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비된 투수의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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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
작품등록일 :
2024.05.0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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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6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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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3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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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돕고 싶은 팀

DUMMY

8회는 1번부터 타순이 새로 시작되었다.


1번 타자였던 오은결이 타석에 빠르게 나갔다.


평소보다 바쁜 걸음으로 나갔다.


보이지 않게 한다고 했는데, 저쪽도 수법을 눈치챘던 모양이다.


평소 로진백을 많이 만지지 않던 투수 김지섭이 몇 번이나 반복해서 로진백을 만졌다. 한번 만지고 일부러 떨어뜨리고 또 잡았다. 연기자가 아니다 보니 어색하게 로진백을 떨어뜨리고 주변 눈치를 보며 웃는 모습이 어색하다 못해 거북하기까지 했다.


그 모습으로 보고 더그아웃과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터져 나왔지만, 심판에게 경고만 받을 뿐 투수에게는 타격이 없었다.


얄미운 김지섭의 행동에 속이 터지는 가운데, 숨을 크게 내쉰 오은결은 공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그래, 초구야.’


얇던 빗발은 그 사이 더 굵어졌고, 투수는 공을 더 늦게 던지려고 노력했다.


야구 처음 보는 사람이 봤다면 나무늘보와 닮았다고 했을 정도로 느리게 행동했다.


타자가 자세를 다 잡은 후에야 자세를 잡고 드디어 공이 투수의 손에서 빠져나갔다.


오은결은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날아오는 공을 똑바로 응시했다.


계획은 초구였다.


그런데!!


“어어?”


예상했던 것보다 초구가 형편없었다.


아무리 은결이 초구를 노리고 왔다고 해도 칠 수가 없는 공이었다.


공이 보기 좋게 중력을 거스르고 하늘로 떠버렸기 때문이었다.


포수가 개구리처럼 점프를 했지만, 잡지 못했다.


공은 뒤에 있던 망을 맞혔고, 머쓱해진 투수는 다시 로진백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볼이었다.


너무 느리게 한다고 의식해서 그랬을까?


투수 혼자 자멸하여 어느새 볼 4개를 던졌다.


은결은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방망이를 휘둘러보지 못하고 걸어 나갔다.


걸어 나갈 때에도 이 정도로 빨라 걸어 나갔던 적이 없었다.


은결은 전력 질주를 해서 1루에 도착했다.


첫 주자가 1루에 도착한 일은 좋은 일이긴 하지만, 더그아웃에 있던 태무는 속이 탔다.


지금 1루로 나간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한두 방울만 내리던 빗줄기의 숫자가 많아지기 시작했고, 이러다가 폭우가 한두 점 쫓아간 뒤에 쏟아질까 봐 겁이 났다.


태무는 두 손을 모으고 마운드 위를 바라봤다.


다음 타자 손예준도 빠르게 타석에 들어섰다.


오늘은 타격 폼을 건들지 않아서 그런지 꽤 안타를 많이 쳤다.


기대해 볼 만했다.


예준은 방망이를 전보다 가깝게 잡았다.


투수 김지섭은 계속해서 볼 질을 하고 있었다.


김지섭의 주 무기는 싱커(싱킹 패스트볼).


제구가 잘 될 때는 쳐봐야 땅볼이 나오고, 끝에서 살짝 움직이기에 치지도 못할 공을 던진다. 하지만 오늘은 어쩐지 몸이 더 무거워 보였다.


예준은 초구에 방망이를 휘두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김지섭은 예준에게도 연속해서 볼질을 했고, 예준은 방망이로 파울볼을 딱 한 번 건드려 보고 걸어 나갔다.


상대팀 감독과 투수코치가 바빠졌다.


그러는 사이 빗줄기가 꽤 굵어졌다.


김지섭은 빗줄기가 굵어지면 굵어질수록 더 느릿하게 행동했다.


꼴불견이 따로 없었다.


더그아웃에 있던 태무는 인상을 찌푸렸다. 태무의 옆에 있던 찬성도 김지섭이 의도적으로 느리게 행동하는 모습이 보기 싫었는지 한숨을 푹 내쉬고는 한탄했다.


“너무 시간을 끄네.”


구찬성의 말에 태무는 당연하다는 두 손으로 앞의 난간을 꽉 잡고는 말했다.


“그러니까, 지고 있는 건 언제나 불리한 겁니다.”


그의 말이 맞았다.


빨리 진행한다는 것은 아무리 타자가 빨리 진행한다고 해도 투수가 도와주지 않으면, 9회라는 기회를 한 번 더 얻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법 굵어진 빗속에 다음 타자 최진수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 뛰어나갔다.


평소에는 얌전하지만, 경기 할 때는 욱하는 성격이 있는 타자였다.


김지섭은 진수의 그런 성격을 알고 있음에도 시간을 끄는 행동을 하듯 잘 입은 바지를 한 번 더 올리고, 아무것도 묻지 않은 신발을 손으로 털었다. 그러자 진수가 인상을 팍 쓰며 허리에 한 손을 올렸다.


“야! 빨리 던져!”


투수 김지섭을 보며 소리치자 심판이 두 손을 굴리며 김지섭에게 빨리하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하지만 김지섭은 변하는 게 없었다. 여전히 나무늘보였다.


누구 복장이 터져 죽는 꼴을 봐야겠는지 살살 웃으면서 느리게 자세를 잡았다.


‘아니 볼넷을 연속 두 번이나 내주고도 저렇게 웃음이 나와?’


진수는 김지섭의 마음이 이해가 안 갔다.


‘설마, 우리가 점수를 못 낼 거로 생각하는 건가?’


진수는 혼자만의 생각으로 확 열이 받았다.


‘우리 물로 보는 거지? 씨발.’


진수는 기분이 나빠 인상을 팍 썼다.


진수의 마음을 모르는 투수 김지섭은 웃고 있었다.


아마도 볼을 내줘도 웃으며 타자의 마음을 흔들라고 감독이 시켰을 수도 있겠다. 저렇게 미친놈처럼 웃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진수는 흔들리기보다는 열이 받았다.


“씨발 새끼.”


진수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팬들은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이상한 소리를 외쳤다.


"보지 마! 보지 마! 보지 마!"


팬들의 목소리에 더 자존심이 상한 쪽은 최진수였다.


자신이 그동안 그렇게 못했었나? 싶었다. 그래서 김지섭의 공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보지 말라는 건가 싶었다.


진수의 우뚝 솟은 방망이가 잠시 흔들렸다.


더그아웃에 있던 태무는 팬들의 “보지 마!”라는 외침을 듣고 걱정스러웠다.


정말 실투가 왔을 때도 그냥 넘길까 하는 걱정이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하늘을 보니 빗줄기가 더 굵어지고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이렇게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이러다간 진짜 안칠 것 같았다.


태무는 더그아웃 맨 앞으로 가서 난간 맨 아래에 발을 올리고, 두 손으로 맨 위를 잡은 후에 고개를 쑥 내밀고 비를 온전히 맞아가면서 소리쳤다.


“쳐! 칠 수 있다! 최진수!!”


진수에게 기회가 오면 보고 있지 말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게 지금 할 수 있는 제일 최선이었다.


태무의 작은 말 한마디는 다른 선수들이 따라하기 시작하자 작은 솜사탕이 커지는 것처럼 말소리가 조금씩 커졌고, 선수들의 목소리를 들은 일부 팬들이 따라 하기 시작해서 작은 솜사탕에서 시작한 말 한마디는 구름떼처럼 커져 야구장 전체에 울리기 시작했다.


“쳐! 칠 수 있다! 진수야!!”


그때 비를 가르며 공이 김지섭의 손을 떠났다.


후휘후익후후익!


진수는 눈에 힘을 주고 공을 응시했고, 손에는 방망이를 세게 쥐고 있었다.


탕!


경쾌한 타격 음과 함께 공은 떠올랐다.


최진수는 하늘로 떠오르는 공을 보자마자 배트를 바닥에 던지고 뛰었다.


주자들도 공을 보고 뛰었다.


공이 떠오르기만 하면 소리를 지르던 관중들 때문에 공이 담장 근처로 가기 전부터 심장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떠오른 공은 높이 떠올라 천천히 날아갔다.


왜 저렇게 천천히 날아가는지.


모든 선수들은 일어나 까치발을 하고 자신이 담장을 넘을 것도 아니면서 목을 쭉 빼고 최대한 높은 신장을 만들었다.


그 후 뚫어져라 공을 지켜봤다.


공은 머지않아.


담장을 살짝 넘겼다.


“담장을 넘기는 쓰리런 홈런!!! 최진수가 동점 홈런을 만들어냅니다!!”


중계석에는 큰소리가 울려 퍼졌고, 관중석에 팬들은 옆 사람과 부둥켜안았다.


더그아웃에서는 공이 담장을 넘는 순간 비명과 함께 주먹을 쥔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이거 진짜야?”


정태우가 가만히 서 있다가 물었다.


“그럼요. 진짜죠. 우리 이길 겁니다.”


태무는 웃으며 말했다. 저들의 더러운 꼼수에 사이다를 한잔 먹여주는 것 같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이 맛에 야구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짜릿했다.


상대팀 투수의 표정은 웃음기가 사라졌다.


머리를 한 손으로 쥐고 고개를 숙이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쉬었다.


한방에 승리가 없어졌으니 그 행동도 어색한 행동은 아니었다.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선수들을 동료들이 반기며 등을 신나게 때렸다. 파티가 따로 없었다.


모두들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그 순간 뒤에서 경쾌한 소리가 또 들렸다.


탕!


그 뒤 “와!” 하는 관중석의 함성이 이어졌다.


다들 축하를 하다 말고 몸을 돌렸다.


상대팀 투수였던 김지섭도 급해졌고, 급했던 김지섭이 공을 급하게 던졌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공을 지명타자 배창수가 시원하게 쳤고, 공이 떠오른 순간 방망이를 던진 배창수가 장타를 많이 때려 달리기도 빠르지 않던 발로 죽어라 뛰었다.


뛰고 또 뛰었다.


공은 담장을 맞았다


담장을 맞는 순간 2루를 지났다.


배창수의 숨은 목까지 차올랐다. 한 루라도 더 가려고 배창수는 목이 타오르는 아픔에도 계속 뛰었다.


우익수가 땅에 떨어진 공을 잡고 공을 던지려는 순간, 비 때문인지 공이 우익수의 손에서 미끄러지고 잠시 동안 우익수는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공을 찾았다.


상대팀 팬들과, 상대팀 다른 선수들은 손가락으로 공이 있는 곳을 가리키며 큰 소리를 냈고, 그러는 동안 타자는 3루를 지났다.


3루를 지나서 홈으로 뛰어가는데, 공이 날아왔다.


타자는 더 빠르게 뛰었다. 그런데 그 순간 홈에 거의 다 도착해, 바닥이 미끄러운 탓에 퍽!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으악!”


손을 앞으로 모으고 넘어진 타자는 얼굴을 땅에 박고 미끄러졌다. 그러고는 일어나지 못했다.


“심판이 와서 물었다.”


“괜찮아?”


배창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제 몸 주변을 확인했다.


미끄러운 몸이 홈을 스쳐 지나간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웃으며 벌떡 일어났다.


“네! 괜찮습니다.”


얼굴과 옷이 흙에 더러워졌음에도 뭐가 그렇게 좋은지 흙탕물에서 첨벙첨벙 놀며 좋아하는 아이처럼 웃으며 더그아웃으로 뛰어들어왔다.


경기는 한순간에 6 : 5로 뒤집어졌다.


그 후,


“스트라이크!!”


비는 앞이 보이지 않게 내렸고, 아웃 두 개가 잡힌 뒤 심판들이 모였다.


상대팀은 청주 이노센츠는 조마조마한 듯 비가 옴에도 더그아웃에 온전히 들어가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며 심판들을 바라봤다.


얼마 후 시야 확보가 안되도록 비가 오자, 기다려보던 심판들은 경기장 상태를 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더니 주먹을 쥐어보이며 강우콜트를 선언했다.


그러자 청주 이노센츠 감독과 코치들이 나와서 심판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한 회만 남았는데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하는 듯 보였다.


그러자 그들을 향해 태무가 혼잣말을 했다.


“그러게, 진작 빨리 좀 하지.”


고개를 흔든 태무는 뒤돌아 경기장을 나갔다.


그런 그의 어깨 동무를 한 김개화 감독이 물었다.


"도은한 너 오늘 경기 했냐?"


젖은 옷을 보고 묻는 말이었다. 그는 자신의 옷을 내려다 봤다. 누가 보면 이번 경기에 나가기라도 한 줄 알겠다.


"응원하다가."


"그래, 그렇게 열심히 하니까 보이는 거야. 저 애들 봐라 열심히 한 거 보이는 거, 열심히 하면 다 보이는 거야. 결과로 나타나는 거고."


감독은 턱으로 앞에 들어가고 있던 선수들의 더러워진 옷을 가리켰다.


태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칙으로 말고, 진짜 열심히 해서 이기는 게 그게 야구야. 그러니까 저 위에서도 도와주는 거 아니겠냐?"


감독은 턱으로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태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날씨가 드래곤스를 도와준 건 맞기 때문이었다.


*


경기와 연습 조금을 더 하고 다정과 함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장례식장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가니 이름이 보였다.


[김석례] 그 사기꾼 어머니 이름이었다.


‘김석례’라는 이름 아래 [임지영]이 딸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기꾼 이름이 임지영이었다.


이름을 몇 번 바꿨다고 하던데, 지금은 임지영으로 살고 있던 모양이었다.


장례식장은 너무 늦은 시각이라 그런지 그렇게 사람이 붐비지 않았다.


아니 무섭도록 없었다.


복도를 들어서는데 다정이 말했다.


“사람들이 너무 없네?”


“이제 곧 새벽이니까.”


오는 시간도 있고, 경기가 끝나고 연습까지 해서 그런지 새벽이 거의 다 된 시간에 도착했다. 그랬기에 태무는 사람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다.


변두리에 하나 있던 장례식장에 새벽이 다 되어 가는 시각, 사람이 뭐 그리 많겠는가?


장례식장 복도를 걷던 두 사람은 모서리를 도는데, 도는 순간 흥미로는 장면을 목격했다.


눈앞에 두 사람이 있었다.


두현과 그 사기꾼 여자 임지영이 마주 보며 함께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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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된 투수의 공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5 우리 팀 24.07.16 58 0 12쪽
54 내 선수 내가 믿지 누가 믿어? 24.07.15 63 0 10쪽
53 돌려줄 시간 24.07.12 78 0 10쪽
52 비겁하게 야구하지 맙시다 24.07.11 76 0 10쪽
51 끝까지 봐주세요. 어디까지 올라가는 지 24.07.10 73 0 11쪽
50 하찮은 팀은 없다 24.07.09 84 0 11쪽
49 눈에는 눈 이에는 이 24.07.08 89 0 11쪽
48 결정구 24.07.05 81 1 10쪽
47 조력자 24.07.04 89 1 14쪽
» 신도 돕고 싶은 팀 24.07.03 101 1 13쪽
45 보이면 쳐! 무작정 쳐! 다 쳐! 24.07.02 104 1 12쪽
44 그런 야구가 좋아서 하는 거지 24.07.01 115 2 11쪽
43 아주 더러운 반칙 24.06.28 125 2 12쪽
42 공도 사람이 던지는 것 24.06.27 122 2 13쪽
41 믿을 것은 오직 실력뿐 24.06.26 131 2 13쪽
40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다. 24.06.25 131 3 14쪽
39 부주장 24.06.24 143 3 12쪽
38 다시 마운드로 24.06.21 162 3 13쪽
37 죽음 24.06.20 170 3 11쪽
36 해결 못해. 24.06.19 156 2 12쪽
35 각성 24.06.18 180 3 13쪽
34 각성 24.06.17 192 3 10쪽
33 확! 인! 24.06.14 170 4 11쪽
32 전조등 24.06.13 177 4 12쪽
31 마지막 경기 24.06.12 189 4 11쪽
30 복수를 위해 24.06.11 215 4 10쪽
29 다시는 당하지 않는다. 24.06.10 205 4 11쪽
28 동기 24.06.07 207 5 11쪽
27 다른 방법 있습니까? 24.06.06 223 5 12쪽
26 이제부터 시작이야 24.06.05 249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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