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비된 투수의 공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현대판타지

강요
작품등록일 :
2024.05.08 10:59
최근연재일 :
2024.07.16 12:37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14,190
추천수 :
264
글자수 :
286,047

작성
24.07.05 15:56
조회
80
추천
1
글자
10쪽

결정구

DUMMY


“너, 누구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혼란스러웠다.


요즘 밤마다 무서운 이야기를 틀어 놓고 자던 다정은 혹여나 도은한의 몸이 귀신이라도 들어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눈에 힘이 들어갔다.


갑자기 피로감이 밀려온 태무는 투박한 손으로 양쪽 눈을 비비고는 그녀의 심각한 얼굴을 바라봤다.


“후...”


“거짓말할 생각하지 마. 사실대로 말 안 하면 지금 당장, 내가 아는 무속인 부를 거니까.”


“무속인?”


“어. 그쪽으로 유명한 분이셔.”


이미 빙의 되었다고 단정 지은 모양이었다.


그는 한숨이 푹 나오면서도 이게 빙의 된 상태인가 싶기도 했다. 사실 자신이 죽은 상태는 아니지만, 도은한의 몸속에 들어와 있으니 빙의는 맞나 싶었다.


“그게 아니라. 하-”


그는 답답해 한숨을 내뱉고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게 아니면 뭔데? 아까 한 말이 뭐야? 아니, 됐어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마. 내가 아는 무속인 부를 테니까.”


사실 다정은 어릴 때부터 무속 신앙에 관심이 많았다. 일찍 돌아가신 첫째 이모가 무속인이기도 했고, 외갓집에 가면 무속 신앙에 관련된 책들이 많았다. 그래서 읽다 보니 저절로 관심이 생겼다.


그랬기에 이름 있는 무속인과 친분이 있었다.


다정이 무속에 전부터 관심이 있다는 것은 태무도 알고 있던 탓에 다정이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다는 것이 무속인을 여기로 부른다는 뜻이라는 것을 태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다급하게 다정의 팔을 잡았다.


“아, 알았어! 말할게! 내가 누군지.”


사실 한 명쯤 조력자가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다.


다정은 세림이 태무의 목을 졸라 죽이려고 할 때도 갑작스레 방문해 태무의 목숨을 살려준 적도 있으니.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에 대한 심부름도 시키기에 편할 것 같았고, 자신의 몸이 잘 있는지 가서 봐 달라고 부탁하기도 쉬울 것 같았다.


그는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사실, 내가 강태무야.”


다정은 미간을 살짝 찡그리고는 고개를 미심쩍다는 듯 기울였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강태무는 병원에 누워 있는데, 무슨 개똥같은 소리를 하는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내가 강태무라고.”


그는 목소리를 조금 더 높였다.


“무슨 미친 소리야? 네가 어떻게 강태”


그녀는 말을 하다가 멈췄다. 그 후 그가 병원에서 깨어나고, 이상한 말투부터 시작해서 행동까지 모두 생각해 보니 그의 모든 행동이 강태무와 겹쳐 보였다.


멈춘 입술은 다물어질 줄 몰랐고, 눈도 동그랗게 커져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래, 미친 소리 같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그 호수에서 도은한이 자살한 날부터 이 몸에 들어왔어.”


“그럼 은한이는요?”


“도은한도 여기 있어. 가끔 나오지만 잘 안 나와.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고.”


“그럼 선배 몸은요?”


“내 몸은, 그냥 그렇게 누워 있어.”


설명을 했음에도 못 믿겠다는 듯 다정은 고개를 양쪽으로 한번씩 기울였다. 그러자 태무가 우물쭈물 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내가 이 말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8월 19일.”


“네?”


그녀는 고민스럽게 고개를 살짝 숙이고 한 손으로 입술을 가리고 있다가 놀라서 동그란 눈을 하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너 나한테 고백했던 날.”


그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니, 뭐 그런 날까지 기억해요?”


“안 믿어주길래.”


그녀는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날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날의 일이 기록된 일기장을 가지고 있었다.


태무에게 차인 날 일기를 쓰며 많이 울었는지 종이가 젖었다 말라서 쪼글쪼글하게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펼치려 하지 않아도 그 일기장을 쓰는 내내 일기장은 그녀의 마음도 모르고 그녀가 차여서 상처 받은 날의 기록이 매번 펼쳤고, 그래서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빠르게 말을 바꿨다.


“그럼 어쩌다가 은한이 몸으로 들어오게 된 건데요?”


그녀의 물음에 그가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명이 끝나자 다정은 마치 자신이 두현에게 당한 것처럼 얼굴에 열을 올리며 화를 냈다.


“그런데, 두현 선배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다정은 사정을 들은 후부터 계속 두현의 욕을 하고 있었다. 다정의 집 앞까지 도착했음에도 말이다.


“내려.”


그는 건조하게 말했다.


“벌써 다 왔어요?”


다정은 앞을 살피고는 바쁘게 가방을 챙겼다.


차는 곧 그녀가 살던 아파트 단지 옆에 섰고, 그녀는 그의 얼굴을 봤다. 그런데 도은한의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이 태무라고 생각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적응이 안 됐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왜?”


태무는 이상한 듯 물었다.


“얼굴이 적응이 안 돼서요. 아무튼 내일 봐요.”


다정은 차에서 내렸다.


“어. 잘 들어가고.”


차에서 내린 그녀가 차 문을 닫으려는데 그가 갑자기 생각난 말이 있는지 빠르게 말했다.


“아! 고맙다.”


“네?”


그녀는 문을 닫으려다 허리를 숙였다.


“저번에 내 병실 가준 거.”


사실 그때 병실을 방문해 줘서 살았다는 내용을 말해주긴 했다. 하지만 고맙다고는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아~ 아니에요.”


그녀는 얼굴이 미소가 차올랐지만 한 손을 휘두르며 말했다.


“그럼 가서 푹 쉬어. 오늘 고마웠다.”


“네. 들어가세요.”


그날 그렇게 태무의 든든한 조력자 한 명이 생겼다.


*


다음날 경기는 순위가 다닥다닥 붙어 있던 탓에 이번 경기를 이기면 5위를 탈환할 수 있는 경기였다.


날씨가 꾸물거리기는 해도 비는 오지 않았다.


경기장에 오자마자 해맑게 웃고 있는 창욱이 보였다.


“형!”


‘저렇게 해맑은 애가 얼마나 속이 아팠을까?’


“후-”


한숨이 길게 나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해맑게 웃으면 다가오던 조창욱은 웃음을 멈추고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일 있어요?”


얼굴이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경기 준비하자.”


경기 전에 꺼내 볼 말은 아니었다. 경기는 끝나고 깊은 말을 해봐야 했기에, 일단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조창욱의 등을 툭툭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


경기는 제시간에 시작되었다.


오늘 선발은 구찬성이었다.


1회부터 투수전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경기는 난타전 양상으로 이어졌다.


상대 투수는 우형욱


1회까지는 잘 던졌다. 하지만, 분위기가 이상해 진건 2회부터였다.


2회에 구찬성의 공을 공략해 내기 시작한 상대팀 선수들은 2회에만 3점을 냈다.


청주 이노센츠는 여기서 막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두 타자를 잡아내고, 타자 정은호를 잡아내야 하는 상황에서 3루에 주자가 마중구가 나가 있는 상황이었다.


투수 우형욱은 공을 던졌고, 공은 쭉 뻗어갔다.


정은호는 방망이를 힘껏 휘둘렀고,


핑!


아쉽게도 공은 방망이 옆을 빗겨 맞았고 내야 땅볼이 된 공을 1루수가 달려가 잡았다. 하지만 정은호는 뛰었다.


1루는 공을 잡고 1루로 돌아가 포스 아웃을 하려 할 거라는 모두의 예상과 다르게, 태그 아웃을 하려 주자를 느긋하게 다가왔고, 정은호는 뛰다가 멈춰서 다시 홈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1루수는 느긋하게 정은호를 아웃시키려고 다가왔고, 그 사이 3루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마중구가 빠르게 뛰었다.


관중석에서는 환호 소리가 들렸고, 당황한 1루수는 공을 포수에게 던졌다.


포수는 공을 받아 마중구를 잡으려 했지만, 이미 마중구는 미끄러져 들어온 후였다.


그런데 그 후 상대팀의 행동이 더 가관이었다.


그 후 아직 잡히지 않은 정은호는 눈치를 보다가 1루로 뛰었고, 공은 1루로 날아왔으나 뒤로 빠져버렸다.


그걸 본 정은호는 또 2루로 뛰었고, 그냥 아웃 될 수 있는 볼이 1타점 2루타가 되는 것을 본 우형욱은 헛웃음을 흘리며 허리를 굽혀 로진백을 만졌다.


우형욱이 흔들린 건 그때부터였다.


공을 던졌는데 연속해서 볼이 나왔고, 연속적인 볼로 2아웃에 2루와 1루가 채운 상황에서 허리 통증으로 잠시 치료를 받고 돌아온 메이건이 방망이를 들고 서 있었다.


마음을 잡고 던진 공은 스트라이크 안에 들어왔다.


1루와 2루에 있던 주자들이 코치의 요구에 따라 정신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투수에게 혼란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투수는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몇 번의 견제구를 던지는 것을 봐서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것으로 보였다.


“많이 신경 쓰이나 보네?”


더그아웃에 윤석이 태무의 옆에 앉아서 혼잣말을 했다.


“신경 쓰이겠지. 수비의 본헤드 플레이에 주자들은 뛸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나라도 신경 쓰이겠네.”


“지금이 기회 같은데? 많이 쳐야 할 것 같은데?”


초반부터 점수를 3점이나 내준 상황이기에 몇 점을 더 내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낼 수 있을 때 되도록 점수를 많이 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2볼 2스트라이크가 들어온 상황에 타자 메이건.


투수의 인중에 땀이 맺혔는지 어깨를 삐죽 올려 인중의 땀을 닦았다.


“호!”


투수 유형욱은 숨을 내쉬었다.


이번 공이 이번 경기에 결정 구라고 생각했는지, 투수의 행동이 신중했다. 그래서 어깨에 힘이 들어 간 게 멀리 더그아웃에서 보고 있던 태무의 눈에도 다 보였다.


신중한 표정의 유형욱은 포수를 바라봤다.


포수가 사인을 냈고, 유형욱은 자세를 잡았다.


그 순간 태무는 눈치챘다.


“속구다.”


“속구? 왜?”


상대 투수는 변화구를 더 많이 던지는 선수였고, 결정적 일 때에도 던질 수 있는 변화구가 많아서 결정구도 변화구로 던지던 선수였다.


요즘 폼이 좋지 않아서 2군에서 다시 정비를 하고 올라왔다. 그런데 어제 2군에서 올라온 유형욱의 경기들을 쭉 훑어보니 속구의 비중을 많이 늘린 것을 볼 수 있었다.


여기서 속구를 던지면 꼼짝 없이 당할 것 같았다.


“속구에 자신감이 붙었거든.”


“속구라고?! 메이건은 변화구가 결정구로 올 거라고 알고 있어!"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마비된 투수의 공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5 우리 팀 24.07.16 58 0 12쪽
54 내 선수 내가 믿지 누가 믿어? 24.07.15 62 0 10쪽
53 돌려줄 시간 24.07.12 78 0 10쪽
52 비겁하게 야구하지 맙시다 24.07.11 76 0 10쪽
51 끝까지 봐주세요. 어디까지 올라가는 지 24.07.10 73 0 11쪽
50 하찮은 팀은 없다 24.07.09 84 0 11쪽
49 눈에는 눈 이에는 이 24.07.08 89 0 11쪽
» 결정구 24.07.05 81 1 10쪽
47 조력자 24.07.04 89 1 14쪽
46 신도 돕고 싶은 팀 24.07.03 100 1 13쪽
45 보이면 쳐! 무작정 쳐! 다 쳐! 24.07.02 104 1 12쪽
44 그런 야구가 좋아서 하는 거지 24.07.01 115 2 11쪽
43 아주 더러운 반칙 24.06.28 125 2 12쪽
42 공도 사람이 던지는 것 24.06.27 122 2 13쪽
41 믿을 것은 오직 실력뿐 24.06.26 131 2 13쪽
40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다. 24.06.25 131 3 14쪽
39 부주장 24.06.24 143 3 12쪽
38 다시 마운드로 24.06.21 162 3 13쪽
37 죽음 24.06.20 170 3 11쪽
36 해결 못해. 24.06.19 156 2 12쪽
35 각성 24.06.18 180 3 13쪽
34 각성 24.06.17 192 3 10쪽
33 확! 인! 24.06.14 170 4 11쪽
32 전조등 24.06.13 177 4 12쪽
31 마지막 경기 24.06.12 188 4 11쪽
30 복수를 위해 24.06.11 214 4 10쪽
29 다시는 당하지 않는다. 24.06.10 204 4 11쪽
28 동기 24.06.07 207 5 11쪽
27 다른 방법 있습니까? 24.06.06 223 5 12쪽
26 이제부터 시작이야 24.06.05 249 6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