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해결 못하는 게 어디 있어요? 무슨 일인지 말이나 해봐요.”
태무는 이번 경기에 자신이 볼을 던질 수 있는 이닝은 끝났다는 것을 알았기에 어떤 소식을 듣는다 해도 타격이 없을 것같았다
말하기를 주저하는 투수코치의 뒤에서 한숨을 푹 쉬던 구찬성이 입술을 꾹 물고 있다가 끝내 입을 열었다.
“수천이 위독하대.”
“뭐라고요?!”
뜻밖의 소식이었다.
분명 일반 병실로 옮기고 의식까지 돌아와 저와 대화도 했던 수천이었다. 그런 김수천이 왜? 갑자기?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위독해졌다고 기사가 났어.”
한 손은 허리에 올리고 한 손으로는 눈을 가리고 고개를 숙인 태무는 침을 한번 삼켰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수술은 잘 됐다고 했고 자신이 보기에는 멀쩡했다. 그래서 더 믿기 힘들었다.
그는 고개를 들며 눈을 가렸던 한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그럴 리가 없어요. 기사가 잘못 난 것 같아요.”
‘그래, 기사가 잘 못 난 것 같다.’
그는 주변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보일 수 있죠?”
그가 주변에 물었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모두들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다들 기사 내용이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동료들의 태도에 다급해진 그가 구찬성의 앞으로 다가가 침을 꿀꺽 삼키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얼마나 위독한데요?”
“경기 끝나고 가보기로 했어.”
구찬성의 차분한 대답에도 태무는 차분할 수가 없었다. 자신 때문에 다쳤는데 어떻게 차분할 수가 있겠는가?
그는 일어나서 경기장을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주장 정은호가 태무를 막았다.
“경기 아직 안 끝났어.”
“경기가 중요해요?”
지금 태무에게 중요한 것은 병원에 누워 있을 수천이었다.
태무의 눈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경기는 남았고 주장 은호는 독하게 태무의 어깨를 잡고 그의 앞을 막았다.
“너만 걱정되는 줄 알아? 자리 지켜.”
정은호가 태무의 어깨를 잡고 의자에 앉혔다. 그는 한숨을 푹 쉬며 자리에 앉았고 다리로 땅을 팍 차며 소리를 질렀다.
“아오!!”
왜 이렇게 됐는지.
모두 저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아 죄인이 된 것 같았다.
그는 손으로 무릎을 짚고 다리를 벌리고 앉아서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나와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머리 수술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깨어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컸다. 그래도 깨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경기 끝나기 바로 직전에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나니 속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가 고개를 숙이고 가끔씩 눈가를 닦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중계진들은 잠시 동안 할 말을 잃었다.
그들도 김수천의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안타깝네요... 듣기로는 도은호 선수를 구하다가 김수천 선수가 다쳤다고 기사가 났던데, 그래서 죄책감이 큰 모양입니다.”
“뺑소니를 빨리 잡아야 할 텐데요.”
모든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는 그때, 팀원들도 괴로워하는 태무를 바라봤다.
그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팀원들은 이를 악물고 타석에 올랐다.
9회 타석 위에 선 첫 타자는 김하민이었다.
하민은 타석에서 더그아웃 쪽을 바라봤다.
마음에 뭉클하고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방망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상대팀 마무리 투수의 공은 좋았다. 던지는 족족 직구로 와서 꽂히는 공이었다.
방망이를 내지도 못하던 하민이 2 스트라이크에 이를 꾹 물더니 더그아웃 쪽을 다시 바라봤다.
침울한 분위기.
하민의 눈에는 울고 있는 은한의 모습이 특별이 더 크게 보였다. 도은한을 잘 따르던 하민은 방망이를 잡은 손이 빨갛게 힘이 들어갔다.
공은 순식간에 투수의 손을 빠져나갔고 단숨에 눈앞으로 다가왔다.
휘익
펑!
하민은 방망이를 휘둘렀고, 공은 방망이 끝에 맞아 1루 쪽으로 날아갔다.
하민은 죽어라 뛰었다.
잡힐 거라고 생각했던 공은 1루를 맞으며 불규칙 바운드를 만들었고, 결국 1루수가 잡지 못하는 볼이 되었다.
1루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했다. 무릎을 꿇고 손은 위로 올리고 있는 자세를 하고 있다가 공이 빠지자 헐레벌떡 일어나 뒤로 빠진 공을 찾아 뛰었다.
그리 빠르지 않은 1루수의 발 덕분에 하민은 안전하게 1루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공이 멀리 가지 않아 1루까지밖에 가지 못한 게 끝내 아쉬웠는지 하민은 안타를 치고도 발을 땅에 굴렀다.
다음 타자는 손예준과 배창수였다.
손예준과 배창수는 홈런을 생각했는지 외야에 뜬 볼을 만들어냈고 진루타를 만들어내며 2아웃에 주자 3루의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 상황에 타자는 최진수.
기대해 볼 만한 타자였으나, 아웃 하나면 연장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타석에 나온 진수는 숨을 깊이 내쉬었다.
진수 또한 더그아웃을 바라봤다.
감독 대행을 하고 있는 투수코치는 타석에 나오기 전 마음대로 해 보라고 했기에 딱히 특별한 사인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린 것은 아니었다.
최진수가 보고 있는 건 이제 대놓고 울고 있는 은한이다.
한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어깨까지 들썩거렸다.
여기서 경기를 끝내야 한다.
도은한이 저렇게 울고 있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돌아온 뒤로는 눈물 같은 것은 없는 사람같이 굴었는데 우는 모습을 보고 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진수는 마음이 급했지만 차분하게 마음을 먹으려 노력하고 숨을 깊게 내쉬었다.
방망이를 꽉 잡은 진수는 다행히도 상대 팀 투수를 알고 있었다.
김대한은 같은 팀에 있어본 기억도 있고, 직구를 잘 던지는 친구였다. 김대한을 공략 하려면 끝이 올라오는 직구를 예상하고 받아쳐야 한다.
공 하나가 더 올라온다 예상하고 쳐야 한다.
‘공 하나.’
‘그래 공 하나다.’
진수는 처음부터 속으로 되뇌었다.
진수가 자세를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투수가 공을 던졌고,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은 낮고 강력하게 직선으로 쭉 날아왔다.
공이 오는 지점을 잡은 진수는 그 지점에서 공 하나 위의 지점을 예상하고 타이밍을 맞춰 힘껏 방망이를 휘둘렀다.
“읍!”
탕!
방망이에 공이 맞는 순간 관중석에 있던 모두가 손을 들고 일어났고, 투수는 허탈한 듯 시원하게 뻗어가는 공을 따라 몸을 돌렸다.
“와!!!!!”
환호가 섞인 그 순간 진수는 뛰기 시작했고, 공은 담장을 넘었다. 홈런이었다.
그런데 다른 때의 홈런과는 달랐다.
홈런을 치고도 이렇게 빨리 뛴 적은 처음이었다.
끝내기 홈런을 친 진수는 빠르게 뛰어 홈으로 들어왔고, 경기는 끝났다.
선수들은 세리머니를 할 생각도 없이 그대로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관중들도 그런 선수들을 이해했고 상대팀들도 그리고 심판들도 이해했다. 기사로 김수천의 상태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수들은 그 길로 모두 병원으로 향했다.
*
우르르 몰려간 병원에서 중환자실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수천은 일반 병실에 있었다.
1인 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미 그곳은 울음 바다였다.
수천의 부모님 서글프게 울고 있었고 다정도 약간 뒤로 물러나 울고 있었다. 구단 관계자들도 있었는데 고개를 숙이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있었다.
태무는 천천히 다가가 물었다.
“위독하다고 들었는데, 빨리 수술 다시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아직도 일반 병실에 있냐는 말이었다.
수천의 어머니 아버지는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그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수천의 얼굴과 몸을 만지며 울기만 했다.
태무는 의사에게 눈길을 돌렸다. 하지만 약간 물러나 있던 의료진도 입술을 꾹 다문 채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그러자 다정이 잠긴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수천이... 보내줘야 할 것 같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 놀랐다.
다들 위독하다는 기사만 보고 온 상태라 죽을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하고 온 상태였다.
“수술했던 부위가 또 터져서, 이제 가망이 없대.”
“뭐? 그래도 다시 수술 시도는 해 봐야지!”
“버텨주지 않는데, 지금 산소호흡기 빼면...”
다정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태무는 아직도 믿기 힘들었다. 분명 어제 좋아졌고, 자신과 대화까지 했던 수천이었다. 그렇게 건강해 보이던 수천이 죽는다고?!
“분명 나랑 이야기도 했다고!”
“오늘 갑자기 나빠졌어.”
그는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침대 한쪽을 잡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는 계속 고개를 흔들었다.
저 때문에 죽을 리가 없다.
차라리 자신이 죽는 게 낫지.
왜... 김수천이.....
“야 일어나 봐! 김수천!!”
그는 수천의 손목 한쪽을 잡고 소리쳤다. 하지만 수천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정은호가 그를 뒤에서 말렸고, 그는 은호의 손을 뿌리치고 조금 뒤에 있던 의사의 멱살을 잡았다.
“수술 잘 끝났다고 했잖아요.”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하지만 합병증과 함께 예상치 못한 출혈이 있어서.”
의사의 멱살을 잡고 흔들던 그는 금세 고개를 흔들고 자세를 바꿨다. 의사의 옷을 정리하며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를 한 뒤에 무릎을 꿇었다.
“살려주세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능하다고 했잖아요. 수천이만 수천이만 살려주세요. 네? 선생님.”
의사는 그 자리에 앉아 자신의 바지를 잡고 있는 태무의 손을 떼내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의 손은 축 늘어졌고, 의사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정은호가 의사에게서 나가보시라고 눈짓을 했고, 의사는 보호자들과 환자가 인사를 할 수 있게 잠깐 자리를 피해줬다.
태무는 자리에 앉아서 서럽게 울었다.
울면 울수록 수천의 부모님께 죄송했다.
저를 죽이려고 했던 두현 때문에 엉뚱한 김수천이 죽게 됐으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는 고개를 땅에 파묻고 울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보고 천천히 다가온 수천의 부모님이 그에게 다가와 그의 등을 토닥였다.
“우리 오늘만 울자 은한아... 수천이도 그러길 바랄 거다.”
“죄송합니다 흑으으아아”
태무는 수천의 부모님 품에서 서럽게 울었고 다른 동료들도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훔쳤다.
*
친인척이 없는 수천의 부모님을 위해 태무와 구찬성이 장례식장을 지켜주기로 했다.
“그만 가 봐도 괜찮네, 안 그래도 힘들 텐데.”
수천의 아버지는 진정한 어른이었다. 자신의 아들이 죽었음에도 자신의 아들 동료들을 챙겼다.
태무의 손을 잡고 말하자, 태무가 수천의 아버지 손을 꼭 잡았다.
“아닙니다. 제가 있어야죠.”
태무의 말을 따라 구찬성도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네. 저희 괜찮습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장례식장을 지키며 수천의 부모님을 돌봤다.
장례식 이튿날 찾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들 중에 서울 레이스 선수들이 보였다. 그런데 서울 레이스 선수들을 보자 태무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혹시 그 속에 김두현이 있을까 봐.
아니나다를까, 그 속에 김두현이 보였다.
“여길 저 씨발 새끼가 왜!”
태무의 속에서 천불이 올라왔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