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더러운 반칙

‘방심하지 말자.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 나는 김한수 선배를 잘 안다.’
조창욱은 공을 던지기 전에 오른쪽 아래에 있던 로진을 만지느라 몸을 약간 돌려 굽혔다. 그러고는 다시 몸을 폈다.
창욱이 평소보다 행동을 느릿하게 하자, 빨리 동작을 하라는 듯 심판이 손짓했다. 하지만 많이 신경 쓰지 않고 진정하려 노력했다.
포수 윤석의 사인을 본 창욱은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런데, 태무가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다리를 움직였다.
왼쪽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움직임이 눈에 띄게 보이는 것 같았다.
태무는 혼잣말을 했다.
“왜 저렇게 보여줘?”
남의 속마음을 잘 읽는 태무가 보기에는 딱 봐도 보여주겠다고 마음을 먹고 행동하는 것 같았다.
태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창욱이 전에 했던 행동들을 되짚어봤다.
‘전에 뭘 했더라...?’
‘전에.... 로진 위치를 괜히 움직여서 로진을 만지느라 발을 오른쪽으로 상당히 많이 움직였다. 그리고 왼쪽으로?’
태무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눈이 번쩍 뜨인 순간 공이 창욱의 손에서 힘 있게 빠져나갔다.
그 힘 있는 공을 보는 순간 알아차렸다.
‘속임수다!’
공은 창욱의 손을 떠나 직선으로 보기 좋게 날아갔다.
그 공을 본 김한수는 확신에 가득 찬 얼굴로 꾹 다문 입술에 힘을 줬다. 그러고는 방망이를 힘껏 휘둘렀다.
공은 머지않아 타석에 들어섰다.
휘이이익!
핑!
공은 결국 방망이에 맞고 말았다. 하지만 환호가 쏟아져 나온 팀은 드래곤스였다.
방망이 옆 부분에 빗맞은 공은 내야 1루 쪽으로 떠올랐고, 한수는 그 공을 보고 한숨을 푹 쉬고 있다가 이내 힘없이 뛰었다.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공이 왼쪽으로 휘어지지 않고 정면으로 날아왔으니 말이다.
왼쪽으로 올 거라고 생각하고 방망이를 조금 왼쪽에 치우쳐서 휘둘렀다. 그렇지 않았다면 더 정확하게 맞춰서 안타를 만들어 냈을 것이라는 아쉬움에 방망이로 땅을 내리쳤다.
창욱은 그동안 하늘에 뜬공을 손가락 하나로 가리켰고, 1루수 마중구가 몇 걸음 걸어와 하늘에 높이 떠버린 그 공을 손쉽게 잡아냈다.
공이 중구의 손에 들어오고, 멈춘 한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는 뒤돌아서 걸어갔다.
더그아웃에 있던 태무는 박수를 쳤다.
꽤 좋은 속임수였다.
이제 어느 누구도 창욱의 발을 보고 창욱의 공을 읽고 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떤 타자도 모험은 싫어하니 말이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넌다는 말이 있듯이 이런 속임수에 속을 수도 있으니, 안전한 길을 가기 위해서는 창욱의 발만 보고 공을 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걸 보여주려고 한 행동은 아니겠지만, 어찌 되었건 승리도 챙겼고, 창욱의 앞날에도 잘된 일이니 1석2조였다.
*
인사를 하고 경기장에서 내려온 뒤에 더그아웃 앞에서 인터뷰 하나가 잡혀 있던 태무는 카메라 앞에 섰다.
여자 아나운서 한 명과 나란히 서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오늘 투구가 되게 인상적이었는데요. 변화의 원인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원인이요?”
태무는 잠시 생각을 했다.
눈 안에 생각이 많아 보였다.
그런 그의 얼굴이 곤란해 보였는지 분홍색 정장을 잘 차려 입은 신입 아나운서는 백보운은 빠르게 입을 열어 상황을 정리하려 들었다.
“혹시, 곤란하시면, 다음 질문으로”
“아니요. 변화의 원인은”
“네.”
“김수천 선수 덕분입니다.”
그의 말에 오히려 백보운 아나운서의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
따뜻했던 햇살 같았던 수천의 죽음은 야구인 모두의 슬픔이었던 모양이다.
그도 아나운서가 할 말을 잃고 고개를 돌려 삐져나온 눈물을 손등으로 정리하자,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으려 얼굴을 백보운 아나운서 반대쪽으로 돌리고 이를 꾹 물었다.
눈물을 정리한 백보운 아나운서는 금세 목소리를 정리하고 다시 물었다.
“아, 죄송합니다. 아, 그럼 구종이 많이 다양해 지셨는데, 다 어디서 배우신 겁니까?”
“전부터 많은 선배들께 배우고 연습하던 건데, 요즘 성공한 게 많아서, 요즘 들어 다양해진 것 같이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전부터 연습했다기보다는 태무가 쓰러지기 전에 던질 줄 아는 구종들이었다.
도은한의 몸에 들어와서 던지지 못했는데, 그저 마음가짐을 바꾸니 다시 비슷하게나마 던질 수 있게 되었다.
그저 도은한 몸이 자신의 몸이라고 생각한 것뿐이다.
그런 후부터 은한의 몸 주인이 된 듯 몸이 말을 잘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으니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매번 선수들께 물어보는 질문인데요. 올해 목표는 무엇이 있으실까요?”
“우승입니다.”
그의 대답에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그의 말에 아직도 집에 가지 않고 관중석에서 인터뷰를 보고 있던 팬들의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사실 드래곤스 선수들은 개인 인터뷰를 할 때, 올해 목표를 물어봤을 때 ‘우승’이라는 두 글자를 내뱉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우승이라는 단어는 시즌 시작에나 말하는 것이라고 십 년 동안 팬들은 그렇게 알고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진지하게 인터뷰에서 말했다가 조롱거리가 될게 뻔했기에 말하는 선수가 없었다.
그랬기에 팬들은 시원하게 우승을 말해주는 태무의 모습에서 사이다를 마신 것 같은 시원함을 느꼈다.
“아! 우승이요! 그렇군요. 네! 우승 꼭! 이루시길 응원하겠습니다. 그럼 인터뷰 감사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태무는 두 손을 모으고 미소로 마무리 인사를 한 뒤에 장비를 반납하고 더그아웃으로 내려왔다.
*
팬들에게도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온 그는 라커룸에 들어갔다.
선수들과 감독이 있었다.
사실 감독에게 전력분석팀 팀장에 대해서 말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이번 청주 이노센츠와의 경기가 끝나고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더 지켜봐야 했으니까.
감독은 모두 앉아 있는 가운데 태무를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다.
“죄송합니다.”
늦어서 죄송하다는 인사를 한 그는 허리를 굽히고 빠르게 들어가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았다.
“다 왔네.”
그는 제 자리에 가서 앉자 개화는 선수들이 다 도착했는지 주변을 둘러봤다.
사실 김개화 감독은 경기가 끝난 후에 선수들을 모아두고 피드백을 오래 하기로 유명한 감독이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잘 해, 성적을 올리는 유형의 감독이었다.
그런데 그게 지나칠 때는 선수들이 지칠 때까지 말하는 경우가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드래곤스에 와서는 그렇게 안 한다고 들었는데, 그동안은 그냥 지켜 보느라 안 했던 모양이다.
이제야 자신의 본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았다.
라커룸 제일 중앙에서 한 손으로 턱을 만지며 땅을 보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던 김개화 감독은 고개를 들어 중구를 바라봤다.
“음, 중구야.”
“네! 감독님.”
중구는 얼어 있는 사람처럼 고개를 번쩍 들고 바로 대답했다.
“너, 우리 팀에 중심이 되어 주고 흔들리지 않게 해주고 있다는 거 알고 있다. 그리고 어릴 때 너의 재능이 얼마나 컸는지, 홈런 타자였잖아.”
‘시작됐다.’
김개화 감독을 아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김개화 감독의 화법을.
정태우는 김개화 감독을 알만한 선수였기에 고개를 돌리며 한숨을 쉬었다.
처음에 저렇게 칭찬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저렇게 칭찬을 한다고 얼빠진 놈처럼 웃고 있으면 안 된다.
왜냐?! 그 뒤에 나올 말이 그리 좋은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그 실수는 너 답지 않았다.”
너그럽던 김개화의 표정이 단번에 불도그처럼 변했다.
눈은 마중구에게 고정됐다.
수비 때 실책 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빠트리지 말았어야 할 공이었다.
팬들이 보고 백 퍼센트 “내가 해도 저것보다 잘하겠다.” 혹은 “내가 해도 저건 잡겠다.”라는 대화가 오갈 법한 공이었다.
그냥 굴러가는 공이었으니까.
심지어 불규칙 바운드도 아니었다.
그러나 다리 사이로 알 까기를 당했으니, 집중을 하지 못해 실수를 한 게 맞았다.
김개화 감독의 질책에 마중구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감독은 갑작스레 고개를 숙인 중구에게 소리쳤다.
“그렇다고 고개는 숙이지 말고!”
"아, 죄송합니다!”
중구는 고개를 들었다. 중구는 당황스러웠다.
사실 김개화 감독이 온다고 해서 떨었었다. 그런데 다들 무섭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순하게 지나가는 부분이 있어서 그래도 자신과 잘 맞는 감독이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왜 다들 무섭고 제법 까다로운 것 같았다.
이러다가 자리가 흔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어?”
굵은 목소리로 질문을 해왔다. 질문이 그리 어려운 질문이 아님에도 머리가 텅텅 빈 것처럼 하얗게 변해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중구는 눈을 돌렸다.
“음...”
“그것도 생각해야 해?!”
주변에서 태우가 입 모양으로 ‘연습’이라고 알려줬다. 그러자 중구가 대답했다.
“아! 연습! 연습하고 가겠습니다!”
“그래. 지켜보겠다.”
김개화 감독은 그 옆에 있던 손예준을 지나갔다. 예준은 눈을 감고 한숨을 푹 내쉬다가 개화의 발이 다시 돌아오자 헛기침을 했다.
"캑캑!"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제가 점수를 내는데 일조했는데, 오늘 부진했던 것에 대해서 혼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이 밀려왔다.
두 손을 꼭 잡고 침을 꿀꺽 넘긴 예준은 번쩍 일어났다.
감독은 조금 뒤로 갔다.
“예준이는 잘 치더니 오늘은 좀 부진했지?”
“아, 네.”
“그런 투수 공략은 네 생각이니?”
꽤 부드럽게 물었다. 하지만 예준은 얼어 있었다.
“아니요. 도은한 선배 생각입니다.”
“그래? 그런데 그렇게 타격 폼을 막 바꾸면, 타격 폼이 망가질 수 있다는 건 생각 안 해 봤니?”
“네?”
예준의 눈이 동그랗게 변해서 반대쪽에 있던 도은한을 슬쩍 보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은한이 자리에서 일어나 약간 앞으로 나왔다.
“예준이는 자세 적응이 빠른 편입니다. 그래서 부탁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판단하지?”
“사람의 특성을 잘 파악하는 편입니다.”
그는 말 한마디 지지 않았다.
“그 판단이 틀릴 수도 있지 않나?”
감독은 뒤를 돌아 그를 바라봤다.
“틀린 적이 없었습니다.”
“정말 없나?”
그는 생각했다.
틀린 적.
사실 야구를 했을 때 틀린 적은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사람을 판단했을 때, 틀렸던 적.
딱 두 명뿐이다.
두현과 세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제 앞에서 연기를 했으니까 모를 수밖에. 하지만 두현은 질투가 많은 아이라고,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긴 했었다.
그런 걸로 치면 세림에게만 속았다고 해야 하나?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거봐 말 못 하지 않나?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말게. 이 선수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을 것 아닌가?”
하지만 그의 야구에서의 분석이 틀린 것은 없었다. 분석을 안 해서 당한 것뿐이었다.
“야구에서 했던 분석은 틀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는 굽히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그렇게 하겠다는 건가?”
“네.”
“여기 감독은 나야.”
감독이 그의 성격을 좋아하고 그의 이기려는 방식을 좋아해서 부주장을 시켜 놨지만, 감독은 자신이었다.
그가 가끔은 그걸 모르는 것 같아서 감독은 도은한이 아닌 자신이라는 것을 각인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태무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그의 관심은 우승이었다.
“감독님이 수를 안 쓰시니 제가 쓰는 수밖에요.”
그는 감독에게도 거침없이 말했다.
너무 무례한 말이었다.
감독이 무슨 수를 쓰지 않아서 제가 감독 역할을 한다는 그런 말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자 주변 선수들은 고개를 돌려 가면 서로의 눈을 맞췄고, 일부 선수들은 놀라서 벌어진 입술을 손으로 막으며 아무 말 못 했다.
그러자 주장 정은호가 나섰다.
“야, 너 선 넘었다.”
“선은 넘으라고 있는 거 몰랐어요?”
“그만해!”
“은호야 그냥 둬라. 그래, 그럼 말해보게, 내가 무슨 수를 쓰길 원하나?”
“반칙이요. 그것도 아주 더러운 반칙!”
그는 코끝 한쪽을 올리며 비열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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