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비된 투수의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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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
작품등록일 :
2024.05.0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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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6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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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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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해결 못해.

DUMMY

핑!


공은 방망이에 맞고 내야에 떠올랐다.


하늘 높이 떠오른 공을 3루수가 달려와 쉽게 잡아냈고, 이닝은 마무리되었다


놀란 수영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사실 갑자기 팔에 힘이 풀려 살짝 아래로 치지 않았다면 맞히지도 못했을 공이었다.


161km/h의 속도.


속도도 굉장한데, 끝에서 방향이 약간 아래로 틀어지는 공.


고개가 절로 돌려졌다.


수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도은한을 보는데 지금 병원에 누워 있을 강태무가 생각났다. 수영은 태무와 가끔 같이 밥을 먹곤 했다. 나이 차이가 조금 나는데도 불구하고 어려워하지 않아 스타였음에도 대하기가 쉬웠는데, 갑자기 잊고 지내던 강태무가 생각이 났다.


이런 볼은 강태무 이후로는 본 적이 없었다.


강태무의 볼은 이 정도로 빠르진 않았지만 그래도 볼 끝이 비슷해 께름칙한 마음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


7회까지 양 팀 모두 단 한 점도 내지 못했다.


태무는 7회를 마치고 내려와 드래곤스의 공격을 지켜봤다. 감독 대행으로 있던 투수코치가 그에게 다가왔다.


앉아서 하얀 수건으로 얼굴에 땀을 닦고 있던 그의 무릎을 툭툭 두드리며 흐뭇하게 웃었다.


“오늘 정말 잘 던졌다.”


투수 코치의 말에 담긴 뜻은 두 가지였다.


‘오늘은 정말 잘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던진 볼의 수가 충분했기에 경기장에 있는 모두가 그가 이제 내려갈 거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투수코치는 몸을 돌렸다.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검지로 훌쩍 올리며 경기에 집중했다. 하지만 곧 태무가 일어나서 투수코치의 손목을 잡았다.


놀란 투수코치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태무가 비장한 눈빛을 하고 서 있었다.


“8회도 제가 올라가겠습니다.”


다부진 그의 다짐에 투수코치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이 정도 던졌으면 자신도 내려온다고 할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만 던지고 선수 생활이 끝나지 않으니 말이다.


투수코치는 진지한 그의 눈을 응시했다. 그런데 그의 눈에는 어쩐지 전과 다른 힘이 느껴졌다. 독기가 서려있었다.


오늘따라 이상했다.


요즘 야구에 진심인 모습으로 변한 이후부터, 좀처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법이 없었다.


경기에서는 더했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래도 이상했다.


투수코치의 미간을 찌푸렸다.


“너 무슨 일 있지?”


“오늘 경기 꼭 이기고 싶어서 그래요.”


오늘 경기를 잡고, 잘하면 공동 5위까지도 노려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건 아니었다.


보여주고 싶었다. 아픈 수천에게 드래곤스는 한국 시리즈에 갈 테니 너도 꼭 건강 회복해서 빨리 돌아오라고.


일반 병실로 옮긴 수천은 이 경기를 보고 있을 것이 분명했기에 꼭 이겨서 증명하고 싶었다.


또한 저를 살려준 수천의 꿈이 한국 시리즈에서 뛰어보는 것이라니, 그러려면 우선 드래곤스 팀 동료들에게도 그리고 다른 팀에게도 보여줘야 했다.


우리는 더 올라갈 수 있는 팀이라고, 이제 더 이상 하위 팀이 아니라고, 깊게 박혀 있던 만년 하위라는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


“이기고 싶은 건 알겠는데, 오늘 경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투수코치는 약간 주저했다. 다음 경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음 경기는 다른 감독이 와서 지휘봉을 잡을 텐데, 도은한의 입장에서 생각해도 지금보다는 감독이 온 뒤의 컨디션이 더 중요해 보였다.


여기서 힘을 빼는 건 별로 좋지 않은 선택 같았다. 하지만 그는 생각이 달랐다.


지금 점수가 나지 않은 상황에서 내려갔다가 점수를 내주고 흔들린다면 또 져버릴 것이고, 따라는 가지만 결국에는 지는 팀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번 경기는 중요했다.


“저 오늘 몸 상태 좋아서, 8회 잘 던질 자신 있거든요. 제발 믿어주세요.”


그는 최대한 간절하게 말했다.


투수코치는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눈앞에 그의 꾹 쥔 주먹이 보였다. 간절함에 툭툭 튀어나온 핏줄을 보니 마음이 흔들렸다.


이렇게 무리 한 선택.


평소 같았다면 안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간절한 주먹을 본 순간 지나칠 수가 없었다.


수천이 그를 구하고 뺑소니를 당했다는 사정도 알고 있었다. 비록 그 뺑소니를 두현이 일부러 냈다는 것은 모르고 있는 투수코치지만, 그가 오늘 경기가 간절한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허리에 두 손을 올린 투수코치는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턱을 들썩거리며 말했다.


“그래, 던져봐. 그렇게 자신 있으면.”


“네! 감사합니다. 잘 던지겠습니다.”


그는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점수를 못 낸 7회 공격이 끝나고 그가 마운드 위로 오르며 주먹을 꽉 쥔 손을 바라봤다.


“이제 앞으로 내 게임이야.”


사실 손이 자신을 따라줄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 강태무로 있었을 때 던졌던 구종들을 잡는 법을 알긴 해도 연습을 해야 겨우 하나 터득하곤 했다.


잡는 법을 안다고 다 똑같은 공을 던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오늘 갑자기 저도 모르게 던졌다.


마치 자신이 도은한 몸속에 들어와 있지 않은 것처럼 그저 강태무로 마운드에 오른 것처럼 제구가 마음대로 됐다.


경기에서 직접 확인을 하고 나니 자신감이 샘솟았다.


깨달았다 강태무의 입장으로 집중하면 그리고 간절하면 분명히 자신이 던진 공을 강태무가 되어서 던질 수 있다. 그걸 확인 한 그는 이제는 무서울 게 없었다.


공이 빠르고 제구력까지 있으니 식물인간이 되기 전의 자신보다 더 좋았다.


마운드 위에 선 태무는 손쉽게 두 타자를 잡아냈다. 그래도 아웃 두 개를 처리하고 마음이 편해졌다.


편한 마음으로 공을 던질 수 있었다.


다음 타자는 1번 타자다. 파울 볼을 잘 쳐서 귀찮게 굴기는 하지만, 요즘에 폼이 올라오지 않아 팬들도 걱정을 하는 선수이니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호흡을 길게 한 태무는 공 던질 준비를 했다.


2아웃을 잡고 난 후라 그런지 부담이 없어서 준비 자세도 짧았다.


포수는 빠른 볼을 원했고,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볼이면 잡아내고도 남을 선수였다.


손을 모은 태무는 다시 공을 던졌다.


공은 보기 좋게 직선으로 뻗어갔다.


직선으로 뻗어 가는데 너무 빨리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때, 방망이를 휘둘렀고 예상치도 못한 지운이 치고 나갔다.


공은 3루수 머리를 살짝 넘기고 지나가는 안타가 되었고, 한지운은 오랜만에 친 안타라서 그런지 치고 2루까지 뛰어가 펄쩍 펄쩍 뛰었다.


그 모습이 거슬렸지만, 신경 쓰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런데 몸을 돌리자 앞에 보인 감독이 양손을 동그랗게 돌리며 바꿔준다는 손짓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가 체력 떨어진 게 보인 모양이었다.


그가 날린 직구가 속도가 155km/h가 나왔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힘도 떨어지긴 했지만, 그것보다 조금 마음을 놓고 있었던 게 안타를 맞은 이유인 것 같아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함이었다.


이번 이닝을 마무리 짓고 내려가고 싶었다.


그는 한 손을 높이 들어 보이며 자신의 가슴에 올리고 두 번 쳤다.


자신이 마무리 짓겠다는 의미였다.


고민하듯 눈동자를 돌리던 투수코치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음 타자를 보고 잠시 생각했다.


2번 타자 변우진이었다. 다시 상대팀 핵심 공격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아까는 커브로 잡았는데, 다시 커브를 던지면 타이밍을 맞추지 않을까?


어쩌면 오늘 경기에 마지막이 될 수 있는 타자.


그래서 생각이 많았다. 빠른 볼은 어찌 됐건 속도가 떨어진 것 같으니 안 될 것 같다. 이번에는 그가 못 쳤던 커브를 또 던질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 포크볼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생각하고 있는데 같은 생각을 했던 모양이었다.


포수 윤석이 안쪽으로 떨어지는 공을 던지라고 사인을 보냈다.


호흡을 조절한 태무는 두 손을 모으고 다리를 들었다.


그가 손을 쭉 뻗었고, 공은 그의 손을 빠져나갔고, 공은 쭉 뻗어나갔다.


그 공이 나가다가 그 앞에서 툭 떨어졌고, 우진이 그 공을 쳐냈다.


비록 왼쪽으로 가는 파울 볼이 되긴 했지만, 그 낙차가 큰 공을 쳐내다니 그도 약간은 놀랐다. 공이 좋아서 잘 던졌다 했는데, 변우진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약간 흔들었다.


포수 윤석이 이번에는 직구를 요구했고, 그는 자세를 잡았다.


도망가지 말자. 온몸으로 던지자.


속도 떨어지지 않게.


‘그 개새끼 생각하자. 김두현’


그는 죽이고 싶은 대상인 두현을 생각하며 공을 던졌다. 공은 쭉 뻗어갔고 주심이 요란한 손동작과 함께 스트라이크를 외치는 순간 윤석이 빠르게 일어났다.


윤석을 보고 주자가 뛰었다는 것을 직감한 그는 바로 고개를 돌렸고, 포수가 3루로 공을 던졌다.


그런데!


3루수가 꽤 잘 온 공이었지만 실수로 공을 바닥에 놓쳤고, 도루를 허용하고 말았다.


실책에 머리가 아찔했다. 그래도 뒤로 공이 빠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주자는 3루까지 앞으로 미끄러져 들어갔고, 3루수는 재빠르게 바닥에 떨어진 공을 주웠다. 주자는 더 이상 뛰지 못했다.


그는 한숨이 나올 것 같았지만 입을 꾹 다물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로진백을 만졌다. 마음을 감추기 위해 태무가 자주 하던 행동이었다.


로진을 바라보고 있으면 잠깐 동안 아무 생각이 안 드니까.


생각을 정리한 태무가 허리를 폈는데, 윤석이 보였다.


윤석은 잘 던졌음에도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려 미안하다는 표시를 냈다.


그는 아쉽긴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것도 팀 경기의 일부인데.


그는 됐다는 의미로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실수를 뭘 하든 점수만 내주지 않으면 된다. 이기면 된다는 말이다.


한 명만 잡으면 오늘 태무가 해야 할 일은 끝나는 거다.


'내가 잡으면 된다.'


그는 숨을 깊이 내쉬었다. 그러고는 포수의 사인을 봤다.


포수는 커브를 던지라고 하고 있었다.


사실 경기에서는 도은한의 몸으로 오늘 처음 던져본 공이었다. 그 공이 불안하고 이상했다면 포수가 던지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다른 공을 던질 때보다 조금 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후-”


그는 호흡 후에 바로 두 손을 모으고 다리를 올렸다 내리며 공을 던졌다.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아름답게 뻗어갔다.


변우진이 직전 타석에 커브를 보긴 했지만, 다른 공도 다 봤기에 조금 덜 본 커브를 선택한 것이었다. 게다가 직구는 맞춰야 할 타이밍이 많아 타자에게 어찌 보면 기회가 많다고 할 수 있지만, 커브는 단 한 곳 단 한 각도다.


그러니 치기 힘든 것이다.


우진은 헛스윙을 했다.


“아 씨, 또야?”


헛스윙을 한 우진이 고개를 저으며 인상을 썼다.


“공 좋지?”


윤석이 자세를 바꾸며 변우진에게 말을 걸었다.


“어. 씨발 못 치겠어!”


우진은 앙탈을 부리듯 투덜거렸다.


“왜 그래? 잘 치시면서?”


윤석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 도은한 변했다더니 너무 변했어. 아주 더럽게 변했어.”


“더럽게?”


“공 끝이 존나 더러워!”


변우진은 고개를 흔들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다시 커브를 던졌다.


공은 또 포물선을 그리고 갔다. 그 공을 보자 우진의 이마를 볼품없이 찌그러졌다.


이를 꾹 깨문 변우진은 방망이를 돌렸다.


휘익!

탕!


공이 맞았다.


하지만 땅볼.


달려가다 땅볼에 잡힌 우진은 한숨을 쉬며 뒤돌았다. 점수가 나지 않고 막았고, 그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환호했다.


그런데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했다.


주먹을 불끈 쥐었는데, 더그아웃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마운드 위에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관중석도 어쩐지 이상했다. 모두 핸드폰을 보고 놀라 벌어진 입술을 한 손으로 가렸다.


그는 빠르게 더그아웃으로 내려가 코치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일단, 경기 끝나고 말하자.”


“무슨 일인데요? 무슨 일인데 다들 울상인데? 알아야 해결하죠!”


“해결 못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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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된 투수의 공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5 우리 팀 24.07.16 59 0 12쪽
54 내 선수 내가 믿지 누가 믿어? 24.07.15 65 0 10쪽
53 돌려줄 시간 24.07.12 79 0 10쪽
52 비겁하게 야구하지 맙시다 24.07.11 78 0 10쪽
51 끝까지 봐주세요. 어디까지 올라가는 지 24.07.10 74 0 11쪽
50 하찮은 팀은 없다 24.07.09 86 0 11쪽
49 눈에는 눈 이에는 이 24.07.08 91 0 11쪽
48 결정구 24.07.05 84 1 10쪽
47 조력자 24.07.04 91 1 14쪽
46 신도 돕고 싶은 팀 24.07.03 103 1 13쪽
45 보이면 쳐! 무작정 쳐! 다 쳐! 24.07.02 108 1 12쪽
44 그런 야구가 좋아서 하는 거지 24.07.01 119 2 11쪽
43 아주 더러운 반칙 24.06.28 130 2 12쪽
42 공도 사람이 던지는 것 24.06.27 126 2 13쪽
41 믿을 것은 오직 실력뿐 24.06.26 136 2 13쪽
40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다. 24.06.25 135 3 14쪽
39 부주장 24.06.24 147 3 12쪽
38 다시 마운드로 24.06.21 166 3 13쪽
37 죽음 24.06.20 175 3 11쪽
» 해결 못해. 24.06.19 161 2 12쪽
35 각성 24.06.18 185 3 13쪽
34 각성 24.06.17 198 3 10쪽
33 확! 인! 24.06.14 174 4 11쪽
32 전조등 24.06.13 181 4 12쪽
31 마지막 경기 24.06.12 193 4 11쪽
30 복수를 위해 24.06.11 219 4 10쪽
29 다시는 당하지 않는다. 24.06.10 210 4 11쪽
28 동기 24.06.07 211 5 11쪽
27 다른 방법 있습니까? 24.06.06 227 5 12쪽
26 이제부터 시작이야 24.06.05 253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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