 숨을 내뱉고 로진을 만지려 허리를 굽혔다. 그런데 허리를 굽혔던 그가 로진을 만지고 있는 제 손등을 바라보더니 씩 웃었다.


두현이 당황해할 만한 장난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굽혔던 허리를 폈고, 정면에 서있던 두현이 보였다. 웃고 있는 두현을 보자 두현의 얼굴이 머지않아 굳을 상상을 하니 태무의 한쪽 입술 끝이 넘실거렸다.


두현을 뚫어져라 응시하던 태무는 공을 바라보더니 공을 든 손등을 입술 위로 가져갔다. 오른쪽 손등으로 입술을 훑은 태무는 그 후 귓가를 손등으로 살짝 만지고는 공을 던지려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두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얼굴에 있는 구멍들이 모두 커졌고, 방망이를 들고 있던 손도 잦게 떨렸다.


이때다 싶었던 태무는 두현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공을 던졌다.


휘이이잉!


퍼억!


"스트라이크!!!! 아우우웃!!!”


심판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오는 동안 떨리는 두현의 손은 움직이지 못했다.


두현은 태무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방금 전 그가 했던 행동은 태무가 공을 던지기 전 자주 했던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아웃을 잡아냈고 선수들이 마운드 위로 쏟아져 나왔다.


펄쩍 펄쩍 뛰며 좋아하는 선수들을 보고 관중들은 환호했고 태무도 입가에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7연승이었다.


이번 승리로 드래곤스는 단숨에 6위로 올라섰다.


그러는 동안 두현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


경기가 끝나고 그 어느 때 승리보다 기분이 좋았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태무의 공을 칭찬이라도 하듯 다들 태무의 등을 두드렸다. 정은호도 조용히 다가와 태무의 어깨에 손을 두르고 웃었다.


“정말 수고했다.”


“다들 같이 했으면서 무슨 수고?”


무뚝뚝하게 목소리가 나갔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만연했다.


“어제 병원에서 퇴원했는데 안 힘들어?”


“매일 하던 건데 괜찮아요.”


“너 괴물이냐?”


“괴물은 무슨, 이기니까 하나도 안 힘들던데? 선배는 힘든가 봐요?”


“아니, 나도 하나도 안 힘든데?”


장난스럽게 대답한 정은호가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그러자 태무도 웃었다. 두 사람이 웃으며 라커룸으로 향하는데 순간 그의 어깨를 커다란 손길이 잡았다.


뒤돌아 본 곳에는 두현이 서 있었다.


두현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던 정은호는 먼저 가 있다는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피해줬다.


“왜요?”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얼굴, 그것도 표정이 좋아 보이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지고도 그것도 아까 분명 자신의 모습에서 태무의 모습을 봤을 텐데 여전히 표정이 좋아보며 기분이 좋지 않았다.


“끝나고 뭐 하냐? 밥 먹자.”


“밥은 무슨.”


“우리 풀자.”


‘풀어? 미친놈 지랄하네.’


태무는 용서할 수가 없었다. 도은한의 입장에서도 저의 입장에서도 놈은 악마였으니까, 절대 살아생전에는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풀긴 뭘 풀어요?”


그가 퉁명스럽게 묻자, 두현은 친한 동생 대하듯 그의 등을 툭툭 쳤다.


“야! 우리 야구 판에서 계속 봐야 하는데 풀자, 내가 밥이랑 술 사줄게.”


밥 사준다는 말이 그렇게 반갑지 않았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의심스러운 마음에 눈을 가늘게 떴다.


“왜 내가 선배랑 밥을 먹어요?”


“내가 너한테 잘못했다. 너 협박한 거... 네가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오해도 풀어야 하고, 사과도 하는 의미에서 같이 밥이나 먹자고.”


“뭘 오해했다는 거죠?”


“강태무에 관해서.”


“그게 오해 맞아요?”


태무는 입술 사이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어.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너 잘못 알고 있는 거야.”


“그래서요? 또 협박이라도 하시게?”


“이제 안 한다고! 잘 지내보자고.”


“왜요?”


태무는 마치 방패 같았다. 날카로운 창이 들어와도 끄떡없는 그런 방패.


“내가 많이 느꼈다. 내가 한 짓도 아닌데 협박 받아 보니까 네 마음을 알겠더라.”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애초에 남의 감정 따위는 생각하지 않던 두현이다. 게다가 태무을 식물인간으로 병원에 누워 있게 해두고 그 병실 안에서 태무의 아내와 더러운 짓까지 했던 놈이다.


잘못을 뉘우칠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태무가 잠시 자신의 몸으로 돌아갔을 때, 두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더 심한 덫을 놓는다고 했던 말.


마약과 관련되게 한다고 했던 두현과 세림의 대화가 머릿속에 번뜩 지나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니까, 내가 밥도 사고 술도 살게. 오늘 좀 먹고 가.”


그는 어이없어 숨이 툭 터져 나왔다.


두현의 속셈이 훤히 보였다.


‘어떻게 또 저런 방법을 쓰려고 할까?’


김두현답다.


“씨발.”


태무는 저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놀란 태무는 입술에 손을 올리고 눈을 동그랗게 키웠다.


욕을 들었는지 두현도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마를 찡그렸다.


“뭐라고? 야!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분명 이 몸에 있던 도은한이 하는 소리 같았다.


‘이제 이렇게 문뜩문뜩 나오기도 하는 건가?’


그는 머리가 아파졌다.


하지만 그 순간 뭔가 좋은 생각이라도 난 사람처럼 웃음이 나오려는 입술을 말아 넣었다. 그러고는 화내려는 두현의 말을 막아버리듯 큰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선배. 밥 먹어요. 어디로 갈까요?”


“진짜?”


두현은 저에게 욕을 했던 건 금세 까먹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목을 쭉 뺐다.


“네. 선배가 이렇게 굽히고 들어오시는데, 제가 후배로서 용서해야죠. 잘 지내봐요.”


태무는 야살스럽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두현이 그의 손을 냉큼 잡았고, 그는 역겨웠지만 손을 잡고 웃으며 흔들었다.


두현은 뭔가 해냈을 때 했던 그 표정이 나왔다. 눈을 번쩍거리며 눈썹을 살짝 올리고 말했다.


“그럼 장소는 문자로 찍어 보내줄게.”


“네! 그러세요!”


태무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라커룸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옆에 숨어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윤석이 그의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뭐야? 저 새끼 뭐래?”


“사과한다네?”


“사과?”


태무는 고개를 끄덕이고, 윤석을 턱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어. 너 오늘 고기 먹으러 갈래?”


“고기? 무슨 고기?”


“소고기!”


“그래!”


윤석은 영문도 모르고 환하게 웃었다.


*


시간이 지나고 식당에서 기다리는 두현과 후배 우영이었다. 우영은 어쩐지 긴장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앞에 있던 유리 컵에 물을 따르며, 연신 물을 마셔 댔다.


그런데 십 분쯤 기다렸을까? 식당 문이 열리고 태무가 들어왔다.


“어! 왔어?”


두현은 손을 들며 일어났다. 그러나 환하게 웃고 있던 두현의 표정은 금방 굳었다.


그 문으로 태무만 들어온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드래곤스 선수들이 줄줄이 엮인 굴비처럼 태무의 뒤꽁무니를 따라 들어왔다.


눈이 커진 건 식당 아주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마침 자리가 비어 있는 곳이 있어 다들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았고, 제일 먼저 들어온 태무는 뒤에 들어오는 선수들에게 말했다.


“한 곳에 다 못 앉겠다. 편한 자리에 앉아.”


그의 말에 두현이 태무의 옆으로 다가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물었다.


“너 뭐 하냐?”


“왜요? 고기 사주신다면서요? 정태우 선배 얼굴도 다치게 해서 미안하다고? 아니에요?”


“뭐?”


다들 두현을 바라봤다.


“그래서 병원 갔던 태우 형도 불렀는데?”


눈치 없는 척 목소리를 키운 태무가 맑은 눈으로 말이 끝내자, 문이 열리고 태우와 정은호가 밖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왔는지 환하게 웃으며 들어왔다.


“이거 신경 쓰지 말지. 뭐 우영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닐 텐데?”


뒤늦게 들어온 태우가 한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그러자 우영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아! 아까는 죄송합니다.”


“됐어, 됐어 앉아.”


‘선배까지 있는데, 네가 나랑 마약을 어떻게 엮이게 할 건데?’


그는 환하게 웃으며 두현의 앞에 앉았다.


우영도 의자에 가시가 있는지 안절부절못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자 태무가 주변을 둘러보며 큰 소리를 냈다.


“오늘은 김두현 선배가 사주시는 거니까, 맛있게 먹고 감사하다고 하고 가라. 모두!”


“네!! 감사합니다!!”


다들 먹기도 전에 인사를 했고 가게 안은 고기 냄새로 가득해 문을 열어 놔야 했다.


앉아서 고기를 먹고 있는데 두현이 이를 꽉 깨물고 물었다.


“누가.. 너만 오라고 했지 다 데리고 오라고 했어?”


“어? 우리 팀 모두한테 미안한 거 아닌가? 아니에요? 가라고 할까요?”


두현은 고개를 틀었다.


"씨발 됐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두현은 이를 꽉 깨물고 제 잔에 술을 따라 마셨다.


*


고기를 한참 먹다가 배가 터질 것 같았던 태무는 열기에 잠깐 밖으로 나왔다. 밖에 나오니 문 바로 앞에 우영이 괴로운 얼굴로 깜깜한 하늘을 보다가 누가 나오는 인기척이 들리자 얼른 옆으로 몸을 피했다.


태무는 밖으로 나와 우영의 옆에 바짝 다가서며 말했다.


“방망이 진짜 위험한 거야.”


“네?”


우영은 고개를 들었다.


“방망이 깨진 거 알고도 그렇게 나온 거면, 너 되게 위험한 짓 한 거라고.”


꼭 말해주고 싶었다. 아까 유심히 봤을 때 분명 방망이가 이상했던 것 같았다.


“아.. 저는.”


우영은 말을 더듬었다.


“내가 너를 후배로 생각해서 한마디 하겠는데, 누가 이상한 일 시키면 그게 선배라도 하라는 대로 하지 마. 그것도 김두현은 가깝게 하지 마라.”


그는 한숨을 쉬고 밖에서 우영과 이야기를 하다가 들어오려 문을 여는데 우영이 물었다.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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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된 투수의 공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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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우리 팀 24.07.16 58 0 12쪽
54 내 선수 내가 믿지 누가 믿어? 24.07.15 64 0 10쪽
53 돌려줄 시간 24.07.12 78 0 10쪽
52 비겁하게 야구하지 맙시다 24.07.11 77 0 10쪽
51 끝까지 봐주세요. 어디까지 올라가는 지 24.07.10 73 0 11쪽
50 하찮은 팀은 없다 24.07.09 85 0 11쪽
49 눈에는 눈 이에는 이 24.07.08 89 0 11쪽
48 결정구 24.07.05 83 1 10쪽
47 조력자 24.07.04 90 1 14쪽
46 신도 돕고 싶은 팀 24.07.03 102 1 13쪽
45 보이면 쳐! 무작정 쳐! 다 쳐! 24.07.02 106 1 12쪽
44 그런 야구가 좋아서 하는 거지 24.07.01 118 2 11쪽
43 아주 더러운 반칙 24.06.28 128 2 12쪽
42 공도 사람이 던지는 것 24.06.27 125 2 13쪽
41 믿을 것은 오직 실력뿐 24.06.26 134 2 13쪽
40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다. 24.06.25 134 3 14쪽
39 부주장 24.06.24 146 3 12쪽
38 다시 마운드로 24.06.21 165 3 13쪽
37 죽음 24.06.20 174 3 11쪽
36 해결 못해. 24.06.19 159 2 12쪽
35 각성 24.06.18 184 3 13쪽
34 각성 24.06.17 197 3 10쪽
33 확! 인! 24.06.14 173 4 11쪽
32 전조등 24.06.13 180 4 12쪽
31 마지막 경기 24.06.12 192 4 11쪽
30 복수를 위해 24.06.11 218 4 10쪽
» 다시는 당하지 않는다. 24.06.10 209 4 11쪽
28 동기 24.06.07 210 5 11쪽
27 다른 방법 있습니까? 24.06.06 226 5 12쪽
26 이제부터 시작이야 24.06.05 252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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