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것은 오직 실력뿐

“왜?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김개화 감독이 보기에 도은한은 분명 이기는 경기를 무척 중시하는 선수로 보였다. 그랬기에 다른 대답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으나, 자신이 했단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이번에는 안타 칠 거거든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너무 자신 있게 말하는 그의 태도에 김개화 감독이 어이없어하며 웃음을 흘렸다.
“보세요.”
어이없어하는 김개화 감독의 태도에도 태무는 제 뜻을 굽히지 않았다. 여유 있게 미소를 흘리며 턱으로 타석에 방망이를 들고 서 있던 예준을 가리켰다.
김개화 감독은 몸을 일으켜 팔짱을 끼고 태무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그러고는 머지않아 경기에 집중했는지 입술과 입술 사이가 살짝 벌어졌다. 집중했을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첫 번째 타자였던 오은결이 볼넷으로 1루로 나가고, 2번 타자인 손예준이 타석에서 방망이를 들고 서 있었다.
공격의 첫 타자가 나갔다는 건 점수를 만들기에 너무나도 좋은 기회였다.
손예준은 나가서 다리를 정신없이 흔들었다.
감독은 미간을 찌푸리며 손예준의 다리를 보았다.
“저 자식 뭐 하는 거야?”
신경질적인 김개화의 목소리에 태무는 일어나 감독의 옆에 살짝 다가가 속삭이듯 말했다.
“모르세요?”
사실 태무는 감독이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김개화는 매일 손에 들고 다니는 한 손 크기의 수첩에 야구 경기에 있던 모든 일을 기록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선수들의 단점이나 장점 그리고 그 외에 감독들의 습관까지도 수첩 하나에 다 들어 있었다. 그러니 일부 선수들 입에서는 김개화 감독의 수첩을 사고 싶다는 농담까지 나오는 일까지 있었다.
그런 김개화 감독이니 당연히 손예준이 다리를 왜 저렇게 정신없이 흔들고 있는지 단번에 알아차릴 거라고 예상했다.
국가대표 때 있었던 투수 고희준이 신경 쓰여 했던 행동이라는 것을 잊었을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감독이 김개화였으니까.
김개화는 다 잊은 사람처럼 미간을 좁히며 반쯤 내려온 선글라스를 검지로 쑥 올리며 무뚝뚝한 목소리를 냈다.
“뭐를?”
김개화 감독도 나이가 들긴 든 모양이었다.
고희준은 타자가 다리를 정신없이 흔들면 신경 쓰여 했고, 그래서 글 사실을 알고 있단 태무가 어제 예준에게 말해줬고, 늦은 시각까지 예준의 훈련을 도왔다.
처음부터 다리를 정신없이 흔들면 참아 내거나 혹은 대비할 수 있으니, 힘과 판단력이 떨어지는 7회쯤에 갑자기 다리를 흔들면 당황할 거라고 연습을 해두라고 했다. 7회에 무너질 거라는 분석 하에 내린 결정이었고 예준은 그의 말을 잘 따라줬다.
그걸 연습하느라 예준이 어제 늦게 집에 갔다.
타격 폼을 두 개 가지고 경기에 나간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었다. 그랬기에 오늘 예준의 타격이 좋지 않은 이유도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허리를 굽혀 로진을 만지는 고희준의 얼굴은 무표정이었다. 그러나 분명 흔들리고 있는 것이 혀의 움직임으로 보였다. 혀를 내밀어 아랫입술을 훑는 모습이 입이 마르는 모양이었다.
고희준은 허리를 펴서 자세를 취했다. 그러고는 두 손을 모아 공을 던졌고, 공은 순식간에 손을 떠났고 쭉 뻗어갔다.
공은 힘 있게 뻗어갔고, 뻗어가다가 뚝 떨어질 줄 알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실투였다.
예준의 다리 움직임 때문에 흔들렸던 것이다.
중간으로 곧게 뻗어 들어간 공은 곧 타석에 도착했고,
탕!
경쾌한 타격 음과 함께 관중석에서 환호소리가 퍼져 나왔다.
활짝 웃은 태무도 살짝 굽혔던 허리를 펴며 두 손으로 박수를 쳤다. 그러자 놀란 김개화가 태무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 어떻게 알았냐?”
태무는 눈썹 한쪽을 들썩거리며 몸을 돌려 의자로 다가와 앉으며 김개화 감독을 보고 말했다.
“믿음이죠. 동료에 대한 믿음.”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잘 생각해 보세요. 제 영업 비밀이니까.”
그는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감독은 그를 이상하게 바라보다가 다시 팔짱을 끼고 마운드 위를 바라봤다. 그런데 순간 마운드 위를 바라보는데 공을 던지고 있는 고희준을 보니 국가대표 때가 생각났다.
“아! 내가 그걸 잊고 있었구나! 어? 그런데 도은한은 어떻게, 그걸?”
자신도 잊고 있었던 걸 도은한이 어떻게 알고, 아니 손예준이 어떻게 알고 공략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제 손예준에게 도은한이 뭔가를 알려주는 것 같았는데, 신기할 따름이었다.
김개화 감독은 앉아서 경기를 지켜보는 도은한을 살짝 봤지만, 아무리 봐도 도은한이나 손예준이 어떻게 고희준의 단점을 알고 있는지는 접점이 없었다.
그래서 아직 경기가 남았기에 다시 고개를 돌려 경기를 지켜봤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점수를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음 타자가 나와서 외야에 높이 뜬 볼을 날려 한 루를 이동했다. 그리고 한 명이 삼진을 당해 2아웃에 2루와 3루가 채워졌다.
상대팀에서는 아웃 하나만 잡으면 되는 상황이었고, 드래곤스는 기회 한 번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타자는 이상하게 고희준 볼에 약한 김하민이었다.
감독의 얼굴에는 근심이 많아 보였다.
감독은 얼마 후에 손을 바삐 움직였다.
턱과 귀 그리고 손을 툭툭 치며 사인을 보냈다.
타격 코치는 하민이 나가기 전부터 계속해서 어깨에 손을 두르고 귓속말을 했다. 데뷔한 지 몇 년 안 된 신인이기에 해줄 말이 많아 보였다.
귓속말을 하던 타격 코치는 말끝에 허리를 펴며 하민의 등을 툭툭 두드리고는 박수를 쳤다. 기를 살려준다고 하는 행동과 말이었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알았지! 하라는 대로!”
“네!”
하민은 고개를 끄덕이고 타석에 들어섰다. 하민의 자세를 잡았다.
오늘 타격이 좋지 않았다.
그동안 잘 쳐왔는데, 오늘 상대 전적에서 약한 투수라 그런지 이상하게 잘 못 쳤다.
경험도 많지 않기에 이런 상황에 감독의 손이 바빠지고, 어떠한 작전을 주는 것에 대해서 태무는 거슬렸다. 작전을 내려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하민은 자신감 있게 방망이를 쥐고 자세를 잡았다.
하민이 자세를 취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투수도 자세를 잡았다.
머지않아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났고, 그 순간 태무는 깜짝 놀라 일어났다.
하민의 자세가 바뀐 것이다.
짧게 잡은 방망이를 앞으로 내밀고, 몸을 구부정하게 굽히고 무릎을 살짝 굽혔다.
번트 자세였다!
하민의 자세가 바뀌는 순간 3루에 있던 오은결은 홈을 향해 죽기 살기로 뛰었다.
핑!
공은 방망이에 잘 맞았고, 모든 선수들이 일사불란하게 줄어드는 우산처럼 모아졌다. 하지만 기습 작전이었고, 하민의 번트도 느리게 굴러가 제법 환상적이라 할 수 있었다.
3루수가 그 공을 잡으러 뛰어오는 시간이 꽤 걸렸다.
그러는 동안 오은결은 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고, 관중석은 환호로 가득 찼다.
“으어?! 어? 우와!!!!!”
관중석의 드래곤스 팬들은 오은결이 홈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순간 꽉 쥐고 있던 두 주먹을 위로 번쩍 들며 환호의 소리를 질렀다.
타격코치도 주먹을 불끈 쥐고 한 손을 들었다.
선수들도 일어나서 박수를 치고 들어오는 오은결과 손바닥을 마주치고, 오은결의 등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먼저 점수를 낸 것이다. 그것도 아웃 당하지 않고 번트로 말이다.
스퀴즈 번트 보란 듯이 성공했다. 감독이 와서 처음으로 낸 작전을 성공한 것이다.
감독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좋아하는 것 같았다.
경기에서 제 마음을 잘 내색하지 않는 감독이기에 태무는 감독의 손을 바라봤다. 감독의 뒷짐 진 손은 주먹을 꽉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을 보니 감독도 몹시 좋아하는 것이 분명했다.
김개화 감독이 흥분했을 때 얼굴에 표정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뒤로 한 손에 감정을 표현하곤 했다. 기분이 좋을 때 주먹을 폈다가 쥐었다가 하곤 했는데, 그걸 알고 있던 태무는 김개화 감독의 손을 보고 웃었다.
다음 타자가 어이없게 삼진으로 물러나긴 했지만, 그래도 1점을 냈으니 다행이었다.
8회에 마운드에 오른 그는 이제 한 회 혹은 두 회만 버티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이 됐다.
두 타자는 쉽게 잡아냈다.
그러나 그 후가 문제였다. 너무 마음을 놨을까?
그 후에 타석에서 시원찮았던 마중구가 실수를 하더니 결국 상대 팀의 기를 살려줬고, 다음 타자는 안타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3루와 1루가 채워졌다.
8회가 승부처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그는 호흡을 고르며 발 아래 있던 하얀 로진 백을 만졌다.
호흡을 조절한 그는 포수 윤석을 바라봤다.
윤석은 좌측 아래로 떨어지는 패스트볼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는 조금 고민했다.
2 스트라이크 1 볼 상황.
좌측 아래로 떨어지는 공은 손은수 선수를 상대로 너무 많이 던졌다.
분석 결과 손은수가 약하다고 생각해서 던지기는 했지만, 손은수는 태무가 그쪽으로 공을 던질 거라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방망이를 그곳을 가져다 댔다.
다행히 볼에 힘이 있어 땅볼이 되거나 혹은 너무 빨라 그냥 미트 안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지금은 여러 번 공을 본 상태라서 안타를 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럼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손을 모으고 다리를 들었다.
공은 그의 손에서 빠져나갔다.
그런데!
휘이이잉!
날아오는 공의 방향이 이상했다.
좌측이 아니었다.
퍼억!
“으악! 미친!”
포수가 우스꽝스럽게 다리 한쪽을 들고 몸을 한쪽으로 기울이고는 어렵게 반대 투구 된 공을 잡아냈다.
그러나 그럼으로 인해서 타자 은수는 헛스윙을 하고 욕을 내뱉었다.
“아.. 씨.”
그의 예상대로 은수는 그가 공을 던질 방향을 예상하고 미리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의 공이 빠르기 때문이었다.
아직 159km/h의 속도가 나오니 보고 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느꼈던 모양인지 먼저 예상하고 휘둘렀다.
그는 그럴 줄 알고 반대 투구를 한 것이다.
하지만 포수의 사인에 고개를 흔들었다가, 혹시나 방향을 바꾼다는 것을 눈치챌 것 같았기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타자를 잡아낸 그는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그러자 포수가 그에게 다가오며 그의 등을 쳤다.
“야! 못 잡을 뻔했잖아!”
구박 할 만도 했다.
정 반대 투구가 됐으니 말이다.
놀랄만한 상황이었다.
“그럼 어쩌라고? 타자가 눈치가 빠른데.”
“뭐? 그럼 일부러 그랬다는 거야?”
윤석의 미간을 잔뜩 줄어들었다.
어쩐지, 요즘 제구력이 부쩍 좋아져서 이렇게 반대 투구를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긴 했다. 사인을 잘못 읽지 않는 이상 이럴 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일부러 그랬다니.
자신이 살면서 이런 투수는 본 적이 없었다.
안전한 방법을 생각하지, 위험하게 모험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투수는 처음이었다.
“어. 미안.”
태무는 살짝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야! 그러다 내가 못 잡았으면?”
“네가 욕먹겠지?”
그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야!”
더그아웃 앞에서 윤석이 그를 원망스럽게 불렀다.
“장난이고, 너 순발력 좋아. 예전에 연습할 때 보니까 잡더라.”
“뭐? 너 나 시험해 봤냐?”
“연습할 때 그냥 본거지! 뭘 또 시험해 봐?”
그는 윤석의 등을 툭툭 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더그아웃에 들어가자, 감독이 그에게 다가왔다.
“잘했다.”
“네.”
“다음은 창욱이가 던질 거다.”
2군에서 잘 던져서 조창욱이 콜업 되었다. 조창욱은 태무가 도은한의 몸에 들어가 2군에 있을 때 만났던 적 있는 후배였다.
“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쉽게 고개를 끄덕이자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감독이 물었다.
“뭐 믿을 수 있는 후배인가 봐?”
“네. 같이 뛰어봐서 알아요. 공 좋거든요.”
그 소리를 조창욱이 모두 다 듣고 있었다. 그러자 창욱이 다가와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형!”
“감사하긴.”
그는 무뚝뚝하게 말하고 팔에 냉찜질을 했다.
사실 이기기 위해 다 계산하에 한 행동과 말이었다.
2군에서 올라온 선수가 1군 선수들과 싸우는데 뭐 믿을 만하겠는가? 하지만 한 회였다 한 회만 지키면 이기는 경기였다.
그랬기에 조창욱이 자신감만 있다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원래 믿어주면 더 잘하는 법이니까.
점수는 스퀴즈 번트로 낸 점수가 끝으로 9회를 맞이했다.
9회에 조창욱이 어깨를 쭉 펴고 마운드 위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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