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알 거야. 속구가 올 거라고.”
태무의 태도에는 여유가 돋보였다.
알 거라고 믿고 있었다.
“어떻게 알아?”
“오늘 아침에 나한테 말하더라고, 속구 좋아졌다고.”
“정말?”
윤석이 태무 쪽으로 고개를 쭉 내민 순간 경쾌한 소리가 경기장 안에 울려 퍼졌다.
탕!
“우와!!!!”
공이 방망이에 맞는 순간 모두들 알아차렸다.
소리가 너무 경쾌해서 담장을 넘어갈 거라는 것을.
결국 홈런으로 승부는 뒤집혔고, 경기는 초반부터 난타전 기미를 보였다.
6회가 지난 지금 8:7로 이기고는 있지만 안심해야 할 상황은 아니었다.
치기도 많이 치고 맞기도 많이 맞아 제법 경기 시간이 많이 흘러 선수들도 다른 때보다 약간은 지쳐있는 상태였다.
7회 수비를 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그런데 6회부터 나왔던 투수 조창욱이 조금 이상했다.
경기 시작 전과는 다르게 불안해 보였다.
마운드 위로 나간 창욱을 태무는 유심히 바라봤다.
생각이 많아 보였다. 그런데 정말로 주자 두 명을 내보내더니 2아웃을 잡아냈다.
뭔가 일정하지 않고 불안했다.
그는 가만히 보고 있다가 일어났다.
“투수 바꾸죠!”
커다란 그의 목소리에 모두들 그를 바라봤다.
뜬금없었다.
잘 던지고 있는 창욱을 보고 무슨 어이없는 말을 하는 것인가 싶었던 윤석은 태무의 옷을 잡고 다시 앉히려 끌어당기며 말했다.
또 미친놈처럼 눈빛이 변해 앞뒤 보지 않고 행동하는 게 무슨 일을 낼 것 같았다.
“무슨 말 하는 거야? 그냥 앉아.”
하지만 그는 윤석의 팔을 뿌리쳤다.
야구를 수년 동안 하면서, 저런 표정을 지었던 선수들을 본 적 있었다.
불안감에 가득 차 어쩔 줄 몰라 하던 얼굴.
저런 표정으로 마운드 위에 있으면, 꼭 사고를 쳤다.
사고는 그저 경기의 승부 여부에만 영향을 주는 사고가 아니었다.
그가 말하는 사고는 피를 보는 사고였다.
보호 장비를 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렇지 않은 부위가 더 많았다.
지금 마운드 위에는 조창욱의 혼란스러운 몸짓은 상대 타자를 위험에 빠지게 할 수 있기에 충분해 보였다.
“저 자식 보라고, 정신 나간 것 같잖아.”
“무슨 말이야? 잘 던지고 있는데?”
“너는 저게 잘 던지는 걸로 보여?”
포수가 던지라는 쪽으로 정확히 던지지는 않아도, 아웃 카운트는 잡아내고 있으니, 그리고 던지는 공마다 끝이 지저분한 게 타자가 못 칠 공을 던지는 게 분명해 보였다.
윤석의 눈에는 조창욱이 공을 잘 던지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태무는 다르게 보고 있었다.
포수가 던지라는 대로 공을 던지지도 않으며, 공 끝은 일정하지 않고 불안했고, 그랬음에도 미안하다는 표시 하나 없었다.
자신의 잘못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 정신을 놔버리고 있는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저러다 상대 타자를 골로 보내는 건 한순간의 일이었다.
이럴 때 평범한 감독이라면 투수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잘 던지고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공 상태만 보고 판단할 테니까.
그는 김개화 감독을 바라봤다.
김개화 감독의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쩐지 선글라스에 가려진 눈이 태무에게 닿아 있는 것 같았다.
김개화 감독은 다시 고개를 돌려 마운드 위에 서 있던 창욱을 바라보더니 이내 근심 가득한 숨을 내뱉었다.
그러곤 손을 아래위로 까딱거렸다.
감독의 손짓에 코치가 물었다.
“네? 창욱이 내리라고요?”
감독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빛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안타까움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으로 묻어 있었다.
“지금 잘 던지고 있는데 왜요? 지금 재석이 올리면 너무 갑작스럽고.”
투수 코치가 설명을 늘어놓는 순간
“으악!”
비명과 함께 상대팀 타자 김호가 뒤로 넘어졌다.
김호가 잠시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공이 김호의 바로 앞에 붙어 날아왔다.
자칫 잘못했다면 타자의 팔꿈치 뼈가 날아갈 뻔했다.
일어난 김호는 일어나자마자 놀랐는지, 얼굴이 벌겋게 변해서는 방망이를 던져버리고 투수가 있던 마운드 위로 쫓아 올라가려고 몸을 돌렸다.
공을 내동 잘 던지다가 위협적인 공을 던졌기 때문에 오해를 한 것이다.
김호는 일부러 자신을 맞히기 위해 던졌다고 오해를 하기 쉬운 상황이었다. 그러자 포수 유진헌이 김호를 막았다.
“에이, 왜 그래?”
“아니, 저 새끼가 맞히려는 거 못 봤어?”
“절대, 아니야.”
포수 유진헌은 고개를 흔들었다.
“사과도 안 하잖아!”
“경험 없어서 그래, 놀라서.”
뭐가 그렇게 정신이 없었는지, 마운드 위의 조창욱은 사과도 하지 않았다.
유진헌이 화가 나 마운드 위로 올라가려는 김호를 끌어안았다. 다행히 김호는 유진헌의 오랜 친구였기에 싸움을 막을 수 있었다.
“미안해, 저 자식 1군 올라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래, 내가 지랄할게, 한 번만 참아.”
더그아웃에 있던 감독은 목덜미를 한 손으로 만지며 손가락으로 마운드를 가리켰다.
“저 자식 일 내기 전에 빨리 내려라.”
감독의 말이 투수코치가 바빠졌고, 급하게 투수를 바꾸게 되었다.
머지않아 창욱이 내려왔다.
“아.. 씨발.”
마운드에서 내려온 창욱은 욕을 나직하게 내뱉었다.
그 모습을 본 찬성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지 않아도 마운드 위에서 상대에게 존중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더그아웃에 들어와서까지 팀 분위기를 흐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 뭐라고 했냐?”
구찬성은 저 멀리 구석에 앉아 있다가, 들어오는 창욱의 앞을 턱 막았다.
“선배한테 한 말 아닙니다.”
생각은 어디에 빼놓고 온 사람 같았다.
찬성은 창욱의 멱살을 잡았다.
이 모습이 화면에 잡힌다면, 안팎으로 시끄러울 게 뻔했다.
“뭐? 너 그 태도 뭐냐?”
“선배한테 한 거 아니라고요.”
“기분 나쁜 일 있었으면, 야구장에 끌고 오지 마, 새끼야.”
구찬성은 매번 앞에서 말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냥 꾹 누르고 말하지 않는 건 그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윤석이 카메라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빠르게 뛰어가 찬성의 손을 잡고 속삭였다.
“그만해요.”
“그만하긴 뭘 그만해!”
윤석과 몇몇 선수들이 막아보려고 했지만, 구찬성은 창욱의 잘못했다는 소리를 듣고야 말겠다는 생각이었는지, 멱살을 잡고 놔주지 않았고, 그로 인해 그 모습이 고스란히 방송에 잡혔다.
중계석에서는 갑작스레 잡힌 장면에 멋쩍어 했다.
“아... 저런 장면은 나오지 말아야 하는데요.”
“네, 경기 중인데 말입니다.”
“네, 드래곤스가 좋아져야 하는 점이 바로 저 점입니다. 구심점이 없네요.”
중계석에서 충고를 하고 있을 때 송출된 화면을 본 팬들도 제각기 지적을 하기 시작했다.
[저러니까 매년 하위권이지.]
[미친 거 아님?]
[감독 김개화 맞음?]
[경기 끝나고 개화한테 개같이 맞겠네?]
[선배한테 저게 맞음?]
[말리는 사람 없음?]
“제 마음은 알지도 못하시면서!”
“말해야 알지! 네 마음이 어떤데!”
두 사람의 언성이 더 높아지고, 가만히 마운드 위를 지켜보고 있던 태무는 옆에 의자에 있던 하얀 수건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둥글게 말았다.
그 후 뒤로 돌았다.
휙!
둥글게 말린 수건이 휙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두 사람 사이를 갈랐다.
“윽!”
갑작스럽게 눈앞에 지나간 수건 때문에 깜짝 놀란 창욱과 찬성은 뒤로 철퍼덕 넘어졌다.
“경기하는데 뭐 하는 짓이야! 싸워도 경기 이기고 싸워. 지면 둘 다 내 손에 죽어.”
태무가 소리쳤다.
태무에게는 경기가 우선이었다.
그러자, 다들 그를 바라봤고, 상황이 단번에 정리되었다.
구찬성이 도은한의 선배이기는 하지만, 맞는 소리였기에 더 이상 군말하지 않고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자리에 가서 앉았다.
*
9회 초 10:9로 1점 차이로 이기고 있는 상태였다.
첫 타자가 나가고, 타자 김도진이 대타로 나왔다.
장타를 칠 수 있는 김도진은 리그에서도 발이 빠르기로 유명한 타자였다.
신인이라서 체력이 좋지 않아 주전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경력이 쌓인다면 분명 주전이 될 수 있는 선수였다.
그래도 고재석은 견제구가 빠른 선수였으니 다행이었다.
1아웃에 2루에 주자가 나가 있는 상태였는데, 나가있는 선수도 발이 빠른 선수였다.
“다음 타자를 생각하면, 홈런인데 말이야.”
마운드 위를 바라보던 태무는 턱을 만지며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윤석이 태무를 힐끗 보고는 물었다.
“무슨 말이야?”
“발이 이상하잖아.”
“도진 선배 발이?”
도진은 선배였다. 사실 태무에게는 친구 도은한에게는 선배였다. 그러니 도진에 대해서 태무는 잘 알고 있었다.
같은 학교는 아니었지만, 경기를 하면서 어릴 때부터 많이 분석했었다.
그래서 잘 알고 있었다.
저 자세는 분명 장타를 칠 때 자세가 맞긴 하지만, 발끝이 이상했다.
발끝이 미세하게 장타를 치는 자세가 아니었다.
장타를 칠 때는 발의 지지대를 잡기 위해 땅에 딱 붙이고 힘을 주는 편이었다.
지지대가 있어야 잘 치니까.
하지만 번트를 칠 때는 시기를 맞추는 것이 중요해서 그런지 발끝을 땅에 붙였다 뗐다를 반복했다.
태무의 눈이 가늘어졌다.
“번트야!”
“번트라고?”
“어.”
“번트는 무슨 번트야? 번트보다는 장타라고 보는데? 지금 때도 그렇고, 번트는 다음 타자가 칠 것 같은데?”
공이 날아오는 그 순간 타자의 자세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번트였다.
예상치 못한 번트에, 3루로 흐르는 볼이 만들어졌고, 수비들이 발 빠르게 움직였지만, 아웃 카운트를 잡지 못하고, 3루와 1루가 채워졌다.
그 모습을 보자 윤석이 물었다.
“너 어떻게 알았냐?”
“저것도 모르면 야구하지 말아야지.”
“나는 하지 말아야겠네?”
“어. 이제 알았냐?”
실없는 농담을 나누고 난 후, 다음 타자가 들어와 번트 자세를 잡았다. 이번에는 직접적인 번트였다.
번트로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았지만, 점수 한 점을 내줬고, 9회 말까지 경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아.. 씨...”
윤석이 욕을 내뱉었다. 그래도 다음 선수는 쉽게 잡아냈다.
더그아웃 분위기가 좋지 않았음에도 점수를 많이 내주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는 9회 말 나가기 전에 들어오는 선수들과 손을 모였다.
“이기자, 이기는 것 말고는 우리 해야 하는 일 없다.”
“네!”
그의 말에 모두가 파이팅을 외치고 손을 위로 올리며 9회 말이 시작되었다.
한 번의 공격이 남아 있었다.
이번에는 선수 한 명이 나가있는 상태였다.
그다음 타자가 있을 때, 그가 코치 옆에 가서 말했다.
“아... 투수가 만만치 않은데...”
혼잣말하듯 흘렸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 태무를 타격코치가 힐끗 보고 다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마운드 위를 바라봤다.
태무는 입술 끝을 씩 올리며 말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인데 말입니다.”
“뭐?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번트로 당했으면, 번트로 갚아주는 게 보기 좋겠죠?”
그의 얼굴에 활기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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