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다.

*
청주 이노센츠와 대전 드래곤스의 경기를 보던 구찬성이 물었다.
“그런데 전력분석팀 하고도 무슨 일 있었어?”
전력분석팀과 태무의 일은 정은호만 봤기에 구찬성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있었다.
“어. 너 알지? 김효섭 선배”
“어. 투수 출신 전력분석팀 팀장 김효섭 선배?”
“응. 둘이 하는 말 들었데, 경기 안 보냐고 분석이 형편없다고 말하더라.”
마운드 위를 보던 찬성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고개를 정은호 쪽으로 돌렸다.
“도은한이?”
“어. 나도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
사실 도은한은 상대방이 잘 되라고 쓴소리를 하긴 해도 예의 없이 상처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잘못 들은 거 아니고?”
“잘못 들은 거 아니고, 내가 두 사람 싸움 말리기까지 했어.”
찬성이 마운드로 고개를 돌리며 못 믿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자 정은호가 열변을 토했다.
*
화요일 아침 회의실.
화이트보드 앞에 태무와 전력분석팀 팀장 김효섭이 서로를 보고 서있다. 두 사람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왜? 무슨 할 말 있어?”
김효섭은 눈썹을 번쩍 들며 용건이 뭔지 궁금해 물었다.
“경기 보세요?”
태무의 물음이 너무 뜬금없어 질문에 대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효섭은 고개를 기울였다.
“무슨 의미야?”
“손은수요.”
“은수? 뭐?”
태무의 입에서 ‘은수’라는 이름이 나오자 효섭의 얼굴이 싹 굳었다. 미간에 주름까지 만들며 험악한 인상을 지었다.
“경기 보면 좌측 아래로 떨어지는 볼에 퍼 올리던데? 거기가 약점 같은데 못 보셨어요?”
태무는 눈을 가늘게 뜨고 효섭의 표정을 관찰했다.
효섭의 얼굴은 당황하기라도 한 사람처럼 양 뺨에 붉은 기가 돌았다.
항상 뭔가 중요한 건 빼놓고 분석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언제고 말해줘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우승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잘못된 것을 빠르게 바로잡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저에게는 도움을 덜 줘도 상관없으나, 팀원들에게 분별 안 되는 정보를 주는 건 용납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더 내려간다면 가을 야구는 꿈도 못 꿀 테니 말이다.
“그게, 그러니까... 그렇다고 해도, 네 제구력이.”
말을 더듬더니 기껏 내놓은 변명이 도은한의 제구력이 형편없어 알려줘 봐야 조절을 못할 테니 안 알려줬다는 말이었다.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었다.
태무가 서울 레이스에서 있을 때, 그 팀 전력분석팀은 이러지 않았다. 정확했고 수치로 하는 일이다 보니 실수가 적었다. 또한 선수보다 더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 구성원들 중에는 경험이 많은 선수보다 더 경험이 많은 선수 출신들이 가득하니 말이다. 그러니 제구력이 형편없다고 해도 최대한 많은 정보를 줬을 것이다.
정보를 주고 말고는 효섭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한숨을 길게 쉬며 효섭의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끊었다.
“하아-”
땅에 한숨을 내뱉은 태무는 다시 고개를 들어 효섭을 똑바로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을 내뱉었다.
“그러니까, 경기 안 보시냐고요?”
“뭐?”
효섭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다 못해 일그러졌다. 이마에는 지렁이가 기어다니는 것처럼 주름이 여러 겹 잡혔다.
“저 제구력 좋아진 게 언젠데 그걸 모르세요? 그리고 제구력 안 된다고 수치와 비율로 나타난 약점 말해주시지 않으면 전력분석팀 왜 있죠?”
“뭐?! 너 말이 너무 심하다?”
효섭은 입안에 넣어두기만 했던 껌을 어금니로 질겅질겅 씹더니 이내 바닥에 투! 껌을 뱉었다.
그러나 그 껌은 바닥에 뱉어지지 않고 태무의 하얀 신발에 가서 붙었다. 효섭은 기분 나쁘다는 표시를 더럽게 내고 있었다.
태무는 제 신발에 올려진 그의 껌을 보고 어이없어하며 웃었다. 그러다 몇 걸음 뒤에 있던 탁자로 다가가 탁자 위에 있던 하얀 휴지를 들었다.
탁자 위에 휴지를 몇 장 뽑아 허리를 굽힌 뒤, 하얀 신발 위에 회색의 껌을 집었다. 껌은 휴지에 딱 붙었고, 다행히 껌은 침이 많이 묻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신발에 자국을 내지 않았다.
그는 껌이 든 휴지를 집어 들고 뒷문에 있던 푸른색 휴지통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다 용도를 알고 사용하셔야 하는데, 껌은 쓰레기통에, 발은 신발에...”
그는 말을 하고 껌이 들어 있던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며 웃었다.
“그걸 몰라서 그랬겠니?”
효섭도 지지 않았다.
“그걸 잘 아시는 분이라면, 일부러 그러신 것 같은데...”
“안다니 다행이다. 예의가 없어서 예의 없다는 게 뭔지 알려주려고 그랬다.”
“아직 예의 없는 질문은 시작도 안 했는데?”
그는 웃으며 푸른색 쓰레기통에서 뒤돌아 효섭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뭐?”
효섭의 이마는 쭈그러들었다. 그는 효섭의 앞으로 다가와 섰다. 그러고는 효섭과 눈을 맞췄다.
효섭보다 키가 더 컸던 태무는 눈썹 앞머리를 올리고 마치 적선을 하는 눈빛으로 불쌍한 사람 바라보듯 효섭을 내려다봤다.
“혹시 돈 받으셨어요? 손은수 선수 약점 말하지 않는 대가로?”
“뭐?! 너 뭐라고 했냐?”
“아니면 정말 경기를 안 보신 건가?”
“야!! 도은한!”
효섭은 열받았는지 아무것도 없는 입안에 이와 이를 맞부딪혔다.
무서운 표정을 지었으나 태무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했다.
그의 표정이 평온하자 효섭은 더 열받아 죽을 것 같았다.
“다시 실수하지 말아주세요. 저 우승할 거거든요.”
여유 넘치는 표정의 태무가 손을 모으고 비는 시늉을 했다.
“뭐?! 이 새끼가! 야! 나 네 선배야!”
순간 효섭은 화를 참지 못하고 태무의 멱살을 잡았다. 그런데 그때 문이 열리고 밖에서 회의실에 두고 간 지갑을 가지러 왔다가 두 사람을 대화를 듣게 된 정은호가 들어와 두 사람 사이에 두 손을 모아 두 사람을 갈라 놨다.
“죄송해요. 은한이가 예민해서 그래요. 한 번만 봐주세요.”
들어오자마자 주장 정은호는 도은한 대신 사과를 했다. 하지만 효섭은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목소리를 더 크게 냈다.
“봐주긴 뭘 봐줘! 저 자식 나를 선배로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니까?”
“선배로 여기 있는 거 아니잖아요?”
가만히 있어도 효섭의 화가 풀릴까 말까 인데, 태무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
“뭐? 저게!”
“의심 받기 싫으면 잘하세요.”
무표정으로 말한 태무는 정은호가 막아준 덕분에 그 자리를 나올 수 있었다.
태무가 앞문을 열고 나가자, 바로 따라 나가려는 효섭을 정은호가 막았다.
“선배가 참으세요. 수천이가 죽어서, 은한이가 충격이 커서 그래요.”
“수천이 뭐? 저 새끼랑만 친했어? 오래 봐온 걸로 치면! 우리가 더 오래 봤어!”
“그래도 사고 현장에 있었으니까.”
정은호는 김효섭을 말리고 달래느라 시간을 한참 동안 써야 했다.
*
정은호는 그때 그 장면이 떠오르는지 고개가 절로 흔들렸다. 은호에게 이야기를 들은 구찬성은 눈이 커졌다.
“정말 그랬다고?”
“어.”
“와... 저 새끼 진짜 막 나가네?”
“미친 것 같다니까? 고로 우린 죽었다는 말이다.”
말을 끝낸 후 정은호는 땅을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자 구찬성은 입술이 살짝 나와서는 정말 모르겠다는 식으로 고개를 기울이고 물었다.
“우리가 왜 죽어?”
“월요일에 연습할 때, 하나씩 지적하는 거 못 봤냐? 하라는 거 될 때까지 집에 못 간 애들 있다고 하더라, 월요일은 후배들만 봐줬지만, 곧 우리한테까지 지적할 거고 지적 시작하면 우리도 집에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른다고! 알아?”
“뭐 자기 개발도 되고 좋지 뭐, 또 알아? 연봉 올라갈지?”
“그렇게 쉽게 생각할게 아니라니까! 저 자식 던지는 걸 봐! 우리 하는 게 눈에 차겠냐? 옛날 같아야 우리 하는 게 잘하는 것처럼 보이겠지, 지금은 던질 줄 아는 구종이 너무 많아서 무슨 구종을 던질 줄 아는지 나도 모르겠는데, 우리가 치고 던지는 게 눈에 차겠냐고?”
정은호는 고개를 흔들었다.
마운드 위에 태무는 이를 악물고 공을 던지고 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맞기도 하고 도은한 같은 면이 약간 있었다.
사실 구종이 단조로운 느낌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신의 방식을 깨닫고 난 후부터 어느 정도 비슷하게는 태무였을때 던졌던 구종을 비슷하게 던질 수는 있었다. 체력이 도와줄지 모르겠지만.
거기다 도은한의 속도가 붙은 느낌이었다.
도은한에 구종이 더해진 느낌이 아니라 태무의 몸에 도은한의 속도가 붙은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오늘은 더 미친놈 같았다.
머리가 좋아 전날 열심히 분석을 해본 적은 없는데, 어제 상대팀을 열심히 분석했더니 조금 조절을 해서 던지는 게 가능했다. 그래서 7회까지 타자를 단 한 명도 내보내지 않고 던질 수 있었다.
아웃카운트 하나만 잡으면 7회도 마무리였다.
그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두 손을 모았다.
다리를 올린 그가 공을 던졌고, 그의 손에서 공이 빠져나갔다. 공은 빠르고 강하게 손에서 빠져나갔고, 순식간에 지나갔다.
휘익
퍽!
포수의 미트 속에 들어가는 소리가 굉장했다.
순식간에 공을 던지자 관중석에서 전광판을 보고 소리 질렀다.
“우와!!!!”
7회인데 던질 수 있는 공이 많아져서 힘을 아낄 수 있던 탓에 속도가 아직 빨랐다.
전광판에 160km/h가 찍혔다.
태무는 그 후 공을 달라고 손을 들었다. 그런데 포수가 일어나 미트 안에 있던 공을 보는데 입이 떠억 벌어졌다.
중계진들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어? 저거 공이 찢어졌나요?”
“그런 것 같은데요?”
“저럴 수 있나요? 저는 처음 봐요.”
“저는 한 번 본 것 같은데, 드물죠. 대단하네요. 저렇게 강한 볼을 던질 수 있다니, 투수 출신으로 너무 부럽네요.”
그도 처음 겪은 일에 살짝 놀랐다.
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볼이었기에 공 하나를 던져야 했고, 그는 쉬지 않고 자세를 잡았다.
다음 공은 다행히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갔고, 드디어 타자 한 명을 마저 잡고 내려올 수 있었다.
내려온 그는 자리에 앉아 수건으로 머리를 털었다.
그는 경기장 위를 바라봤다. 경기를 읽는다는 것, 그래서 경기를 이기는 쪽으로 가져간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는 감독을 바라봤다.
감독이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 눈빛이 보이지 않았지만, 저 안에 눈알은 열심히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1점을 내야 하니까.
김개화 감독은 화끈한 경기를 보여주는 감독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참 야구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팔이 빠져라 틀어막고 있음에도 점수를 못 내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게다가 타격이 안 좋은 선수들 위주로 특별훈련도 했는데 왜 이 모양일까?
다들 고등학생 때는 최고라 불렸던 선수들인데, 다른 팀들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감독은 알고 있을까? 파악하고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그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그걸 생각하면 뭐 하겠나? 그냥 이기면 된다. 그래 그냥 이기면 되는 거다.
라인업이 완전히 바뀌었다.
1번 타자는 오은결이었다. 잘 치고 나가야 하니 요즘 타격이 좋은 오은결이 1번에 있는 게 좋을 수도 있긴 하겠다는 것에 태무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태무가 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숨을 고르고 있는데, 감독이 태무에게 다가왔다. 전에 감독은 투수에게 다가온 적이 없어 그는 조금 놀라 얼굴을 닦다가 고개를 들었다.
“잘 던졌다.”
김개화 감독은 그의 등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아닙니다.”
“8회도 가능해?”
구종을 다양하게 던질 수 있다 보니 7회까지 던졌지만 던진 공의 개수가 적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아직 힘이 남아 있었다.
“그래, 그럼 8회도 부탁한다.”
“네.”
그런데 그가 시원하게 대답했음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그의 옆에 서 있었다.
그는 그런 김개화 감독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뭐 할 말 있으세요?”
“예준이 말이다.”
“네.”
“뺄까?”
손예준은 다음 타자였다. 그런데 예준이 오늘 안타를 한 번도 치지 못했고, 공을 건들지도 못했다는 것을 보고 하는 소리 같았다.
그런데 그걸 왜 자신에게 물어보는지 의외였다.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세요?”
그는 표정이 굳었다. 선수에 대한 교체는 감독에게 있는 권리이다. 자신이 왈가왈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김개화 감독은 웃고 있었다.
웃고 있는 김개화 감독을 보니 문뜩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김개화 감독은 이런 식으로 선수들을 떠본다는 것.
김개화 감독은 이기는 경기를 하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감독이었다. 단합력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도태되는 선수들을 굳이 끌고 가는 것을 그리 좋게 여기지 않았으며 경쟁을 즐겨 시켰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정이 많은 선수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여기서 잘 보이려면 손예준을 잘할 선수와 바꾸라고 하는 게 맞았다.
기회를 많이 줬으니 말이다.
태무는 미소를 지었다.
김개화 감독의 마음이 읽고 나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네가 부주장이고 선발이잖아? 선택은 내가 하겠지만, 참고할 테니 말이나 해봐.”
“그래요?”
“너 같으면 어쩔래?”
김개화 감독은 허리를 굽혀 그의 귀 옆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물었다.
그는 사람 좋은 척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또박또박 대답했다.
“바꾸지 않겠습니다.”
뜻밖의 말이었다.
그의 말에 김개화 감독이 바라던 대답이 아니었는지,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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