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팀은 없다

“네가 감독하지 그래?”
타격 코치는 태무를 타박하고 감독 쪽으로 돌아갔다.
김개화 감독은 손을 열심히 움직여 사인을 내기보다는 지금 타석에 올라가 있는 최진수의 다음 타자 배창수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방망이를 꾹 잡고 타격 연습을 하고 있던 배창수의 귀에 대고 모두 듣지 못하게 살짝 귓속말을 했다.
그 말이 무엇인지 태무도 약간은 궁금했다.
태무의 옆에 있던 윤석도 궁금했던 모양이다.
“야, 뭐냐? 무슨 말 하는 것 같냐?”
그는 윤석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봤다. 충분히 선수들을 본 태무는 옆에 있던 윤석의 얼굴에서 시선이 멈췄다.
“너 준비해라.”
“무슨 개똥같은 소리야?”
오늘은 자신이 나가지 않는 날이었다.
더욱이 동점이고 포수가 잘하고 있는 상태였다.
포수가 바꿀 일은 전혀 없어 보였다.
“너밖에 없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윤석은 태무의 말을 무시하고 마운드 위를 바라봤다.
마운드 위에 서 있던 투수는 김주혁이었다. 김주혁은 이상하게 드래곤스와의 경기에서 자신감을 보이는 투수였다.
그래서 그런지 여유가 있어 보였다.
얼굴에 여유로운 웃음기가 가득했던 김주혁은 공을 던질 준비를 하는 순간까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머지않아 주혁은 공을 던졌다.
공은 속구였다.
직선으로 날아오다가 끝에서 살짝 왼쪽에 걸치는 빠른 공이었다.
휘익!
퍼억!
최진수는 치려고 방망이를 들고 있었지만, 치지 못했다.
너무 아슬아슬하게 걸쳐서 나갔다고 판단했기에 그냥 서서 보고만 있었다.
진수는 그대로 지나간 공을 보고 방망이로 땅을 치며 아쉬워했다.
“아! 씨!”
아랫입술을 깨물은 진수는 정신을 차리려 고개를 흔들었다.
1스트라이크가 들어온 상태였다.
최진수는 숨을 후 내뱉고 다시 방망이를 들었다.
투수는 자신의 공에 더 자신감이 붙은 모양이었다. 저런 자신감 있는 표정은 다른 팀과 할 때는 나오지 않는 표정이라 진수는 더 속에서 열이 끓어올랐다.
투수 김주혁의 올라온 한쪽 입술 끝을 끌어 잡아 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숨을 후 내뱉고 다시 방망이를 들었다. 그러고는 공을 기다렸다.
휘익!
퍽!
공은 또 미트 안으로 빨려 들었다.
진수는 또 공을 지켜봤다.
많이 보지 못한 공이었다.
라인에 걸쳤다.
또 똑같은 방향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최진수는 무슨 생각인지 치지 않고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었다.
“하...”
그 모습을 보자 나오는 웃음을 막는 것인지 투수 김주혁은 자신의 팔뚝으로 입술을 가렸다. 그러고는 허리를 숙였다.
비웃는 것 같았다.
사실 매번 드래곤스를 비웃던 투수였다.
고개를 든 김주혁은 포수의 사인에 고개를 계속해서 좌우로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자 최진수의 눈빛이 빛났다.
“지금이다.”
최진수는 순간 느꼈다.
쳐야 한다고.
2스트라이크가 들어온 지금이 볼을 치기 제일 좋을 시기라고 판단했다.
주혁은 드디어 제 구미에 맞는 사인이 들어왔는지, 공을 던질 준비를 했다.
공은 곧 그의 손을 떠났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휘익!
탕!
경쾌한 음이 들리고 김주혁의 입은 떠억 벌어졌다.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 공을 바라보며 시선을 옮겼다.
최진수는 최선을 다해 뛰었고, 중견수 키를 살짝 넘기는 2루타를 때려낸 진수는 2루에 도착해 목까지 올라온 숨을 뱉어냈다.
숨을 고른 진수는 주먹을 들어 올렸다.
공은 뒤늦게 2루에 도착했지만, 말 그대로 뒤늦게 도착했다.
주혁의 표정이 굳었다.
태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보기 좋았다. 남을 하찮게 보는 순간 당하는 것이다. 방심하는 순간 당하는 게 야구였다.
그게 바로 야구였다.
그런데 그때, 감독은 최진수를 윤석으로 바꿨다.
사실 더그아웃에 있던 선수들을 보면 윤석이 제일 빠른 선수였다. 그래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면 분명 감독이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9회 어느 순간에 윤석을 투입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최진수도 느린 편은 아니었지만, 항상 장타를 치고 나가는 선수였기에 그렇게 빠른 선수는 아니었다. 그러니 최대한의 효과를 위해 더 빠른 윤석이 나을 것이다.
주자가 윤석으로 바뀐 상태에서 배창수가 나갔다.
그때, 들어온 최진수가 그의 옆에 앉아 땀을 닦아냈다.
“후-”
“속 시원했어요.”
태무는 진수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투수가 드래곤스를 어쩐지 깔보고 있는 게 보이는 것 같아 한 대 쳐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쉽게도 자신은 투수라서 김주혁에게 한방 먹여줄 수 없었는데 그런 태무의 복수를 진수가 대신해준 것 같아 속에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뭘 또.”
최진수는 혼잣말을 하고 마운드 위를 바라봤다.
타석 위에 배창수는 방망이를 들고 감독 쪽을 바라봤다.
그런데 감독이 말에 목을 쑥 내밀고 방망이를 짧게 잡으며 물었다.
“대라고요?”
입모양을 부자연스럽게 크게 움직였다.
그러자 감독이 말했다.
“그래! 대!”
“정말요? 대요?”
“어!”
김개화 감독은 고개까지 끄덕거렸다.
사실 배창수는 지명타자로 장타를 칠 수 있었다. 그런데 번트를 대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배창수는 그래서 물어본 것이 아니었다.
옆에 있던 최진수가 말했다.
“저러면 무슨 작전이냐? 상대팀이 다 알겠다.”
“알라고 저러는 거 같은데요?”
“뭐라고?”
태무는 조금 전에 배창수에게 감독이 귓속말을 하는 것을 봤기에 예측할 수 있었다.
“투수 흔들려고 하는 것 같은데? 번트 의식하게 하려고.”
“아, 정말? 그럼 저게 연기라고?”
배창수와 김개화 감독을 바라보며 최진수가 물었다. 그러자 타석에 방망이를 들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배창수를 보며 태무가 고개를 흔들었다.
“배창수 선배가 그럼 저런 게 어울릴 사람으로 보여요?”
사실 만일 번트를 치라고 사인이 들어왔다면, 조용히 번트를 칠 사람이었다.
되묻고 말대꾸할 사람이 아니었다.
듣고 보니 맞는 소리 같았던 최진수의 눈은 동그랗게 커졌다.
“그래! 맞아. 우와 이제 야구에 연기까지?”
“별걸 다하니까 재미있는 거죠. 야구가.”
태무는 미소를 지었다.
타석의 배창수가 계속해서 번트를 대려고 하자, 투수는 정말 흔들렸다.
결국 배창수는 볼넷으로 1루로 걸어 나갔다.
배창수는 볼넷으로 걸어 나가는 순간까지 연기를 했다.
진짜 번트를 치려고 했는데, 볼넷 때문에 작전을 수행하지 못한 사람처럼 어리둥절해 하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다음 타자는 발 빠른 김하민이었다.
하민은 장타를 칠 기세로 방망이를 들었다.
투수는 이미 자존심이 많이 상해있는 게 얼굴에 보였다. 표정이 처음보다 많이 굳어 있었다.
드래곤스에게 당한 적이 없었으니, 당황스럽고 화도 많이 났을 것이다.
주혁은 자세를 잡은 뒤 공을 던졌다.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은 직선으로 날아가다가 끝에 가서 뚝! 떨어졌다.
유인구였다. 하지만 하민은 잘 골라냈고, 주혁은 골라낸 하민의 행동에 입술에 잔뜩 힘을 줬다. 그러고는 다시 포수의 사인을 받고 고개를 반복해서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인이 왔는지 지체 없이 공을 던졌다.
휘이이익!
끝에서 방향이 살짝 안쪽으로 바뀌는 변화구였다.
그런데!
팅!
장타를 칠 것 같던 김하민은 빠르게 방망이를 짧게 잡고 번트를 댔다.
선수들은 번트가 올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열심히 뛰었고, 발이 빠른 하민도 아웃 카운트를 올리지 않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
그런데 1루수가 내야에 느리게 굴러온 볼을 1루에 던졌지만, 달려온 주혁이 잡지 못했고 공은 빠져버렸다.
선수들은 더 뛰었고, 결국 최진수와 교체되어 들어갔던 주자 윤석이 홈으로 뛰어들었다. 투수는 빠르게 공을 홈에 송구를 했다. 그러나 공은 포수의 손끝을 지나 빠져버렸다.
상대팀 선수들은 망연자실했고, 그제야 1루로 미끄러져 들어온 윤석은 더러워진 옷은 신경도 쓰지 않고 펄쩍 펄쩍 뛰면서 승리를 자축했다.
짜릿한 승리였다.
끝내기 번트로 승리를 해낸 것이다.
모두 윤석에게로 몰려들었다. 더그아웃에 있던 선수들은 물을 가지고 윤석과 하민에게 달려가 마구 뿌렸다.
그렇게 드래곤스는 5위를 탈환할 수 있었다.
*
경기가 끝나고, 라커룸에 모두가 모였다. 김개화 감독은 중간에서 입을 움직였다.
“오늘 정말 잘했다.”
모두가 박수를 쳤다. 박수 소리가 라커룸 밖을 빠져나갈 정도였다.
“중요한 건 어떠한 경우에도 상대를 하찮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찮게 볼 상대가 없긴 하지만, 오늘 투수 주혁이처럼 하면 절대 안 된다. 알았나?”
“네!”
선수들의 사기가 커다란 목소리만큼 올라 있었다.
“그리고 찬성이!”
찬성은 약간 긴장해 고개를 들었다.
“네!”
“많이 점수를 내주긴 했지만, 질질 끌지 않고 잘 승부했다.”
의외였다. 찬성은 사실 자신에게 불호령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의 좋은 평가에 놀랐다.
찬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도망가지 마라. 구찬성처럼. 알겠어?”
“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오늘은 생각보다 이상했다. 말이 그토록 많은 사람인데 여기서 조언을 끝내려고 하는 게 아무래도 뭔가 걸리는 게 있는 것처럼 보였다. 태무는 고개를 약간 기울이고 감독을 바라봤다. 감독은 곧이어 뭔가 할 말이 있었는지 다급하게 말했다.
“아! 조창욱!”
“네!”
창욱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나 보고 가라.”
“네.”
창욱 때문에 다른 선수들에게 할 말을 잊은 모양이었다. 김개화 감독의 특징이었다. 뭔가 걸리는 게 있으면 그 걸리는 것 때문에 말이 적어지는 특성.
창욱의 행동이 아마도 마음에 많이 걸렸던 모양이었다.
*
연습을 조금 더 한 뒤 씻고 집으로 가려고 나왔다.
매번 같이 가던 윤석을 먼저 보냈다. 조창욱과 할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조창욱은 감독과 이야기를 다 했는지 고개를 숙이고 나왔다.
복도를 지나던 감독이 옆에 있던 조창욱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말하고 싶을 때 와라. 도와줄 테니까.”
김개화 감독은 조창욱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 주차장으로 갔다.
아무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조창욱은 고개를 푹 숙이고, 가방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도 얼른 라커룸으로 들어가 가방을 챙겨들고 조창욱의 뒤를 따라갔다.
숙소로 가는 듯 보였다.
창욱은 구장 건물 밖으로 나갔다.
건물 밖으로 나간 창욱을 따라 태무가 빠르게 나갔는데, 건물 밖에 검은 차에서 두현이 내렸다.
“야, 조창욱”
“...”
창욱은 아무 말 하지 않고 표정이 굳은 채로 두현을 바라봤다. 두현은 조수석 문을 열고 턱으로 차 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타라.”
“싫습니다.”
“싫어? 싫으면 어쩌려고 그래? 너 야구하기 싫어?”
“하....”
그 순간 주먹을 꽉 쥔 태무가 다가가 조창욱의 앞에 섰다.
“문해력 떨어지나? 너랑 가기 싫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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