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비된 투수의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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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
작품등록일 :
2024.05.08 10:59
최근연재일 :
2024.07.16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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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8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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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각성

DUMMY

“구속도 여전하고, 포수가 원하는 곳에 볼을 딱딱 꽂고 있어요.”


“와... 믿을 수가 없네요.”


칭찬 일색이었다.


드래곤스 투수들에게 평이 박하기로 소문난 투수 출신 해설 위원 김해안도 태무가 공을 던지는 내내 감탄사를 섞어가며 고개를 내저었다.


오죽했으면 감탄사를 너무 많이 내뱉어 죄송하다는 사과까지 했을 정도였으니, 오늘 공이 얼마나 위협적인지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5회인 지금 구속도 떨어지지 않고, 포크볼은 낙차가 컸으며 체인지업은 속구와 속도 차이가 컸고 순간적으로 회전이 많이 걸린 것처럼 보이지만 던지는 순간과 직후에만 속구처럼 보이며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 결과 타자는 공을 쳐내기 위해 몸이 앞으로 쏠리며 타이밍을 빼앗기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직구는 영점은 잡은 뒤부터는 스트라이크 라인에 살짝 걸치는 공들뿐이었다. 그러니 타자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대부분의 타자들은 칠지 말지 고민하다가 그냥 그 자리에 서 있다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감탄사를 내뱉지 않을 수가 없었다.


태무는 5회가 끝나고 마운드 위에서 내려왔다. 내려가는 길에 만난 포수 윤석이 그의 등을 두드렸다.


“너 오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


잘해서 포수로서 공을 받을 맛이 났다. 그리고 자신이 던지는 것도 아닌데 어깨가 으쓱거렸다. 하지만 잘한다고 칭찬만 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포수였던 윤석은 기쁘기도 하면서 태무가 걱정스러워 얼굴이 굳었다.


땅을 보고 걷던 태무가 옆에 걸어가던 윤석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런 거 아니야. 조금 열받은 것뿐이지.”


“열받아? 혹시 뺑소니 때문이야? 같이 있었다며?”


태무는 ‘뺑소니’라는 단어를 듣자 펴져있던 손을 꽉 쥐었다. 가슴속으로 무언가 타오르는 느낌이 들었고, 5회가 끝나 다 떨어졌어야 하는 힘이 다시 솟아나는 것 같았다.


“어. 맞아.”


어금니를 꽉 깨문 태무는 이를 갈며 더그아웃으로 내려왔다.


윤석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의 붉은 얼굴을 보니 화가 난 게 분명해 보였다.


상대팀인 광주 스네이크스는 지금 3위를 하고 있는 팀이었다.


투수 심정석은 150km/h 후반 때 구속의 공을 던질 수 있는 준수한 투수였기에 점수를 내기 힘들었는지 5회까지는 양 팀 모두 점수를 내지 못했다.


태무는 내려와 잠깐 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팀의 공격을 보고 있는데 형편없었다.


그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한 명이 나가면 병살을 치는 바람에 쉽게 아웃카운트를 내주고 들어오는 일이 허다한 경기였다. 그래서 태무는 얼마 쉬지도 못하고 다시 6회에 마운드 위에 올랐다.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눈을 살짝 감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눈을 감고 수천의 얼굴을 생각했다. 수천을 생각해서라도 지면 안 된다.


정신을 차린 그는 독하게 눈에 힘을 주고 허리를 굽혀 로진 백을 잡으며 생각했다.


‘이제 내 공이 익숙해졌을 거야.’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그 후 고개를 들었다. 타석에 나온 타자는 2번 타자 변우진이다.


요즘 제일 좋은 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상대팀의 핵심 공격의 시작이었다.


아무리 새로운 투수라도 한두 번 경험하고 나면 어떤 공도 칠 수 있는 국가대표 2번 타자 변우진.


변우진은 발을 차는 동작이 독특했다.


처음에 발을 들기 전 발끝으로 탕에 툭툭 좌우로 몇 번 훑었는데, 그 동작이 거슬렸다. 하지만 그런 동작쯤은 많이 봤던 일이기에 입술을 꾹 다물면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걱정은 즉흥적으로 잘 친다는 것이었다.


눈에 한 번이라도 익은 공은 이상하게 잘 친다. 그게 변우진을 상대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태무는 자신의 손에 있던 공을 한번 굴렸다. 그러곤 생각했다.


‘이럴 때, 내가 던질 수 있는 공 몇 개만 더 던질 줄 알면 좋을 텐데..’


분명 떨어지는 포크볼은 피해 갈 것이고, 직구는 칠 것이 분명했고, 체인지업이 밋밋하지 않다 해도 속도가 느려서 홈런이 나올 수도 있는데, 이럴 때 하나만 더 던질 줄 안다면...


그는 하얀 공을 손 위에 올리고 굴렸다. 그러다 미간을 찌푸리고 그 공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 순간 공에 김두현 그 자식의 얼굴이 보였다.


“씨발, 왜 못 던져? 내가 던졌던 공이야.”


순간 마음속에 오기 같은 게 차올랐다.


“내가 던지던 볼이야... 다 던질 수 있어.”


그는 공을 바라보며 공을 천천히 손안에서 굴렸다.


볼을 만지던 그 손의 감각을 기억하면 된다.


할 수 있다.


수십 번 아니 수천 번 넘게 던져봤다. 어떤 구종이라도 태무는 자신이 던졌던 구종은 그 구종과 한 몸이 되기 위해 수없이 던졌다.


자면서도 공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오기에서 시작한 그의 마음에는 자신감이 조금씩 차올랐다. 더 강하고 좋은 볼을 던질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도은한은 신체적으로 타고났으니, 그래 던져보는 거다.’


생각을 마친 태무는 포수의 사인을 봤다. 고개를 한번 끄덕인 그는 손을 모으고 한쪽 다리를 들었다. 그 후 몸을 앞으로 빼며 공을 던졌다.


그의 손에서 나간 공은 수려한 곡선을 그리고 날아갔다.


날아가는 순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곡선이 크고 좋은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다. 그건 타자인 변우진 눈에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배트를 꽉 잡고 있던 우진은 생각했다.


‘도은한 공 중에서 저런 곡선이 있었던가? 없다. 그럼 실투인가!’


실투를 그냥 보낼 생각이 없던 우진은 방망이를 아주 강하게 휘둘렀다.


하지만 애매한 스윙이 되고 말았다.


휘익


퍽!


“아, 씨발.”


타자는 저도 모르게 욕이 터져 나왔다.


들리진 않았지만, 우진의 입모양을 본 태무는 우진이 욕을 했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국가대표에게 공을 잘 던져 욕을 듣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니까.


태무에게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관중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고 중계석 이한성 캐스터도 고개를 흔들었다.


“와, 감탄을 안 할 수가 없는데요? 도은한선수 맞나요?”


해설 위원 김해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는 처음 보는 것 같거든요? 그 사이 또 구종을 배웠나요?”


“그러게요? 드래곤스에 조금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와서 걱정했는데, 안팎으로 힘이 날 수 있는 제구력인데요?”


“정말 이 기세면 드래곤스 가을 야구 가겠거든요? 아직 감독이 들어오기 전인데 새로운 감독이 와서 잘 자리 잡으면 대단하겠는데요? 돌풍이겠어요.”


“어쩐 일이세요? 드래곤스 칭찬은 그렇게 안 하시던 분이?”


“제가 그랬나요?”


“드래곤스 출신이라 조심하시지 않으십니까?”


사실 그랬다. 해안은 드래곤스 출신이라 혹시나 편파 해설을 한다고 할까 봐 항상 조심했고 팀에 대한 애정이 있었지만 칭찬을 해야 할 때에는 말을 아꼈다. 그런데 오늘은 저도 모르게 칭찬이 터져버렸다.


“네, 그런데 오늘은 못 참겠군요. 너무 잘해서.”


“참지 마세요. 도은한 선수가 저렇게 잘하는데, 그런데 도은한 선수 이번에 국가대표 뽑혀서 갈지 궁금하네요.”


“이대로만 한다면 안 뽑히는 게 이상하겠어요.”


태무는 쉴 틈 없이 자세를 잡았다.


볼은 곧게 뻗어갔고, 가다가 떨어지지 않고 미트 안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타자는 가만히 서서 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오!!”


억울해하는 것도 같았다.


사실 머릿속이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번 공은 봤던 공이긴 했다. 자신이 제일 자신 있어 했던 공이었으나 치지 못했다. 구종이 하나 더 늘어나 머리가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복잡한 머리로 생각한 결과 오다가 뚝 떨어지는 포크볼을 생각하고 있었다. 커브로 스트라이크를 잡았으니 이제는 포크볼로 헛스윙을 유도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곧게 뻗어 온 공은 그대로 미트 안으로 빨려 들었다. 한복판에 들어오는 공을 놓친 격이었으니 어떻게 아깝지 않겠는가?


2스트라이크!


변우진은 생각했다. 스트라이크를 두 개를 잡았다는 말은 여유가 있다는 말과 같았다. 굳이 어렵게 가지 않을 거라는 말이다.


볼 하나를 뺄 거라고 생각했다.


투수에게 유리한 카운트, 거의 대부분은 보여주는 볼을 던져 안전하게 잡아내려고 유인구를 던지니까.


태무는 눈에 힘을 주고 자세를 잡았다. 태무는 다시 손을 바라봤다.


‘그래, 나 강태무야.’


그는 마치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것 같았다. 도은한의 몸속에 들어와 있더라도 자신은 강태무라고.


포수의 사인에 고개 몇 번 흔든 후에 공을 빠르게 던졌다.


그의 손에서 떠난 공은 곧게 뻗어갔다.


타자는 속도를 보고 확신했다.


빠른 볼이다.


변우진은 생각을 바꾸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휘잉


퍽!


방망이는 돌아갔지만, 공은 이미 포수의 미트 안으로 빨려 들어가 있었다. 직구라는 판단만 빨랐어도 좋은 안타는 아니어도 방망이에 맞힐 수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판을 하고 있던 탓에 헛스윙을 하고 말았다.


변우진은 어깨가 축 늘어져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중계석은 목을 쭉 빼고 화면에 들어갈 기세로 이한성 캐스터와 김해안 해설 위원이 화면을 응시했다.


“저거는 뭐죠? 저런 공도 던질 수 있나요?”


“어? 화면을 다시 봐야겠어요.”


화면이 replay 됐다.


“직구와 비슷한데, 잡는 모양은 투심 패스트 볼이에요.”


“아.... 그렇군요! 그래서 직구와 거의 비슷하게 오다가 우타자 몸 쪽으로 휘어들어갔군요! 대단하네요.. 오늘 몇 개를 보여 주는 거죠?”


신이 난 이한성 캐스터와 달리 김해안 해설 위원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어렵게 말을 내뱉었다.


“하.. 누가 생각이 나네요... 이 공을 제일 잘 던졌던 사람.”


해안이 씁쓸한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이한성 캐스터가 바로 생각이 났는지 말을 하려다가 한번 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강태무 선수 말하는 거군요?”


“네.... 어서 건강해져 돌아와야 할 텐데.”


해안과 태무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가깝게 지낸 사이는 아니지만, 지나다 몇 번 인사를 하고 밥도 한 번 같이 먹은 사이였다. 그러니 안타까움이 더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튼! 그러고 보니 진짜 공이 강태무 선수와 닮았네요.”


이한성 캐스터는 깜짝 놀라 공을 다시 바라봤다.


중계석에서 놀란 것과 다르게 태무는 차분하게 손에 있던 땀을 바지에 닦아내며 다음 타자를 기다렸다.


다음 타자는 3번 이정수, 그는 생각보다 쉽게 내려갔다. 머리가 복잡한지 이것저것 다 방망이를 휘두르다가 공 한번 못 쳐보고 내려갔다.


그는 허리를 숙여 로진백을 만지고 바닥에 툭 떨어트렸다. 그러는 동안 다음 타자가 타석에 섰다. 다음 타자는 4번 타자 김수영이었다.


수영은 나이가 많아 지금 국가대표 신분은 아니지만, 젊을 때는 국가대표에 중심 타자로 있을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 지금도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어린 선수들에게 경험을 준다는 의미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지금은 리그에만 전념하고 있는데 시즌에 몸 상태가 좋지 않아도 홈런 두 자릿수는 꼭 만들어내는 선수였다.


“와, 벌써 흥분되는데요?”


이한성 캐스터가 말했다.


“재밌겠네요.”


해안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대결이 어쩐지 궁금했다.


예전 같았다면 궁금해 하지도 않았을 대결이지만, 지금 이 시점에는 아주 궁금해지는 대결이었다.


빠른 볼이 주특기인 도은한이 빠른 볼에 강한 수영을 만났을 때 어떤 볼을 던질지 궁금했다.


마운드 위에 태무보다 포수 윤석의 머리가 더 복잡했다. 빠른 볼을 던졌다가는 맞을 것 같고, 그렇다고 낙차가 큰 것도 투수의 손에서 던져지는 순간 경험으로 알아차릴 것 같은 선수였다.


고민스러웠다.


그래도 안전한 길을 선택하자 싶었다. 그래서 포크볼을 선택했다. 그러나 윤석의 사인에 태무가 고개를 흔들었다. 태무는 고개를 흔들더니 팔뚝 위에 손가락 한 개를 펴 보였다.


머지않아 태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두 손으로 공을 잡았다. 공을 잡은 그는 다리를 들었고, 팔을 앞으로 뻗으며 온몸에 힘을 팔에 실어 공을 던졌다.


공은 쭉 뻗어나갔다.


끝에 있던 수영이 태무의 공을 보더니 눈이 커졌다.


빠른 볼을 좋아한다 해도 꽤 빨랐다.


머뭇거릴 시간도 없이 공이 날아왔고, 그 순간 수영은 방망이를 돌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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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된 투수의 공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5 우리 팀 24.07.16 58 0 12쪽
54 내 선수 내가 믿지 누가 믿어? 24.07.15 63 0 10쪽
53 돌려줄 시간 24.07.12 78 0 10쪽
52 비겁하게 야구하지 맙시다 24.07.11 76 0 10쪽
51 끝까지 봐주세요. 어디까지 올라가는 지 24.07.10 73 0 11쪽
50 하찮은 팀은 없다 24.07.09 84 0 11쪽
49 눈에는 눈 이에는 이 24.07.08 89 0 11쪽
48 결정구 24.07.05 81 1 10쪽
47 조력자 24.07.04 89 1 14쪽
46 신도 돕고 싶은 팀 24.07.03 101 1 13쪽
45 보이면 쳐! 무작정 쳐! 다 쳐! 24.07.02 104 1 12쪽
44 그런 야구가 좋아서 하는 거지 24.07.01 115 2 11쪽
43 아주 더러운 반칙 24.06.28 125 2 12쪽
42 공도 사람이 던지는 것 24.06.27 122 2 13쪽
41 믿을 것은 오직 실력뿐 24.06.26 131 2 13쪽
40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다. 24.06.25 131 3 14쪽
39 부주장 24.06.24 143 3 12쪽
38 다시 마운드로 24.06.21 162 3 13쪽
37 죽음 24.06.20 171 3 11쪽
36 해결 못해. 24.06.19 156 2 12쪽
» 각성 24.06.18 181 3 13쪽
34 각성 24.06.17 192 3 10쪽
33 확! 인! 24.06.14 170 4 11쪽
32 전조등 24.06.13 177 4 12쪽
31 마지막 경기 24.06.12 189 4 11쪽
30 복수를 위해 24.06.11 215 4 10쪽
29 다시는 당하지 않는다. 24.06.10 205 4 11쪽
28 동기 24.06.07 207 5 11쪽
27 다른 방법 있습니까? 24.06.06 223 5 12쪽
26 이제부터 시작이야 24.06.05 249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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